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 귀를 위한 시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의 역자 황유원, 서대경 밥 딜런 노래를 살펴보는 시간
정리하면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중이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임을 생각해보면, 그 의미가 어떤 것인지 짐작하실 수 있겠죠. 우리 문학도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음악은 문학 장르로서 인정될 수 있을까. 엄연히 다른 두 장르를 논하는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릴 법하지만, 작년을 기점으로 이 질문은 논란의 여지가 생겼다. 가수 밥 딜런이 노래를 통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음악 역시 문학 장르로서 인정될 여지가 있음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아직 문학계에서는 그의 수상 사실을 두고 찬반 논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대중은 그의 음악 세계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과연 그의 음악은 어떤 뜻을 품고 있고,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지난 2월 16일, 상수역 카페꼼마에서는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 북 토크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가수이자 시인인 밥 딜런의 음악 세계를 탐구하고, 그것의 문학성에 대해 논하는 자리였다. 행사는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 을 펴낸 서대경, 황유원 시인과 함께 성기완 시인의 대담으로 이뤄졌다. 세 사람은 밥 딜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음악을 감상하며 청중과 함께 밥 딜런 노래의 문학성에 대해 논했다. 책에 대한 이야기로 대담이 시작됐다.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 북콘서트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 이 나온 지 얼마나 됐죠?
황유원: 12월 중순 정도에 책이 출간됐어요. 밥 딜런의 노벨상 수상이 결정된 지(16.10.13) 약 두 달 정도 만에 번역을 마친 셈이죠. 책 두께를 보면 어떻게 이 일을 했나 싶어요. 오랜 시간을 두고 작업을 하려 했다면 하지 못했을 거예요. 오히려 짧은 시간 동안 집중해서 일했기 때문에 책을 출간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서대경: 사실 저희보다 더 힘들었을 분은 편집부 분들이에요. 그분들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책이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네요.
책 구성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황유원: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 은 1961년부터 2012년까지 나온 밥 딜런의 모든 노래를 담은 책입니다. 정식 앨범은 물론, 정식 앨범에 포함되지 않은 노래까지 모두 포함한 387곡의 노래를 번역해 담았습니다. 밥 딜런의 가장 처음부터 현재까지의 곡들을 차례대로 배열해 놨으니, 순서대로 곡을 감상하시면 밥 딜런의 생애를 살펴보신 듯한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서대경: 작업을 하다 보니 이 책을 번역하는 일이 문학 대가의 전집을 발간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떤 작가의 전집을 번역하는 것처럼, 밥 딜런의 삶이 담긴 노래를 하나하나 살펴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밥 딜런의 노래를 논하자면 가사의 특별함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그는 묘한 말장난, 시대적 언어 등의 기술을 구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죠. 그 같은 시적 표현은 한국어로 옮길 때 특색을 살리기 쉽지 않게 마련인데, 두 분 작가님은 어떻게 접근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서대경: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밥 딜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어요. 그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조차 헷갈릴 정도였죠. 그의 노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노래로 생각하고 번역하면 무리가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텍스트 자체로만 보면 노래에서 벗어난 문자이니, 문학 텍스트로 생각하고 시로서 접근하려 노력했죠. (그 같은 관점으로) 노래를 번역하다 보니 노래 곳곳에서 뉘앙스, 은어, 유머 코드 등 다양한 언어적 실험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제 판단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웃음) 그의 노래는 시로서 받아들이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유원: 밥 딜런 노래 특유의 언어적 리듬 때문에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의 노래 곳곳에 살아있는 라임, 요운, 두운, 각운 같은 것들은 내용만 번역하면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게 많거든요. 그런 소리 모두를 살릴 순 없었지만, 의미만큼은 최대한 살려 원래의 느낌을 살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가장 훌륭한 텍스트는 언제나 원전인 만큼, 이 책을 원전 고유의 맛을 느끼기 위한 보조도구로 생각하시고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두 번역자분 모두 시인이신 만큼, 시를 대하는 독특한 관점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영어로 쓰인 시를 다시 한국어로 풀었을 때 시를 다시 쓴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 같은데, 이 점에 대해 말해주세요.
서대경: 앞서 황유원 시인이 언급했던 말에 공감이 갑니다.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한글로는 도저히 옮길 수 없는 부분을 마주해야 할 때가 많았거든요.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우리 말답지 않아지고, 우리 말답게 하려면 필연적으로 원문을 바꿔야 하죠. 다만 그 같은 과정이 부정적 결과만 낳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영어를 한글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원문이 갖지 못한 또 다른 예술적인 것이 생겨나기도 하거든요. 번역 문학의 묘미죠. 저희 책에도 이런 부분이 있으니, 원문과 비교하며 책을 감상해보시면 재미있는 독서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두 분이 생각하신 밥 딜런 최고 앨범을 하나씩 꼽아주세요.
황유원: 사실 제가 가장 많이 들은 앨범은 히트곡들을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이에요. 가장 좋은 노래들만 담겨 있잖아요(웃음). 그다음으로 가장 많이 들은 앨범은 <High Way 61 Revisited(1965)>입니다. 밥 딜런이 포크 가수에서 전자 기타 가수로 전향한 시기에 낸 앨범이죠. 밥 딜런의 포크 노래를 좋아했던 팬들에게는 많은 항의를 받았지만, <Like a Rolling stone> 등 좋은 곡이 굉장히 많이 수록돼 있어요. 특히 난해한 가사를 쉬운 멜로디에 녹여 사람들이 따라 부르게 했다는 사실이 인상 깊습니다.
서대경: 저는 황유원 시인이 말씀하신 앨범의 바로 전작인, <Bringing It All Back Home(1965)>이 가장 좋았어요.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이번 번역을 계기로 밥 딜런을 듣기 시작했거든요. (웃음) 가장 좋은 앨범을 고를 때 가사에 좀 더 높은 비중을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앨범의 가사는 무척 어려운 편이에요. 어느 하나 번역하기 쉬운 앨범이 없었지만, 이 앨범은 최고 절정 수준이었죠. 번역하기 정말 난해했거든요. 하지만 번역을 계속하다 보니 이 앨범만이 가지고 있는 창조적 느낌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기교의 화려함이 아닌, 멜로디, 발성, 가사 등에서 알 수 없는 꿈틀거림이 느껴진다 생각했죠. 아마 여러분들도 이 앨범을 집중해서 들으신다면 그 느낌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재미있게도 두 분 모두 1965년도에 발매된 앨범을 골라주셨네요. 1964년에 비틀즈가 미국에 방문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비틀즈의 방문 이후 미국에는 유럽 락을 부흥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밥 딜런 역시 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죠. 밥 딜런은 그 후 전자 기타라는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됩니다. 그 같은 변화를 통해 기존에 시도하지 못한 창조적 에너지를 새로운 앨범에 쏟아낼 수 있었죠. 다음으로 두 분께 밥 딜런 노래를 한 곡씩 추천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서대경: <Let Me Die In My Footsteps>(<Bob Dylan>, 1962)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의 나이 스무 살 때 쓴 곡으로, 첫 앨범에 담긴 노래죠. 이 노래에는 자연, 개인, 죽음, 사회적 저항 등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노래를 듣다 보면 스무 살 청년 목소리가 아닌 할아버지 목소리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이 노래에 담긴 통찰력은 깊습니다. 노래를 계속 듣다 보면 월터 휘트먼의 <풀잎 Leaves Of Grass>(1855)이 생각나기도 해요. 에머슨, 소로우가 표방했던 자연 친화, 자아의 전통이 밥 딜런에게도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나거든요. 히피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 같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정말 좋았습니다.
<Let Me Die In My Footsteps>는 밥 딜런이 평생 활용한 단 하나의 중요한 형식인 ‘verse 코러스 구조’가 담겨있는 노래에요. 1, 2절과 함께 후렴구가 순환하는 구조죠. 북유럽적 전통에 영향을 받은 동시에, 흑인 블루스의 전통이 담긴 것으로 보입니다. 밥 딜런은 도서관에 자주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곳에는 흑인 떠돌이 뮤지션이 녹음한 자료들이 많았다고 해요. 그런 것들이 모여 밥 딜런 노래의 자양분이 된 것이겠죠. 황유원 시인은 어떤 곡을 추천하고 싶으세요?
황유원: 저는 <Like A Rolling Stone>(<High Way 61 Revisited(1965)>, (1965))을 추천하고 싶어요. 이 노래를 통해 밥 딜런 가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거든요. 런던에서 우연히 이 노래만을 다룬 책을 얻게 됐는데, 그 책에는 가사를 그대로 옮겨 그린 만화를 보고 한 멜로디 안에 가사가 무척 많이 담겨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죠. 라임도 기가 막히게 들어가 있고요. 어떻게 이런 가사를 썼을까 하고 관심을 갖고 듣다 보니, 점차 밥 딜런 가사에 빠져 들어갔죠. 감히 말하는 거지만, 밥 딜런 노래의 가사를 모른다면 밥 딜런의 모든 것을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가사를 보기 시작하면 노래 전체가 새로 들리기 시작하죠.
밥 딜런 공연을 간 적이 있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멜로디가 똑같게 들리더라고요. 사실 가사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인 거죠.
황유원: 그냥 듣기만 하면 멜로디가 촌스럽게 들리기도 하죠. 여러모로 재미있는 노래입니다. 특히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왜 그럴까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아마 의미가 복합적이기 때문 아닐까 싶어요. 이 노래는 환상 속에서 빠져나와 (세상의) 쓴맛을 처음 보게 된 여자를 시종일관 조롱하는 노래에요. 단순히 보면 화자가 무척 못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사를 좀 더 들여다보면, 동시에 굉장히 자유로운 느낌을 찾을 수 있어요. 화자의 여자에 대한 조롱은, 여자의 눈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단순한 조롱이 아닌 ‘환상을 벗겨주는’ 행위였던 거죠. 화자는 이제 더 이상 감출 비밀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여자에게 자유를 선사합니다. 그의 조롱은 새로운 세상에 들어온 것에 대한 축하였던 셈이죠. 조롱과 자유를 동시에 논하는 이 노래의 양가적 느낌이야말로, 이 노래를 계속 듣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밥 딜런이 노벨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선 두 분은 시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서대경: 저는 기분 좋게 받아들였어요. 밥 딜런에 대해 잘 몰랐지만, 이 책을 번역하고 나니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는 수상자라는 생각이 들었죠. 아직 밥 딜런의 노래 자체를 완벽히 이해한 건 아니지만, 그의 가사, 텍스트만 놓고 보더라도 밥 딜런은 충분히 수상할 만한 자격이 있는 작가 같습니다.
황유원: 과거 밥 딜런이 노벨상 후보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 말을 믿지 못 했어요. 가사가 너무 단순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정말 밥 딜런이 노벨상을 받아버렸죠. (웃음) 그의 노래를 깊게 공부하고 나니 이제는 이해가 돼요. 반갑기도 하고요. 다만 그것과 별개로 개인적 아쉬움이 남은 부분이 있어요. 한림원에서 밥 딜런의 수상을 발표할 때 그의 시를 두고 ‘귀를 위한 시’라는 표현을 썼거든요. 귀를 위한 시지만, 읽어도 시로 읽히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의미로 쓴 표현이겠죠. 밥 딜런이 그런 노래를 썼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그런 표현을 들으니 현대 시의 세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시란 원래 귀를 위한 건데, 언제부턴가 눈만을 위한 게 됐거든요. 이제 시인은 귀를 위한 시를 못 쓰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죠.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평가하는 경우는 많아도, 시상 행위 자체가 문학에 대해 질문이 된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밥 딜런의 노벨상 수상은 앞으로 문학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 물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 같은데요. 마지막으로 두 분께 이에 대한 생각을 여쭙고 싶습니다.
서대경: 어마어마한 질문인데요. (웃음) 그렇게까지 큰 고민까진 해보진 못했지만, 밥 딜런 작품에 나타난 자유분방함에 확실히 큰 자극을 받았어요. 밥 딜런 노래를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노래가 정밀히 쓰였음에도 굉장한 자유분방해요. 치밀한 구조를 이루고 있음에도 그 이면에는 자유가 자연스레 녹아있거든요. 이번 기회를 통해 과연 우리 시인들의 시는 얼마나 자유로우며, 자유는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치열하게 하는 문학적 실험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어디에 지향을 두고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점검하고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됐죠.
황유원: 처음 번역을 하고 든 생각은 의외로 가사들이 그렇게 난해하지 않았다는 거였어요. 일부러 난해하게 했지만, 이해를 못 할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구멍’을 만들어놨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네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도록 함정을 파놓고, 사람들이 찾도록 만드는 거죠. 그런 건 난해하기보다, 애초에 설계가 됐다고 표현하는 게 맞습니다. 그가 다룬 함정을 살펴보면, 개인 생활뿐만 아니라 시대에 대해 첨예하게 반응한 것이 많아요. 특히 사회적 메시지를 전할 땐 신랄하죠. 그의 노래를 듣는 대중들은 이것들을 자연스레 생각하게 됩니다.
정리하면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중이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임을 생각해보면, 그 의미가 어떤 것인지 짐작하실 수 있겠죠. 우리 문학도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만의 언어를 사용하며,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시인들이 많지 않죠.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습니다.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 밥 딜런 저/서대경,황유원 역 | 문학동네
2016년 노벨문학상이 가수 밥 딜런에게 돌아갔다. 노벨문학상 사상 음악가에게는 처음 수여됐으며, 그 자체가 시라고 할 수 있는 가사를 써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밥 딜런 일생의 가사를 집대성한 결정판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에는 데뷔 앨범 [Bob Dylan](1962)부터 [Tempest](2012)까지 총 31개 앨범의 가사 387편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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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을 담아 쓰겠습니다.
<밥 딜런> 저/<서대경>,<황유원> 역43,200원(10%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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