프란츠 카프카는 부유한 유대계 상인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는 프라하에서 공장을 경영하며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전통에 집착하는 인물이었다. 친족들 중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을 아버지로 둔 카프카는 어린 시절부터 부족함을 모르고 자라난 온실 속의 화초 같았다. 그런 아들을 바라볼 때마다 세상이 얼마나 험난한 곳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아버지는 엄해질 수밖에 없었고, 아들이 자기처럼 독립적이고 강인한 정신력에 길들여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사업가인 헤르만은 문학에 소질이 있는 아들이 항상 못마땅했다. 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아들을 반강제로 프라하 대학 법학부에 집어넣은 것도 헤르만이었다. 헤르만은 언제나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제 방에 틀어박혀 무언가를 쓰는 아들을 이해하려고도, 대화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 카프카의 마음속에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분노와 절망이 쌓여갔다. 그것은 강압적인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었으며, 그런 아버지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신의 인생을 아버지 손에 내던져버린 나약한 자아에 대한 불신이었다. 이후 카프카는 세 번이나 약혼했지만 모두 파혼했고, 내성적이며 비사교적인 인물이 되어 고독한 세월을 견뎌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련과 갈등이 그의 문학적 재능에 불을 붙였다는 점이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하루아침에 인간에서 거대한 곤충이 되어버린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독립된 개인으로는 단 하루도 살아보지 못한 프란츠 카프카의 상처받은 내면이었다.
“지금껏 선량한 아들로, 모범적인 시민으로,
인정받는 직장인으로서만
내가 이 세계에 머무르는 것이 허용되었던 건가요?
만약 내가 내 삶을 찾겠다고 한다면...”
체코 프라하 유대인지구에 있는 카프카 동상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불안한 꿈에서 깨어나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벌레로 변해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갑옷처럼 딱딱한 등을 밑으로 하고 위를 쳐다보며 누워있었다. 머리를 약간 쳐들자, 아치형으로 부풀어오른 갈색의 복부가 보였다. 복부 위에는 몇 줄기의 골이 져 있고, 골 부분은 움푹 들어가 있었다. 복부의 불룩한 부분에 걸쳐있는 이불은 금방이라도 완전히 미끄러져 내릴 것만 같았다. 수많은 다리가 그의 눈앞에서 불안스럽게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몸통의 크기에 비하면 다리는 비참할 정도로 매우 가늘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꿈은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매우 작기는 하지만, 어쨌든 인간이 사는 보통 방, 틀림없는 평소의 자기 방이었다.
-프란츠 카프카, 『변신』 중에서
‘소속되다’라는 동사는 인간과 집단 사이에 맺어진 약속이 실천되었을 때 비로소 사전적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모든 집단에는 그 집단에서만 통용되는 약속이라는 것이 있다. 그들이 이룩한 세계를 유지하는 방편으로 개개의 집단은 여러 가지 제약과 관습이라는 체계를 갖춰놓았다. 인간은 집단이 요구하는 약속과 그들이 정해놓은 도덕을 지키는 대가로 그 세계 안에 소속되는 것이 허락된다. 집단의 허락이 떨어져야만 인간은 사회성을 지닌 존재로 성립되는 것이다. 따라서 집단과의 약속을 위배하는 자는 죄인으로 낙인 찍혀 세계로부터 추방당한다.
“나의 삶을 누군가에게 빼앗긴 것은 아닐까?
이제라도 내가 원하는 삶이 내 앞에 주어지기를 소망해야 되지 않을까?”
『변신』의 주인공 그레그로 잠자의 비극은 그가 자신이 소속된 세계와의 약속을 의심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유능하고 근면한 세일즈맨 그레고르 잠자는 한 가정의 기둥이다. 월급을 받아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이며, 한편으로는 부모가 진 빚을 꼬박꼬박 갚아나가는 멍에를 불평 한마디 없이 지고 나가는 가족의 지주였다. 그 대가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에 대해 돌아볼 여유와 기회를 박탈당한 채 살아간다. 자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하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볼 겨를도 없이 가족을 위해, 그리고 자신이 소속된 집단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레고르 잠자는 갑작스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만약에 부모님이 남겨놓은 빚만 아니었다면 벌써 오래 전에 퇴직하여 직업에서 해방되고 나를 괴롭히는 사장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털어놓지 않았을까…’. 그런데 바로 이런 생각, 나의 삶을 누군가에게 빼앗긴 것은 아닐까, 라는 자각, 한 발 더 나아가 이제라도 내가 원하는 삶이 내 앞에 주어지기를 소망해야 되지 아닐까, 라고 기대하는 순간,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꽉 막힌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 새로운 나-가족이나 직장, 사회, 국가가 원하는 내가 아닌- 나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바뀌고 싶다고 처음으로 생각한 그 다음날에 그레고르 잠자는 흉측한 벌레가 되어 잠에서 깬다.
주인공 잠자는 한 집안의 선량한 아들로서 최선을 다해 의무를 책임져왔다. 사회적으로도 모범적인 시민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자신의 존재가 가족과 사회를 위한 존재였을 뿐, 자기 자신을 위한 존재는 아니었던 것 같다는 의심이 지워지지 않는다. 이것은 자신의 본래적 가치를 상실당한 상태로 살아왔다는 반증이다. 문제는 그레고르 잠자가 자신의 본래적 가치를 포기하고 스스로의 삶에 의구심을 품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껏 선량한 아들로, 모범적인 시민으로, 인정받는 직장인으로 이 세계에 머무르는 것이 허용되었다는 점이다.
그레고르 잠자가 소속된 현대사회는 개인의 자각을 허용하지 않는다. 현대사회는 경제적인 구조의 특성에 의해 인간을 직업이라는 형태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사회의 약속에 따르면 인간은 한낱 톱니바퀴에 불과하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능을 철저히 수행하는 것이 인간의 목표다. 그러므로 현대사회에서는 직업이 인간의 유일한 존재형식이 된다. 기능적인 존재에서 벗어나고 싶은 인간의 본질적인 충동은 현대사회에 대한 거역이다. 사회가 강요하는 기능적인 형식을 버리고 자각을 통해 자기만의 삶을 꿈꿨던 그레고르 잠자는 거대한 벌레 취급을 받으며 가족으로부터, 동료로부터, 사회로부터 추방당하는 비극을 겪게 된다.
그레고르 잠자의 비극은 직업이라는 현대사회의 율법을 거역한 결과다. 이는 곧 아버지로 대변되는 집단의 인간들로부터 패배자, 낙오자, 불필요한 존재로 취급받았던 카프카의 절망이 형상화된 모습이기도 했다.
카프카의 고뇌는 거대한 벌레가 된 그레고르 잠자의 방황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레고르 잠자의 방황은 어느 세계에도 소속되지 못한다는 데서 빚어진 공포였다. 그레고르 잠자는 사람도 아니고 벌레도 아니었다. 차라리 완전한 벌레가 되었더라면 행복했을 것이다. 카프카는 많은 세계에 조금씩 소속되면서 그 어느 곳에도 완전히 속하지는 못했다. 유럽에서 태어났으나 민족은 유대인이었고, 기독교 세계에는 영원히 소속될 수 없었다. 체코에서 태어났지만 독일어로 글을 썼으며, 아버지가 공장을 경영했으므로 노동자 계급도 아니었다. 스스로를 작가라고 생각했지만, 생전에 그의 책은 고작 몇 권만 출판되어 아무런 명성도 얻지 못했다. 수많은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세계를 완성시키지 못해 괴로워한 그의 모습은 여전히 외부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는 수많은 현대인의 자화상인 것이다.
인간은 집단에 소속되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수단이 목적으로부터 독립되어 거꾸로 수단의 지배를 받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직업이라는 가치가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 사회적으로 대접받는 기능을 익히기 위해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왜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 왜 다른 이들과 한데 어울려 집단의 일원이 되어야 하는지를 망각하게 되었다. 사회의 부품이 되지 못하면 낙오자가 된다는 두려움, 경제적 능력이라는 현대사회의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개인은 영원한 이방인이 되고 만다는 운명 앞에서 우리는 자신의 본래적 가치를 상실하고 말았다.
머지않은 미래에 특별하고 고귀한 인간은 자취를 감추고 기능으로 평가받는 직업이 인간성을 대신하는 날이 도래하지는 않을까 두려워진다. 그때쯤이면 자기만의 개성과 인격을 갖춘 이들은 그레고르 잠자처럼 어느 날 아침 침대 위에서 벌레가 된 자신을 발견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것은 아닌지, 해괴한 망상을 잠시 해보았다.
상처의 인문학김욱 저 | 다온북스
외면하고, 피하고 싶고, 상처받기 싫은 마음이 결국 상처에 얽매이게 만든다. 불편하고 아픈 상처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만이 족쇄 같은 상처에서 벗어나 두려움 없이 세상과 사람들 사이에서 나답게 살아갈 힘이 되어준다. 『상처의 인문학』은 여든일곱의 노(老)작가가 절망 속에서 헤맬 때, 묵묵히 곁을 지키며 아픔의 길을 함께 걸어온 작품과 그 작가들에 대한 기록이다.
올해로 87세의 현역 번역가 겸 작가인 김욱 선생은 벼랑 끝으로 떠밀린 삶에서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겠다는 의지로 글을 쓰고 있다. 나이를 잊게 만드는 그의 글은 힘 있고 위트가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