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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성들을 어떤 옷을 입었을까? 2

점점 짧아지는 치마저고리, 유행을 선도하는 기생의 옷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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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기녀들의 처절한 미적 갈구는 고스란히 의복에 반영되었고 이것이 일반 여성들에게까지 막대한 영향을 주며 사회 전반적의 유행을 선도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조선 후기의 파격적이라 할 만한 여성의복의 유행을 선도한 이가 바로 기생이었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에 기녀들의 복식을 모방하는 것이 얼마나 큰 사회적 문제였는지 보여주는 기록들도 상당하다. 『북학의』의 저자인 박제가는 “여자들 저고리는 날로 짧아지고, 치마는 날로 길어진다. 이런 차림으로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맞다니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한탄하였고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를 통해 “부녀자들이 소매가 좁고 짧은 저고리를 입는데, 귀천의 구별 없이 통용되는 게 괴이하지만 사람들은 습관으로 여긴다. 여름에 입는 홑저고리는 치마와 닿은 부분을 가리지 못하니 더욱 해괴하다. 이런 요괴의 복장은 금해야 한다. 말세가 되니 부인의 의복이 소매는 좁고 옷자락은 짧아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덕무는 『천장관전서』에서 “대저 복장에 있어서 유행이 모두 창기(몸을 파는 천한 기생)들의 아양 떠는 자태에서 생긴 것인데, 세속 남자들이 그 요사스러움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의 처첩에게 권하여 본받게 하다니. (중략) 규중 부인이 기생의 복장을 하도다! 모든 부인들은 그것을 빨리 고쳐야 한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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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저고리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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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고리 변화에 따른 여성의 옷차림

 

분명히 조선 전기까지 여성의복에서 유행을 이끈 이들은 왕실과 양반 부녀자들이었다. 그렇다면 왜 조선후기로 접어들면서 ‘패션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리더’의 자리를 양반 부녀자가 아닌 기녀들이 꿰차게 된 것일까? 해답은 조선의 복식규제와 기생이라는 특수계층에 대한 이해, 조선후기 사회의 변화상에 대한 고찰,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존을 위한 인간의 본능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는 간단하다. 살다보니 변화가 생겼고 살려고 변화시켰다는 이야기다.

 

본래 『경국대전』에 명시된 조선시대 여성에 대한 복식규제 부분을 보면 “사대부가 이상을 제외한, 평민 여성들이 금은주옥[金銀珠玉](보석)과 사라능단[紗羅綾緞](비단)으로 몸치장을 하는 것을 금한다”라고 되어 있다. 조선전기에 사실상 사대부가 이상이나 왕실의 귀하신 여인네들을 자주 만나고 그녀들이 무엇을 입고 치장하는지 일반인들이 속속들이 살펴보기에는 그녀들의 생활은 너무나도 철저하게 가려진 ‘그들만의 리그’였을 것이다. 반면에 흔히 우리가 기녀나 기생이라고 부르는 여인들의 사정은 이와 매우 달랐다. 조선시대 여성의 의복을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그 유행을 선도하는 패션리더이자 패션피플의 자리가 어떻게 패권을 이동하게 된 것인가 하는 점은 너무나도 흥미로운 부분이 아닌가?

 

좀 더 시간을 할애하여 들여다볼 가치가 충분하다. 본래 일반적인 조선의 기녀는 관청에 소속되어 가무와 풍류[風流]를 전문으로 하며 국가차원에서 치루는 각종 행사에서 흥을 돋우는 일을 하던 여성들로 신분상으로는 천민에 속하였다. 이들은 남녀 간의 사사로운 접촉을 엄격하게 금하는 조선사회 속에서 천민여성이라는 최악의 사회적 조건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지배층의 권력 있고 부유한 남자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독특한 여성 집단이었고 직업의 성격상 어느 정도의 학문적 소양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외모를 꾸미고 가꾸는 데 전심전력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조선의 기녀는 연산군 때를 거치며 그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는데 궁에 거주하며 왕을 모시는 기녀인 흥청[興淸]의 수가 300여 명에 육박하였다니 이시기를 거치며 기녀의 사회적 위상이 달라지고 치열한 기녀들 간의 경쟁이 외모를 가꾸는 데 더욱 몰입하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화려한 옷차림으로 들여다보는 기생의 삶

 

더욱이 기녀들의 삶은 조선이 후기사회로 접어들고 사회전반에 걸쳐 신분제가 무너지고 활발한 경제구조의 변동이 가속화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되는데, 기녀집단 안에서도 종류와 등급의 세분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일패[一牌]ㆍ이패[二牌]ㆍ삼패[三牌]로 구분된 조선후기의 기녀들은 일패는 기생, 이패는 은근자[殷勤者], 삼패는 탑앙모리[塔仰謨利]라고 불렸다. 일패인 기생은 가무를 익혀 활동하던 관기의 전통을 이어받아 각종 연회에 참석하고 사적인 영업장으로 집을 활용하여 고급 접대를 이어갔다. 이패는 일패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기녀출신이 많았는데 남몰래 은근히 매춘한다 하여 은근자라 불리게 되었고, 삼패는 매춘 자체가 본업인 집단으로 잡가만 부르고 일패인 기생처럼 가무는 할 수 없게 규정되어 있었다. 결국 이러한 현상을 뒤틀어보면 다양한 방식을 통해 쉽게 기녀를 접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다양화 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들은 세월이 흐르고 사회가 급변하는 과정에서 뒤섞이게 되었고 오늘날 우리는 남성을 상대로 한 유흥업 종사여성을 포괄적으로 기생이나 기녀라는 호칭으로 받아들여 이해하게 되었다. 

 

기녀의 삶과 변화에 대해 시간을 들여 언급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앞서 말한 변화들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자. 결국 시간이 감에 따라 기녀들은 국가행사뿐 아니라 위로는 국왕과 왕자, 정부관리에서부터 아래로는 민간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분군에 속한 남성들을 모두 친밀하게 만날 수 있는 자격을 사회적으로 묵인받은 조선내의 전무후무한 여성 집단이 된 것이다. 당연하게도 해당 남성 집단만큼이나 다양해진 그들의 아내 집단에게 입고 꾸미는 외모 표현방식까지 포함해서 포괄적으로 질투어린 관심을 받게 되었고 주목받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더불어 황진이, 매창과 같이 글을 짓고 그림을 그리는 데 능한 명기들이 등장했고, 전란의 와중에 논개ㆍ계월향ㆍ홍랑과 같이 절개와 지혜를 겸비한 기녀들이 부각되면서, 〈춘향전〉ㆍ〈배비장전〉ㆍ〈숙향전〉ㆍ〈옥단춘전〉처럼 기녀가 등장하는 소설까지 유행하게 되었다. 이 모든 변화와 흥미로운 기녀들의 이야기는 조선내의 상업과 유통업이 차츰 발달속도를 빨리함에 따라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조선 내에 퍼져 나가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주의 깊게 보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기녀에 의녀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이다.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여인들은 병이 들어도 남자의원에게 함부로 몸을 맡기지 못했다. 결국 규방과 내실 깊숙한 곳에 몸을 숨긴 아녀자들과 남성들의 세상 속에서 아름다운 외모를 치장하고 옷을 입는 데 능수능란한 기녀들의 만남이 의외의 소통 창구를 찾은 것이다.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내 남편 한 사람에게 사랑 받기 위해 외모를 꾸미고 치장하는 것과 먹고 살기 위한 생존의 일터에서 치열한 경쟁의 일부로 외모를 가꾸는 여인들의 전투력은 다를 수밖에 없다. 결국 기녀들의 처절한 미적 갈구는 고스란히 의복에 반영되었고 이것이 일반 여성들에게까지 막대한 영향을 주며 사회 전반적의 유행을 선도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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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_신윤복의 기다림. 아이를 업은 서민 여성의 모습(출처-간송미술관)

오른쪽_윤덕희의 독서하는 여인. 18세기 조선시대 저고리의 모습(출처-서울대학교박물관)

 

조선시대 서민 여성들의 의복은 어떠했을까?

 

그렇다면 조선시대 서민 여성들의 의복은 어떠했을까? 저고리와 치마가 기본인 것은 같았으나 남성 서민의 의복과 다를 바 없이 단출하고 남루하였다. 비단과 같은 좋은 소재는 꿈도 꿀 수 없었고 삼회장저고리도 입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사농공상의 구분이 엄격하던 조선사회 속에서 일반민 중에서도 하층이었던 상민 여자들은 일하기에 편하도록 발목이 드러나는 짧은 몽당치마를 입었고, 하녀들은 노동의 편리성을 도모하기 위해 폭이 좁고 길이도 짧은 ‘두루치’를 입은 후 치맛자락을 바짝 치켜 여며서 속옷의 일부가 노출되도록 하였다. 고운 옷을 입는 것과는 인연이 없어 보이는 이들도 혼례 때만은 양반가에서와 다름없이 족두리와 원삼을 입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글을 쓰고 한숨을 돌리고 나니 마음 한켠이 아려온다. 이 많은 조선시대 여성의복에 대한 이야기와 사진자료, 그림자료 속에 노동으로 가족을 보살피고, 나라를 일으키고 꾸려온 이 땅의 절대다수 어머니들의 이야기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불과 열 줄도 되지 않는 분량으로 글의 말미를 묵묵하게 지키고 있는 조선시대 서민 여성들의 복장에 대한 언급과 그림 자료들이 가슴팍을 파고들다 못해 눈물샘에 꽂히는 것 같다. 물론 비단으로 몸을 감싸고 살았던 왕실과 양반가의 여인들이라고 모두 행복했을까? 입다가 지쳐버릴 만큼 겹겹인 아랫도리 속옷만큼이나 수많은 사회적 제약과 금지된 규정 속에 그들에게도 눈물 삼키는 많은 밤이 있었을 것이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 고운 것을 싫다고 마다할 여인네는 없다. 내 몸에 걸치는 좋은 옷보다 내가 지켜야 할 귀한 것에 마음을 붙이고, 척박한 세상을 버티며 살아낸 조선여인들의 의복을 단순한 옷일 아니라 인생이 묻어있는 삶의 조각으로 생각하고 따스한 마음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지혜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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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반주원

고려대학교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 진학했다. 외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한국사 및 통합사회 강사로 메가스터디, 비타에듀, 비상에듀 등의 유명 대형 학원과 EBS 등에서 두루 강의를 진행하기 시작했고, 전국 최고 사탐 강사 5인(입시타임즈 선정)에 뽑히는 등 수능 영역에서는 10년 이상 최고의 사회과 스타 강사로 입지를 굳혔다. 이후 공무원 한국사 영역으로 강의 영역을 확장했으며, 현재는 TV 프로그램 ‘황금알’에 한국사 전문가로 출연 중이다. 『반주원 한국사』 시리즈, 『반주원의 국사 교과서 새로보기』, 『유물유적 한국사 1』 외 다수의 저서를 편찬·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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