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웅 “내가 수능 포기하고 세계일주를 떠난 이유”
『수능대신 세계일주』 펴내 인생의 주도권 잡고 싶어서
저의 향후 10년, 11년이 뻔히 보이는 느낌이 무섭고 싫었어요. 열심히 노력해서 4년제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고, 학자금 대출금을 갚고... 저의 가장 빛나는 시기의 청사진이 대략적으로 짜여진 느낌이 너무 싫었어요. 그리고 요즘 세상에 그런 단계들이 유연하게 연결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 불안도 심했어요. ‘어떻게 하면 내 인생의 주도권을 미리 잡고 갈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세계일주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3 5월 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어서 수능 보기 직전에 실행에 옮기게 됐죠.
『수능대신 세계일주』는 더없이 정직한 책이다. 우선, 제목 그대로 수능 대신 세계일주를 선택한 청년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저자 박웅은 열아홉 살의 나이에 스스로 학교 밖으로 나섰다. 그의 목표는 수능이 아니라 세계일주였다.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최저임금이 높은 나라 호주로 떠날 계획을 세우고, 일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다. 호주에서는 9개월 동안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1900만 원을 벌었다. 이후 702일 동안 6대주 24개국을 여행했다. 두 발로 세상과 만나고 가슴으로 관찰하면서 소년은 청년이 되었다. 『수능대신 세계일주』는 그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이 책이 ‘정직하다’고 이야기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저자의 솔직함 때문이다. 그는 자신 앞에 솔직했다. ‘모두가 가야 한다고 말하는 길,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묻는 내면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대학에 가야 하는 이유’, 반대로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에 대해 자문했다. 그 결과 내린 결론은 수능 대신 세계 일주를 선택하는 것이었고, 주저 없이 실행에 옮겼다. 독자들 앞에서도 그는 여전히 솔직하다. 환상적인 순간들이 이어졌다거나 극적인 변화를 경험했다는 거짓말 따위는 하지 않는다. 여행은 물론이고 남다른 삶에 대해서도 ‘당신도 나처럼 해보라고’ 부채질하지 않는다. 자신이 체득한 그대로를 덤덤하게 들려줄 뿐이다.
그 모습 그대로 박웅은 인터뷰에 응했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거침없이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흔들리지 않는 자기 확신, 자신감이 느껴졌다. “제 책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 인생도 정답이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저처럼 살라는 말은 조금도 하고 싶지 않아요”라는 그의 말은 흔한 겸손과는 달랐다. 그리고 다음의 말을 덧붙였다. “이 책을 읽고 ‘이렇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그 생각일지라도 뭔가를 얻어 간다면 저로서는 더할 나위 없죠” 그의 말에서는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한 존중과 인정이 묻어났다. 그의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그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수저’ 아니냐고요? 저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여행을 떠나기 전에 기대했던 변화가 있었을까요? 다녀오면 뭔가 달라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어요?
막연하게 ‘조금 더 큰 사람이 되어 있겠지’라는 확신 정도는 있었던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었던 건 없었지만요. 저는 경험주의자예요. ‘인생에서 파도를 만났을 때 나라는 배가 좌초되느냐 아니면 그 파도를 잘 타고 넘느냐’를 생각해 봤을 때 가장 중요한 건 경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혼자 세계일주를 하고 오면, 그만큼 경험이 쌓여 있을 테니까, 조금 더 인생에 있어서 능숙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있었죠.
『수능대신 세계일주』는 여행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지 않아요. 여행을 다녀왔다고 해서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시죠?
그렇죠. 예전에 인터뷰에서 ‘세계일주를 다녀와서 가장 바뀐 점’에 대해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 ‘결론부터 말하자면 크게 바뀐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라고 답했었는데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제가 기본적으로 낭만이라는 단어에 약간 거부감이 있기는 해요. 그 단어가 가진 좋은 함의도 있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꿈, 희망, 낭만 같은 게 상업적인 가치로 변질됐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그래서 저는 여행에 대한 좋은 점 나쁜 점을 골고루 쓰려고 많이 노력했죠.
“나는 세계일주로 과연 무엇을 얻었는가. 곰곰이 생각한 끝에 얻어진 내 결론은 ‘기억’이다”라고 쓰셨습니다. 그 기억이 작가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요?
‘기억이 실질적으로 영향을 주느냐’는 질문에는 답이 없겠죠. 기억만으로 돈이나 어떤 자리가 생기는 건 아니니까요. 다만 저는 기억이 제 손아귀에 제대로 남아있는 게 좋았어요. 살면서 그런 것들은 별로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 제가 책도 내고 강연도 하면서 지내지만, 이건 몇 년 지나면 사라져 버릴 신기루 같은 것일 수도 있잖아요. 돈도 언제든 잃을 수도 있고 생길 수도 있는 거고요. 결국 인생을 돌이켜 봤을 때 남는 하나는 기억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일상 속에서도 뭉클한 순간이 많아요. 예를 들면 카페에서 ‘브라질산 원두’라는 말을 봤을 때, 다른 사람들은 그냥 보고 지나칠 수 있는 거지만, 저는 브라질에서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돼요. 그때의 공기, 냄새, 촉감 같은 것들이 뭉클하게 떠오르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되게 부자라고 생각해요, 기억 부자.
책에서 수능 대신 세계여행을 택한 많은 이유들을 들려주셨는데요. 한 마디로 정리해서 이야기한다면, 무엇 때문일까요?
그 질문은 지난 2년 동안 너무 많이 받아서 표준화된 대답이 있는데요. 가장 큰 이유는 저의 향후 10년, 11년이 뻔히 보이는 느낌이 무섭고 싫었어요. 열심히 노력해서 4년제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고, 학자금 대출금을 갚고... 저의 가장 빛나는 시기의 청사진이 대략적으로 짜여진 느낌이 너무 싫었어요. 그리고 요즘 세상에 그런 단계들이 유연하게 연결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 불안도 심했어요. ‘어떻게 하면 내 인생의 주도권을 미리 잡고 갈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세계일주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3 5월 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어서 수능 보기 직전에 실행에 옮기게 됐죠.
‘금수저라서 세계여행을 갈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오해도 받으신다고 들었어요. 그럴 때마다 억울한 마음이 드신다고요.
현실에서 그런 반응을 접한 적은 거의 없는데요. 온라인에 제 이야기가 오르면 댓글에 그런 반응이 많죠. 그런데 저는 그 반응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기에 절대 비합리적인 반응이 아니거든요. 저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억울한 부분은 있지만 크게 억울하지도 않아요. 다만 한 가지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약간 밥벌이에 대한 불안감이 있어요. 저를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이 그 불안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호주에서의 경험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그때 사람이 돈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너무 절실히 체감했거든요. 저는 돈이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한 번도 돈이 없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남들이 저를 금수저라고 보든 아니든 실제로는 금수저가 아니고, 오히려 뒤집어 말하면 (밥벌이에 대한) 조급함 같은 게 남들보다 조금 더 있는 타입이죠.
호주에 갈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셨었죠?
그렇죠. 일식집에서 접시를 닦아서 마련했고, 그렇게 간 돈으로 호주에서 청소 일을 시작하면서 돈을 벌었죠.
호주로 갔던 이유는 ‘최저임금이 높아서’였나요?
아마 호주 워킹을 가는 많은 사람들이 그 이유일 거예요. 한국에서는 스무 살의 고졸 학생이 9개월 동안 2만 불을 모은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잖아요. 호주로 간 이유는 딱 하나였어요. 돈 하나 보고 간 거죠.
장기간 세계 일주, 절대 계획대로 안 돼요
여행 이야기를 듣고 친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일단은 제가 한국 떠날 때 떠벌리고 다니지 않았어요. 제가 믿는 말 중에 하나가 ‘설필패’라고 설레발은 필패라는 거거든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한테 여행 간다고 알린다는 게 예의가 아니기도 했고요. 그래서 한국 떠나고 10개월 후에 알리기 시작했는데요. 처음에는 ‘얘는 뭐하는 애인가’ 하는 반응도 있었지만 한국에 돌아올 때쯤에는 ‘대단하다, 멋있다’는 말을 해줬어요. 그런데 저한테 그 이야기는 공허하게 들리는 면도 있죠. 왜냐하면 힘든 일도 많았고 외로운 순간도 많았거든요. 페이스북에서도 멋있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는데, 그러면서 타인의 평가와 한 사람의 인생의 본질은 무관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24개국을 돌아보셨는데요. 여행지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셨어요?
저는 철저히 계획을 짜서 여행을 다니는 타입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장기간 세계일주라면 절대 계획대로 안 돼요. 계획대로 될 수가 없어요. 변수가 너무 많거든요. 그래서 기준은 없었습니다. 그때그때 가고 싶은 곳, 충동적으로 끌리는 곳을 많이 여행했고요. 중남미 같은 경우가 저한테 가장 매력 있었기 때문에 오래 머물렀던 나라죠.
가장 좋았던 나라는 쿠바라고 하셨어요.
항상 쿠바라고 이야기하죠.
어떤 점이 그렇게 좋으셨던 건가요?
사랑에 조건이 있으면 사랑이 아니잖아요. ‘쿠바가 왜 좋으셨어요?’ 라고 질문을 받으면 솔직히 할 말 없어요. 그냥 쿠바니까 좋아요. 약간 조건 없는 사랑 같은 거라고 할까요. 쿠바가 좋은 이유를 명시적으로 말하기 보다는 ‘너무 좋으니까 한 번 가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멕시코는 어떠셨어요? 책에서 “나는 아직도 멕시코의 많은 것이 그립다”고 하셨는데요.
멕시코는 되게 충동적으로 간 곳이에요. 갈 계획이 전혀 없었는데 쿠바에서 친하게 지냈던 형 누나들이 ‘멕시코에 갈 건데 같이 가자’고 해서 가게 됐어요. 그런데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가니까, 그게 더 매력이 있더라고요. 일단 문화적인 토양이 생각보다 굉장히 깊었어요. 멕시코는 아즈텍 문명이 있었던 곳이고 스페인 사람들이 중남미 지역의 식민지로 삼기 시작했던 곳이기도 하거든요. 두 이질적인 문화가 합쳐지면서 나오는, 설명하기 묘한 매력이 있어요. 예를 들면 수도인 멕시코시티에 가면 대성당이 있어요. 스페인 사람들이 지은 유럽풍의 아주 큰 성당인데요. 거기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아즈텍인들이 사람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던 사원이 있어요. 걸어서 10분 거리에 서로 다른 문명이 공존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곳이 멕시코이고, 그리고 음식이 정말 맛있습니다. 멕시코는 한 번 더 가보고 싶어요.
여행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후유증은 없었나요?
후유증이라고 표현하기는 그렇고요. 제가 702일 동안 여행을 하다가 원래 계획보다 한 달 앞당겨서 돌아왔거든요. 돈도 없었지만 당시에 많이 지쳐있어서 그랬어요. 오래 여행을 하다 보니까 굉장히 공허해지더라고요. 짧은 시간 동안 만나고 헤어지는 대인관계가 2년 가까이 지속되면, 한편으로는 충만해지지만 한편으로는 피폐해지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친구들이나 가족처럼, 내가 아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욕구가 되게 컸어요. 그리고 제 경우에는 여행을 충분히 했다고 판단해서 돌아온 거기 때문에 후유증은 없었어요.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 지내면서 가치관도 많이 변화한 부분이 있고요. 쉽게 말해서 새로운 한 시기가 열렸죠. 702일 동안의 한 시기가 접히고, 이후에 한 시기가 열렸고, 지금 그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이 시기도 언젠가 끝나겠죠. 어떤 계기로 자연스럽게 끝날 거라고 생각해요.
보통의 여행 책들과 달리 여정을 따라가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형식적인 틀에서 벗어나고 싶으셨나요?
책 내용을 100% 여행기로 채우자는 생각보다는 ‘여행기도 어느 정도 쓰고 내가 그렇게 느꼈던 이유나 계기, 단상들에 대해서 말하는 공간도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두 파트로 나누어서 구성하자는 생각은 했었고요. 강연을 해도 여행 자체보다는 ‘한국에서 다른 길을 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요청 받을 때가 많거든요. 학벌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를 내려놓고 떠나기까지 제가 했던 많은 생각과 결심, 그렇게 살면서 받는 시선, 그 시선을 받으면서 드는 단상들에 대해 듣고 싶으신 거죠. 페이스북에서 저를 좋아해주시는 분들 중에도 그런 부분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계세요. 물론 여행기를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있지만요. 그래서 책에도 그런 내용을 담고 싶었고요. 여행기 같은 경우에는 지역 별로 나누어서 글 자체가 스스로 완결성을 갖게끔 쓰는 게 편했어요.
학벌주의는 제도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예요
“나는 내가 될 놈이라는 맹신이 있었다”고 하셨어요. 덕분에 대학을 가지 않을 결심을 하게 될 수 있었다고요. 그 자신감이 참 부럽더라고요.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을 믿는다는 게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타인의 시선은 신경을 안 쓰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타인의 시선은 어떤 경우에든 무책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심지어 부모님이 해주시는 말씀이라도, 나보다 나 자신을 더 생각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거든요. 그 사람의 성향이 어떻든 자기를 제일 먼저 생각하고 자기를 제일 아끼기는 건 자기 자신이란 말이에요. 다른 사람의 조언대로 어떤 선택을 내렸을 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누가 같이 져주는 건 아니거든요. 그건 100% 나의 몫이란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일수록 남의 말을 안 들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인생의 행로를 바꿀 만한 규모의 결정일수록 타인의 말을 듣지 않고 내 말만을 따라야 나중에 후회가 없다고 생각해요. 자신감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저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자기 확신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꿈을 이루기까지 주변에서 칭찬만 해주지는 않을 거잖아요.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옹골차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자기 확신’인 것 같아요. 어떤 결과를 내려면 꾸준히 이어나가야 되고, 그러려면 내가 가는 길이 옳다고 생각하는 고집 같은 게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꿈을 이루는 데 있어서 자기 확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께서도 인터넷에서 댓글들을 보셨을 텐데요. ‘대학에 가지 않은 데 대한 한계를 체감하게 될 거다’라는 식의 이야기들이 있잖아요. 그런 반응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제가 댓글에 조금 무심한 스타일이에요. 내 인생하고 하등 상관없는 사람들인데 그 말로 상처 받을 이유가 조금도 없고, 제가 그 비난을 듣고 삶의 방향을 바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상처를 안 받는 편이고, 지난 2년 동안 그런 반응을 하도 접해 와서 그런지 조금 무심한 편이에요.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아요. 가장 중요한 건 ‘앞으로 나의 할 일을 어떻게 똑바로 잘 해 나가느냐’ 하는 거죠. 그리고 타인의 평가라는 건 되게 간사해요. 제가 처음으로 대학을 안 가고 세계일주를 떠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다 안 좋은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페이스북에 이름이 뜨고, 신문사들과 인터뷰를 하고, 책을 내고 강연을 하니까 어느 순간 그런 말들이 쏙 들어가고 ‘멋있다, 대단하다’는 반응이 나오는 거예요. ‘나라는 사람은 변한 게 없는데, 왜 똑같은 나를 두고 사람들의 평가는 상반되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결과 하나에 180도 바뀔 수 있는 게 세상의 평가라는 것도 많이 느꼈고요.
그때의 경험으로 인해 느낀 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만약 제가 탄탄하게 제 갈 길을 잘 가면 ‘역시 (남들과) 다른 길을 가도 좋다, 학벌은 중요하지 않다, 한 청년이 과감하게 결정을 내려서 본보기가 됐다’는 이야기들이 나올 거예요. 그러지 않고 삐끗한다면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는 반응들도 많겠죠. 그렇게 생각하니까 약간 초연해진 게 있는 것 같아요. 지난 3년 간 저를 두고 평가하는 반응들이 극과 극으로 한 번씩 엇갈린 경험을 하고 나니까, 다른 사람들의 말을 신경 쓰기보다는 ‘어떻게 내 할 일을 조금 더 잘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책임감을 느끼시는 것 같기도 해요. “내가 현실에서 내디딜 땅을 얻지 못하고 쓰러진다면 그건 나로 대변되는 어떤 가치가 실패했음을 의미하니 그러지 말아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쓰셨잖아요.
제가 대학을 안 가고 (남들과) 다른 길을 가기로 결정한 데에는 류승완 감독이 있었어요.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영화 평론가가 꿈이어서 영화에 되게 관심이 많았는데, 류승완 감독이 고졸이에요. 스물여덟 살까지 공사 현장에서 12시간씩 일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그렇게 영화라는 꿈을 붙잡고 있다가 결국 데뷔했거든요. 저는 류승완 감독의 일화를 보고서 ‘본인이 강렬한 욕망이 있고 그 욕망을 지속시킬 수 있는 의지와 노력이 있다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수능 대신 세계여행을 선택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고요. 제가 다른 학생들에게 류승완이 되고 싶어요.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학벌사회인데, 제 생각에 학벌주의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예요. 학벌주의를 없애려면, 정부에서 어떤 교육 정책을 내놔도 소용이 없고, 저나 류승완 같은 사람들이 계속 나와 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학벌에 편입되지 않고 스스로 진로와 비전과 의지를 가지고 계속 밀고 나가는 사람들이 성공 사례를 계속 만들어줘야 돼요. 그게 차츰 축적되어 가야 학벌주의가 결국 깨질 거라고 믿거든요. 저도 또 한 명의 류승완이 돼서 그런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은 항상 있어요.
그런 변화를 개인의 노력에만 맡겨두는 건 가혹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사회가 뒷받침해주는 부분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전의 저는 소위 말하는 ‘노력충’이었어요. 마음속에는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나는 고졸이지만 내 힘으로 이렇게까지 왔다, 사회 탓 나라 탓 할 바에 노력을 해라’ 그때는 노력하면 된다는 주의였어요. 사회나 나라에 자기 인생의 책임을 묻는 걸 엄청 꼴 보기 싫어했어요.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 그 가치관이 되게 많이 바뀌었어요. 인생에서 운과 우연이 되게 중요하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더 많이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한 사람의 노력이 반드시 (결과로) 직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어요. 사회의 구조가 한 사람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고요. 사회에서 뒷받침 해줬으면 하는 부분이 뭐냐고 물으셨는데, 요즘 제가 많이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결국 개인은 사회 안에서 사는 건데, 뛰어난 몇 명의 개인이 노력한다고 해도 사회의 시스템이 제대로 받쳐주지 않으면 어쩔 없는 노릇이잖아요. 사회에 바라는 부분을 굳이 꼽자면, 조금 더 관용적으로 바뀌면 좋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만큼 ‘하기 싫은 일을 안 하는 것’도 중요해요
영화평론가를 꿈꿨었다고 하셨잖아요. 책에서 보니까, 그 전에는 소설가를 꿈꾸셨더라고요. 그 꿈들을 이루기 위해서 대학에 진학하실 생각은 없으세요?
아직까지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전혀 없어요. 그런데 대학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영화 쪽에는 항상 관심이 있어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대학에 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겠죠. 아직까지 확실해 보이는 건 뭘 하든 영화 쪽으로 해보고 싶어요. 만약에 대학에 간다면 그 꿈에 조금 더 다가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써 택하겠죠. 제가 별 건 아니지만 제가 걸어가고 있는 길이 하나의 사례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필요한 경우이거나 직접적으로 가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아직까지 제 인생에서 대학은 고려 대상이 아닌 것 같아요.
다음 여행도 계획하고 계신가요?
책 인세를 받으면 인도를 갈까 생각 중인데요... 인도나 네팔을 갈까 생각 중이에요.
그때는 무엇을 위해 떠나게 될까요?
제 생각에는 십중팔구 인도나 네팔을 갈 것 같아서, 여행을 간다는 느낌보다 인도와 네팔을 간다는 느낌이 강할 텐데요. 작년 11월에 이집트에 있으면서 태국을 갈까 인도를 갈까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결국 태국을 갔거든요. 인도에 대한 아쉬움, 미련이 많이 있었죠. 그래서 이번에 한 번 가볼까 생각하는 중이에요.
‘가보지 않은 곳이라서’ 인도에 가고 싶으신 건가요?
그런 것도 있고요. 인도라는 이름 자체가 주는, 류시화 시인으로부터 기인한 환상 같은 게 있잖아요. 인도 하면 떠오르는 일련의 이미지들이요. 그리고 길 위에서 인도에 대한 이야기를 되게 많이 들었어요. 그런 것들을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확실한 건, 인도가 톡톡 튀는 나라인 것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직접 한 번 경험해 보고 싶은 욕망이 크죠.
아마도 많은 분들이 작가님께 ‘그래서 앞으로 무엇을 할 거냐고’ 물어볼 것 같습니다. 책에서도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 이루어져야 한숨 돌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는데요. 어떻게 답변하고 싶으세요?
고백하자면, 저한테는 이런 시기가 되게 오랜만이에요. 저는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초까지 영화평론가라는 꿈이 정말 컸어요. 영화평론을 너무 하고 싶어서 꿈에 매진해 왔죠. 고3이 끝날 때부터 호주에 갈 때까지는 돈이라는 목표 하나만 보고 살았어요.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는 여행을 하느라 바빴고요.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는 책을 쓰느라 바빴는데요. 제 인생에서 가시적이고 명백한 목표가 없는 시기가 굉장히 오랜만이에요. 그래서 저한테는 지금이 진지하게 생각을 많이 하는 시기에요. 그리고 제가 『수능대신 세계일주』를 버려야 앞으로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수능대신 세계일주』 이야기만 할 게 아니고, 남들이 지겨워지기 전에 제가 먼저 지겨워지는 시점이 있을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수능대신 세계일주』라는 이름으로 많은 관심을 얻었지만, 이걸 반드시 정리를 해야 되는 시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해야 또 다른 단계로 도약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지금은 이 다음의 것이 무엇이 돼야 할까, 계속 생각하고 있는 시기죠.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성공적인 삶’이란 어떤 모습인가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정답을 내리기가 애매하고 정답을 내려서도 안 되는 질문일 것 같기는 한데요. 각자의 성공의 기준에 맞는 삶이 성공한 삶 아닐까요. 굉장히 정치적인 답변을 하게 되네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좋습니다. 글을 좋아하면 글 쓰는 걸로 생계를 유지하고, 영화가 좋다면 영화로 생계를 유지하고, 이 정도만 되면 바랄 게 없는 것 같아요. 더 나아가서, 저에게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기 싫은 일을 안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해요. 그 조건까지 충족이 된다면 되게 만족스러울 것 같습니다.
수능대신 세계일주
박웅 저 | 상상출판
『수능대신 세계일주』는 지금도 공부와 입시에 시달리고 있을 중?고등학생들에게 가슴 뛰는 꿈을,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에 치여 꿈도 사랑도 잊고 사는 청춘들에게는 ‘조금 다른 삶’에 대한 용기를 주는 책이 될 것이다.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박웅> 저12,150원(10% + 5%)
저자가 운영하는 ‘수능대신 세계일주’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그동안 세계일주를 다니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소소한 일상이 담겨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의 여행기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 그 자체에 대해서도 열광한다. 될 것이라는 믿음과 삶의 방향에 대해 누구보다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타인에게 휘둘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