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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신주의자입니다

남에게 해 안 되는 선에서 제 몸 챙기기는 사회에도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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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나 안 아프고 건강하게 살자는데 신경 써야 할 일이 이렇게 많다. 게다가 사회는 몸 사리는 사람을 싫어한다. 나도 힘든데 왜 너만 편하냐며 득달같이 달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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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 imagetoday

 

저번 주 일이다. 자는데 명치가 조여오는 느낌에 기분 나쁜 꿈과 함께 깼다. 주워 먹은 게 잘못됐거니 생각하고 내쳐 자고 일어났어도 어제 먹은 모든 음식이 얹힌 것처럼 불편했다. 그 다음 날 밤이 되자 이제까지의 모든 악행을 중간정산이라도 하듯 위장이 난리를 쳤다. 자동으로 윗몸일으키기를 하며 삼십 초에 한 번씩 일어났다. 무슨 일이냐고 위한테 말을 걸어 봤다가, 물도 마셔 봤다가, 구역질을 시도해봤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간신히 통증이 멎었다. 다시 아프기 전에 얼른 약국으로 가 허풍을 보태서 실컷 얼마나 아픈지, 증상이 어떤지 열거하고 있자니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위염이네."

 

직장인의 필수 조건이자 대한민국 성인이라면 다들 달고 산다는 위염 선고를 받으니 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했다. 안녕, 방탕하게 밤을 새우던 나날들이여, 술을 들이붓던 위장이여, 2박 3일 엠티에 갔다 와도 금세 회복했던 피부여. 어머니의 말은 언제나 옳고, 그렇게 다니다 몸 상한다는 어머니의 말은 귀담아 들었어야 했다. 전조는 늘 있었다. 점점 탄력을 잃어가는 피부, 줄어드는 근육량, 늘 싸한 느낌을 주는 위장. 인정해야 할 때였다. 나는 내 몸을 보호하지 않았다. 반성과 함께 이번 주부터 더욱 보신주의자가 되기로 했다.


사전을 찾아보면 보신주의의 뜻은 다음과 같다.

 

보신-주의保身主義[보ː신주의/보ː신주이]
개인의 지위나 명예, 무사안일과 행복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적인 경향이나 태도. 어떤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려 하지 않고 현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 만족하면서 살려고 하는 태도이다.

 

이렇게 부정적으로 쓰는 단어인 줄은 몰랐다. 해서 새로 만들어 보았다. 거창하게 정의를 내리자면 내가 생각하는 신(新)보신주의는 다음과 같다.


보신-주의 保身主義
개인의 건강을 추구하는 경향이나 태도. 건강을 최우선과제로 두며 어떤 일을 하면서도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의하고, 나아가 남의 건강도 해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태도이다.

 

새로 만든 정의에 따르면 보신주의자가 되는 길은 생각보다 어렵다. 최우선과제로 먹고 자는 일에 성심성의껏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아껴봤자 나중에 약값으로 다 나간다.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다 영영 못 하는 수가 있다. 친구들의 질타를 받아도 밤 10시면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 한다. 오래 건강해서 노년까지 같이 노는 게 낫다. 마음의 건강을 챙기는 건 더욱 어렵다. 언제 어디서 뜬금포로 스트레스 요인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 지나가면 별거 아닌 말이 무시무시한 망치로 다가올 때도 있고, 일 년에 절반은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운 날씨 때문에 짜증이 나고, 다 피하고 나면 생리전증후군 우울증세로 한 달에 사흘은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퍼먹어야 한다.


사람도 검증된 사람만 만나야 한다. 세상은 넓고 이상한 사람은 많다. 누가 어느 순간 나에게 염산을 끼얹거나 게거품을 물고 칼을 꺼내 들지 모르는 무서운 세상이다. 열의에 불타는 사람도 조심해야 한다. 미지근한 사람보다 금방 식어 살갗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익숙해진 사람들도 어느 정도 고슴도치처럼 가시가 있어서 항상 너무 가까이 가서 찌를까, 혹은 찔릴까 조심해야 한다.


남의 건강까지 해치지 않으려면 과연 이 사상이 내가 이름 붙여 놓고도 가능하긴 한 건지 의심이 된다. 숨만 쉬어도 이산화탄소를 내뿜어 자연과 인간에게 해가 된다.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지옥철에 실리면 우리는 서로에게 하나의 인간이 아니라 그저 명치를 누르는 팔꿈치일 뿐이다.


나 하나 안 아프고 건강하게 살자는데 신경 써야 할 일이 이렇게 많다. 게다가 사회는 몸 사리는 사람을 싫어한다. 나도 힘든데 왜 너만 편하냐며 득달같이 달려든다. 서로 건강하지 못해서 남들보다는 건강해 보이려고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만드는 것 같다. 비(非)건강 상태는 전염력이 강하다. 이제는 우리가 건강하고 싶은 건지 건강해지고 싶지 않은 건지도 헷갈린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출간되고 제목에 대해 반감을 품은 사람이 많았다.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야’라는 명언도 나왔었는데(김난도 선생님을 아프게 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아픈 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아파서 좋은 건 운동한 뒤 기분 좋게 느껴질 정도의 근육통이나, 혀가 얼얼할 정도의 맛있게 매운 음식을 먹을 때나 괜찮지, 아픈 게 도가 넘치면 건강만 해친다. 하지만 세상은 고통의 총량이 정해져 있고 누군가는 반드시 아파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냥 다 같이 안 아프면 안 되는 걸까.


누군가 아프다는 얘기를 들으면 나도 덩달아 시들시들해지는 기분이다. 안팎에서 들리는 신음이 내 위장을 더 지치게 한다. 다들 아프지 말고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보신주의자로서 내 건강 챙기자고 하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위장약과 비타민을 챙겨 먹는다.

 

 

연관 책 목록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저 | 문학동네

『판사유감』을 통해 현직 판사로서 법과 사람 그리고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저자가 이번에는 대한민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한다.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 『개인주의자 선언』은 소년시절부터 현재까지 저자가 보고 겪었던 사회 문제에 대한 생각들이 담겨 있다. 책과 음악만 잔뜩 쌓아놓고 홀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며 개인의 행복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다는 저자는 자신을 개인주의자로 명명한다. 그리고 책은 이러한 개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인 한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주제로 삼는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김난도 저 | 쌤앤파커스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렇다. 찬란한 미래를 그리므로 가장 화려하지만, 불확실성 속에 있으므로 버겁고 어두운 시기가 바로 청춘이다. 그래서 저자는 너무 혼자 아파하지말고, 불안하니까, 막막하니까, 흔들리니까, 외로우니까, 아프니까, 그러니까 청춘이라고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그의 진정성있는 외침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힘들어하는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크나큰 위로와 격려가 될 것이다.

 

 

 

 

직장인의 건강혁명

김난희 저/한희준 감수 | 보아스

직장인을 위한 직장인 맞춤 건강지침서. 바쁜 회사일 때문에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직장인들에게 건강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알려주고 직장인이 스스로 건강을 지키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머리부터 발의 순서로 되어 있는 구성, 사무실에서 얻게 되는 질병과 그 질병에 대처해서 건강해지는 방법을 담은 내용은 건강이 화두인 직장인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사실 회사는 직장인에게 탁월한 업무 능력, 뛰어난 외국어 실력, 남다른 기획력 등 많은 것을 원한다. 그러다 보니 직장인의 건강관리는 각자의 몫으로 남게 마련이다. 그래서 다른 것에 비해 건강은 그 순서가 뒤로 물러나 있다. 하지만 건강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건강을 놓치면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정말 기발한 기획안이 있어도 펼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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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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