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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한국의 진보는 왜 공부하지 않을까”

작가 홍세화가 말하는 공부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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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나라는 생각할 줄 모르는, 회의할 줄 모르는 의식의 고집불통이 심각한 수준입니다. 생각할 줄 회의할 줄도 모르니 기존의 생각들을 완고하게 고집합니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회의할 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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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4일, 창비 서교빌딩 지하 2층에서 창작과 비평 50주년을 기념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생각의 좌표』 등의 저자 홍세화의 강연회가 열렸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이자 운동가로 활동해오고 있는 홍세화 작가는 이번 강연을 통해 “한국의 진보는 왜 공부하지 않을까”라는 주제로 독자들에게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우리나라 진보의 문제

 

홍세화 작가는 우리나라 진보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리나라 진보는 어떻게 형성되는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한국의 특수한 문제 중 하나는 계급적 처지에 의해 진보적 지향을 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기층부대가 없다는 것입니다. 진보적 지향을 한다고 할 때 그런 사람들은 학교 교육을 통하여나 자신의 계급적 처지에 의해 형성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개 ‘선배’를 잘못 만나서 그 길에 접어듭니다. (웃음)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아직 ‘선배’를 만나지 못한 것이 보이니까, 스스로 상대적 우월감이 대단히 높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몇 권의 책을 읽은 거로 진리를 알은 양 공부를 멈춥니다. 그 ‘선배’에 따라서만 정파가 정해지는 것도 그만큼 공부를 안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한국의 진보 세력은 심하게 말해 야멸차고 환원주의에 빠져 있으며, 내부의 경쟁자에 대해 외부의 경쟁자보다 더한 적대성을 보입니다. 이 문제는 모두 공부의 부족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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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의미와 필요성

 

우리나라 진보의 문제는 공부하지 않는 것이라며 일침을 가하는 홍세화 작가는 이어 ‘공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해 나갔다. 공부란 궁극적으로 나를 어떠한 인간으로 만들 것인지의 과제라는 것이다.

 

 “저는 '자기 형성의 자유', 즉 ‘나’라는 인간을 어떤 인간으로 만들 것인가 하는 자유를 ‘짓다’라는 우리말로 표현해보고자 합니다. 우리 공부의 과제는 궁극적으로 나를 짓는 문제라는 것이죠. 이 공부를 멈추면 짓는 것 자체가 멈춰버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과 비교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합니다. 남과의 비교에 익숙해지다 보면 나를 짓는 과제는 멀어집니다. 진정으로 필요한 비교는 남과 가진 것으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시차를 둔 나 자신의 성숙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것입니다. 즉 어제보다 나는 성숙했는가를 성찰해야 합니다.”

 

이러한 공부는 곧 생각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공부란 끊임 없이 질문을 낳는 과정으로, 생각과 분리될 수 없다. 그렇다면 생각한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알기 위해서는 우선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제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라는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지만 생각의 세계를 갖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이 생각의 세계란 지금 내 삶을 지배하는 것이자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이 담긴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지', '나를 어떤 인간으로 지을 것인지'를 규정하는 것이 이 생각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이 생각의 세계를 갖고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내 생각의 세계를 어떻게 내가 지금 갖고 있을까?’라는 질문은 생각하는 사람의 일차적 조건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 대다수의 구성원들은 이 질문과 만나지 않은 채 살아갑니다. 그런데 생각하는 사람의 출발점이 바로 이 질문입니다.”

 

“이번에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를 인용해보겠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이 질문입니다. 그렇다면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이 지적했듯 ‘회의한다’와 같은 말입니다. 앞서 '내 생각을 어떻게 갖게 되었나?', 이런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말은 곧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시 말해 회의할 줄 모른다는 뜻입니다. 스피노자는 ‘의식의 성질은 고집’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가진 생각을 고집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생각할 줄 모르는, 회의할 줄 모르는 이 의식의 고집불통이 심각한 수준입니다. 회의를 거쳤다면, 내가 틀릴 수도 있고, 불완전하므로 채워야 하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할 줄도 모르고, 회의할 줄도 모르니, 의식의 성질은 고집이므로 기존의 생각들을 완고하게 고집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 고집하고 있는 생각을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회의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죽는 순간까지 자신을 지어나갈 수 있는 긴장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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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교육의 문제

 

이처럼 많은 사람이 자기 생각을 완고하게 고집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사회 운동이 성공하기 힘들다. 사회 운동은 공부와 설득이라는 과정을 포함하는데, 공부하지 않고 생각도 회의도 하지 않으므로 설득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생각하는 사람이 드문 이유는 실제로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학창 시절을 돌아봅시다. 무언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토론하신 적 있습니까?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법에 대한 훈련도 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생각하도록 이끌어지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의 경우 끊임없이 자식에게 ‘네 생각은 무엇이냐’고 물으며 어린아이라도 생각하도록 이끌지만, 우리는 아이가 던지는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가 ‘엄마’ 다음으로 많이 하는 말은 ‘왜’라는 질문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생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부터 일찍이 ‘왜’라는 질문을 차단하고, 야단치기까지 합니다.”

 

“생각에는 글쓰기와 토론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인문사회과학 공부는 사유와 논리를 위한 공부입니다. 생각하고 논리를 배우기 위해서 글쓰기와 토론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한국이 빠져있는 함정은 이를 암기로 대신 채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암기는 입력시키는 것이지 사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한국의 진보 세력, 기층 세력이 나올 수 없는 배경이 있습니다. 글쓰기와 토론은 ‘나’ 각자가 하는 것이지만, 암기란 모두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계급성이 완벽하게 배제되는 배경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여러 정체성을 가집니다. 그러한 정체성과 계급성에 자리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해 제기되는 질문에 자신의 사유와 그 사유에 따른 논리를 구축하도록 해야 하는데, 우리의 교육은 이것을 거의 하지 않고 암기로만 채웠습니다. ‘나’라는 주체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인문 사회과학적 진리란 과연 가능할까요? 우리의 이러한 교육은 일본의 전체주의 교육으로부터 왔습니다. 모두에게 똑같은 내용을 입력시키며 다스리기 쉬운 국민으로 기르는 것입니다.”

 

홍세화 작가는 바로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학교 교육을 통하여 자신의 계급성, 정체성에 바탕을 둔 계급 의식의 형성 가능성이 애초에 막혀있는 이유라고 지적한다. 그는 드골이 “똑똑한 국민은 다스리기 어렵다”고 말한 것을 인용하며, 여전히 우리나라에선 이것이 관철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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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체가 되는 공부, 끊임없는 공부

 

“이제는 여러분의 생각 세계의 지형에 대해 점검을 해봅시다. 내가 주어로서 주체적으로 의식세계를 형성한 부분과 내가 그저 대상이나 객체로서 흡수하거나 주입된 것들로 구분해봅니다. 우선 ‘나’를 대상으로 삼고 수많은 정보와 이념들을 주입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매스미디어입니다. 이러한 대중매체는 90% 이상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지배받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이념이 대중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우리에게 흡수됩니다. 그리고 학교 교육, 특히 우리나라의 전체주의식 교육의 주체는 국가 권력이며 ‘나’는 대상입니다. 이렇게 자본의 논리와 국가 권력에 의해 엄청난 양들이 우리 의식 세계에 주입됩니다.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 의식의 주체는 바로 이 자본과 국가 권력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고집하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결국 자본과 국가 권력이 이야기하는 것을 레코드 틀 듯 그대로 말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이에 맞서서 ‘내’가 주어로서 의식 세계를 형성하는 길이 중요할 것이다. 내가 대상으로 머물지 않으며 주체가 되는 공부의 방법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홍세화 작가는 그 방법에 대해 독서와 토론, 견문과 성찰을 꼽았다.

 

“나의 주체성과 정체성이 개입하며 나의 의식 세계를 구축하는 방법 중 제일 중요한 것은 당연히 독서입니다. 나의 의식 세계를 형성하기 위해 나는 주도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 중 자기 생각을 소담히 담아온 책을 통해 그 생각을 참조하는 것이 바로 독서입니다. 그다음 나와 동시대를 사는 사람의 생각을 경청하는 것, 즉 토론이 있습니다. 이러한 독서와 토론이 학교 교육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꽉 막힌 제도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회문화적 소양이 계속 낮은 소양으로 머물도록 교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제도적인 이유로 한국에선 교육을 통해 진보 세력이 길러지기 힘들고, 앞서 언급했듯이 ‘선배’를 통해 느닷없이 그 길에 접어들게 된다. 여기서 ‘선배’란 넓은 의미로 자기 힘으로 주체적으로 의식 세계를 형성하도록 이끄는 모든 것들을 말한다. 여기서 우리나라 진보가 가지는 문제점들이 비롯하고, 홍세화 작가는 우리나라 진보가 결국 다시 겸손하게 공부하는 자세를 되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강조한다.

 

 “앞서 말한 지적 우월감뿐만 아니라, 진보 세력은 스스로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어떻게든 포섭되지 않고자 하는 생각으로부터 오는 윤리적 도덕적 우월감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의 진보, 사회 운동의 가장 큰 문제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환원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예를 들면 분단문제 하나만 해결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생태 운동, 페미니즘 등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거칠게 얘기한 측면이 있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섬세하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공부하기 위해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우리는 생각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회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숙이란 나의 변화에서 찾아오는 것입니다. 자기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자기를 부정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회의하고, 스스로 성찰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공부’와 ‘생각’, ‘회의’에 대한 요청은 단지 진보 세력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홍세화 작가는 이처럼 우리가 모두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길러야 한다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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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좌표 홍세화 저 | 한겨레출판
먹고 살기 힘들다보니 '가치'의 문제보다 '생존'의 문제에 사로잡혀 있을 수 밖에 없기에, 사회 구성원들이 점점 생각의 길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우리 사회를 좀 더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들어 가는 첫걸음은 바로 사회구성원들의 '성찰'과 '비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사회구성원들이 그 첫걸음을 내딛도록 도전하고 용기를 북돋우는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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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보경(예스24 대학생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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