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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을 느끼며 인간은 진화한다
『미각의 비밀』
존 매퀘이드는 과학, 환경, 생물, 요리 등에 대한 글을 써온 저널리스트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 과학적으로 깊은 수준의 연구결과를 논증하기보다 인간의 진화와 발달, 그리고 음식과 산업적 측면까지 어우르는 폭넓은 관점에서 미각이란 개념을 파헤쳤다.
어릴 때 미맹 테스트를 한 적 있다. 무지 쓴 액체가 묻은 테이프 같은 것을 혀 위에 올려서 그 쓴맛을 느끼는지 보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학교에서 혀의 지도를 보면서 단맛은 앞부분, 양 옆은 짠 맛, 뒤쪽은 신맛이고, 매운 맛은 사실은 혀가 자극 받는 것이지 맛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그 때는 그냥 외웠다. 그리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또 미맹에 속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테스트 때문에 혀에 닿은 쓴 맛이 사라지기만을 바라며 침을 연신 뱉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인간은 맛을 느끼는 것일까? 솔직히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다. 그저 맛에 너무 민감한 사람은 섬세한 사람일 것 같으면서 동시에 너무 까다로운 미식가 같은 이미지가 그려지니 썩 편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는 정도다. 혹은 요리사가 될 재능은 미각에 예민해야 한다는 것 정도?
실제 드라마 <대장금> 에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린 장금이가 음식 속에 넣은 홍시 맛을 알아차리자 어떻게 그걸 알았냐고 묻자 “홍시 맛이 나서 홍시가 들어갔다고 했을 뿐입니다”라는 매우 직관적인 대답을 하는 것으로 장금이의 탁월한 미각 재능을 드러낸 에피소드가 유명하지 않았나. 이를 통해 오랜 훈련을 받은 요리사의 미각이 있다 해도 타고난 재능은 못 이긴다는 살리에르적 비관적 좌절을 우리는 하게 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미각이란 그저 ‘호사가를 위한 취미적 기능 이상은 아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생각이다.
그런데 미각이 사실은 인간의 진화와 함께 했고, 알고 보면 맛에 대한 감각 하나하나가 사실은 인간의 생존과 발달에 기여를 하였다는 주장을 하는 책이 있다. 존 매퀘이드의 『미각의 비밀(Tasty)』이다. 존 매퀘이드는 과학, 환경, 생물, 요리 등에 대한 글을 써온 저널리스트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 과학적으로 깊은 수준의 연구결과를 논증하기보다 인간의 진화와 발달, 그리고 음식과 산업적 측면까지 어우르는 폭넓은 관점에서 미각이란 개념을 파헤쳤다.
먹이를 섭취해서 영양분으로 삼는 대부분의 생명체의 구조를 보면 입과 코가 뇌와 가까이 있는데, 맛을 보고 냄새를 맡는 기능이 생존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가까이 있게 배치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4억 5천만년 전 턱이 없는 먹장어가 썩는 냄새에 이끌려 죽은 바다동물의 몸 속을 파고들어가 시체를 먹는데,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생물로 지금까지도 몇 억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삼엽충이 맛과 냄새를 구별하지 못한 것에 비해 무악어류인 먹장어는 맛과 냄새를 구별할 수 있었고 이들 감각기관이 뇌와 가까이 배치되어있다. 맛이란 생각해보면 몸 안으로 들어온 먹이를 구별하는 문지기이고, 냄새는 바깥 세계에서 내 안으로 들어올 먹이를 감별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 점에서 맛을 보는 것과 냄새를 맡는 것은 서로 그 기능이 다르다.
여기에 쓴 맛이 등장한다. 혀는 쓴 맛을 느끼면 뇌에서 바로 불쾌감을 느끼고 자동적으로 찡그린 표정을 짓는데 이는 인간을 포함한 거의 모든 동물에서 관찰된다. 그런데 쓴맛은 자연계에서 독소와 연관되어있다. 그러므로 쓴맛을 민감하게 느끼고, 고개를 찡그리고 자동적으로 뱉어내는 반응을 하는 것은 독소를 실수로 먹지로 않을 확률을 높인다. 쓴맛을 감지하는 유전자는 그 수가 점점 늘어나고, 그런 개체는 생존의 확률이 올라갔다. 쓴맛을 느끼는 사람의 다수는 혀에 맛유두의 분포가 더 많이 있는데, 쓴맛을 못 느끼는 미맹(味盲)에 비해서 입과 뇌사이의 연결이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더 강한 맛감각과 향미정보를 지각하는 초미각자로 다양한 음식을 분류해 낼 수 있다.
즉 쓴맛을 잘 감지하는 사람은 독소를 재빨리 탐지해서 표정으로 신호를 줘서 집단이 살아남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쓴맛에 둔감한 사람은 새로운 먹거리를 쉽게 먹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그동안 시도해보지 못한 새로운 먹거리를 발견해서 먹어보고, 살아남는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권할 수 있고, 인간의 음식 레퍼토리도 많아질 수 있었다. 그래서 쓴맛이 담긴 테이프로 미맹 테스트를 하면 소수는 여전히 쓴맛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유전자의 다양성이 바로 인간의 생존법칙의 중요한 원칙인 점은 이렇게 미각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쓴맛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단맛이다. 쓴맛이 위험을 피하게 해준다면 단맛은 생명체의 기본 에너지원인 포도당을 바로 섭취할 수 있다는 신호다. 당은 지구 먹이사슬에서 광합성을 하더라도 만들어지는 기본중의 기본으로 모든 생명체의 연료다. 그러나 바로 변환하지 않고 사용할 당 공급원은 많지 않아서 과일이나 장과, 꿀 등에나 있고 이들이 가진 맛인 ‘단맛’은 강력한 유인요인이 된다. 탄수화물이나 단백질, 지방이 당이 되려면 변환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꿀이나 과일의 당은 먹는 즉시 에너지로 쓸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연료이므로 당을 가진 것을 뜻하는 단맛은 “이건 먹어야 해!”란 강력한 신호로 작용한다. 더욱이 단 것을 먹으면 쾌락중추가 자극되어 즐거움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더 먹고 싶다는 욕구를 만들어낸다. 이런 메커니즘이 단 것을 더 찾게 만들고, 단 것을 먹고 나면 행복해지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저자는 인간이 맛을 느끼고, 즐기는 과정이 진화과정과 함께 했고, 지금 우리가 즐기는 수 많은 음식들이 이런 노력의 결과물이기도 하다는 것을 다양한 역사적 사례, 동물실험 결과 등을 들어 제시하고 있다. 인간의 심리는 맛을 느끼고 경험하는 것으로부터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고, 그에 기반한 수많은 행동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사람을 파악하고 관계를 맺는데 있어서 그 사람의 미각을 파악하고, 맛에 대한 태도를 관찰하는 것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그렇다면 한 끼 식사를 함께 해보자.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그 사람의 진화적 특성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걸 기반으로 더 많은 상황의 행동패턴도 예측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미각의 비밀존 매퀘이드 저/이충호 역 | 문학동네
저자 존 매퀘이드는 이 책에서 주방과 슈퍼마켓, 농장, 레스토랑, 거대 식품 회사, 과학 연구실을 직접 방문하고 탐사하면서 지금도 계속 드러나고 있는 향미 개념과 앞으로 수십 년 사이에 우리의 미각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양한 방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과학 연구를 소개한다.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존 매퀘이드> 저/<이충호> 역14,400원(10% + 1%)
인간 진화의 마지막 고리, 미각은 어떻게 인간 진화를 결정해왔는가? 당신의 삶 속에서 맛은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 당신은 아침에 일어나서 쓰디 쓴 커피 한 잔을 마시지 않고는 하루의 일과를 시작할 수 없는 사람인가? 이 쓰디 쓴 커피를 무엇보다 감미롭다고 느끼는 사람인가? 당신은 맛있는 것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