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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현실과 현실적인 사랑

『로미오와 줄리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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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사랑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은 틀렸지만, 사랑에는 언제나 분명한 흑백논리가 존재한다, 이제 사랑할 것인지, 사랑하지 않을 것인지, 자신을 지배하는 순수한 감정에 지배당할 것인지, 현실 자아에 짓눌려 그것이 충동임을 냉연히 타이를 것인지 하는 두 선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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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  오, 로미오, 로미오, 왜 그대는 로미오인가요?
아버지를 부인하고 그대 이름 거부해요.   
그렇게 못한다면 애인이란 맹세만 하세요.
그럼 난 더 이상 캐풀렛이 아니에요.  


로미오  더 들을까, 아니면 이쯤에서 말을 걸까?


줄리엣  그대의 이름만이 나의 적일뿐이에요.
몬터규가 아니라도 그대는 그대이죠.
몬터규가 뭔데요? 손도 발도 아니고
팔이나 얼굴이나 사람 몸 가운데
어느 것도 아니에요. 오, 다른 이름 가지세요!
이름이 별건가요? 우리가 장미라 부르는 건
다른 어떤 말로도 같은 향기 날 겁니다.
로미오도 마찬가지, 로미오라 안 불러도
호칭 없이 소유했던 그 귀중한 완벽성을
유지할 거예요. 로미오, 그 이름을 벗어요.
그대와 상관없는 그 이름 대신에
나를 다 가지세요. 

 

어떤 사랑은 현실을 뛰어넘는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연인은 사랑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정하지만, 현실의 사랑은 무력하기 그지없을 때가 많다.

 

우리에게 사랑은 현실을 이길 만한 대단한 것이 되지 못할 때가 많다. 마치 예방주사를 맞은 것처럼 세상에 떠도는 너무 많은 사랑에 둔감해져서 어떤 사랑 앞에서도 현실의 조건부터 따질 때가 많은 것이다.

 

얼마 전 33살 지현 씨(가명)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내담자가 아니라 프로젝트를 같이 하며 알게 된 사람이다. 대화는 어느새 상담이 되었다.

 

그녀는 막 힘겨운 사랑을 끝낸 후였다. 10살 넘게 차이 나는 한 남자와 몇 년간 사랑했고, 얼마 전 헤어졌다는 것이다. 그녀는 현실적인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헤어진 남자는 좋은 인품과 배려심, 남다른 감성을 가졌지만, 가진 것이 없었다. 10살이나 차이가 나고 전셋집 하나 구할 수 없는 그와 결혼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했다. 연애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가족의 반대였다. 특히 그녀의 엄마는 그와 결혼하면 자신을 보지 않겠다고 했다.

 

그녀도 자신이 결혼적령기가 되었다고 생각했고, 결혼 상대가 될 수 없는 연인과 헤어지는 것이 서로에게 행복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별여행을 다녀온 후, 늘 걸려오던 연인의 전화가 끊어지자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이별의 상처쯤은 이겨내리라 자신만만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위로 대신 어쩌면 이 사랑이 평생 자신의 심장을 후벼 팔지 모른다는 말을 건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생각해보라 했다.  

 

우리는 살며 때로 비현실적인 사랑에 도전한다. 비현실적인 사랑은 현실적인 사랑보다 더 힘들기 마련이다. 또 사랑의 고통 때문에 사랑을 포기할 때가 많다. 그 비현실적인 사랑이 계속되면 상처만 커지지라 생각하지만, 사랑이 끝나고 찾아올 통증은 미처 생각지 못한다.

 

철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사랑의 역사』에서 사랑은 분명 고통이라고 말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에 대한 가장 매력적인 해설서기도 한 이 책에서 크리스테바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사랑이 원하는 것, 사랑이 바라는 것을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는 그대로, 있는 힘껏 현실화하는 까닭이다. 현실에서 우리가 만나는 거짓 사랑은 고통을 피하기 위해 사랑의 본질을 저버린다. 그래서 더 큰 고통을 떠안는 것이 현실에서 만나는 거짓사랑의 종말이다. 현실에는 애초 그 시작부터 사랑답지 않은 가짜들이 사랑의 공간을 채우고 있다. 사랑인 것과 사랑이 아닌 것 사이에서 현기증을 느끼는 우리의 사랑에 비하면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을 지키려 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진정 현실화된 사랑이라는 것이 크리스테바의 설명이다. 크리스테바는 사랑은 운명적으로 밀어닥치는 것이고,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 고통스러우면서 동시에 기쁨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충고한다.

 

우리는 아픈 사랑을 자기 생의 밖으로 내던질 때마다 그것으로 고통을 피할 수 있으리라 믿지만 후회라는 아픔, 기억이라는 고통, 그리움이라는 통증, 깨어진 사랑이 주는 수많은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사랑 앞에서의 어리석음이란 이런 것이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은 사는 내내 가슴을 저리게 한다, 진정 그 사랑이 절실했다면.

 

지현 씨와 이야기를 나눌 당시 상담했던 한 30대 후반 남성은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두 명이나 낳았지만 오래전 사귀었던 연인을 잊지 못했고, 결국 그녀와 다시 만나고 있었다. 곡예를 타는 그에게 나는 무엇을 택하라 조언하기 어려웠다. 당신의 너무 많은 마음이 문제라고만 했다. 그의 경우는 사랑이거나, 사랑이 아니거나와 같은 이야기를 하기 어려웠다. 현실과 너무도 뒤섞인 사랑은 사랑만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크리스테바의 『로미오와 줄리엣』 풀이에 대해 들려주며, 지현 씨에게 물었다.

 

“어려운 사랑은 현실이 될 수 없는 건가요?”

 

“사랑은 현실을 이길 수 없어요.”  

 

우리는 사랑 앞에서 의문에 빠진다. 사랑을 가로막는 모든 조건과 장애들을 내던지면 완전한 사랑을 얻을 것인가? 그럴 수 있겠지만, 그럴 수 없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사랑 때문에 생길 고통을 피하기 위해 현실을 택하면 사랑이 가져다줄 고통에서 해방될까? 이 역시 그럴 수도 있지만, 결코 그럴 수 없을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랑 앞에서 주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랑이 창조하는 거대한 미지가 우리가 사랑 앞에서 용기를 잃게 한다. 또 용기를 갖게 한다. 두 남녀가 벌이는 감정과 언행의 이중주는 항상 어떤 운명으로 치달을지 모르는 미지의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이 아닌 사랑을 하며 괴로워할 수도, 진실한 사랑을 옆에 두고도 모른 척하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아는 사랑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은 틀렸지만, 사랑에는 언제나 분명한 흑백논리가 존재한다, 이제 사랑할 것인지, 사랑하지 않을 것인지, 자신을 지배하는 순수한 감정에 지배당할 것인지, 현실 자아에 짓눌려 그것이 충동임을 냉연히 타이를 것인지 하는 두 선택의.

 

결혼과 약속을 예찬했던, 작고한 사상가 크리스티안 생제르는 우리에게 사랑에 대한 결심과 용기를 이렇게 북돋는다. 한 번뿐인 생을 바보 같은 선택들로 채우지 말라고 한다. 

 

“선택권을 가진다는 환상은 우스꽝스럽다./무수히 날아온 꽃가루들 중에 마침 거기 떨어진 하나만 열매를 맺는다. 기적은 ‘거기 떨어졌다’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미궁 속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났다는 것이 이미 기적인 것처럼./이리저리 살랑대며 흘러가는, 저 붙들 수 없는 인생은 성실하게 제 할 일을 한다. 주저 없이 선택을 감행하고, 짚더미 속 바늘 찾기처럼 힘든 일을 해낸다. …… 진정한 모험, 진정한 도전은 약속의 회피가 아니라 감행이다.” 

 

                               - 크리스티안 생제르, 『결혼 약속 그 모든 미친 짓들에 대한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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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독서박민근 저 | 와이즈베리
저자는 수십 년간 책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했던 경험과 15년간 심리치료사로서 내담자들을 치유한 임상 결과를 토대로 실제로 치유 효과가 입증된 50권의 책을 《치유의 독서》에서 소개한다. 철학상담의 전통과 최신 심리치료 연구성과, 15년간의 독서치료 경험으로 입증된 치유서를 통해 내면의 힘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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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민근(심리치료사)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문학, 철학, 심리학이 융합된 독서치료를 연구하고, 또 임상에 적용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치유의 독서』,『성장의 독서』,『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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