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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개와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네
『헤밍웨이의 말』과 『올드독의 제주일기』
지난 며칠간 자주 만났던 제주 개들을 떠올리고도 남을 책 『올드독의 제주일기』였다.
지난 2월, 제주도에 또 갔다. 연초 난생 처음 들렀을 때는 친구의 신춘문예 당선 축하 겸사였던 고로 제주시내만 보았기에 이번엔 7박8일, 좀 길게 일정을 잡았다. 그렇게 찾아간 제주도, 희한하게 가는 곳마다 개를 만났다. 협재 최마담네 빵다방을 지키는 개 두 마리라던가, 애월 카페 꽃향유 뒷마당에서 꼬리를 흔들던 세계에서 가장 큰 견종이라는 그레이트 데인이 아닐까 의심되는 큰 개라던가, 날이 좋고 하여 무작정 산책을 나섰다가 만난 작은 포메라니안이라던가, 그림으로 그리기도 한 위미항 근처 하마다 게스트하우스의 진돗개 섭지와 코지라던가.
하마다 게스트하우스의 진돗개 섭지와 코지
연달아 개와 만나자니 제주도 개 이야기를 활자로 보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짐을 늘일 여유는 없었다. 겨울 7박 8일 일정은 짐이 엄청났기에 기념 삼아 딱 한 권만 살 셈이었다. 심사숙고 끝에 최신간 『헤밍웨이의 말』로 골랐다. 협재에서 들른 카페 ‘헤밍웨이 하우스’의 사장님이 무척 친절했다. 그런 사장님을 보자니 마침 나온 헤밍웨이 관련 신간을 사서 간판 앞에서 기념사진 한 장을 남기고 싶어졌다. 서귀포 어딘가 있다는 서점 북타임을 찾아갔다. 한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간 그곳에서 애로사항이 발생했다. 『헤밍웨이의 말』이 최신간이라 입고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먼 거리를 왔는데 그냥 돌아가기엔 섭섭했다. 이왕 이리 된 거 회원가입도 할 겸 딱 한 권만 사자는 기분으로 책을 훑자니 유독 눈에 띄는 책 한 권이 있었다. 지난 며칠간 자주 만났던 제주 개들을 떠올리고도 남을 책 『올드독의 제주일기』였다.
올드독은 두 마리 개 소리와 풋코가 헤엄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무작정 제주도를 찾았다. 이후 제주도에서 살며 겪은 일을 책 한 권으로 남겼으니, 아는 사이였다면 어깨를 몇 번 툭툭 쳐주며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위로를 해주고 싶을 정도의 반전 충만한 사연들이었다. 한 권을 사고 나니 두 권을 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마음이 제주도 시외버스 배차간격처럼 느슨해져서는 이틀 묵은 협재 숙소 ‘알로하 서재’에서 눈독 들였던 검정개의 제주도 여행사진 『제주犬학』을 구입했다. 숙소 대문 앞 의자에 앉아 세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일몰과 책을 번갈아 보노라면 이대로 제주도에서 살아도 될 것 같은 안이함이 노을처럼 마음에 스며들었다. 다음 날, 이 책을 들고 나섰다가 한림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도 사진 속 풍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풍력발전소의 힘찬 날개를 향해 돈키호테처럼 튀어나가는 검정개가 눈앞에 보이는 듯했달까.
알로하 서재
『제주犬학』을 들고 찾아간 비양도에도 개가 있었다. 하루에 단 세 번밖에 배가 뜨지 않는 인적 드문 곳이었기에 못된 인간이 없는 모양인지 똥색 삽살개는 사람을 겁내지 않았다. “내가 섬을 안내해 줄게.” 같은 느낌으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먼저 다가와서는 최신간을 구비한 도서관부터 시작해 정말 맑은 날에만 볼 수 있다는 구름 안 낀 한라산까지 안내해 줬다. 한참 넋을 잃고 보다 문뜩 십 년 전쯤 읽은 시를 떠올렸다. ‘나, 게와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내용의 하이쿠였다. 죽으려고 간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난 게와 놀다가 자살할 마음을 꺾었다는 속뜻이다. 제주도, 가는 곳마다 개를 만나 논 기분은 이에 비견할 만했으니 인간은 얼마나 많은 신세를 동물들에게 지고 있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동물을 배신한다.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나며 진돗개 9마리를 챙기지 않았다고 한다. 비양도에서 우연히 만난 개 한 마리조차 이렇듯 사람을 돕는다. 하물며 지난 4년간 곁에 있어준 개는 얼마나 많은 기쁨을 줬을까. 그런 개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박 전 대통령이 야속할 따름이다. 갈 곳을 잃은 9마리 진돗개들의 앞날에 비양도에서 만난 똥색 삽살개 같은 자유가 찾아오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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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은 성덕(성공한 덕후). 소설가보다 만화가 딸내미로 산 세월이 더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