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한, 록밴드 뮤지션에서 그림책 작가가 되기까지
그림책 『나 홀로 버스』 펴내 인생을 재밌게 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세상을 재밌게 살기 위해서라도 처음을 극복하는 데 용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스키를 타거나 수영을 하는 것처럼 재밌는 놀이라고 해도 안 해 본 일을 하는 건 두렵잖아요. 그럴 때 가장 필요한 건 용기란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인생을 재밌게 살려면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던 거죠.
아이들에게는 매일 매일이 모험이요 도전이다. 처음 만나는 사건들과 감정들로 하루가 채워진다. 설렘만큼 두려움도 클 터다. 도서출판 북극곰이 새롭게 선보이는 ‘북극곰 처음이야 시리즈’는 이렇듯 평범하면서도 낯선 우리 아이들의 일상을 담았다. 시리즈의 출발을 알리는 작품 『나 홀로 버스』는 주인공 아기 돼지가 ‘처음으로 혼자서 버스를 타는 날’의 이야기를 전한다.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홀로 버스에 오른 아기 돼지는 의자 위에 가방과 초콜릿을 올려두고 버스 요금을 내기 위해 자리를 비운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가방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아기 돼지의 초콜릿은 무섭게 생긴 늑대 아저씨의 손에 들려있다. 아기 돼지는 초콜릿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극하며 흥미진진하게 이어지고, 시시각각 변하는 아이들의 감정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그림책 『우리 아빠는 알 로봇』, 『우리 아빠는 외계인』을 통해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가 남강한. “어른과 아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려는 그의 노력은 『나 홀로 버스』에서도 여전히 이어졌다. 아기 돼지를 보며 공감하는 이들은 어린이 독자들만이 아니다. 다 큰 어른들도 저마다의 처음을 떠올린다. 낯선 상황을 경험하고, 당혹감과 두려움을 느끼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건 어른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나 어른들에게나 『나 홀로 버스』는 과거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이야기인 셈이다.
인생을 재밌게 살려면 용기가 필요하잖아요
『나 홀로 버스』의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어른이 된 후에도 처음 경험하는 일들은 계속 생기죠. 작가님의 경우에도 록밴드 뮤지션에서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책 작가로 새로운 일에 도전해 오셨는데요. 두려움도 느끼셨겠죠?
다른 장르의 일을 하는 거니까, 분명히 두려움은 있었어요. 저는 원래 꿈이 록밴드 뮤지션이었고 직접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그만두게 됐죠. 그 시점에서는 그림책 작가도 아니었으니까, 그냥 아무것도 아닌 거더라고요. 이전까지는 뭔가를 만들어서 세상에 발표하는 인생을 살았는데, 이제는 뭘 해야 할까 고민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제가 미술을 전공했으니까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활동을 시작하게 됐죠. 그런데 동기부여가 돼서 ‘내가 무언가를 만들어서 세상에 발표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을 한다면 그게 그림책 작가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메시지를 전달하시는 방식이 음악에서 그림으로 변화한 건데요. 둘 사이에 비슷한 점도 있나요?
일정 부분 만나는 지점도 있는 것 같아요. 음악을 만드는 과정과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 비슷하거든요. 그림을 통해서 전달하는 메시지가 노래의 가사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보통 곡의 구조를 보면 도입부에 잔잔한 부분이 있으면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터져버리는 부분이 있고, 그 사이에 중간 다리 부분이 있어요. 그게 그림책의 구조와 똑같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런 느낌의 구조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고 나서 그림책 작법을 공부하려고 하니까 음악을 할 때의 경험들이 도움 되는 지점들이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음악은 절치부심 뭔가를 만들고 나서 대중한테 보여지는 순간이 있어요. 무대에서 관객을 바라보는 순간부터 몸으로 느껴지는 피드백이 오죠. 그런데 그림책은 달라요. 누군가가 쓴 서평을 통해서 반응을 보게 되고 ‘내 작품을 어떻게 읽었을까, 재밌게 읽었으면 좋겠다’ 하고 기대하게 되죠. 그런 부분에서는 차이점이 느껴지는데,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매체에 따라 다른 점이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독자평을 보니, 한 분께서 작가님에 대해 이렇게 추측하셨더라고요. ‘386세대 혹은 X세대일 것이고, 괴짜라는 별명을 자주 얻는 독특한 캐릭터일 것이고, 권위주의에 반항하는 반골성향을 지닌 탈 중심주의의 자유인일 것’이라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웃음)?
저도 그 분의 글을 봤어요. 저를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저도 그 분을 만나보고 싶어요. 너무 잘 맞추신 것 같거든요.
반골성향을 가진 탈 중심주의의 자유인이시군요(웃음).
그런 성향이 있는데, 그림책 작가를 하면서 생긴 건 아니에요. 록 뮤지션들이 반골 성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볼 수도 있죠. 록 음악이 저항과 반항의 상징이 된 과정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처음에 록 음악은 춤을 추기 위한 곡이었어요. 그런 젊은 세대를 보면서 기성 세대가 비난을 했고, 그런 비아냥을 들으면서 울분을 느낀 젊은 세대가 점점 더 그쪽으로 가다 보니까 저항과 반항의 상징이 된 거죠. 원래 자기 안에는 울분이 없었더라도 그 음악을 듣고 체득하다 보면 다들 그렇게 돼요. 그런 감정들이 투영된 콘텐츠들이니까요.
그런 성향이 그림책에도 영향을 미쳤을까요?
그림책 작가가 되었을 때 ‘그런 분위기와 느낌의 이야기를 그림책에도 충분히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그게 『우리 아빠는 알 로봇』, 『우리 아빠는 외계인』으로 이어진 거죠. 분명 이 작품들에는 제가 어린 시절에 느꼈던 울분과 원망 같은 것들이 담겨있어요. 제 실제 경험과 가까운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아이를 낳는 부분만 빼고요(웃음).
아이들의 책 읽기, 그냥 지켜봐 주세요
『우리 아빠는 알 로봇』에는 친구들에게 근사한 장난감을 보여주면서 ‘우리 아빠 멋지지?’라고 자랑하는 아이들이 등장하는데요. 이 이야기에는 어떤 울분이 녹아있나요?
제가 느끼기에는 지금의 세태가 물질적인 걸 중시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고 단정 지어서 이야기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아요. 제가 아빠가 아니다 보니까 아이를 키우는 주변 사람들은 네가 아직 아빠가 아니라서 모르는 거라고 하는데요. 설령 제가 아빠가 되더라도 그런 현상에 대한 고민과 고충은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정말 소중한 게 무엇인지 알 것 같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소중함 자체도 없고, 다른 사람들이 그러니까 너도나도 쫓아가는 것 같아서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그런 의미를 담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주인공 아이에게는 값비싼 장난감이 없어요. 아이의 아빠는 그럴 여력도 없는 것 같고요. 그렇지만 아이는 친구들을 부러워하지도, 주눅이 들지도 않죠.
작품을 쓰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힘들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렇다고 그들이 가진 자들에 대한 동경으로만 치닫는다면, 그건 정말 지옥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 아이는 ‘너희들은 그런 걸 가지고 자랑하고 좋아하지? 우리는 가진 게 많이 없지만 이렇게 충분히 행복해! 너희들이 이 행복감을 알아?’라고 말하는 것 같잖아요. 어쩌면 제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상을 끄집어낸 걸지도 모르겠어요. 다르게 해석하면 그런 입장에 처해 있는 아이나 어른들을 뒤에서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고요.
『나 홀로 버스』에서는 주인공인 아기 돼지가 느끼는 감정에 따라 날씨도 변하고 그림체도 달라지는데요. ‘아이들이 숨겨진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예상보다 더 잘 찾아내고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저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제가 아동학을 공부했던 사람도 아니고, 아이의 정서를 자세하게 연구했던 사람도 아니잖아요. 그래도 ‘이러지 않을까?’ 생각하고 창작을 하게 되고, 제가 아이가 되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그 시절을 떠올리려고 해요. 그렇게 만들었을 때 ‘분명히 아이들이 이렇게 이해할 것이다’라고 확신은 못해요. 그때의 저를 떠올렸을 때 비슷하게 느꼈던 지점이 있는 것 같으면 그걸 표현할 뿐이죠.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 감춰진 의미를 하나하나 짚어주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한 발작 물러서서 자유롭게 읽도록 놔두는 게 좋을까요?
후자가 맞는 것 같아요. 작가가 이야기하려는 방향대로 진행되지 않고 다르게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그에 맞게 지켜봐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도 뭔가 알려주고 싶다면 ‘이건 이런 내용이야’라고 말할 게 아니라 ‘나도 그 이야기 재밌게 봤어, 나는 이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라고 말해주면 좋겠죠. 그러면 아이가 보면서 알아서 중화시키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어요.
‘재밌는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색감이 참 따뜻하고 고운 작품입니다. 그림을 그리실 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그림책에도 여러 가지 느낌이 있잖아요. 회화적인 가치가 뛰어난 것도 있고, 철학적인 느낌이 있는 것도 있고요. 그림은 그냥 평범하거나 아주 단순한데 전체적인 서사, 아이디어가 재미난 그림책도 있거든요. 제가 어느 쪽에 포함되는지 생각해 보니까 후자인 것 같아요. 그러면 그림에서 예술적인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서 너무 힘을 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에 철저히 그림이 맞춰지는 방향으로 중심을 잡아야 될 것 같아요. 저는 한 권의 그림책이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에 그림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맞춰져야 된다는 생각이에요.
어린이 독자들에게 작가님의 작품이 어떤 이야기로 기억되길 바라세요?
기본적으로 너무 진지하거나, 무게 있거나, 거룩하거나, 그런 걸 별로 안 좋아해요. 만약 재밌다는 평가를 못 받는다면 안타까울 것 같아요. 재미가 있는데 무게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정말 최고겠죠.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재밌는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였구나’라고 기억되면 참 좋겠어요.
어떤 그림책을 좋아하세요?
작가로서 보자면, 제가 처음으로 그림책에서 감동이 느껴진다는 생각을 했던 건 존 버닝햄의 『우리 할아버지』였어요. 손녀와 깊은 유대를 맺고 있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부분을 담담하게 표현했는데요. 웃음 코드가 있거나 그런 건 아닌데 ‘이런 게 그림책이 사람한테 감동을 주는 지점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후로 많은 작품들을 찾아 봤지만 가장 감동을 느꼈던 첫 작품은 『우리 할아버지』였던 것 같아요.
최근에 인상 깊게 읽으신 그림책이 있으세요?
안녕달 작가님의 작품 중에 『수박 수영장』이 있어요. 이런 상상을 해서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자체에 감동을 받았어요. 잘려진 수박 두 덩이를 수영장이라고 생각해서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오가는 내용인데요. 그 판타지가 자연스러워요. 그리고 수박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사각사각하는 느낌이 있잖아요. 그런 느낌이 보이더라고요. 수박 한 덩이에 사람들이 들어가서 수영을 하고 피서를 즐기는데, 과장된 상황이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그게 그냥 받아들여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 분의 상상력은 엄청나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던 작품이었어요.
『나 홀로 버스』는 ‘북극곰 처음이야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데요. 시리즈의 다음 작품에서도 아기 돼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나요?
어떻게 할지 계속 고민을 했었는데, 그렇게 하기로 정했어요. 상황은 다르니까 이번 작품에서 주연으로 나왔던 늑대 아저씨는 조연이 되겠죠. 어쨌든 주인공은 아기 돼지가 될 거고요. 처음 경험하는 일에서 느끼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이야기를 그려볼 생각이에요.
어떤 분들은 아이한테 밝고 희망찬 이야기만 들려주고 싶어 하실 것 같아요. ‘그림책에서 힘은 현실에 부딪히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지는 않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을 텐데요. 그런 이야기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우리 아빠는 알 로봇』을 읽혀드리고 싶어요. 그런 바람에는 아이가 좋은 것만 바라보는 슈퍼맨이 되어서 이 사회에서 핵심 인물로 자랄 거라는 기대가 섞여 있는 것 같거든요. 제가 그 지점에 관해서 느낌이 드는 건 있는데, 말로 설명할 수는 없으니까, ‘『우리 아빠는 알 로봇』을 한 번 봐 주세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나 홀로 버스
남강한 글그림 | 북극곰
오늘은 아기 돼지가 처음으로 혼자서 버스를 타는 날입니다. 엄마의 마중을 받으며 버스에 오릅니다. 가방을 의자에 올려놓고, 버스비를 내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앗! 무서운 늑대 아저씨가 아기 돼지의 초콜릿을 먹고 있습니다! 이제 아기 돼지는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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