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정, 권해효, 김광림 “<날보러와요>로 행복합니다”
20년이 지났지만 바뀌지 않은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연극 <날 보러와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10여 차례에 이르는 강간사건을 사실적인 자료들을 동원하여 신랄하게 파헤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번 20주년 공연은 특별히 초연에 참여했던 배우들과 최근 10여 년간 <날 보러와요>를 이끌어 간 배우들이 동시 출연한다.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소재로 1996년 2월 극단 연우무대에 의해 초연된 연극 <날 보러와요>가 명동예술극장에서 2월 21일까지 특별공연을 올린다. 2016년 만 20년을 맞이한 기념이다. 작/연출가인 김광림이 다시 돌아온 것을 시작으로 권해효, 김뢰하, 유연수, 이대연, 류태호, 황석정, 손종학 등이 2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의기투합한다.
연극 <날 보러와요>는 1월 28일 오후 기자 간담회 및 연극 시연을 하며 작품 완성도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특히 이번 공연은 이색적으로 OB팀과 YB팀으로 캐스트가 나뉜다. 초연부터 10년 간 연출을 맡은 작가이기도 한 김광림과 20년 전 초연에 참여했던 권해효(김 형사), 김뢰하(조 형사), 유연수(박 형사), 류태호(용의자) 등의 배우들이 OB팀을 꾸렸다. 또한 2006년부터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변정주 연출가는 손종학(김 반장), 김준원(김 형사), 이현철(용의자), 우미화(박 기자) 등 최근 10여 년간 <날 보러와요>를 이끌어 간 배우들과 함께 YB팀을 만들어 간다. YB팀 역시 자신들만의 색을 어떻게 넣을 수 있을지 고민하며 극을 만들었다고 한다.
YB와 OB팀이 한 자리에 모인다.
약 3시간 동안 진행된 시연에서는 연극 1부를 OB팀이, 2부를 YB팀이 진행했다. 김 형사(권해효, 김준원 역)가 처음 등장한 장면은 사건이 어떻게 될지 함축적으로 알려준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이성복의 『남해 금산』을 펼쳐 읽는 씬은 앞으로 어떤 사건이 전개될지 암시하는 복선으로 쓰인다. 비 오는 날마다 화성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동일범의 소행으로 여겨지지만 빗물에 증거가 씻겨 내려가 수사는 난항을 겪고 있다. 이를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형사들의 충돌이 극을 이끌고, 두 세력이 사건을 바라보는 방식은 용의자와 참조인을 취조하면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김광림 연출가는 약 1년간의 집필 기간을 거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 과정에 대해 “쓰는 과정보다는 작품을 만들어가기 위한 조사 과정이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자료 수집 과정 초반에는 주로 신문 보도 내용을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사건에 대한 진위와 관계없이 매스컴에서 선정적인 헤드라인들로 얼마나 대중을 현혹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했던 형사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며 자료를 모으기도 했다. <날 보러와요> 속 김 반장과 박 형사는 당시 인터뷰를 한 형사들을 모델로 하고 있다.
권해효 배우는 김광림 연출이 다시 김 형사 역할을 제안하자 “선생님, 전 지금 쉰 둘이에요. 서른셋 때 했던 역할을 지금 다시 하라고요?” 라며 난색을 보였지만 결국에는 받아들였다. <날 보러와요>의 대본을 다시 읽었을 때 이 작품을 다시 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생겼다고 한다. 반면 YB팀의 김준환 배우는 오랫동안 극을 이끈 선배들과 공연을 같이 하는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그라운드에서 메시나 호날두를 보는 느낌”이라며 재치있게 대답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고 묘하고 이상한 기분이었다”라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같은 대본을 가지고 작업했지만, 연출가도 둘, 캐스팅도 서로 다르다. 20주년 기념 특별 공연만의 특별한 점이나 바뀐 부분을 질문하자 김광림 연출가는 “배우들 연기력이 훨씬 향상되었다. 흐름도 잘 맞고, 초연보다는 훨씬 더 원숙한 공연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공연은 더 완벽해졌고, 더 충격적이고 더 코믹하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 간의 공연 중 가장 완벽한 작품을 볼 수 있다”며 이번 공연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동안 작품을 하면서 아쉬웠던 부분들은 연습하는 과정에서 보완했기 때문에 초연보다는 더 원숙한 공연이라는 자평을 내렸다. 변정주 연출가는 OB팀과의 차이점을 묻는 말에 “두 팀의 리듬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조명 디자인과 음향 디자인이 다 달라졌다. 다른 색깔을 가진 공연이 탄생했” 다며 두 캐스팅 모두 볼 것을 추천했다.
김광림 연출가는 소회를 묻자 “공연팀끼리 MT에 온 기분”이라며 “’행복하다’는 네 글자로 충분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20년이 지났음에도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는 관객들의 성원과, 다시 모이기가 어려울 거라 생각했던 배우들이 각자 모든 일을 뒤로 하고 특별 공연을 위해 달려와 준 것이 고맙다고 밝혔다.
연극 <날 보러와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10여 차례에 이르는 강간사건을 사실적인 자료들을 동원하여 신랄하게 파헤친 작품이다.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연극을 보며 행복한 느낌을 받기는 힘들다. 그 당시 실제 발행됐던 신문 기사와 증거 사진이 무대 위에 펼쳐지면서 관객은 다시 한 번 이 사건에 대해 환기하게 되고, 여전히 범인이 잡히지 않았고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진 채 극장을 나서게 된다. 제목이 <날 보러와요>인 이유도 범인이 이 연극을 보러 왔으면 하는 바람에서 지었다고 한다. 실제로 2006년 <날 보러와요>의 10주년 기념공연을 올렸던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는 상징적인 의미로 “용의자석”을 만들어 공연 기간 내내 비워두기도 했다. 변정주 연출가는 “밝혀지지 않는 진실이 누군가에게는 심장이 뽑혀 나가는 고통”이라며 “아무리 ‘진실’이라는 것이 찾기 어렵고, 알기 어려운 것이라고는 하지만, 어떠한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 다고 말했다. 김광림 연출가도 “억울하게 죽은 희생자들, 억울한 죽음들이 어떻게 개선될까 하는 생각을 항상 했었다”며 “20년이 지났는데 이런 상황이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 국가 시스템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점이 가장 가슴 아프다”고도 밝혔다.
<날 보러와요>는 이제까지 대부분 소극장에서 좁은 무대의 공간적 한계를 이용해 관객들에게 ‘답답한 느낌’을 전달했다. 수사본부 내부에서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고 범인이 잡히지 않는 답답한 느낌을 무대를 이용해 표현한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공연장 규모가 커지면서 소극장 무대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느낌은 없어졌지만, 소극장에서 공간적인 한계 때문에 만들 수 없었던 쑥다방과 취조실을 무대에 구현하여 부족하다고 느꼈던 작품의 공간적, 시각적 한계를 줄일 수 있었다.
특히 무대를 둘러싸고 있는 갈대가 눈에 띈다. 들판에나 있을법한 갈대가 수사본부 전체를 감싸고 있는데 이는 환상적인 이미지를 주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세계에 수사팀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서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사건이 꿈인지, 생시인지, 용의자로 붙잡혀 온 사람이 정말 범인이 맞는지 모든 것에 의문을 가지게 하기도 한다. 또한 이번 작품에서는 비가 내리는 기술 효과도 눈에 띈다. 비 내리는 날 이어지는 사건과 피해자가 들고 있던 우산 등 <날 보러와요>를 생각하면 자연스레 비가 연상된다. 이번<날 보러와요>는 2006년 10주년 기념 공연 때 극장 용에서 시도한 적 있었던 비가 내리는 세트를 다시 구현했다. 그동안 발달한 무대 기술력을 동원해 예전보다 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연극<날 보러와요> 예매는 예스24, 국립극단홈페이지, 인터파크 등에서 2월 21일까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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