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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사유상에서 시대와 문화를 읽는 법

『박물관 보는 법』 황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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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얽힌 사연들은 관람객에게 공개되는 순간부터 뒤안길로 사라지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관람객은 전시물을 보러 오는 것이지 박물관 자체를 보러 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의 박물관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시대와 인물과 예술이 뒤얽힌 이야기가 무궁하다. 이 사연들을 꺼내어 보여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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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이자 약 300권의 책을 파는 작은 책방 ‘무사(無事)’를 운영하는 요조가 최근에 흥미롭게 읽은 책이 있었다. 『박물관 보는 법』(황윤 글, 손광산 그림/유유 펴냄). 이 책은 한국 최초의 박물관에 얽힌 가슴 아픈 역사부터 국내외 다양한 박물관 이야기를 전방위로 펼쳐놓고 있다. 이 책을 읽은 요조는 박물관 이야기가 흥미진진할 수 있다는 것에 신기해하며 박물관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대단하다는 것에 놀랐다고 말한다. 귀퉁이를 꽤 많이 접어놓았다는 이 책을 읽은 요조의 소감은 이러했다. “박물관은 참 좋았습니다.”

 

‘박물관, 얼마나 알고 있니?’ 혹은 ‘박물관, 어디만큼 가봤니?’ 라는 부제가 어울릴 법한 자리였다. 요조가 흥미롭게 읽은 책의 저자 황윤은 글만큼이나 재밌는 입담을 선보였다. 아마도 박물관이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지난 11월28일, 황윤이 독자들과 만난 곳은 국립중앙박물관이었다. 저자는 우선 선사?고대관으로 독자들을 안내했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박물관의 비결은 대개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전시된 작품에 흥미로운 시대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경우, 다른 하나는 공간이 간직하고 있는 사연이다.”(10쪽)

 

그는 고구려의 유물이 신라나 백제보다 더 빛나는 성취와 성과를 이뤘음에도 한국에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말했다. 고구려 유물은 현재 북한에 더 많다. 4~6세기, 고구려-백제-신라는 영토 차이만큼이나 문화적으로도 차이가 났다. 문화적으로도 고구려-백제-신라의 순으로 자리매김을 했다는 것. 고구려는 백제나 신라보다 한수 위의 기술력을 갖고 있었으며 무력 외에도 문화통치술이 발달해 있었다.

 

삼국의 유물을 설명하던 그는 독자들에게 ‘금(金)’을 찾자고 나섰다. 금이 한반도에서 언제쯤 나왔는지 추적해보자며 걸었다. 독자들은 그 말을 따라 여기저기 신석기부터 선사시대 흔적을 둘러보며 집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금이 나온다”는 저자의 말에 낚인(?) 것. 청동기로 오면서 농경문화의 장식화가 드러났다. 집단의 우두머리가 나오고 권력, 힘, 전쟁 등이 수면 위로 올랐다. 제사장이 잔무늬 거울, 청동검 등을 쓰면서 권위를 드러냈다. 그렇다고 왕이나 귀족 등과 같은 권력 구조가 명확하게 나온 것은 아니었다. 청동기 시대에도 여전히 금은 나오질 않았다.

 

“청동기에도 도시국가 형태의 유물은 볼 수 있지만 금은 없다. 그러다 철기시대로 가면서 금이 나온다. 금귀걸이가 김포에서 출토됐는데 3세기경 고대국가인 부여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부터 금을 활용해 다양한 기구를 만들었다. 3세기가 돼서야 금이 나왔고 선비족이 침범하면서 부여가 휘청했는데 이때 남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금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신라와 가야 영토에서는 금이 4세기에 발견됐다.”

 

고대사를 보면, 부여는 약한 나라로 인식된다. 그러나 저자는 3세기에만 해도 부여는 고구려보다 인구가 많았고 강한 나라였다고 설명했다. 부여에는 다양한 계층이 존재했으며 그 계층에 따라 금, 은, 동 등을 썼다. 황윤은 부여와 같은 시대에 있었던 고조선을 멸망하게 한 낙랑에 대해서도 설명을 이었다. 낙랑의 대표 무덤인 석암리 9호에 대해 언급한 것. 

 

이 무덤은 대동강 남안의 낙랑구역 일대의 고분군 중 석암리 유적 내에 소재한 무덤으로, 1916년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회에서 발굴했다. 한 변이 약 30여m에 달하는 방대형 봉분이나 약 3m가량만 남아 있었다. 특히 이 무덤에서 함께 나온 허리띠 고리는 금판 위에 수천 개의 금 알갱이가 붙어 있었다. 53.9g의 순금으로 만든 허리띠 고리. 

 

“금장식은 1세기 초반의 물건인데, 4~6세기 금과 비교하면 1세기 것이 더 정교하고 세밀하다. 지금 남한과 북한의 경제력이 다르듯, 이 시대에도 레벨 차이가 많이 났다. 금이 위정자의 장신구가 된 것은 이집트의 기원전 6천년 파라오부터였다. 중국은 한나라 때 금으로 장신구를 세밀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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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고구려로 돌아갔다. 고구려의 금동관을 함께 봤다. 화려한 장신구와 세밀함이 돋보였다. 저자는 금 장식물을 통해 국가 간의 우열 관계를 엿볼 수 있다고 전했다. 가야와 신라도 금을 통해 그 관계를 살펴볼 수도 있었다. 가야와 신라는 소백산맥 아래서 세력 다툼을 하고 있었다. 금동관과 금관을 보면 가야와 신라의 것은 비슷했다. 다만 크기나 모양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었는데, 신라의 것이 더 컸다.

 

“신라의 금관은 가야 것에 비해 크기가 3~4배에 달한다. 패턴은 비슷하다. 고구려와 백제가 질로서 승부했다면 신라는 상대적으로 제작 기술이 떨어져서 크기와 무게로 다퉜다. 신라인과 가야인은 금관의 크기로 백성의 숫자나 권력의 크기를 비유했다. 고구려와 백제 사람들은 이를 보고 웃었을지도 모르지만 신라인과 가야인은 나름 심각하게 임했을 것이다(웃음). 가야의 금귀걸이가 가냘프고 작다면 신라는 크고 화려했다. 이를 통해 신라가 가야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신라의 금귀걸이는 고구려의 것과 형태가 비슷했다. 고구려가 신라의 보호국이 됐을 때 자신들의 세공기술을 전수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다 신라가 머리가 커지고 세력을 확장하면서 신라는 고구려 대신 백제를 택했다. 나제동맹을 맺은 것. 이 과정에서 고구려의 영향력을 차츰 벗어나 백제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황윤에 의하면, 고구려는 자신들만의 것을 만들어 힘과 세력을 표현했다면 백제는 중국 것을 모방해 신라와 일본 등에 전수함으로써 자신들의 영역과 영향력을 과시했다. 관문 역할을 하면서 신라와 동맹을 맺었다는 것.

 

그러다 신라가 점차 세력을 확장했다. 마립간 시대를 끝내고 왕이라는 칭호를 쓰기 시작했다. 황룡사와 분황사 등이 왕권 확립을 위한 수단으로 세워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불교를 통해 왕권을 확립하기 위한 조치였다.

 

“신라도 고대국가로서 소읍을 통합하면서 다양한 민족을 품어야 했다. 법과 제도만으로 이를 할 수는 없다. 다양한 종족의 가치를 통합하게 만드는 수단으로서 불교를 택했다. 즉 불교를 통해 왕권을 강화했다. 신라의 정신적 통일의 수단이 불교였다. 황룡사 등 여러 절을 만들고 불상에 금을 입힌 것도 이런 차원이었다.”   

 

이어 불교 조각상을 만나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 3층으로 이동했다. 황윤은 불교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왔다고 설명했다. 황금이나 종교도 마찬가지였다. 서아시아의 문명이 그만큼 깊고 오래됐다는 것. 한반도로 건너온 불상은 왕권과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됐다. 권력자들은 불상에 황금을 입힘으로써 불상의 권력을 높이고자 했다. 이는 곧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것과 같았다. 저자는 반가사유상을 통해 이것을 좀 더 상세하게 다뤘다.

 

국보 83호인 반가사유상. 반가사유상은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인도, 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 반가사유상을 만날 수 있다. 한반도에서는 7세기 전반에 만들어졌는데, 제작 자체가 상당히 어렵다. 그럼에도 왜 굳이 이 어려운 불상을 제작하려고 했을까.

 

“청동기도 제대로 제작을 하지 못했던 신라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는 것을 반가사유상을 보면 알 수 있다. 금동청동불상을 이렇게 크게 만든 경우는 중국에도 없었다. 이 당시에는 종교적 권위를 부여해 예배나 숭배의 대상으로서 반가사유상을 인식했었다. 불상은 인도에서 1세기부터 나왔고 50~100년의 갭을 두고 중국으로 넘어갔다가 한반도와 일본으로 역시 50~100년의 시간을 두고 건너갔는데, 한국과 일본에서만 청동의 반가사유상이 만들어졌다. 신라는 후진국이었는데 갑작스레 부상했다. 그러면서 중국 등이 만들지 못하는 반가사유상을 만들어 신라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기술력과 문화를 보여줌으로써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게 된 것이 7세기다. 반가사유상을 보면 신라인의 문화, 기술, 표현력 등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근대화 발전 과정도 비슷한데,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2시간에 걸친 박물관 탐방은 그렇게 끝이 났다. 박물관의 유적을 통해 만나본 역사와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박물관을 알면 박물관이 더 재밌어진다. 책은 그것을 보여준다. 요조가 그냥 이 책을 재밌게 읽은 것은 아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유적과 작품을 보여주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박물관 자체도 하나의 유적이자 작품이다.  

 

“박물관에 얽힌 사연들은 관람객에게 공개되는 순간부터 뒤안길로 사라지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관람객은 전시물을 보러 오는 것이지 박물관 자체를 보러 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의 박물관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시대와 인물과 예술이 뒤얽힌 이야기가 무궁하다. 이 사연들을 꺼내어 보여 주고 싶었다. 특히 우리의 박물관은 최초의 근대 박물관이 탄생하는 순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질곡의 역사를 거쳐 왔기 때문에 의미가 더욱 깊다.”(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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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보는 법황윤 저/손광산 그림 | 유유
박물관에 대한 수요와 요구는 커졌지만 박물관을 제대로 알고 감상하기 위한 책은 아직 많이 부족한 형편이다. 더군다나 한국 박물관 역사와 관련해서는 참고할 만한 교양서가 거의 없다. 유유출판사에서는 이러한 공백을 매우고 새로운 관점을 담은 지식을 제공하고자 『박물관 보는 법』을 기획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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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박물관 보는 법

<황윤> 저/<손광산> 그림9,000원(10% + 5%)

박물관 가기 전에 읽는 책 문화체육관광부 통계(2013년 기준)에 따르면 한국의 박물관 수는 754곳(국립 37곳, 공립 328곳, 사립 299곳, 대학 90곳)이며, 관람객 수도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정부도 수요에 맞추어 다양한 박물관을 계속 세우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만이 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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