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우리는 서로 다른 연결 고리로 작품을 기억한다. 가령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이야기할 때 소녀가 머리에 두른 푸른 터번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을 떠올리거나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한 입 모양, 커다란 진주 귀걸이 등으로 각자의 머릿속에 있는 작품을 불러오기 한다. 이처럼 특정 부분으로 접근하는 그림 읽기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림에 대한 해석을 풍부하게 만든다.
『그림 읽는 CEO』, 『이명옥의 크로싱』 등 미술과 다양한 분야와의 융합으로 주목 받고 있는 사비나미술관 이명옥 관장이 『생각을 여는 그림』을 펴냈다. 이명옥 관장은 책을 통해 기존의 학습된 방식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작품을 들여다보는 미술 감상법을 제안한다.
르네 마그리트, 잘못된 거울, 1935
책을 여는 글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미술에 흥미를 가지려면 어떻게 하죠?”라고 했습니다. 이전 저서들도 미술을 감상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책들이 있었는데요. 뭔가 특별한 집필동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비나미술관 주제 기획전 20년 노하우를 책에 적용시켰습니다. 사비나미술관에서는 개관 이후 지금껏 전시를 기획할 때 매번 주제를 정하고 그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선정해 보여주는 방식으로 다른 미술관과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물이 주제인 <물의 풍경>, 밤이 주제인 <밤의 풍경>, 키스가 주제인 <키스>, 개와 소가 주제인 <개dog>와 <소cow> 전시, 색이 주제인 <컬러 스터디(COLOR STUDY)> 등이 그 예가 되지요.
키워드를 주제로 하는 전시는 관객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기획자의 의도를 관객에게 전달하거나 관객과 소통하는데도 장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주제 기획전의 효과를 책의 형태로도 보여준다면 독자가 미술에 좀 더 흥미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 이유에서 책에서는 해와 달, 별 같은 자연에서부터 고양이와 개, 소와 같은 동물, 눈물이나 머리카락 같이 일상적이고 친숙한 테마들을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생각을 여는 그림』을 출간했습니다. 익숙한 작품도 키워드로 읽으면 다르게 보인다고 하셨는데요. 키워드 미술감상법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키워드 미술감상법은 키워드(key word)와 스토리텔링(Story telling)을 결합한 작품감상법입니다. 예를 들면 제 3장 눈(眼) 편에서는 다양한 눈이 등장합니다. 이집트 신화 속 호루스의 눈, 힌두교의 신 시바의 이마 한가운데 있는 제3의 눈, 벨기에 출신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철학적인 눈, 프랑스의 화가 오딜롱 르동의 상상의 눈, 미국의 화가 윌 바너의 감시하는 눈이 그것이죠. 이렇게 눈을 표현한 작품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 감상하는 동안 동서양의 신화, 종교, 예술세계에 나타난 눈의 상징과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아울러 인간은 육체의 눈인 육안(肉眼), 마음의 눈인 심안(心眼), 지혜의 눈인 혜안(慧眼) 등 여러 개의 눈을 가졌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지혜롭게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오딜롱 르동, 에드거 포에게-무한대로 여행하는 이상한 풍선과 같은 눈, 1882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특히나 동시대를 사는 한국 현대작가들이 다수 등장하는데요. 의도가 있는지요?
동시대 미술을 독자에게 소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미술작품에는 급변하는 시대상이 반영되어있는데다 현대미술의 목표가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창작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특히 한국작가의 작품 중에는 세계무대에 내놓아도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 만큼 훌륭한 작품이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고전명화에 비해 동시대미술은 독자에게 소개되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데,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저작권료가 많이 발생하고 책값이 비싸져 책 판매에도 불리하기 때문이죠. 또 작가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릅니다. 이런 요소들이 동시대미술을 책에 소개하는데 장애요인이 되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대미술을 독자에게 알리는 일이 내게 주어진 중요한 임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위작과 대작 논란, 인문학 강사의 미술강의 오류 등 미술을 둘러싼 이슈들이 많은 요즘입니다. 자칫 독자와 관객들에게 부정적 인식을 심을까 걱정이기도 한데요. 미술전문가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요즘처럼 미술이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킨 적도 없습니다. 문제는 폭발적인 관심이 미술계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데 있다는 것이죠. 부정적인 기사가 쏟아지는 가장 큰 원인은 미술의 상업성과 폐쇄성입니다. 미술작품은 창작된 결과물이 단 한 점으로 유일하기 때문에 값이 비싸다는 속성을 갖습니다. 블루칩 작가나 인기 작가는 브랜드 가치가 높아져 소장하고 싶은 사람이 많아지고요. 그래서 수요 공급의 원칙과 배타적 독점권으로 인해 작품가격은 더욱 올라가게 됩니다.
돈이 개입되면 부정한 일이 벌어지고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양심을 저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이건 예술세계에서도 마찬가지죠. 탐욕스런 사람들이 어두운 곳에서 은밀하게 작전을 짜고 비열한 행동을 하다가 발각되어 요즘처럼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는 것처럼요.
주도양, 꽃 8(Flower 8), 2008
그러나 대다수의 미술인은 언론에 오르내리는 부정적인 일과는 무관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90퍼센트에 달하는 작가들이 월수입이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수입으로 창작혼을 불태우고 대다수의 미술전문가도 재정상태가 열악한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죠. 국민의 눈에 미술계가 비리집단으로 비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미술에 대한 소명감을 가진 많은 미술인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두 번 다시 이런 불미스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미술시장의 역사가 서구 선진국에 비해 짧은 우리로서는 언젠가는 치러야 할 통과의례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국내 미술시장이 성숙한 단계에 오르면 자연스럽게 그에 부응하는 시스템이 갖춰지게 될 것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미술시장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여러 정책을 준비 중이고 미술계도 자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진 만큼 국민들이 인내심을 갖고 미술계를 지켜봐 주기를 바랍니다.
사비나미술관에서는 지금 어떤 전시가 열리고 있나요? 전시감상 팁을 말씀해주세요.
사비나미술관은 개관 20주년 기념 기획전으로 <60sec ART>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60sec ART‘는 시 단위에서 분 단위로, 더 나아가 초 단위로 삶을 계획하고 움직이는 현 시대를 반영한 찰나의 시간성에 대한 다양한 사유를 담은 전시입니다.
60초라는 짧은 시간을 소재로 제작한 영상, 설치, 조각, 영화, 애니메이션, 웹툰 등 130여 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초 단위로 움직이는 현대인의 시간에 관한 사유를 미술과 과학으로 풀어낸 융복합 작업을 만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 수상작(2013~2015) 14편, SNS 3분 국제영화제 수상작(2016) 16편, 2013년 베니스국제영화제가 70주년을 기념해 기획했던 ‘베니스70’의 70편 작품 중 대표작 8편, 10초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출품작 80편도 상영되고 있습니다. 이에 관심을 갖는 독자들이 미술관을 방문해 전시를 관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생각을 여는 그림이명옥 저 | 아트북스
미술과 다양한 분야와의 융합으로 주목받고 있는 사비나미술관 이명옥 관장은 이번 책 『생각을 여는 그림』을 통해 기존의 학습된 방식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작품을 들여다보는 미술 감상법을 제안한다.
관련태그: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 생각을 여는 그림, 미술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