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이기호 “우리는 왜,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을까?”
소설집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펴내 <월간 채널예스> 5월호 커버 스토리
오랫동안 책을 읽지 않은 사람,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에 없었던 사람, 생활에 쫓기는 사람에게 주고 싶다. 문학이 거창한 것이 아니고, 장벽이 높거나 다가서기 어려운 지점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 그런 의지로 책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기호의 신작 소설집을 아직 읽지 않았다면, 표지를 한 번 노려보자.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왜 이토록 많은 독자가 “제목이 끌려 책을 샀다”고 말했을까. 내 마음을 들켜서? 혹은 아무렇지 않고 싶어서? 아니면 웬만해지고 싶어서? 웃음과 눈물이 적절히 배인 40편의 짧은 소설은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읽기에 썩 어울린다. 어쩌면 내 옆에 앉은 사람의 이야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낮추라는 말과 땀에서 배우라는 말, 그 말들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점점 무표정하게 변해갔고, 결국은 지금 준수가 짓고 있는 저 표정, 그것이 평상시 얼굴이 되고 말았다. 웬만해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 나도 눈높이를 좀 낮추고 취업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찌된 게 이놈의 나라는 한번 눈높이를 낮추면 영원히 그 눈높이에 맞춰 살아야만 했다. 그게 먼저 졸업한 선배들의 가르침이었다. 내 땀과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의 땀의 무게가 다른 나라. 설령 눈높이를 낮춰 취업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월급에서 학자금 융자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나라. 강원도에 갔다 온다 한들 아무것도 변하는 것은 없겠지만, 에라, 모르겠다, 거기 가면 눈높이 따윈 없겠지, 생각하며 나는 두 눈을 감았다. (「낮은 곳으로 임하라」에서)
어떻게 사는 게 좀 더 나은 삶인가
짧은 소설 40편을 묶었다. ‘작가의 말’을 시조 형식으로 적었는데, “짧은 글 우습다고 쉽사리 덤볐다가 편두통 위장장애 골고루 앓았다네”라고 했다.
(웃음) 분량만 보고 좀 쉽겠다고 생각한 건 사실이다. 몇 주 쓰고 나니, 바로 고통이 시작됐다. 가장 어려웠던 건 축약이다. 핵심을 찔러야 하고, 문장의 견고함을 추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힘들었다. 인물의 호흡을 잘 살리려면, 인물을 자주 만져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책으로 묶으면서 아쉬웠던 부분을 보완할까 생각했지만, 어떻게 보면 나름의 의미도 있겠다 었다. 말하자면 여백 같은 건데, 독자들의 몫이라고 할까? 읽고 나서 휘발되는 경우도 있지만, 독자들의 영역을 남겨놓는 역할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2014년 1월부터 약 2년간 일간지에 격주로 연재한 소설이다.
원래 칼럼을 연재하자는 제안을 받았는데, 허구적 글쓰기라면 하겠다고 역제안을 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칼럼, 에세이를 줄기차게 썼다. 그런데 칼럼을 쓰고 나면 나 자신이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은 엉망인데, 문장으로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모습이니 괴리가 느껴졌다. 스스로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심정이었다. 사실 에세이나 칼럼이 쓰기는 더 편하다. 곁에 있는 것들을 가공만 하되, 세트까지는 짓지 않아도 되니까.
맨 첫 장에 ‘이순성 님께’라고 적었다.
아버지 이름이다. 아버지께 이야기를 들려드린다는 생각도 있었다. 아버지는 아무래도 신문을 보는 세대셨으니까 다른 소설에 비해 훨씬 쉽게 읽었다고 하셨다. 아들이 소설을 쓴다는 걸 아시지만 현실적으로 와 닿지는 않으셨을 텐데, 이번에는 체감하신 것 같다.
그다음 장에 적힌 글도 인상적이었다. “어쩐지 자신이 원고지가 아닌 삶 속에서 소설을 쓰고 있는 기분이었다네.” 이 문장을 읽으니, 어쩐지 소설이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소설을 쓰면서 여전히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소설을 위한 소설이라고 할까, 메타픽션이라고 할까, 유미주의적인 태도라고 할까. 나만의 색깔을 찾기 위해 다분히 노력했는데, 지나고 보니 나의 평범하고 소소한 삶 속에도 소설과 같은 맥락이나 핵이 들어 있었다. 이번 소설은 그냥 어떻게 사는 게 좀 더 나은 삶인가, 올바른 삶인가, 좋은 사람인가를 고민하다 나온 것 같다. ‘소설을 이렇게 써야지, 인물을 이렇게 움직여야지’ 하는 생각으로 나온 책이 아니다. 무게 중심이 조금 변한 것 같다. 이 소설집은 어떤 상황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묘사하는 형식으로 던져주면서, ‘같이 한 번 생각해보자’의 개념이었다. 쓰는 순간순간은 힘들었지만, 대화를 거는 느낌으로 썼기 때문에 찝찝하거나 자존심이 떨어지는 느낌은 없었다.
집 안에 틀어박혀 살다가 몇 년 만의 외출을 하게 된 남자, 고속도로 졸음쉼터에서 자살을 기도하던 남자, 아들을 축구선수로 키우기 위해 무리하는 아빠 등 현실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인물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주인공이나 소재를 찾을 때, 최대한 어깨에 힘을 빼려고 했다. 작가는 소설을 쓸 때 문제적 인물, 예외적 인물을 다루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 시대의 흔치 않은 경험이나 흔치 않은 윤리의식을 가진 사람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은 분량이 짧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평범함 속에 우리를 울릴 수 있는 예외적 감정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고,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쓰려고 노력했다. 그 안에서 우리가 말하지 않았던 풍경, 감정들에 집중하려고 했다.
평소 집필에 들어가기 전, 전지를 꺼내놓고 캐릭터 구상을 하는 거로 안다. 이번 소설만큼은 예외였을 것 같은데.
대신 포스트잇을 많이 썼다.(웃음) 이번 작업은 메모의 힘이 많이 필요했다. 누군가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을 때마다,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했다. 결과적으로 메모로부터 시작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집은 제목만 들어서는 이기호의 작품이 아닐 것 같은데, 읽으면 읽을수록 되새김질을 하게 되는 제목이다. 우울하기도 유쾌하기도 하다.
문자로서의 의미를 보면 ‘나는 어떤 감정, 어떤 정념이 온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을 거야’인데, 이 태도는 굉장히 어려운 거다. 우울하고 슬픔이 느껴지고 나를 괴롭히는 일이 있어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게 훌륭한 삶의 태도일 수 있지만, 사실은 타인을 바라보지 않는 태도이기도 하다. 자기감정만 컨트롤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으니까.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려면, 아주 작은 일에도 아파하고 슬퍼하고 공감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지금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태도이기도 하다. 훌륭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지금 시대에 이렇게 사는 게 좋은 삶이 아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왜 이런 태도가 생겼는지를 생각해봤으면 한다. 왜 우리가 타인을 바이러스라고 생각하는지, 왜 자꾸 타인을 멀리하는지, 그 사정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오늘 학교 수업에서 은희경 작가의 작품을 이야기했다. 은희경의 초기작 『새의 선물』, 『타인에게 말 걸기』에 나오는 주인공을 보면 대개 냉소적인 인물이다. 분명 1990년대 후반에는 이런 성격이 굉장히 훌륭한 태도였다. 이전까지는 너무 이데올로기적인 문제에 치우쳐 인간의 감정선이 짓밟혀 왔으니까.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극단에 치달은 지금 이때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사는 건, 제대로 사는 삶이 아닐 수 있다.
현재 문예창작학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이면서, 세 아이의 아빠이고 남편이다. 전업작가보다는 많은 정체성 속에 살고 있는데, 어려움도 크겠지만 장점도 있을 것 같다.
간단하게 말해 아이를 키운다는 건, 기쁜 건 더 기쁘고 슬픈 건 더 슬퍼지는 일 같다. 감정의 폭이 넓어지고 알지 못했던 감정의 선까지 보게 되는 것 같다. 물론 힘들고 피로해지는 것도 많지만, 감정선이 깊어지다 보니 타인의 삶과 감정에 대해 공감하는 폭이 넓어진다. 이번 소설집을 보고 많은 사람이 ‘웃프다’고 했다. 웃기면서도 슬프다는 뜻인데, 생각해보면 우리 삶의 많은 일이 한 가지 감정선으로 다가오는 경우는 흔치 않다. 요즘 그걸 더 많이 느낀다. 읽었던 책 중에서 어떤 인물이 조난당해서 곧 죽을 것 같은 상황인데, 자꾸 머릿속에서 유쾌한 음악이 떠올라 당황하는 장면이 있었다. 어떻게 죽을 지경에서 유쾌한 음악이 떠오를 수 있을까? 쉽게 이해할 수 없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떤 한 가지 감정선이 지배적으로 다가오는 경우는 흔치 않다. 아이를 혼낼 때나 안을 때도 몹시 화가 난 경우도 있고, 기쁜 순간에도 자세히 보면 체념도 있고 분노도 있다.
교수로서는 어떤가?
소설 쓰기에는 분명 좋은 직업이다. 방학도 분명히 있고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교수가 해야 하는 행정적인 일이 많다. 물론 다른 직업을 갖고 글을 쓰는 분들에 비해 엄살을 떨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건 분명하다. 글을 쓸 수 있는 최적화된 직업 중의 하나인 건 맞는데, 그래서 한계도 있다. 어쨌든 학교도 조직이다. 조직 안에서 나도 모르는 검열 체계가 있을 수 있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오는 압박감도 분명히 있다. 전업작가들이 가진 어떤 자유로운 시선에 비해서 부족한 게 많고, 학교라는 세계 속에 갇힌 느낌도 없지 않다. 물론 집 밖의 이웃들도 자주 보지만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고, 학교는 우리 사회와 조금 다른 가치가 작동되는 공간이다 보니 자칫하면 현실의 삶에 무지할 수 있다. 그래서 조심스럽고 한계를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의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소설은 언제 쓰나? 도무지 생활에 틈이 없어 보인다.
학교, 집에서는 쓸 수가 없다. 소설가에게는 공간 같은 게 중요하다. 현실의 이기호가 아닌, 학교 선생, 아빠, 남편의 이기호가 아닌 삶으로 칸막이처럼 넘어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경계가 흐릿하면 소설을 잘 못 쓰기 때문에 그럴 때는 공간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 지금은 광주에서 나주로 가는 길목의 시골 마을에 허름한 공간을 구해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다.
집, 학교와는 완전히 다른 공간인가?
현실의 이기호를 표상할 수 있는 물품이 거의 없다. 책도 없고 달랑 노트북이랑 책상 하나다. 소설가는 자기가 어떤 인물을 창조해낼 때, 약간의 의식이 필요하다. 다른 삶으로 이동하는 것, 화자로서의 의식 같은 게 필요하다. 내 경우는 우선 작업실에 가면 오랫동안 샤워를 한 후, 책상에 앉는다.
15년 동안 계속 다른 작품을 보여준 소설가
“등단 15년이 넘었음에도 어떠한 피로감 없이 소모 없이 새로운 감각의 독보적 이야기꾼”이라는 작가 소개를 읽었다. 작가로서는 피로감이 컸겠지만, 덕분에 독자는 항상 새로운 이기호의 작품을 만났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2000년에 첫 책이 나온 후에 몇 권의 책이 더 나왔는데, 늘 힘들었고 늘 예전 작품과 다른 색깔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은 끊임없이 했고 그것들을 위해 노력한 것도 맞다. 하지만 만족스러웠을 때는 한 번도 없었다. 내가 만든 인물들이 작품 속에서 정말 잘 살아났다는 만족감이 없으니 계속 쓰게 되는 것도 있다. 이번 소설집은 나로서는 쉬어가는 지점이 분명히 있었다. 지금 연재소설에서 전작 『차남들의 세계사』와 어떤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작가로서 바라는 게 있다면, 15년 동안 계속 다른 작품을 보여준 소설가로 기억되는 것이다. 때론 실패도 하고 독자의 외면도 받겠지만, 그렇다 해도 변화는 매우 중요하다. 내가 알고 있는 뛰어난 작가들은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최근 몇 년간 베스트셀러 소설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는 벌써 4만 부 이상 팔렸다. 꽤 고무적인 반응 아닌가.
고맙고 기쁘다. 하지만 작가로서 어떤 차원에서는 자조적인 느낌도 있다. 내가 대중적인 감수성을 따라간 게 아닐까, 뭔가 새로운 감수성을 창조하는 노력을 게을리 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주 행복하게 문학적으로 새로운 것을 해놓고 같이 기뻐하면 좋았을 테지만, 더 깊이 있게 인물을 파고들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다.
분량과 매체의 한계도 있었지만, 원고지 11~12매 분량의 짧은 소설이 가진 통찰이 독자에게 공감을 얻은 게 아닐까?
과거 한국 소설의 특징을 살펴보면, 독자들을 가르치려는 경향이 있었다. 말을 붙이고 대화를 거는 게 아니라, 훈계하려는 작품이 있었다. “너희 이거 아니? 너희는 지금 이런 모습이야”라고 훈계하는 뉘앙스가 셌다. 그래서 독자들을 질식하게 만드는 면이 있었는데, 지금은 달라졌다.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나 소설을 쓰고자 하는 친구들의 작품을 살펴보면, 평범하게 살고 있는 어떤 모습 속에서 핵심을 끄집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낯익은 데서 낯선 것을 꺼내 보이려는 시선이 있다. 이번 내 소설집이 한동안 한국 소설을 외면했던 독자들이 다시 우리 작품을 찾아 읽는데 하나의 관문이 된다면, 작가로서는 다소 부족하고 자조적인 느낌이 있더라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불특정 다수의 독자 가운데, 이 책을 딱 한 명에게만 선물한다면.
오랫동안 책을 읽지 않은 사람,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에 없었던 사람, 생활에 쫓기는 사람에게 주고 싶다. 문학이 거창한 것이 아니고, 장벽이 높거나 다가서기 어려운 지점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 그런 의지로 책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이기호 저/박선경 그림 | 마음산책
등단 15년이 넘었음에도 어떠한 피로감 없이 소모 없이 새로운 감각의 독보적 이야기꾼이라는 신뢰가 여전하다. 2000년대 등장한 이래 희비극적이라 할 그만의 월드를 축조했던 작가 이기호. 그의 특별한 짧은 소설을 한 권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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