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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원 “직업은 사람을 소모한다”

『일철학』의 저자 박병원과 독자들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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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라는 것, 이미 있는 시스템에서의 일이라는 건 사람을 소모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소모하는 대가로 임금이라는 게 주어지죠. 물론 일을 하는 동안에도 노력이 필요하고 힘든 부분들이 있지만, 분명히 쌓이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 노하우가 쌓이죠. 단순 노하우가 쌓이는 게 아니고 자기 인생이 두터워진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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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은 사람을 소모한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는 익숙한 것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새로운 것, 낯설고 어색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늘 있죠. 그런 면에서 우리가 세상이 변하는 흐름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는 두려움이 없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 속에 또는 머릿속에 있는 세상의 흐름을 읽는 것으로는 부족하죠. 직접 부딪혀보고, 사람을 만나보고, 현장을 누벼보는 데에서 일이라는 것이 고민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직업적 인간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죠.”

 

현장 철학자이자 자연법 사상가인 박병원 저자는 30년 가까이 실천적 자기 반성력을 바탕으로 한 사회사상, 사회철학, 인간개발 운동을 진행해왔다. ‘방하창업학교’를 설립해 미래의 일과 개념, 그에 맞는 태도와 방편을 갖추기 위한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그가 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차서신호체계연구소’는 그러한 교육의 실질 방편을 생산하고 공유하는 R&D센터다. 『일철학』 안에서 ‘임금 노예로 살 것인가, 일의 주인으로 살 것인가’라는 묵직한 주제를 던지는 그는 ‘이제 일을 철학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일’을 철학하자! ‘일’을 철학하는 것이 당장의 ‘일자리’를 찾고 구하느라 전전긍긍하고 허둥대는 것보다 시급하다. ‘일’을 철학하면, ‘나’의 ‘일’이 보이고, 나와 이웃의 ‘일’과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여전히 관계 배우기에만 열심일 때, 자신은 ‘관계 만들기’를 해 가고 ‘일’을 해 가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일철학』 8~9쪽)

 

그렇다면 일은 직업과 무엇이 다른가. 그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변화하는 시공간 속에 현재적으로 요구되는 시대정신이라고 표현할까요. 그건 일이 되죠. 이미 익숙해지고 하나의 시스템으로 자리 잡혀가는 건 직업이 되고요. 직업과 일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지는 개인의 몫입니다. 직업을 선택했을 때는 조직의 여러 가지 요구 조건이 있을 거고, 동료들과의 관계에 편입되기 위해서 필요한 처신들도 있겠죠. 그러기 위해서 노력과 피로감과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할 거고요. 일을 선택했을 때는 ‘내가 이 시절에 무엇을 하는 게 필요할까’에 대한 고민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공간에서 요구되는 일을 찾아서 나갈 때의 노력이 필요할 거예요.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힘들고 피곤할지,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직업을 갖기 위해 이미 갖추어진 시스템으로 편입되어야 한다. “끼워 맞추기 인생”을 사느라 자신의 인생을 살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직업이 사람을 소모한다”고 단언한다.

 

“직업이라는 것, 이미 있는 시스템에서의 일이라는 건 사람을 소모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소모하는 대가로 임금이라는 게 주어지죠. 물론 일을 하는 동안에도 노력이 필요하고 힘든 부분들이 있지만, 분명히 쌓이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 노하우가 쌓이죠. 단순 노하우가 쌓이는 게 아니고 자기 인생이 두터워진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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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안 하고 살 수 있을까요?


‘직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강연 내내 이어졌다. 박병원 저자는 “나라는 한 인간의 중력장이 기성의 중력장에 휩쓸려 들어가기 쉬운 게 직업이다”라고 정의하는가 하면 “지금의 시공간이 아닌 과거 어느 시점의 시공간이 하나의 시스템이 되어 있는 게 직업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가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될 것 같아요. 내가 현재적, 현재 진행형, 미래 지향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그냥 세파에 시류에 휩쓸려 가는 사람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뒤이어 그는 주체적인 태도를 강조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에는 철학이 없고, 주체적인 사고가 투영되어 있지 않은 까닭이다. 저자는 “바뀌는 시공간에 대한 자기 통찰력을 유지하는 속에서의 자아실현”이라는 점에서 일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내가 계발될 수 있고 내 인생이 살찌워질 수 있는 직업은 무엇일까, 그걸 고민하는 게 ‘일철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 이 시절에는 정말 필요한 것이고요. 사람을 소모하고 그 사람의 재주를 탐하는 일자리는 많습니다. 돈을 주고 재능을 사고자 하는 곳은 많죠. 그런데 정말 그 사람의 인생, 그 사람의 인격 실현을 고민하는 일자리가 있을까요?”

 

때로 우리는 일하지 않는 삶을 꿈꾼다. 일을 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없이 이어지는 일상을 꿈꾼다. 박병원 저자의 말처럼 우리의 직업이 삶을 살찌워주지 않고, 우리를 계발시키지 못하고, 단순히 소모하기 때문일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저자의 답은 ‘일’은 ‘노동’의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고 말한다.

 

“일이라고 이름 되어져 있는 여러 부담감, 의무, 책무, 노동에 신음하다 보니까 자꾸 ‘일 안하고 살 수는 없을까’라는 항변을 하지 않나 싶습니다. 누구나 한 번씩 갈등을 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 하는 일이 재미가 없다면, 또는 여기에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한 번 더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곳에 계속 몸담을 건지, 아니면 떠날 건지, 생각해 봐야겠죠. ‘일을 안 하고 살 수는 없냐’는 질문은 ‘노동을 안 하고 살 수 없냐’는 질문인 것 같고요. 일을 떠나서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이라는 것이 언제까지나 지속해야 하는 무엇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해내야 할까.

 

“사람을 얻는다고 생각해야죠. 나를 얻고, 또 일하면서 만나는 또 다른 인격체가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의 인격적 자아실현에 대한 배려, 그 사람의 성장에 대한 배려, 내가 크고 싶은 만큼 그 사람을 키워낼 수 있는 헌신성, 그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 날의 강연에서 저자와 대담을 나눈 출판사 편집자는 『일철학』의 핵심 키워드로 ‘관계’를 꼽았다. 그것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넘어서서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박병원 저자는 『일철학』에서 말하는 관계란 “공간에 대한 자각력, 감수성, 사물과 인간에 대한 관계력”을 총괄하는 개념이라고 이야기했다.

 

“시공간에 대한 관계력이란 그런 거죠. 지금 내가 현재적으로 위치해있는 시간과의 관계성이란 요즘 말로 하게 되면 트렌드입니다. 경향성이죠. 사람들의 마음이 어디로 갈 것인지, 한 시절의 사람들의 생각이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 흐름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통찰이 필요하죠. 그리고 공간에 대한 관계력도 있어야 합니다. 같은 시간, 같은 시절이라 하더라도 공간에 대한 반응방식이 다르잖아요. 이 반응방식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감수하고 있는가라는 자기 감수성에 대한 끊임없는 자각이 필요해요. 그 다음에 (‘관계’가 의미하는 것이) 인간관계죠. 사회적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관계에 충실해야 합니다. 결국 지금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공간에 대한 자각력과 감수성, 그 공간 속에 담겨있는 사물과 인간에 대한 관계력, 이걸 총체적으로 관계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철학박병원 저 | 판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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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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