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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젝스키스 그리고 책

책과 음반은 사고 싶을 때 사는 게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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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무한도전 팬과 젝스키스 팬이라 이 글을 열었다면 닫으셔도 좋다. 나 역시 무한도전과 젝스키스를 사랑하지만 제목과 달리 이번 글에서 무한도전과 젝스키스의 분량은 거의 없다. 다만 무한도전과 젝스키스를 사랑하는 팬으로서 본방은 사수할 것이다.

나와 결혼한 여성은 대체로 무던한 편인데, 토요일 오후 6시 20분이 되면 예민해진다. MBC 주말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봐야 해서다. 일전에 그 시간에 떠들었다가 따끔하게 혼이 난 뒤로는 「무한도전」 방영 시간 동안에는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뽕뽕 나오려는 방귀도 참는다. 설사는 어쩔 수 없다.

 

전반적으로 「무한도전」에 별로 관심이 없지만, 가끔은 나도 아내와 함께 본방을 사수한다. 지난주는 젝스키스(이하 ‘젝키’)가 나왔다. 그 시절 코찔찔이들이 대개 HOT나 젝키 팬이었듯 나 역시 젝키를 사랑했다. 없는 돈 탈탈 털어 1, 2, 3집이 나올 때마다 샀고 꿈 속에서도 젝키 노래가 들릴 만큼 주구장창 들었다. 특히 좋아했던 곡은 「학원별곡」과 「로드파이터」 그리고 「무모한 사랑」이었다. 좋아한 멤버는 장수원, 잘 생겨서. 이재진과 김재덕은 부산 출신이라서 좋아했다.

 

다만 3집이 나오고 불과 반년도 안 있어 나온 3.5집 소식을 듣고는 "17개월 동안 음반 4장이라니, 젝키 팬 하려면 용돈이 넉넉해야겠군"이라는 자각이 생기며, 젝키 팬 하기를 포기했다. 그 뒤로 얼마 안 있어 젝키는 4집을 끝으로 가요계를 떠난다. 그때 정확히 어떤 표현을 썼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은퇴'였거나 '해체'인 듯하다.

 

요즘도 이름난 그룹은 은퇴 선언을 하겠지만, 그 시절 젝키 말고도 여러 가수들이 공식 기자 회견을 열고 '은퇴'나 '해체'를 선언했다. 서태지와아이들이 그랬고 HOT도 그랬고 R.ef도 그랬다. 프로 스포츠에서 뛰는 유명 스타 선수들의 은퇴 소식도 일반 대중에 널리 알려졌다. 이들이 은퇴하거나 해체하거나 가요계나 야구계를 떠나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덕분에 나는 매사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은 시작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며, 그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게 당연한 진리인 줄 알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좀 더 많은 일을 보고 겪으며 세상 만사가 그렇게 전개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동안 성원해 주신 팬 여러분에 감사하며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점을 알기에 우리는 이 자리에서 슬퍼하지 않겠다고 외치면서도 내뱉은 말과는 반대로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기자 회견을 열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인기 많은 일부였다. 화려한 끝은 일부에게만 허락된 축복이었다. 설사 은퇴를 발표하더라도 은퇴 시점에서 이미 인기가 많이 식어버려 주목 받지 못할 때도 있고, 은퇴를 선언하지 않았으나 후속 앨범이 안 나오는 가수는 그보다 더 많았다. 본인은 은퇴할 의사가 없었으나 성적 부진으로 팀에서 방출되는 야구 선수나 축구 선수도 많았고.

 

책도 마찬가지다. 간혹 뜬금 없이 절필 선언을 하여 독자를 황당하게 하는 분도 있었지만, 작가 중에서 '은퇴'를 명시적으로 선언하시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보다는 다양한 상황 때문에 첫 번째 작품을 내고도 두 번째 작품을 내지 못하는 사례가 더 많다. 저자가 공사가 다망해 원고를 못 쓰는 경우도 있을 테고, 원고가 나오긴 나왔는데 첫 번째 책에서 상품성을 증명하지 못한지라 출판사에서 선뜻 출판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도 있다. 책도 자본주의에서 유통되는 다양한 상품 중 하나인 바, 첫 번째 책이 잘 안 되면 두 번째 책 내기가 쉽지 않다.

 

'쇄'에 관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스테디셀러야 1판, 2판, 3판 꾸준히 나올 수 있고 베스트셀러라면 많게는 100쇄 넘어서까지 찍지만 거의 대부분의 책이 1판 1쇄에서 끝난다. 이러한 사실을 안 건 책에 관한 일을 하면서부터인데, 대학생 시절에는 책을 내면 인세로 많은 돈을 벌고 책도 내기만 하면 수십 쇄는 기본으로 찍는 줄 알았다. 독자는 원한다면 나온 지 몇 년이 된 책이라도 언제든지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니었다. 대학 때 마르티나 도이힐러의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을 도서관에서 읽은 적이 있다. 굉장히 재밌는 책이었으나 가난한 대학생이 사기에는 비싼 책. 하여 졸업하고 나서 돈 벌어서 구입하려고 했는데 이런 웬걸. 예스24를 비롯한 모든 인터넷 서점에서 품절 또는 절판이었고 심지어 중고책도 한 권도 없었다. 중고책이 등록됐을 때 알림 받을 수 있도록 신청했으나 가끔씩 올라오는 중고책은 비싸도 너무 비쌌다. 다행히도 몇 년 뒤 다른 출판사에서 바뀐 제목인 『한국의 유교화 과정』로 재출간 되긴 했지만, 잭 구디의 『잭 구디의 역사인류학 강의』나 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의 『아주 평범한 사람들』은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품절되었고 지금 시점에서는 새 책으로 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밀독서단.jpg
ⓒTVN 「비밀독서단」 한 장면.
100위에서 2위까지 책을 소개하지만, 그림 속 떡인 책도 있다.
그 중에 한 권이 47위인 『사회사상사』, 품절이라 못 구하는 책이다.
그렇다, 저기 진열된 것은 내가 프로그램 작가님에게 빌려준 책이다.

 

비단 나만이 겪은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예스24 블로그에 책 리뷰를 종종 쓰는 편인데, 오랫동안 블로그를 하다 보니 쪽지로 이러이러한 책을 혹시 팔거나 빌려줄 의향이 있는지에 관한 문의를 종종 받는다. 지금 대충 생각나는 제목만 해도 레셰크 코와코프스키의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흐름』, 루이스 코저의 『사회사상사』, 루 살로메의 『선택된 자들의 소망』이 있다. 이들 책 모두 앞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품절 또는 절판되었다. 원 저작자와 출판사 간 계약 기간이 끝나 품절 또는 절판되기도 하지만, 다음 쇄를 찍어도 다 팔린다는 확신이 안 설 때 출판사는 책을 품절 처리한다. 이렇듯 책 역시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시장에 따라 유통 상황이 결정되며, 다른 전자 제품이나 의류와 다를 바 없이 유통 기한이 그리 길지 않다. 물론 스테디셀러는 예외지만. 

 

억지겠지만 이런 사정을 생각한다면 '쇄'란 어쩌면 소리 없는 은퇴의 다른 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네 삶이 그러하다. 명시적으로 '이제는 끝'이라고 말해주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학창 시절 가장 친한 친구와 절교 선언을 한 적도 없는데 어느덧 소원해졌다거나 차일 때는 차이더라도 성공하고 나서 사귀자고 말하려 했던 이성 친구가 소리 소문 없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건너 건너 듣는다거나, 코찔찔이 초등학교 시절 빵 셔틀하던 친구가 하라는 일은 안 하고 부동산만 줄기차게 해대다 하필 대박 터뜨렸다는 이야기를 엄마가 해 준다거나, 그 빵셔틀하던 친구랑 결혼한 여성이 바로 사귀고 싶었던 그 여성이라거나... 쓰다 보니 이런 사례는 ‘시작과 끝은 언어로 공표되지 않는 게 우리 삶’이라는 주제 의식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인 듯하지만, 화려한 끝은 실생활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는 정도로 정리하고 넘어가자.

 

다만 이번 글에서는 읽고 싶은 책이 있을 때, 듣고 싶은 음악이 있을 때 주저 없이 구매하는 게 최선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현재에 충실하자, carpe diem. 살까 말까 망설이는 순간, 책과 음반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나마 웃돈을 주고 구매할 수 있는 책이나 음반이라면 다행이다. 프랑스 헤비메탈 밴드 Heavenly의 2집과 3집을 망설이며 구입하지 않은 죄로, 지금까지도 해당 앨범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중고나라, 아마존 제팬 등을 비롯한 웬만한 사이트는 다 뒤졌지만 아직 내 손에는 절망만이 남았다. 반가운 뉴스라면, 대한민국 최고의 인터넷 서점 예스24가 서울 강남에 중고책 서점을 열어 상대적으로 중고책, 중고음반 구하기가 쉬워졌다는 사실?

 

중고든 새 제품이든 사고 싶은 책, 음반을 바로 바로 사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한다, 일을 잘하려면 기혼자인 경우에는 평온한 가정이 있어야 하며, 평온한 가정을 지키려면 토요일 오후 6시 20분부터 8시까지는 나와 결혼한 여성이 오롯이 「무한도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처신을 똑바로 해야겠다.

 

참고로 이번주 「무한도전」은 내가 굳이 이야기 안 해도 알겠지만,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젝키 게릴라 콘서트 모습이 방영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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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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