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를 살 뿐, 그리고 그저 고마울 뿐!
『문숙의 자연식』 『문숙의 자연 치유』 저자 강연회
이제는 배우라는 수식어보다 ‘자연식 전문가’ ‘자연 치유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리는 문숙. 화려함의 정점에 선 배우에서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가 오늘 독자들을 만났다. 『문숙의 자연식』 『문숙의 자연 치유』는 끊임없이 욕망하고 더 가지라고 부추기는 주변의 소음 속에서 무엇이 진짜 내 목소리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참나’로,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이야기하는 책이다. 많은 이들이 그 방법을 생생한 목소리로 듣고 싶어 문숙의 강연회를 찾았다.
강연회는 문숙의 보따리 가방 이야기로 시작됐다. 흡사 나그네의 봇짐을 연상시키는 까만 패브릭 소재의 가방. 문숙은 옷이든 가방, 신발 등은 어디를 가도 누워 뒹굴 수 있는 편안한 것들만 취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날 마침 첫눈이 내려 신이 나 있던 그녀는 독자들에게 “오늘 재미있게 놀다 가자”고 권했다. 독자들의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떠올랐다. 의도치 않아도 자연스럽게 훈훈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문숙 선생은 행사 중간에 깜짝 출연한 싱어송라이터 최고은의 기타 연주에 맞춰 ‘고향의 봄’을 부르기도 했다. 이날 강연회는 샨티출판사 박정은 대표가 사전에 신청자들로부터 받은 질문을 정리해서 전하면 이에 문숙 선생이 답변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싸워서 이길 수 없는 것은 빨리 내 편으로 만들어라
샨티 : 오늘 행사를 치러야 하는데 눈발이 날려 걱정을 했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아이처럼 신이 나신 것 같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니까 이전에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어요. “싸워서 이길 수 없는 것과는 싸우려 하지 말고 빨리 내 편으로 만들어라.”
문숙 : 그럼요. 날씨도 그렇고, 나이도 그렇고요. 어차피 노력을 해도 이길 수 없습니다. 그게 우주의 섭리예요. 그런데 거기에 싸움을 걸죠. 끝까지 버티려고 하지만 결국 비참하게 지게 됩니다. 그럴 때는 싸우지 말고 빨리 이것들을 나의 가장 친한 친구로 만드는 게 좋아요.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받아들이고 죽음을 내 한쪽 어깨에 올려놓고 살아가는 겁니다. 그러면 순간순간이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워지고 귀해집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말할 수 없이 귀한 존재로 느껴지고요.
샨티 : 그렇게 생각을 바꾸는 것도 습관과 훈련이 필요한 것 같아요.
문숙 : 그렇죠. 깨어 있는 연습이 필요하죠. 뭐든 연습을 하면 처음보다 두 번째가 더 나아져요. 한 번 더 하면 전보다 더 잘하게 되고요. 나아지는 속도도 조금씩 빨라집니다. 사실 살아가는 모든 이치가 그렇습니다.
샨티 : 이제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이 미리 던진 질문을 하나씩 풀어가 볼까 합니다. 먼저 준비운동삼아 한 고등학생의 질문부터 시작해 볼게요. “선생님이 키우는 반려견의 이름은 뭔가요?”
문숙 : 제가 사진을 요청하는 곳이 있으면 주로 저는 개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는데요, 그랬더니 어느 날, 어떤 분이 “이분은 왜 똥개를 명품개처럼 보이게 하느냐?”고 댓글을 달았더군요.(다들 웃음) 개가 명품개가 어디 있고, 똥개가 어디 있나요? 개는 전부 명품입니다. 왜냐하면 진실하기 때문이죠. 저의 개 이름은 진저(ginger, 생강)입니다. 제가 살던 하와이에 생강 꽃이 흔했고, 바람이 불면 온 마을이 그 향기로 뒤덮였죠. 흔하지만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었습니다. 저의 개 진저는 흔히 말하는 똥개 맞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가장 고귀한 스승이요, 명품개인 것 또한 맞아요.
샨티 : 가벼운 질문이라 생각했는데, 덕분에 좋은 말씀을 듣게 되었네요. 이제 먹는 이야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먹는 것과 심리적인 것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신 분들이 있어요. “마음이 우울한 사람은 어떤 음식을 먹어야 위로가 될까요?” “마음의 동요가 많은 저에게 필요한 음식이 뭘까요?”
문숙 : 먹는 것과 심리적인 건 아주 중요한 관계가 있습니다. 엄마 뱃속에서 엄마가 먹던 음식들로 구성된 우리 몸은 태어날 때 아주 작게 태어납니다. 현재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몸은 나중에 우리가 먹은 것으로 만들어진 몸입니다. 내 몸에는 수백억 이상의 세포, 생물체들이 내 몸을 우주라고 부르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밥 한 공기를 먹었을 때 그 밥 한 공기가 직접 걸어다니며 내 행세를 하는 건 아니지요. 우리 몸 안에 있는 자체 지능에 의해 자동적으로 분해되고 흡수되어 우리 몸의 한 부분으로 변형되는 겁니다. 몸은 그 시스템을 기억(memory)하는 거고요.
흔히 우리는 몸을 말할 때 물리적인 몸(physical body)을 이야기하는데, 아유르베다에서는 여기에 정서적 몸(emotional body), 정신적 몸(mental body), 에너지 몸(energetic body)을 더 이야기해요. 이들은 상호 연관관계를 맺으면서 구성됩니다. 이 네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가장 건강한 상태가 되는 거죠. 그런데 가공식품, 즉 우리 몸이 기억하고 있지 않은 음식 등을 섭취하면 우리 몸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물리적인 몸이 흔들리면서 나머지 몸도 연쇄적으로 흔들리고, 결국 건강에 이상이 생겨요.
지금 우울증에 대해서 물어왔는데요,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단순 탄수화물과 자극성 음식을 삼가야 합니다. 쌀밥, 흰 밀가루 등 단순 탄수화물과 커피 같은 자극성 음식을 섭취하면 바로 기분이 좋아지죠. 이 기분 좋은 상태가 오래 유지되면 좋으련만, 30분 정도 지나면 다시 우울해집니다. 그러면 다시 기분 좋게 하려고 탄수화물이나 자극성 음식을 또 섭취하고…… 하루 종일 기분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반복하며 몸을 힘들게 합니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우울감이 오지 않도록 이를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몸에 평정심을 가져오는 현미밥과 채소, 과일 등을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연식을 하려면, ‘안 하고, 덜 하면’ 된다
샨티 : 자연식이 좋은 건 알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연식을 힘들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런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자연식, 말로는 쉽지만 저에게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자연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생각은 자연 치유식인데, 가족의 입맛과 제 입맛은 다시 마트로 향하고 맙니다. 생각과 현실을 일치시킬 수 있는 방법을 듣고 싶어요.”
문숙 : 자연식을 하기 위해서는 ‘안 하고, 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음식!’ 하면 여러 조리과정을 거치는 ‘요리’를 생각합니다. 너무 잘하려고 합니다. 소스 하나를 만들려고 해도 조리 과정이 복잡해서 스트레스를 받죠. 그저 기본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본질이 살아있는 기본, 기본이 살아있는 음식이 가장 건강합니다. 모든 음식은 있는 그대로 먹을 수 있습니다. 얼마 전 한 방송사를 통해 자연 치유 여행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방송 스태프와 아침밥을 지어먹어야 했는데 주방에 오래돼 딱딱하게 굳은 소금 정도밖에 없었어요. 마침 시장에서 사온 당근과 양파, 고구마가 있어서 푹 삶아서 식탁 위에 펼쳐놓고 여덟 명이 그것으로 맛있게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이처럼 건강한 음식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샨티 : ‘불림대’가 있으면 자연식 하기가 훨씬 더 편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어요.
문숙 : 자연식이라는 건 통곡물이 기본이 되는 식단을 말합니다. 서양식은 메뉴를 짤 때 단백질 중심으로 식단을 짜요. 중심 메뉴가 소고기냐, 닭고기냐, 생선이냐에 따라 식단을 구성하죠. 자연식은 통곡물과 콩을 놓고 식단을 짭니다. 중심 음식이 현미인지, 조인지, 콩인지 등에 따라 식단을 구성해요. 통곡물은 씨를 말합니다.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단단한 보호막으로 둘러싸여 있죠. 그래서 불림대가 필요합니다. 최소한 7시간∼12시간 이것들을 불려놔야 우리 몸에 소화시킬 수 있는 상태로 만들 수 있습니다. 불리는 게 번거롭다고 3~4시간 정도만 불리면 이것들이 소화가 잘 안 됩니다. 가끔 현미가 소화가 안 된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잖아요. 이는 충분히 불리지 않고 조리했기 때문입니다. 해서, 불림대를 마련해 놓고 늘 무엇인가를 불려놓고 있다면 해먹기가 훨씬 수월하겠죠.
샨티 : 선생님은 식사를 ‘제의’라고 하시잖아요. 그 말이 참 인상적이었는데요.
문숙 : 우리가 먹는 쌀은 우리가 섭취하기 위해 태어난 생명체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소유한다’는 개념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쌀이고, 시금치고, 두릅이고 이들은 각자 자신들의 삶이 있습니다. 지구에서 우리와 함께 공존할 권리가 있는 것들입니다. 이들이 내뱉는 숨으로 우리가 숨을 쉬고, 우리가 내뱉은 숨으로 그들이 숨을 쉽니다. 그들의 몸과 우리의 몸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취하기 전에 우리는 이미 하나입니다. 우리는 우선 이 사실을 알아채야 합니다. 그렇게 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하면 먹는다는 것 자체가, 한 생명체와 한 생명체가 이어지는 어마어마한 제례가 됩니다. 시금치 한 줄기 먹을 때, 물 한 모금 마실 때 거기에 30분만 집중해 보세요. 청량한 숲 속에 다녀온 것처럼 우리의 기운이 충전됩니다.
샨티 : 마침 많은 분들이 도시에 살면서 자연 친화적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어오셨어요.
문숙 : 우리가 먹는 것이 바로 자연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 또한 자연입니다. 내가 나무이고, 물이고, 불이며, 공기입니다. 깨어난 의식으로 내 내면에 집중한다면 우리는 늘 자연을 느끼며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은 내 삶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샨티 : 우리가 우리 몸의 반응을 잘 살필 수 있다면, 이게 나에게 맞는지, 얼마만큼 먹으면 좋은지 지혜를 발휘하기가 쉬울 텐데요, 그렇지 못하다 보니 선생님께 ‘나는 무얼 먹으면 좋으냐? 얼마만큼을 먹어야 하느냐?’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아요.
문숙 :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다 다릅니다. 어떤 이는 물 한 잔 마시고도 갈증이 해소되고, 어떤 이는 두세 잔은 마셔야 갈증이 해소되기도 합니다. 우리 몸이 그만 먹으라고 말하면 그만 먹으면 됩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누구나 보편 지능(universal intelligence)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어떤 날은 입에 쓰지 않습니까? 몸 안으로 들여보내지 말라는 얘기죠. 상황에 따라 내 몸이 요구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밥을 한 공기 먹느냐, 두 공기 먹느냐, 물을 한 잔 마시느냐, 두 잔 마시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가 중요합니다. 그것도 자꾸 해보면서 자신의 감각을 깨워가야겠지요.
샨티 : 요가에 관해서 질문을 해준 분들이 몇 분 계셨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아쉬탕가 요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가를 어떻게 일상생활에 접목하고 계신지 궁금하다”는 질문이 있었어요.
문숙 : 요가(yoga)라는 말은 산스크리트 어 ‘유즈’(yuj)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유즈는 ‘하나가 된다’는 말이라고 하죠. 우주의 기운과 내 몸에 있는 기운이 하나가 된다는 겁니다. 요가에서 ‘몸을 틀어라’ 이런 말은 단 한 마디도 없습니다. 아쉬탕가(Ashtanga)는 요가를 하는 사람들이 하는 여덟 가지 수행을 말합니다. 1단계 야마(Yama)에서 처음 나오는 것이 아힘사(Ahimsa, 비폭력)인데, 요가에서는 비폭력을 행하기 위해 ‘비폭력해야지’ 다짐하며 수행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요가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비폭력을 실천하게 됩니다. 아쉬탕가의 마지막 단계인 사마디(Samadhi)도 앞의 일곱 가지가 잘 연습되었을 때 자동적으로 오게 되는 것입니다.
아쉬탕가 요가에 대해선『문숙의 자연치유』에도 잘 적어두었는데요, 요가라는 건 이렇듯 우리가 의식적으로 힘을 들여서 해야 하는 게 아닙니다. 나와 우주의 연결, 나와 주변의 연결됨을 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실현하는 것이죠. 그러니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 자체가 요가가 되게 해야 합니다. 처음 요가를 연습할 때는 힘들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마음을 비우고 이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힘든 경험이 즐거움으로 뒤바뀌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마치 줄타기나 서핑을 배울 때처럼요. 중요한 것은 요가를 할 때 요가가 삶이 되고 삶이 요가가 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순간을 거치면 진짜 요기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플 땐 아프고, 힘들 땐 힘들면 된다
문숙 선생의 이야기는 점차 내면에 관한 깊이 있는 이야기로 흘러갔다. 강연의 집중도가 더욱 필요하던 시점에 ‘짠’ 하고 나타난 싱어송라이터 최고은! 앞서 말한, 한 방송사와 떠난 자연 치유 여행에 최고은이 동행하면서 문숙 선생과 연을 맺었다. 최고은은 바로 전날, 개인 콘서트를 한 피곤한 몸임에도 문숙의 강연을 듣겠다며 강연회장을 찾았다. <마이 크리스마스 이즈 유>(My christmas is you)와 <선라이즈>(Sunrise) 이렇게 두 곡의 노래 선물과 함께. 노래 선물에 흥이 난 문숙 선생은 미국 생활 당시 향수병을 달래려고 부르곤 했다는 <고향의 봄>을 불러 화답했다. 관객들의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샨티 : 이제 노래 선물로 좋은 기운을 받았으니 그 힘으로 다시 좋은 강연을 이어가면 되겠습니다.(웃음) 이런 질문이 있었어요. “문숙 선생님도 사람이기에 살아가다 보면 이유 없이 마음이 흐트러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마음을 다잡고 기분을 북돋게 하는 선생님만의 비법이 무엇인지요?”
문숙 : 마음이 흐트러지면 흐트러지는 대로 있으면 돼요. 마음이 흐트러질 때 ‘이러면 안 돼.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돼’ 하는 생각 때문에 더 힘들어지는 겁니다. 삶이라는 길을 가는 동안 별의별 괴물을 다 만나죠. 아플 땐 아프고, 힘들 땐 힘들면 됩니다. 그 맛에 사는 거죠. 바보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 아프려고, 안 힘들려고 싸우면 더 힘들어져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을 때 “나 오늘 힘들어”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연민을 느끼게 됩니다. 연민이란 중요한 감정이에요. 인종, 성별, 나이 등에 관계없이 인간이기에 비슷하게 느끼는 감정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 한 워크숍에서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을 희망해서 50명으로 인원을 제한했어요. 그런데 참석자 대부분이 아이들을 데려와서 행사 기획자가 무척 스트레스를 받고 있더라고요. 어떡하면 좋으냐고 묻기에 제가 “아이들은 부모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것만 알아차리면 됩니다”라고 했어요. 나중에 그 기획자가 하는 말이,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아이들을 보니 애들이 너무 예뻐 보이더래요. 덕분에 성공적으로 워크숍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현미 등의 식물, 고양이 등의 동물도 우리와 공존하는 존재들이요 소중한 생명체라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안고 있는 힘겨운 일들이 더 이상 힘겨운 일이 아니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샨티 : 참석자 중 “내면의 자유로움, 집착이나 두려움 혹은 욕심의 내려놓음” 등에 대해 질문하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문숙 : 우리는 자유로워지길 바라죠. 그런데 내가 누구라는 개념이 곧고 깊게 자리 잡은 사람일수록 자유로워지기 어렵습니다. 내려놓기도 힘이 들죠. 무엇이 옳다/그르다, 흑/백 등의 기준이 명확한 사람도 결국 스스로를 힘들게 할 뿐입니다. 저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에 부딪치거나 힘이 들 때면 은하계에서 그 일을 바라보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우주를 보면 지구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자전을 하면서 거대한 태양 주위를 돌고 있지요. 태양 또한 1초에 217km의 속도로 공전합니다. 그것을 따라잡으며 지구는 돌고 있고. 또 우리 은하계도 공전을 합니다. 이런 걸 떠올려보면 이 거대한 우주 앞에서 우리는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런데 요가의 오랜 기록에서는 거대한 우주와 작은 인간이 그 크기에 상관없이 똑같은 우주라고, 서로 연결돼 있다고 말합니다. 내가 깨어 있는 것이 지구가 나를 통해 깨어 있는 것이고, 우주가 내 눈을 통해서 깨어 있는 것이고, 신이 내 눈을 통해서 여러분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혀 연고도 없는 우리들이 이곳에 와서 같은 시간에 서로 눈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서로를 바라봄에 있어 우리의 존재에 우열이 있습니까? 종교, 인종, 인간이냐 동물이냐 등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존재가 아름다우며,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혐오하는 일을 멈춰야 합니다. 머리가 좋고 나쁘고 등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 앞에서 이 영혼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밖에는 더 이상 중요한 게 없습니다.
인사하라, 다시 못 볼 사람인 것처럼……
샨티 : 그래서 선생님께서 인터뷰를 통해 그렇게 말씀하셨나 봐요. “나는 꿈이나 바라는 것이 없다.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고요.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인생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하며, 항상 꿈이 있어야 한다고 교육받은 우리에게 욕심과 집착을 버리는 삶은 말처럼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문숙 : 꿈이라는 건 의도(intention)와 집중(attention)만 있으면 이루어집니다. 어떤 일이든 그것 하나만 계속 바라보면 거기에서 불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요가의 가르침에서도 말하듯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스스로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남에게 보이려고 성공을 추구하는 것은 스스로를 행복하지 않은 사람으로 만듭니다.
미국에서 1960년대 청년들 사이에서 일어난 히피 운동은 행복하지 않은 어른들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닐까요? 나는 우리 부모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 성공하지 않아도 평화롭게 살고 싶다면서 길거리로 나앉은 거죠. 어른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느냐가 아이들에게는 메시지가 됩니다. 어른들이 온갖 스트레스 속에 살면서 자기 아이들에게는 꿈을 가지라는 건……
마음을 따라가면 됩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거기에 집중하면 돼요. 그러면 일이 일어납니다. 만약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일이 제 일이 아니었던 거죠. 거기에 일생을 바칠 필요는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니까요. 아등바등해서 부를, 성공을 이뤘다고 합시다. 그런 다음은 어떻게 될까요? 그것을 내 손으로 무너뜨리는 날이 옵니다. 그것보다는 자유인으로 사는 것이 오히려 우리 마음에 평온함을 가져다줍니다.
샨티 : 지금 답변과 바로 연결되는 질문 같아요. “가끔씩 문뜩 떠올라 마음을 어지럽히는 괴로움, 죄책감, 분노 등이 뒤섞인 과거의 기억들을 어떻게 정리하고 지금 이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할지, 선생님도 혹시 묻어두고, 덮어두고, 잊고 싶었던 그런 일들이 있으셨는지, 혹은 그걸 어떻게 뛰어넘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문숙 : 그런 과거를 묻어두고 뛰어넘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삶을 정리하는 날이 오면 모든 것이 그저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지금은 서로 싸우고 힘들고 하지만 이것도 살아있으니까 가능한 일입니다.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과 괴로움, 분노 등 여러 감정적 찌꺼기들은 우리 삶을 비옥하게 하는 거름이 됩니다. 연꽃도 그러한 찌꺼기 속에서 피어나지요. 삶에서 버릴 건 하나도 없습니다. 버릴 사람도 하나도 없습니다.
샨티 : 예전에 선생님과 통화를 하다가 제가 어떤 일로 화가 난다고 했을 때,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는데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늘 그 말씀, 이 자리에서도 같이 나누고 싶네요. “화를 내면 그 화살에 내가 먼저 상하니까 가능하면 화를 내지 마라. 하지만 정말로 화가 난다면 스포츠처럼 화를 내라.”
문숙 : 살다보면 화가 나죠. 특히 우리는 자극적인 음식을 많이 먹기 때문에 반응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내 에너지를 감정적인 반응을 하는 데 소모할 필요가 없습니다. 티베트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부정적인 감정으로 소비하지 않는 연습을 한다고 해요. 화가 났을 때 화를 먼저 내기보다 상황을 그냥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거죠. 그렇지만 정말 한 방 먹여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한 방 먹여야죠. 단 스포츠하듯이. 권투 선수가 주먹을 휘두를 때 ‘너 맞고 한번 죽어봐라’ 이러면서 치지는 않잖아요? 감정까지 거기에 얹을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샨티 : 선생님이 얼마 전에 이사를 하셨는데, 살림살이가 단출해서 박스 몇 개에 담아 이사하셨다고 해요. 이사 준비하면서 밤에 박스를 주우러 다니셨다고도 들었습니다.(좌중 웃음)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단순화라는 단어를 곱씹는 요즘입니다. 화장품 사용 개수도, 머리도, 옷도, 가방 안도, 냉장고도, 생각도 너무 많은 것들로 복잡합니다.” 선생님은 화려한 삶도 살아보셨고, 또 지금은 아주 간소하게 살아가고 계신데요, 어떤 삶이 더 좋고 나쁘고가 아니라 두 삶 속에서 느낀 느낌들이 어땠는지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문숙 : 우선 박스를 줍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요. 박스를 줍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시간 맞춰 빨리 가야 해요.(좌중 웃음) 밤에 주우러 나갔다가 많이 못 구해서 편의점에서 얻기도 했어요.(웃음) 저는 모두가 가난한 시절에 태어나서, 가난이 죄악이 아닌 시절을 경험했고, 한때는 화려함의 정점에 서는 배우라는 삶을 좇았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황에서 왔다 갔다 한 적도 있었죠. 그리고 그러한 삶이 내 마음속 행복, 내가 가진 것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가질수록 더 행복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내 마음이 여기에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디에 가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뉴스에 어느 거부가 섬을 사서 별장을 짓고 그곳에서 멋있게 파티하며 산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러분이라면 정말 거기에 가서 혼자 살고 싶으세요? 커다란 섬에서 혼자 있다 보면 내 안에 잠재돼 있던 모든 감정들이 올라와서 그것들과 싸워야 해요, 나 혼자! 지금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다며 프랑스에 가서 살면 분명히 행복해질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더 주의 깊게 바라봐야 하는 건 주변 상황이 아니라 ‘내 안’입니다.
아쉬탕가에서 다섯 번째 단계인 프라티아하라(Pratyahara)가 있습니다. 오관을 내 안으로 돌려 안을 보는 연습을 하는 단계입니다. 내 안에 찔찔한 나를 먼저 보는 겁니다. 그리고 ‘나’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보는 연습을 합니다. 그리고 ‘나’가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면 거기에 맞춰 살아가면 됩니다. 많은 돈을 들여 큰 섬을 사고 화려한 건물을 지어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서울에서 소위 ‘잘사는 동네’라는 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세계 건물의 표본은 다 있는 것 같아요. 독일식 건물에 프랑스식 거실, 미국식 마당… 주변을 의식해 외부 세계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기보다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봐야 합니다. “너는 누구냐? 그곳에 살고 있는 너는 누군데?”라고요.(청중 박수)
샨티 :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오늘 참석하신 분들 중 더 질문하고 싶은 것 있으면 듣고 싶네요.
독자 : 선생님 강연 들으러 두 시간 걸려서 왔습니다! 저녁도 지어야 하고, 애들도 봐야 해서 갈등을 많이 했지만, 오길 잘했네요. 제 언니는 3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언니가 투병생활을 할 때 “난 병원 문을 나서면 미니스커트도 입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 거야” 했었거든요. 그런 언니를 보내고 나니 나는 언니처럼 후회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옷이고 뭐고 막 사들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장롱은 점점 차는데 마음은 더욱 정리되지 않더라고요. 또 제 시선이 내가 아닌 나의 가족, 회사 등에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항상 회사에서나 가족들이 바라는 나로 살다보니 어느 순간 나를 잊어버린 것 같아요. 선생님 강연을 듣다보니 시선을 나로 돌려야겠다는 생각, 단순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렇게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숙 : 거기에 하나 더 덧붙인다면, 제가 연습하는 것 중 하나가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내가 이 사람을 오늘만 보고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인사하는 겁니다. 그러면 상대방에게 나쁜 감정을 갖지 않게 돼요. 상대방이 너무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지고, 떠날 때는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요. 그러다 다시 만나면 ‘아, 또 봤구나!’ 기쁘고요. 요즘 제가 꾸준히 하고 있는 연습입니다.
눈 내리는 날임에도 부산에서, 울산에서, 속초에서까지 찾아온 독자들은 대부분 “선생님처럼 아름답게 살고 싶다”고 했다. 문숙을 흉내 내는 삶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따라가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다는 말이었다. “이대로는 안 돼” “남들보다 잘하는 게 있어야지” 등의 말들에 지치고 피로한 우리에게 “안 하고 덜 해야 한다” “누구보다 중요한 건 내 생각이다”라고 말하는 저자의 메시지는 큰 위로가 된 듯 보였다. 참석자 대부분이 강연장에 남아 사인을 받고, 문숙의 깊은 포옹을 받고 나서야 강연장을 떠났다. 한 번의 강의로 복잡한 내면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지만, 적어도 실마리를 찾을 영감만은 얻고 가는 듯 보였다. 이들의 표정이 그렇다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문숙의 자연 치유문숙 저 | 샨티
간단치 않은 삶의 경험, 오랜 수련과 깊은 통찰에서 나온 깨달음, 거기에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문장들이 책을 펴는 순간부터 읽는 이를 사로잡는다. 이 책은 2015년 7월에 출간된, 몸과 마음의 건강과 치유에 좋은 60가지 자연식 레시피를 담은 ?문숙의 자연식?과 함께, ‘배우 문숙’이 어떻게 ‘자연 치유가 문숙’으로 변화하고 성장했으며, ‘자연스런 삶’ ‘치유의 삶’이란 무엇인지를 당당하고 아름답게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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