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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와 포이동

어느 계절에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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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이 보는 색이 어떠한지 모르듯이, 내가 보는 색은 그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다. 분명 누군가는 훨씬 더 많은 장면을 보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내가 보는 것과는 정반대의 색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1.


크로마젠 안경은 색약과 색맹을 위한 특수 안경이다. 빛의 파장을 조절하는 필터를 사용해 안경을 끼면 색맹이라도 어느 정도 색을 구별할 수 있다. 

 


이 안경을 쓰고 처음으로 자신이 못 보던 색을 본 사람들은 보자마자 울고 싶은 기분이 들거나, 탄성을 지른다.

 

“다른 사람들처럼 못 본다는 게 이렇게 큰 차이가 있는지 몰랐어요”

 

“이렇게 많은 의미들을 놓치고 살았네요”

 

“여러분은 이걸 매일 보고 살았다는 거죠?”

 

 

2.

 

대학교에 들어가 좋은/옳은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공부방 활동에 자원했다. 지금은 개포4동 1266번지로, 포이동 266번지로 불린 재건마을 공부방이었다. 1982년 전두환 정부가 넝마주이 등을 집단 수용하고 강제 이주하는 과정에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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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동 전경. ⓒ박김형준

 

오랫동안 정규교육과 사교육을 충실히 밟아 온 사람으로 내가 줄 수 있는 자원은 공부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아이들은 10분을 못 버티기 일쑤였고, 어디론가 사라지거나 동네 슈퍼로 손을 끌고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달라고 요구했다. 일주일에 한 번 쭈쭈바를 물려주거나 교과과정과는 별로 상관없는 게임 같은 걸 하고 밥을 나눠 먹고는 했다. 금방 바뀌는 선생님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래 있는 선생님이 낫다는 얼토당토않은 믿음으로 수업은 뒷전인 채 주로 공부방 선생님들과 노닥거렸다.

 

강남구청과 서울시 모두 주민들이 강제 이주 후 주민등록이 말소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토지를 무단 점거했다는 이유로 부과된 토지변상금 체납을 해결해야 그다음으로 거취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아이들은 나보다 빨리 크고 공부는 더욱 심드렁해졌다. 열심히 하면 장밋빛 인생이 될 거라고 누구도 말해주지 못했다.

 

2011년 마을에 불이 났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판잣집은 조그만 불씨에도 크게 불이 옮겨붙었다. 소방차가 왔지만 96가구 중 75가구가 전소했다. 소식을 들었을 때는 여전히 집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강을 건너기도 전 탄내가 나고 뱃속에 연기가 들어찼다. 강남구청은 주거용 건물을 다시 지을 경우 철거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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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 잔재를 치우기 전 모습. ⓒ박김형준

 

당장 아이들 잘 곳이 없었다. 마을 회관 맨 위층에 이불을 가져다 놓고 10여 명이 같이 잤다. 공부방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관리를 맡았다. 선생님이라고 해 봤자 거의 대학생들이었다. 어머니는 위험한 곳에 가지 말라며 나를 걱정했다. 잠은 집으로 와 자고는 했다.

 

어느 날 새벽, 용역이 왔다. 화재 잔해를 치우고 세웠던 가건물을 오함마로 부쉈다. 그 날 당번인 선생님은 망치 소리가 가슴으로 날아와 숨이 턱턱 막혔다고 했다. 철판은 종이처럼 구겨져 있고 부서진 단열재 속 스티로폼이 새하얬다. 그 뒤로 가끔 환청처럼 망치질 소리가 들렸다. 어딘가 고장 나고 구겨진 기분이었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울기엔 좀 애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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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김형준

 

3.

 

같이 공부방을 했던 친구는 군대에 갔다 왔다. 다시 사회로 나오자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이제까지 알고 지냈던 형들이 다 놀라웠다고 한다. 다들 군대에 다녀왔던 사람들인데 어떻게 이렇게 그런 적이 없었던 척, 총을 쏴서 사람을 죽이는 방법과 명령에 복종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상처받은 적이 없었던 척하면서 살아갈 수 있냐고.

 

4.

 

이후로도 강정과 밀양 같은 이름들이 가지는 색이 늘어났다. 졸업하기 전 취직이 되었고 포이동에 일 년에 한두 번 가던 횟수는 일 년 반, 이 년으로 점점 뜸해졌다. 나는 아주 가끔 안경을 끼고 간신히 이런 색이 있었지, 하는 마음으로 뉴스를 흘려보냈다.

 

5.

 

그 날도 밥을 먹고 있었다. 아마 김치볶음밥이나 제육 덮밥 같은 걸 먹지 않았을까 한다. 식당에 크게 틀어놓은 티브이에서는 수학여행 가는 아이들을 태운 배가 진도에서 좌초했지만, 전원 구조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다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6.

 

2년이 지났다. 가끔 “어떻게 이렇게 많은 걸 보면서 아무렇지 않을 수 있죠?” 라고 누구한테라도 물어보고 싶어진다. 사실 나도 364일 정도는 아무렇지 않다. 그저 처음 본 색의 강렬함이 무감해질 뿐이다.

 

4월 16일 만큼 노란색을 느끼는 날이 있을까. 다른 사람들이 보는 색이 어떠한지 모르듯이, 내가 보는 색은 그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다. 분명 누군가는 훨씬 더 많은 장면을 보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내가 보는 것과는 정반대의 색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저 저 색이 보이지 않냐고, 더듬거리면서 물어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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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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