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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쌀국수

하루 한 상 – 열두 번째 상 : 베트남 음식 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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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남쪽나라로 오게 되었다. 우연히도 우리가 출국하자마자 기록적 한파가 한반도를 강타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를 맞이한 건 남쪽의 뜨거운 태양과 90%를 넘나드는 습도. 이럴 때 위로가 되는 건 역시나 맛있는 음식뿐이다. 처음 당도한 곳은 베트남에서도 미식의 고장이라고 할 만한 ‘호이안’이었으니.. 열두 번째 상은 베트남 음식 기행기.

여기는 바게트의 나라

 

새벽 1시. 다낭 국제공항 입구에서 우리를 데리러 온 호스텔 주인의 푯말을 찾으러 두리번 거렸다. 이메일을 다시 확인해 본 남편님 왈 “오늘 운전자가 아파서 픽업 못 온다고 5시간 전에 메일 보냈네요.” 5시간 전이라면 우리가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던 시각. 아이코. 호이안까지는 차로 40분 정도 가야 한다고 하던데 눈앞이 하얘진다. 그렇게 우리는 바가지가 심하다는 베트남 택시를 울며 겨자 먹기로 주워타고 아무도 없는 유령도시 같은 다낭 거리를 출발했다. 나와 남편은 잔뜩 긴장해서 가방을 부여잡았다. 가까스로 1시간 만에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새벽 2시.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 4시. 아 피곤하다. 겨우 씻고 잠에 들었다. 하지만 아침식사를 거를 순 없다. 겨우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BREAD & Omelet’을 부탁한다. 작은 바게트와 계란부침이다. 그 후 일주일 동안 느낀 건데 이 나라는 빵이 곧 바게트이며 적어도 하루에 한 끼는 바게트를 먹게 된다. 약 1백 년 동안 프랑스 식민지인 영향이 아직도 계속되는 베트남은 바게트의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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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으로 먹게 된 바게트. 잘 구운 바게트는 참 맛있었다. 

 

 

미식의 고장, 호이안 그리고 클래스


그렇다고 바게트만 먹을 수는 없는 일. 우연히도 호이안은 베트남 내에서도 ‘미식의 고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맛있는 음식들과 그 음식들을 파는 유명한 식당들이 많은 곳이다. 호스텔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면 ‘올드 타운’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는데 일명 ‘차 없는 거리’ 여서 여유롭게 걸어 다니면서 구경하거나 과일 주스를 마시기 좋다. (베트남의 일반 도로는 차와 오토바이의 무법천지여서 신호등 따위는 존재의 이유를 모를 정도다.) 슬렁슬렁 걸어 다니다 발견한 ‘Madam VY’s Cooking Class’ 당장 핸드아웃을 집어 든 남편은 집에 와서 찬찬히 살펴보다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가격은 23달러. 나쁘지 않다고 하니 당장 이메일을 보내 예약을 한다. 4년 전 베트남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봤던 책인 『열대식당』을 이번 여행에도 들고 왔다. 그때는 보이지 않던 쿠킹클래스의 주인공인 마담 바이의 이야기가 눈에 띈다. 그녀는 ‘모닝글로리’, ‘카고’ 등 호이안 중심가의 대표적 식당들을 소유하고 있는 요식업계의 대모님이라고 한다. 길거리 음식을 고급화하여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고 보면 카고, 모닝글로리, 쿠킹클래스까지 우리 둘이 그녀에게 바친 돈만 해도 약 10만 원 정도인 것 같다. 마담 바이에게 경의를.


쿠킹클래스는 2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사각형의 구조로 된 내부에 다양한 종류의 베트남 길거리 음식 코너가 나눠져 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식재료와 음식을 조금씩 맛본다. 그리고 스프링롤, 반쎄오, 잭푸룻샐러드, 바나나 잎 만두 등 4가지 음식을 만들어 보고 시식한다. 다양한 허브 종류부터 설명하는 가이드. 레몬그라스, 페퍼민트 등을 음식에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심지어 맛도 있는 것이 신기하다. 물고기, 육고기, 야채, 곡물 등 열대 기후가 선물하는 풍부한 식재료와 주변 여러 국가의 다양한 조리방법을 받아들이는 이 민족의 흡수성을 음식에서 볼 수 있었다. 코너를 반쯤 돌았을까. 아직 음식을 만들지도 않았는데 배가 부르다. 결국 만든 음식들 중 반쎄오(베트남 부침개)와 만두는 포장을 해서 그날 저녁에 다음 행선지로 가는 슬리핑 버스에서 저녁 대신 먹었다. 식어도 맛있다니. 나랑 남편은 각자 만든 음식을 모두 두입에 흡입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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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의 낮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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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킹클래스 전경과 수료 후 나눠주었던 향신료와 레시피. 만두 만드는 모습 그리고 반쎄오

 

 

행운의 쌀국수를 찾아서

 

그렇게 맛있는 것들을 많이 먹었지만 베트남에 도착한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쌀국수’를 맛보지 못했었다. 물론 호이안의 모닝글로리에서도, 무이네의 자주 가던 식당에서도 쌀국수를 시켰지만 내가 원하는 그런 맛이 아니었다. 미지근하거나 기름지거나 짜거나.. 그러다 호치민에서의 마지막 날 점심. 심한 허기짐에 현기증까지 느껴져서 급히 뛰어들어간 길거리의 쌀국수 집에서 ‘PHO GA’, 닭고기 쌀국수를 주문했다. 응급상황! 국물, 국물을 외치며 한 수저 뜬 순간. ‘그래, 이 맛이야’를 외치게 되었다. 뜨겁고 담백한 쌀국수. 그동안 먹었던 깔끔한 레스토랑 분위기에서의 쌀국수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칠리소스도 직접 만들었는지 달지 않고 맛있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국물과 국수를 들이키는 소리를 대화 삼아 한 그릇을 금세 비웠다. 그리고 그동안 무언가 풀리지 않던 아쉬움 같은 것이 스르륵 풀리며 마음의 평안까지 찾게 되었다. 그 아쉬움이란 모국 음식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익숙함의 부재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국에서 ‘그 익숙함’을 채우기는 어쩌면 행운이며 그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아마도 앞으로 가는 도시마다 ‘그 익숙함’을 채우기 위해 이 음식 저 음식 시도하게 될 것이다. 우리를 배웅해주던 호스텔의 아줌마의 인사말을 다시 한번 되뇌어 본다. “GOOD L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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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쌀국수. 급히 먹다 정신 차리고 한 컷.

 

 

(부록) 남편의 상: 카페 사이공

 

안녕하세요. 이번이 세 번째 베트남 방문이라는 여편님만 믿고 부지런히 퍼(PHO) 먹고 있는 남편입니다. 각종 베트남 음식을 시켜주는 대로 먹다 보니 이 동네는 동남아의 풍미와 중국 대륙의 다양성이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복잡한 국제관계 속에서도 특유의 강인함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런 강인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 매일 아침 우리를 깨우는 베트남식 커피가 아닐까 합니다. 여독이 풀리지 않은 첫날 아침 식사로 빵과 블랙커피(black coffee)를 주문했습니다. 가벼운 스테인리스 드리퍼 아래로 똑똑 떨어지는 커피를 기다리다 못해 한 모금 마셔보았습니다. 아 쓰다.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 쓴 걸 한 컵이나 주다니! 하지만 곧 설탕을 타서 마셔보니 단맛과 쓴맛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그 뒤로 한 잔 두 잔, 아이스로, 라테(주로 연유를 타서 줍니다)로 먹다 보니 이 맛에 중독이 되어버려 아침 점심으로 커피를 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커피에서 이런 강인한 인상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는 예전에 신문에서 연재된 베트남 전쟁기를 읽으면서부터입니다. 이 연재는 『베트남 전쟁: 잊혀진 전쟁, 반쪽의 기억』이라는 책으로도 출간이 되었는데요. 덕분에 베트남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이를 이겨낸 베트남 사람들의 강인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또 우리나라가 파병하면서 베트남에 남긴 상처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베트남의 풍성한 산해진미 속에서도 진한 커피의 쓴맛을 찾게 되는 것도 이런 연유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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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커피로 여편님은 화이트 아이스(white ice), 저는 화이트 핫(white hot)를 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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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식당 박정석 저 | 시공사(RHK)
동남아시아 여행에서 맛을 빼놓을 수 없고, 그곳의 밥상을 들여다보는 것은 결국 열대의 본질에 닿는 일이다. 『열대식당』에는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버마 네 나라의 식재료(쌀, 고추, 면, 허브), 식당(방콕의 후미진 국숫집, 치앙마이 야시장 밥집, 인도네시아 밀림 속 프렌치식당), 특별한 미식 경험(현지인의 초대, 열대에서 직접 해먹은 닭백숙, 손으로 밥을 먹여준 남자) 등이 다채롭게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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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윤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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