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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림 “사회를 변화시키는 예술”

신현림의 『미술관에서 지은 시』 출간 기념 강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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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비롯해 모든 분야,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파격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1월 28일, 어느 장소보다 행사에 어울리는 판화공방, 성수 페이퍼크라운에서 신현림 작가의 ‘시와 그림이 흐르는 북콘서트’가 진행되었다. 신현림 작가는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기말 블루스』,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등 수많은 스테디셀러의 저자이며 본 강연은 새롭게 출간된 『신현림의 미술관에서 지은 시』를 기념해 열린 행사였다. 작가의 명성을 대변하듯, 아직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참가자가 자리를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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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번 도서는 동서양의 시와 그림을 작가 본인의 경험과 상상력으로 콜라보한 작품이다. 강연은 사회자와 신현림 작가와의 문답을 통해 도서에 수록된 시와 그림에 대해 작가의 설명과 감상을 듣는 방식이었다. 사회자 역할은 이야기 경영 연구소 김하영 편집장이 맡았다. 기사에선 가장 먼저 언급한 세 작품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뒤 독자의 질문과 작가의 답변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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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가와 히로시게 「오하시 다리 위에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

 

내 가슴에 눈물이 흐르네

                                                          폴 베를렌


도시에 비 내리듯
내 가슴에 눈물 흐르네
가슴을 파고드는
이 울적함은 무엇인가

 

오, 부드러운 빗소리여
땅 위에도 지붕 위에도
오, 쓸쓸한 가슴에 내리는
비의 노랫소리여!

 

상심한 이 가슴에
이유 없이 눈물 흐르네
뭐! 배신이 아니라고?
그래, 이 슬픔 이유가 없네

 

사랑도 미움도 없는데
내 가슴은 왜 이리 아픈지
까닭조차 모르는 게
가장 큰 고통일 것을!

 

김하영 : 첫 번째 그림인데요, 우타가와 히로시게 「오하시 다리 위에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란 작품입니다. 먼저 이 작품에 관해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신현림 : 고흐가 모사했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입니다. 고흐는 히로시게의 그림들에 열광했던 인물 중 한 명입니다. 일본이 임진왜란 대패 이후 대외적으로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는데요, 반면 문화는 개방적으로 수입, 수출하였습니다. 서양은 일본의 도자기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포장지에 그려진 그림, 판화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마침 당시 서양에선 사진의 발명으로 인해 그림 인식에 큰 변화가 오게 됐는데요. 미술의 역사는 재현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그 재현을 사진이 대체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당대 예술가들은 당혹스러워했는데요. 인상파는 우연히 접한 일본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그 순간의’ 빛의 흐름, 풍경을 마주하며 그것을 그려내는 데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모네, 고흐, 마티스 모두가 이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히로시게의 작품을 보면 저는 설국이 생각납니다. 그의 작품엔 인생 내면의 섬세하면서도 시적인 정겨움이 묻어져 나옵니다. 특히 히로시게의 정서는 고흐에게 많이 와 닿았던 거로 보입니다. 고흐가 친구에게 쓴 편지를 보면 일본 미술에 대한 경탄과 동경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 부분들을 그대로 모사, 필사함으로써 기법을 배우고 그 작가의 세계 속에 들어갈 수 있는 계기로 삼은 것으로 추측됩니다.

 

김하영 : 서양화에서는 비를 잘 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히로시게 작품 중에는 비가 내리는 그림이 많습니다. 신현림 작가님을 이 시와 폴 베를렌 「내 가슴에 눈물 흐르네」를 매칭해 놓으셨는데요, 그 구체적인 이유를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신현림 : 프랑스는 일본과 예술적으로 유대관계를 갖고 있는데요, 심지어 일본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사진을 찍을 권리를 가지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프랑스 시인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히로시게의 판화는 조각도로 팠기 때문에 강렬한 이미지가 특징입니다. 베를렌은 정서적으로 와 닿는 시들을 많이 썼는데, 히로시게의 섬세하고도 인간적인 감정까지 그려내려던 기법과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베를렌의 시가 더 감성적이고 감정적이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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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츠시카 호쿠사이 「거대한 파도」

 

해파리의 노래
                                                        가네코 미츠하루


흔들리고 흔들리고
이리저리 쓸리고 쓸려서
어느 틈엔가, 나는
이렇게나 투명해져 버렸지

 

하지만 흔들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야

 

밖에서 봐도 환하게 비치지?

 

어때,
내 소화기관 속에는
털이 빠진 칫솔 한 개
그리고 누른 물이 조금

 

마음 같은 지저분한 것은 있지도 않아. 이제 와서는
창자 채로 파도가 쓸어가 버렸거든

 

나? 난 말이지
빈껍데기란 말이야
텅 빈 것이 파도에 흔들리다가
다시 파도에 휩쓸려 되돌아온다

 

시들었다고 여겨질 즈음엔
보랏빛으로 펼쳐지고,
밤은 밤대로
램프를 켠다

 

아니, 흔들리고 있는 것은, 사실은
몸을 잃어버린 마음뿐인 거야

 

마음을 감싸고 있는
얇은 피막인 거야

 

아니지 아냐, 이렇게 텅텅 속이 빌 때 까지
이리저리 흔들리고
쓸리고 쓸린 고통의
피로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김하영 : 일본에서는 목판화 작업이 굉장히 많은데요. 다음 그림은 가츠시카 호쿠사이 「거대한 파도」입니다. 이 작품도 설명해주시겠어요?

 

신현림 : 「후지산」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이미지인데요. 작품을 자세히 보면 배 위에 사람의 얼굴이 있습니다. 이는 만화와 비슷한 기법으로, 호쿠사이가 일본 만화의 원류이기도 합니다. 또한 유럽에 있는 인상파 화가들이 사실 자포니즘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을 주목해보면 당대, 그리고 지금의 일본이 아시아권에선 문화적으론 제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분명 이러한 점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일본의 문화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탐구를 통해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일본 작품에 열광한 이유 중 하나는 그들에겐 기존 구도의 파괴, 즉 파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동양화에선 사실 파격을 보긴 힘듭니다. 예술에서 파격을 일으킨 인물들을 보면 당대엔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역사적으로 판도를 바꾸는 요소는 바로 파격입니다. 「거대한 파도」를 보면 기존에 있던 평면을 거친 과장법을 통해 파격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구도를 잡을 수 있겠구나’라는 발상의 전환을 하도록 유도했습니다.

 

김하영 : 이 시를 선정한 이유는 뭔가요?

 

신현림 : 같은 일본 사람들이 만든 작품이기도 하고 주제 역시 흡사합니다. 물론 미츠하루의 시는 좀 더 섬세하게 느껴집니다. 호쿠사이의 작품은 거시적으로 스케일이 더 큰 거장의 느낌을 주고요. 선생님께서는 이 작품을 어떻게 보셨나요?

 

김하영 : 저도 일본 그림에 대해 문외한이었는데요. 여행을 하다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보는 순간, 어디서 많이 본 그림인데 라는 생각이 들며 일본 고유의 미술 사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예전에 고흐와 같은 인상파 화가들이 일본의 작품에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을 본 순간 인상파들이 어떤 부분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찾지 못했던 고리가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신현림 : 사실 에곤 쉴레와 구스타프 클림트도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 작품 배경의 구성적인 요소, 대담한 구도, 화려한 색채감은 일본 작품에서 영감을 받을 걸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직접 판화를 배워보며 빈센트 반 고흐의 거친 터치는 조각도의 칼자국에 영향을 받은 거라 생각했습니다. 예술은 분명 시대, 사회적 흐름에서부터 파생된 산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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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테콜비츠 「죽은 아들을 껴안고 있는 어머니」 & G.로르카 「통곡」
 
통곡
                                            G.로르카


가슴에 비수를 맞고
거리에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가로등은
얼마나 무섭게 떨고 있었던가요!
어머니
조그만 가로등이 얼마나 떨고 있었는지
아세요!

 

새벽이었죠
굳어진 새벽 공기에
부릅떠 죽은 그의 눈을 감히 아무도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심장에 비수를 맞고
거리에 죽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를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신현림 : 로르카의 시의 화룡점정은 ‘아무도 그를 아는 사림이 없었습니다’ 이 구절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대목이 비극의 정수를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한 마디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다고 느꼈습니다. 사실 콜비치의 작품은 자기 자식을 잃고 난 후 가난과 전쟁의 비극을 담는 표현주의적인 속성이 강화되었는데요. 보기만 해도 가슴이 떨립니다. 그래서 스페인 내전에서 비참하게 죽은 로르카의 시를 매칭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보셨나요?

 

김하영 : 일단 이미지 자체가 너무 강렬했고요. 케테 콜비츠는 독일 사람인데,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전쟁과 사회적 변혁의 한 가운데 있었던 예술가입니다. 사회주의 운동, 민중 미술을 하던 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처음엔 유화를 그리다가 틀 내에 갇힌 자기만족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판화로 작업방식을 바꿨다고 합니다. 민중봉기, 혁명과 관련된 작품들이 꽤 많습니다.

 

신현림 : 자식이 죽고 난 후 가난한자, 죽어간 자의 입장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된 예술가인 것 같습니다.
 


독자의 질문과 작가의 답변


Q. 선생님께선 휴식이 필요할 때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나요?


신현림 : 휴식이 주어졌을 땐 보통 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행에서 그 곳의 풍경을 보고, 또 그 풍경을 마주하면서 시를 구상하고는 게 저에게 휴식입니다. 요즘에는 국내 전시회에 관심이 많아 자주 가기도 해요. 또 집에 나와서 걸어 다니며 사색을 합니다.

 

Q. 동서양의 각각 좋아하는 작품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어요?

 

신현림 : 동양 작품은 우선 책의 250페이지에 있는 전기의 「매화초옥도」를 좋아하고요. 정선의 작품도 좋아합니다. 서양화는 좋아하는 작품이 워낙 많아서 몇 개 작품을 고르진 못하겠고요. 고흐, 뭉크, 로렌스 앨머 테디마, 티소 등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Q. 이번 작품에서 시와 그림을 콜라보하신 이유가 있나요?

 

신현림 : 제가 이번 강연에서 꼭 말하고 싶었던 건데요, 저는 우리 사회 분위기가 지나치게 경직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예술을 비롯해 모든 분야,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파격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의 경우는 유독 그런 부분이 딱딱하게 굳어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 작품이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새로운 시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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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림의 미술관에서 읽은 시 신현림 저 | 서해문집
이 책은 젊은 날, 작가의 삶 속으로 뛰어 들어와 생생하게 공명한 그림과 시를 소개하며 신현림만의 깊고 따뜻한 해설을 더했다. 오래전 교과서 속에서 만난 동서양 고전 시부터 한국 시문학사의 큰 줄기를 만든 감각적인 현대시, 문단의 주목을 끈 걸출한 신예 시인들의 창작시까지 팍팍한 삶의 무게를 견디게 해줄 시의 참맛이 그림을 매개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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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정훈(예스24 대학생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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