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준석 백현진 “음악에 태도가 없으면 다 껍데기”
‘방백’ 타이틀로 <너의 손> 발매
요즘은 음악이나 작업 이야기를 할 때 점점 '태도'에 대한 이야기들이 빠지죠. 그런 것들이 올드하다고 치부하고. 그런데 정말 그럼 그게 아니면 뭐겠어요. 계속 잔가지들을 쳐나가다 보면 뭐가 남을지를 생각해봐야 하죠.
방준석-백현진 콤비는 백현진 솔로 앨범이나 공연에서 꾸준히 함께 해왔다. 하지만 새로 발매한 앨범은 연주 규모나 제작 방식이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래서일까. 이들은 '방백'이라는 새로운 문패를 걸고, 앨범 <너의 손>을 내놓았다.
19년 동안 함께 음악을 했다는 두 사람은 이야기를 할 때도 호흡이 참 잘 맞았다. 한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날숨과 들숨처럼 자연스럽게 다른 한 사람이 정리하거나 설명을 채워나갔다. 둘은 무엇보다 <너의 손>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참으로 즐겁고 좋았단다. 제작 당시를 곱새길때마다 표정이 한층 부드러워졌다. 이토록 행복하게 가꿔진 음악이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을까?
<너의 손>이 발매 예정일보다 열흘 늦게 발매되었다. CD 발매가 연기된 이유가 있나?
백: 저희 성에 안 찼어요. 사실 뭐가 달라졌을까 하겠지만 그래도 조금 더 성에 차게 만들자 싶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밸런스를 조금씩 만지기도 하고요.
방: 전시회에 액자를 걸었는데 약간 삐뚤어진 거에요. 그런데 이것을 못 참는 거죠. 아주 미세한 부분이긴 한데 그래도 한번 나오면 끝이잖아요. 대대적으로 뭔가를 바꾸고 이런 건 아니고 약간의 수정, 보완을 했어요. 그래서 수정 전과 후 앨범 두 가지를 놓고 들어도 뭐가 바뀐 거지? 하고 마치 숨은그림찾기 같을 수도 있습니다.
<너의 손>은 그동안 두 사람이 한 작업과 느낌이 많이 다르다.
방: 그렇대요. (웃음)
백: 많이들 그렇다고 하네요. 저흰 좋아요.
사실 두 사람의 작업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렇게 '방백'이라는 이름을 새롭게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백: 문패를 다시 달고 새로운 마음으로 일해보자 그런 게 있었어요.
연극의 '방백'과도 관련이 있나?
백: 처음에는 전혀 그런 의미가 없었어요. 소리로 이렇게 하다가 방백 예쁘다 하길래. 그러다가 연극의 방백도 있구나 싶긴 했죠.
확실히 '백방'보다는 '방백'이 어감도 좋고 멋지다. 방백의 탄생은 언제부터인가?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 음악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방: 예전에 저희가 같은 소속사였어요.
백: 송홍섭 대표님이 만든 소속사였는데 당시에 삐삐밴드가 있었고 유앤미블루, 어어부 프로젝트가 있었죠.
방: 막상 회사 안에서는 서로 부딪힐 일이 없다가 홍대의 '블루데빌'에서 만났어요.
백: 거기가 뮤지션들의 구락부(클럽) 같은 곳이었는데 주인 누나가 밴드들을 잘 챙겨줬어요.
방: 거기서 오가며 보긴 했는데 본격적으로는 1997년 어어부 프로젝트 세션으로 참여하면서 친해졌죠. 그때부터 동네 친구처럼 지냈어요.
이번 방백 앨범은 두 사람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함께 했다. 어떻게 작업이 이루어졌나?
백: 보통은 제가 흥얼거리면서 끼적거린 곡에 준석이 형이 기타를 입혀요. 그렇게 어느 정도 모양이 잡히면 공연을 하면서 오늘은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하면서 노래를 완성해요. 그러다가 이번에는 사람들이 붙기 시작한 거죠.
사람들이 붙게 된 계기는 뭔가?
백: 이것에 대해서는 준석이 형과 3년 이상을 얘기했어요. 두 사람이 같이 어떤 물건을 만들까를 고민했죠. 사실 그동안처럼 쭉 한 번에 기록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소위 음악을 좀 까다롭게 듣는다는 친구들한테 '어이 뭐 재밌네.' 하는 드라이한 물건이 나왔겠죠.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말고 다른 식으로 가보자 이런 얘기를 하면서 서로 덜 갸우뚱거릴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방: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둘의 합은 나와요. 그동안 합이 없었던 게 아니니까. 그러다가 얘기가 나온 게 '대상'이라는 거예요. 원래는 대상을 고려하지 않고 '우리가 좋으면 땡'이었는데 말이죠. 처음에는 대상을 어떻게 고려할까 어떻게 맞출까 고민을 하다가 완전히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구나 싶었어요. 뭔가를 맞춘다는 건 난 이만큼 잘났는데 너한테 맞춰줄게, 하고 잘난 체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또 생각이 든 게 누군가를 위해 밥을 차릴 때 마음이라는 게 있잖아요. 배려의 마음이 있어야 하는 거고 정성도 있어야 하는 건데…. 하면서 둘이서 쭉 음악의 방향에 대해 얘기를 했어요.
앨범에 참여한 사람들이 거의 재즈 쪽의 슈퍼밴드다. 어떻게 모이게 되었나?
백: 일부러 재즈 쪽 사람들을 초점에 맞춰서 모은 건 아니었어요. 우선 구조를 만들자고 해서 드럼과 베이시스트 얘기를 하다가 서영도씨 얘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영도 형을 만났죠. 그때 한 이야기가 '연주 잘하는 사람과 함께 하자'가 아니라 '편한 사람들하고 함께 하자'였어요. 그랬더니 신석철도 편하고 윤석철도 편하다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렇게 하나둘씩 사람들이 붙었어요. 손성제, 김오키, 최선배 선생님까지도요.
다들 굉장한 프로 연주자들인데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녹음했는지 궁금하다. 라이브를 하듯 자유롭게 소리가 부유하는데 그것이 산만하지 않고 정돈되어 있는 게 놀라웠다.
방: 저희는 '이 노래는 어떤 이야기며, 우리가 원하는 그림이 이런 방향이다.' 정도만 설정하고 나머진 굉장히 열어놓고 작업을 했어요. 초반에는 연주하러 오시는 분들이 '내가 뭐를 해줘야 하지'하는 세션 마인드로 연주를 하다가 점점 '뭘 같이 어떻게 하지'로 바뀌었어요.
백: 한번은 시간이 없어 온종일 열 시간 넘게 열 곡 정도를 녹음했는데 굉장히 혹사하는데도 너무 좋대요. 악보가 있어요, 뭐가 있어요. 와서 계속 만들어 나가니까요. 앨범 나오면서 회사에서 연주자들에게 소감문을 받아서 보여 줬는데 그걸 보고 마음이 참 좋았어요. 그런 마음들이 앨범에 다 묻어있겠죠.
작업 과정 자체가 워낙 재밌고 좋았던 것 같다?
방: 저희가 가끔 공연하면 같이 작업한 사람들이 모이잖아요. 서울시향에 있는 '임가진'이라는 친구도 자기 일 끝나자마자 달려오겠대요. '윤석철'이라는 친구도 함께 공연하면서 무언가 말로 하긴 힘들지만 울컥하는 게 몇 번 있었대요. 영도 형도 '야 우리 공연 언제 하냐' 이러고요. 같이 하고 싶어 하는 걸 보면서 방백이 우리 둘의 합만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게 돼요.
백: 형도 저도 음악을 오래 했긴 하지만 악사들끼리 이렇게 모여 작업을 하는 게 음악의 원형이었을 텐데 싶어요. 와 이런 경험을 내가 맛보는구나 싶어요. <너의 손> 작업하면서 느끼는 게 많았어요.
앨범을 듣는데 특히 백현진 씨가 코로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마치 라이브를 듣는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보컬 녹음은 원테이크로 이루어졌나?
백: 나이 먹어서 호흡이 불안해요. (일동 웃음) 저는 보통 그렇게 녹음해요. 라이브 하는 것처럼 슥 불렀어요.
방: 어떤 분들은 노래를 저렇게 해도 되나 할 거예요. 그래도 저는 그게 좋아요. 저희와 신석철, 서영도 넷이서 기본 틀을 만들면서 녹음을 했거든요. 이걸 가이드라고 하잖아요. 근데 나중에 보면 그 에너지와 느낌이 너무 좋은 거예요. 실제 녹음 때는 이걸 재현해야 하는 상황이 돼 버리고요.
백: 그래서 이번에 다시 발매되면서 보컬을 가이드 버전으로 교체한 곡이 하나 있어요. 하지만 그게 뭔지는 비밀입니다. (웃음)
다시 들으며 찾아봐야겠다. 수록곡 제목들이 모두 '두 자'다. 일부러 두 글자로 지은 건가?
백: 제목을 짓다 보니 우연히 몇 곡이 두 자씩 나오기에 '에이 그냥 이번에는 다 두 자씩 하자' 그렇게 되었어요. 특별한 의미는 없어요. 언제부턴가 제목도 그렇게 안 중요하게 되더라고요. 옛날에 '어어부프로젝트' 때는 제목 어떻게 지을까 고민하다가 몇 개월 걸리고 그랬는데.
'아송'을 보면서 이거 일부러 글자 수를 맞춘 거구나 생각이 들었다. (웃음)
백: '아송'은 형이 A 코드라고 해서 'A Song'이었는데 결국 나중에 코드가 바뀌었어요. 근데 형이 'A Song'이라고 보냈는데 이게 '아송'이라고 읽혔어요. 아송, 이 발음이 예뻐서 형한테 나 아(我)에 소나무 송(松), 아님 두려울 송(悚)을 해서 '나의 소나무', '나의 두려움' 이것도 재밌다고 했어요. 그러다가 '아송'이 됐죠.
트랙 배치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어떤 스토리가 있는 건가?
백: 텍스트에 많이 집중해서 배치한 것은 아니고요. 사운드를 이렇게 하면 무리가 없으려나 하면서 쭉 이었어요.
방: 저도 나중에 보니까 흐름이 말이 되긴 한 것 같아요. (웃음) 들으시는 분들이 각자 스토리를 가지고 해석을 하시는데 말이 되는 지점들이 있어요.
앨범 커버 뒷면에 'LOVE'라고 적혀있다. 앨범의 주제나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도 관련이 있을까?
백: 친구가 포도를 다 먹고 가지를 갖고 'BYE'를 써놓았어서 저도 이것저것 만들며 놀다가 'LOVE'를 만들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어요. 'LOVE'는 쉬운 낱말이고 좋은 단어니 뒷면에 쓰면 어떨까 해서 넣게 됐어요.
방: 앨범의 주제를 생각해보면 결국 세상에 대한 얘기인 것 같아요. 살고 있는 이 시점의 우리 얘기고요.
백: 그죠. 결국 인간에 대한 얘기죠
앨범을 만들면서 두 사람이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3년 넘게 했다고 하는데, 분명 방백의 음악이나 가사를 들으면 예술의 본질적인 자세, 근본적인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백: 요즘은 음악이나 작업 이야기를 할 때 점점 '태도'에 대한 이야기들이 빠지죠. 그런 것들이 올드하다고 치부하고. 그런데 정말 그럼 그게 아니면 뭐겠어요, 스타일? 웃기지들 말라고 해요. 그럼 뭐에요. 장르에요? 몇 년 전 기준으로 하면 런던에서 유행하는 덥스텝이에요? 그런 게 어디 있겠어요. 그렇게 계속 잔가지들을 쳐나가다 보면 뭐가 남을지를 생각해봐야 하죠. 저희의 지금 수준에선 '마음'이나 '태도' 이런 낱말들을 쓰게 되는데요. 누군가는 정말 싫어할 수도 있을 거예요. '인사동에서 막걸리 마시면서 하는 소리를 왜 저렇게 하고 있어' 하겠지만 미안하지만 정말 '안녕하세요? 날씨가 좋군요' 하는 말처럼 평범하지만 꼭 사용할 수밖에 없어요.
방: 저도 할 얘기가 딱 그거에요 기본인 것. 어떤 면에서 음악에 태도와 마음이 없이는 다 껍데기라고밖에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에 대해 심사숙고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 그렇고 이전 인터뷰들에 음악을 '물건'이라고 표현하는데, 이유가 있나?
백: 언제부턴가 그냥 작업하는 것들을 일이라고 표현하고 사물, 물건이라고 하는 게 편해요. 그러니까 아마 '작업을 한다', '이 작품은' 이런 말들이 다 부질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런 거겠죠. 그렇다고 어르신들이 '이 녀석 이거 물건이네' 그런 의미는 아니고. (웃음) 저는 대중문화라는 건 공기처럼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막 갖다 쓰면 되는 거죠. 사람들이 슬플 때 갖다 쓰고, 기쁠 때 갖다 쓰고, 아님 멍 때릴 때 갖다 쓰고요.
이즘 독자분들께 질문을 받았는데, 방준석씨 건강이 괜찮으신지 여쭤보는 분이 계셨다.
방: 정말 고마운 분이시네요. 건강 얘기가 나온 게 제가 암 진단을 받았었거든요. 이제 3월이 되면 만 4년이 되는데 이제 정말 괜찮습니다. 암이란 제게 큰 신호였어요. '변신'이라는 노래가 있잖아요. 암은 제 인생에서 '변할래 죽을래' '어떻게 변할래'하는 '변신'이라는 화두를 던졌어요. 지금은 편안해요. 방향을 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지금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건강한 것 같아요. 그분에게 잘 있다고 전해주세요. (웃음)
계속 이렇게 '방백'으로 활동을 하는 건가? 방준석씨는 영화 음악 작업을 하고 있고, 백현진씨는 개인전 <들과 새와 개와 재능> 때문에 바쁘다고 들었다.
방: 둘 다 바쁘긴 하지만 방백 활동은 저희가 움직일 수 있는 만큼은 움직일 것 같아요.
백: 바람이 있다면, 방백으로 가능한 공연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이건 정말 '너의 손'에 달린 거예요. '너의 손'에 안 달린 것은 형이랑 저랑 클럽 가서 둘이 하는 거죠. 이건 '나의 손'에 달린 건데, 신석철 씨부터 윤석철, 서영도, 임가진, 김오키 등이 붙으려면 이건 진짜 '너의 손'에 달리게 되죠.
방: 공연이든 음반이든 어떤 경험을 같이한다는 것이 참 중요하잖아요. 방백 1집을 만들면서 재밌었던 경험을 했어요. 그게 어떤 식의 기운, 에너지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 갈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인터뷰 : 김반야, 정민재, 홍은솔
정리: 김반야, 정민재
사진 : 이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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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백 [너의 손] 이것은 어른의 노래다. 안다. ‘어른’이라는 단어가 지금 이 시대에 어떤 구질구질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어른의 노래다. 처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애써 똑바로 노려보려 하는,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 거짓을 도포하지 않는 노래. 혼자 있어도 함께 있어도, 거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