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바나나 “자신에겐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게 중요”
『어른이 된다는 건』 요시모토 바나나
지금 세상이 너무나도 위태로워지고 있는데 그럴 때일수록 자기 주위나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어른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이다. 지금과 같은 현대 사회에서 아이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동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안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키친』 『하드 보일드 하드 럭』 등의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는 수호신 같은 책을 만들고 싶었다. 기분이 오락가락하거나 자신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슬럼프에 빠졌을 때, 책을 손에 들고 잠시나마 되짚어 읽으면 자기도 모르게 내면을 조율하고, 그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는, 그런 수호신 같은 책. 그리고 낸 책이 『어른이 된다는 건』이다. 그리고 지난 11월 27일 한국을 찾았다. 서울 명동의 한 극장에서 ‘가끔은 어른이 힘겨운 모두를 위하여’라는 주제로 독자들을 만났다. 요시모토 작가는 다음과 같은 인사말을 전했다.
“일본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아이들에게까지 나쁜 영향이 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썼다. 강연은 잘 안 하는 편인데, 하고 싶은 이야기는 책에 다 썼고 다시 말로 하지는 않는다. 미리 질문을 받아둔 것에 대해 답을 하겠다. 양해해 달라.”
그리고 미리 받은 질문에 대해 요시모토 작가가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행사가 진행됐다.
직업상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데 그 아이들 가운데 영혼이 성숙한 아이를 만나기도 한다. 눈빛이나 아우라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 나보다 성숙한 느낌도 받는다. 누가 아이이고 어른일까. 이렇듯 아이나 동물 등을 통해 성숙한 영혼의 느낌을 감지한 적이 있었는지 듣고 싶다.
아이를 접하면서 어른스럽다고 할 때와 아이답다고 할 때가 있다. 내가 아이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갓 태어난 아기와 함께 있을 때다. 내가 낳은 아이는 물론 다른 사람이 낳은 아이를 보면 성숙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내 아이와 함께 여행을 가서 방에서 묵고 있었다. 아이는 어른인 내가 지켜줘야 할 존재인데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 듬직한 느낌을 받았다. 아이는 두려움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이는) 완성된 존재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무서운 것이 점점 더 늘어난다. 예를 들면 숙소는 안전할까, 밤중에 아이가 탈이 나면 어떡하나, 그런 걱정들을 한다. 그럴 때면 나이를 먹을수록 인간은 약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인간 영혼의 완전함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질문을 한 분은 스스로 아이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무렵까지 아이들은 자신만 옳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 각도에서밖에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교나 어린이집 교사는 한 각도의 시선이 아닌 다른 여러 각도에서 봄으로써 자신의 어른스러움을 드러내주면 좋겠다. 한 각도에서만 보다보면 자신은 옳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다른 각도에서는 봤을 때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그럴 때는 세상에는 많은 각도가 있고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는 방법을 아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으면 아이의 영혼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일단 어른이 되고 나면, 모든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어린 시절의 감각이죠. 인생을 헤쳐 나가기 위한 길잡이는 그것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몇 살이든 직업이 무엇이든 그건 다르지 않아요. 다만 어린 시절에 체험한 일의 가치와 자신이 원래부터 갖고 있던 것의 중요함은 어른이 되지 않고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으니, 인생이란 참 절묘한 것 같습니다.”(15쪽)
작가가 생각하는 어른의 정의에 대해 듣고 싶다. 그리고 어른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또 현대 사회에서 순수한 동심을 갖고 사는 것이 가능할까?
이 질문, 어렵다(웃음). 내 스스로 어른이 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세금을 내는 것인지, 경제적인 자립을 하는 것인지, 아이를 키우는 것인지 나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지금 전쟁이나 무서운 상황이 닥쳤을 때 우리집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우리나라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당장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이럴 때 나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생각하는 것이 어른이 해야 할 일이다. 가령 내가 지금 만일 난민이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인간은 그런 것을 생각하는 것에 대해 무서워한다. 혹은 자기 안에서 그런 것을 너무 부풀려서 생각하기도 한다. 지금 세상이 너무나도 위태로워지고 있는데 그럴 때일수록 자기 주위나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어른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이다. 지금과 같은 현대 사회에서 아이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동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안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말로는 쉽지만 실행은 어렵다. 어제와는 다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사소한 곳에서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동심, 신선함을 잃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나이가 어떻든 간에 사소한 것에서 새롭고 신선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는 가지 않는 곳에 가보거나 평소에는 사지 않을 것을 사보는 것도 좋다. 그것에서 얻을 수 있는 작은 에너지가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런 것이 자신을 잃지 않는 방법이다.
“어린아이 같은 풍부한 에너지로 어른의 자유로운 결단을 내릴 수 있다면… 저도 그럴 수 있기를 늘 바라고 있답니다.”(32쪽)
내가 생각하기에 어른이 된다는 건 사회의 보편적인 기준과 본연의 내 모습 사이에서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이를 위해 꼭 갖춰야할 요소나 태도가 있다면?
균형을 잡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자신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다면 돌파구가 있을 것이다. 내 친구 중에 회의가 많은 회사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다. 아침 9시부터 매일 회의가 있다고 하더라. 그런데 내 친구는 한 번도 회의에 나가지 않고 (그 회사에서) 10년을 일했다. 그렇게 일하다가 좋은 성과를 남기고 이직을 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물어봤다. 친구가 말하길, 회의를 통해 결정된 것 중에 자신에게 재밌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지각을 하다가 나중에는 저 사람은 으레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으로 다른 동료들에게 각인됐다. 야근을 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을 다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자신의 의견을 보탰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 사람은 회의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퍼진 것이지. 물론 매일 혼이 났지만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하더라(웃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확실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사례여서 꼭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만 주어진 환경을 자신에게 맞춤형으로 바꾸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개인으로 자신을 끝까지 관철할 것인가, 회사라는 조직을 이용하고 또 이용당하면서 보다 큰 규모로 자신을 밀고 나갈 것인가, 그 또한 그 사람에게 달린 일이겠지요.”(106쪽)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말한다. 진짜 어른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데, 진심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납득했을 때 움직여야 하는 것이 어른인지, 약간의 부조리 정도는 어물쩍 넘어가는 것이 어른인지, 작가의 생각을 듣고 싶다.
사회초년생이라면 일을 하면서 실패를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너 때문에 우리 부서가 잘못된다는 말을 들어도, 우울할 정도로 실패를 해도, 자신이 속한 부서나 조직이 어떤 일을 하는지 여전히 모를 때가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실패하면서 자신이 있을 공간의 넓이를 알게 된다. 자신이 있는 현장의 사회적 넓이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것이 무기이며 무기가 아닌지 알 수 없다. 이 회사에서는 부조리처럼 여겨지는 것이 다른 회사에서는 부조리가 아닐 수도 있다. 부조리가 닥쳤을 때 내 자신이 받아들이는 것과 회사가 받아들이는 것은 다를 수도 있다. 자신의 축을 갖고 있다면 더 커다란 것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인간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엉엉 우는 어린아이를 인정하는 것이라고요. 애써서 거기에 없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라고요. 그러면 마음속에 공간이 생겨, 자신을 든든하게 붙잡아 주거든요. 나이를 얼마나 먹든 그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즉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린아이인 자신을 살갑게 보듬고 어른으로 살아가는 것이죠.”(30쪽)
20대 후반이다. 고등학교 때도 어른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나는 생각이나 행동이 그때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결혼을 해야 진짜 어른이 된다는데, 결혼을 하면 진짜 어른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나도 쉰 살쯤 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집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웃음). 사실 나는 못 하나도 제대로 박지 못한다. 근거도 없이 어른이 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결혼도 다르지 않다. 내 자신도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 가지 변한 것이 있다. 쓰러질 정도로 배가 고파도 아이와 남편도 굶고 있다면 나보다 먼저 뭔가를 먹어도 된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얼마 전에 이런 일도 있었다. 벌 두 마리에게 쏘였었다. 당시 아이와 함께 있었는데 아이가 쏘이지 않고 내가 쏘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 결혼의 의미가 아닐까.
한두 살이라도 어린 사람을 보면 우월함을 느끼고 나이 많은 사람이 꼰대처럼 행동하는 건 보기가 어렵다. 괴리감을 느끼는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한국은 모르겠는데 태국에서는 한 살이라도 나이가 많으면 나이 어린 사람에게 밥을 사야 한다. 태국 사람에게 돈이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그 사람이 말하길, 모임이나 만남에서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 있으면 아예 나가지 않는다고 하더라(웃음). 그런 것이 꼭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 대해 그것만으로도 잘난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보다 어린 사람은 챙겨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아는 것도 많을 수 있지만 만약 잘못한 것이 있다면 지금 당신은 잘못한 것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상황이 왔을 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연령을 인식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어른이 돼서 가장 기쁘고 슬펐던 때는 언제인가?
가장 기쁜 것은 내 일은 내 자신이 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밤을 세며 할 수 있게 됐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가질 수 있게 된 것도 기뻤다. 무엇보다 그것을 내 스스로 정할 수 있게 된 것이 좋았다. 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 규율이 너무 엄격했다. 급식을 남겨서 혼도 많이 났다. 당시 이런 것은 너무 싫다고 생각했었다. 어른이 되면서 작은 것에서 비롯된 행복이 큰 행복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른이 되면서 학교에 다닐 때는 좀처럼 하기 힘든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참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주야장천 파고 들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가장 슬펐던 일은 부모가 돌아가신 일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요시모토 바나나 저/김난주 역 | 민음사
아직은 화장이 어색한 새내기 대학생, 이제는 만원전철에 도가 튼 회사원,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아이가 서운한 부모 우리는 매일매일 삶 속에서 여러 가지 질문을 발견하고 또 대답을 찾아 나가는 사이 어른이 되어 간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만들고 자신의 길을 스스로 걷는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하여, 버려야 할 것과 가져야 할 것을 찾아가는 여행. 마음을 열어 주는 따스한 언어와 상처를 치유하는 솔직한 시선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은 위로의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가 그 여행에 함께하기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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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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