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나는 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남자가 도둑놈이에유?
연애에서의 나이 차이
연상과 연하의 연애는, 연하의 경쟁자들을 제치고 연하를 ‘차지’한 연상의 성취로 직결된다. 연애 시장에서 어린 나이가 경쟁력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사고는 언뜻 당연한 것도 같다.
스무 살을 한 달 남겨둔 초겨울의 일이다. 소위 말하는 ‘썸남’이 생겼다. 남자는 나보다 여섯 살이 많았고,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나이를 밝히면서부터 급격하게 어색해졌다. 우리는 서로의 나이가 생각보다 적은/많은 것에 당황했다. 나는 어색하게 말을 올렸고, 상대는 얼굴을 감싸며 괜히 찔린다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상대가 실제보다 어려보이니까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런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했던 것은, 당시 내 마음 속에서 나이 차이가 큰 장애물로 작동했다는 뜻이다. 그래도 우리는 몇 번 더 만났는데, 얼마 후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남자가 사실은 나보다 아홉 살이 많다고 고백한 것이다. “나이가 너무 많다고 피할까봐 그랬다, 진지하게 만나고 싶기 때문에 솔직하게 말한다. 속여서 미안하다.”
나는 이틀 연속 스탠딩을 뛴 빠순이처럼, 가을 내내 모아온 도토리를 털린 다람쥐처럼 넋이 나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면 새해였다. 스물아홉과 서른은 하늘과 땅처럼 아득해보였다. 잘 들어갔냐고, 대답 기다리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본 나는 그를 차단했다. 그리고 끝이었다. 결국 남자의 걱정대로 된 셈이지만 나는 나대로 매우 결연했다. 세상이 그러한 관계를 어떻게 소비하는지는 너무 뻔했다. 굳이 경험하거나 알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는, “남자=도둑놈, 여자 = 순진한 어린 양”의 도식 말이다.
나 역시 TV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커플이 나오면 혀부터 쯧쯧 찼다. “어휴, 저 남자 너무 양심 없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첫 남자친구가 서른 살이라는 것은, 내가 꿈꾸던 연애의 형태가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사회적 문법을 충실히 따르려고 아등바등하던 터라, 이 일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다들 동갑 아니면 한두 살 많은 사람과 만나는데 나는 이게 뭐람! 그러니까, 나는… 창피했던 것이다. 아홉 살이나 많은, 알고 만났더라면 내 울타리 안에도 들이지도 않았을 남자와 엮인 것이. (처음 만날 때 같이 있던 친구에게만 살짝 말했는데, 그때의 반응도 내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홉 살? 야, 대박.”)
사회적으로 연애가 허용/권장되는 연령대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연애 관계에 진입하는 이들의 나이 차이는 비슷비슷한 경우가 많다. 연애에서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나이 차이는 대개 아래위로 4살 정도로, “궁합도 안 보는 4살 차”라는 출처분명의 말이 이러한 인식을 반영한다. 허용 범위는 또 개개인의 기준에 따라 다르다. 이 안에 포함되느냐/배제되느냐는 연애의 발생 여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때 성별이 중요하게 작동한다는 것은 굳이 젠더 권력을 언급하지 않아도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연애에서의 나이 차이를 마냥 개인적인 취향에 맡겨둘 수 없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연애 관계에서는 남자의 나이가 많은 편이 일반적이다. 이승기가 “누난 내 여자니까”를 열창할 때, 가사 속 ‘누나’가 남자를 동생으로만 보는 이유는 남자가 어리기 때문이다.
한편 무수한 걸그룹의 사랑 노래에서 ‘오빠’는 콧구멍 두 개로 숨 쉬듯 자연스러운 사랑의 대상이다. 최근에는 연상연하 커플이 늘어났다지만, 4살 이상 벌어지면 “세상에 이런 일이” 급의 주목을 받는다. 연예계에서 8살 차이는 비교적 흔한 일이지만, 탤런트 김가연과 프로 게이머 임요환의 결혼이 두고두고 화제가 된 것은 여자가 연상이기 때문이다. 김가연이 고소의 제왕으로 이름을 날리기 전에는 그들의 ‘일반적이지 않은’ 나이차를 공격하는 악플이 풍년이었다. 드라마 <밀회>가 큰 인기를 끌 때는 이 나라의 도덕적 해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왜 그 목소리가 발에 차이는 중년 남성과 젊은 여성의 러브 스토리에는 등장하지 않았는지 모를 일.
나이 많은 남자들이 멋대로 젊은 여자들을 ‘로맨틱, 성공적’ 대상으로 배치하는 일은 매우 흔하다. 당당하게 출산 능력을 이유로 들기도 하는데, 이때 젊은 여자가 그렇게 나이 차이가 나는 사람과 만날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 포인트다. 소오름. 이러한 경우는, 엄밀히 말해서, 연애에서의 나이 차이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그러니 간단히만 짚고 넘어가자. 연애는 두 사람이 동의한 관계이다. 따라서 충분한 감정적 교류가 없는 상황에서 혼자 들이대는 것은 껄떡거림에 불과하다. 한국 사회에서 나이가 많다는 것은 높은 확률로 직위 등의 요소를 포함한 권력을 동반하기 때문에 이는 곧잘 성희롱이나 추행으로 번진다. 남자든 여자든 혼자 그린 라이트를 껐다, 켰다 하기 전에,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 아래로 몇 살까지 연애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꼭 그만큼 연상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부터 고려해보는 것이다. 아래로 12살까지 OK? 그럼 너도 12살 많은 사람이 들이대도 OK인 거야. 싫으면 12살 어린 사람한테 들이대지 말라우!
다시 연애에서의 나이 차이로 돌아와서…, 내가 아홉 살 연상의 남자에게서 달아난 것은 바로 그러한 편견 때문이었다. 이 남자가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진상일 것이라는 혐의. 그는 양심 없는 도둑놈이고, 나는 그의 능수능란함에 넘어간 순진한 어린 양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 나이 많은 남자를 만나면 스킨십의 진도를 빨리 뺀다는 수군거림. 이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커플들이 현재진행형으로 맞닥뜨리는 폭력적인 시선이다. 여자가 연상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순진한 어린 남자를 홀린 여우, 노련함에 속아 어린 여자 대신 나이 많은 여자를 만나는 호구, 젊을 때야 괜찮지만 좀 더 나이 들면 싫증날 거라는 말들. 연상과 연하의 연애는, 연하의 경쟁자들을 제치고 연하를 ‘차지’한 연상의 성취로 직결된다. 연애 시장에서 어린 나이가 경쟁력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사고는 언뜻 당연한 것도 같다.
이때 나이가 어린 쪽은 깍두기로만 존재한다. 취향, 욕망,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고 능력은 새하얗게 표백된 쟁취의 대상. 그러니 관계에서의 주도권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못한다. 끽해야 어린 아이에게 어른이 쩔쩔매는 구도 정도? 연하가 연상을 쟁취하거나, 서로 열심히 그린 라이트를 깜박거려서 연애가 성사되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절 상상하지 않는다. <밀회>에서 감옥에 간 오혜원(김희애)는 “내 아들이 딱 스무 살이다”고 말하는 감방 동기에게 머리카락을 잘린다. 오혜원을 ‘아들 같은 남자애’를 후린 몹쓸 년으로 응징할 때, 오혜원을 향한 이선재(유아인)의 열정적인 사랑은 인식 불가능한 것이 된다.
내가 그랬다. 여섯 살이 많은 것을 알고도, 그 사람이 좋아서 만났다. 호감이 가는 외모 때문에 대화를 시작했고 한참 어린 (실제로는 아홉 살) 나에게 끝까지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 태도가 인상 깊었다. 그래놓고 완벽한 피해자처럼 굴었다. ‘왜’ 아홉 살이라는 나이 차이가 나에게 문제가 되는지 스스로에게 묻기 전에, 세상이 그것을 문제시할까봐 선을 그었다. 계속 만난다면 분명히 내 감정과 선택이 반영된 관계일 텐데도 내가 “나이 많은 남자의 트로피”가 된다고만 생각했다. 내가 내 마음을 존중하지 않는데 누구를 존중할 수 있었을까. 그것을 깨닫고부터는, 흔히 ‘성취의 결과물’로 평가 받는 커플들을 다른 시선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외모, 연령, 성별, 국적 등 연애에는 언제나 권력 문제가 개입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연애가 기승전권력은 아니다. 연애는 결국 두 사람이 원해서 시작하고 지속되는 관계이다. 이를 숙지하는 것만으로도, 상투적이고 진부한 인식의 틀로 누군가의 연애를 판결하고 감별하는 폭력을 피할 수 있다.
[추천 기사]
- 참을 수 없는 조건부 승인의 알량함
- 빠순이 발로 차지 마라
- 취미가 뭐냐건 그저 웃지요
- 내 나이가 어때서~사랑하기 딱! 좋은~나인데~
- 살아남아라! ##쨩!
비연애인구 전용잡지 <계간홀로> 발행인. 문충이(文蟲)가 되고 싶은 그냥 식충이. 뭐든지 재미 있어야 하지만 재미의 기준은 내 마음. 읽고 쓰고 덕질합니다.
<김중혁> 저11,700원(10% + 5%)
“다가올 시간을 가늠해보는 일, 그게 사랑의 시작일 것이다.” 김중혁 네번째 단편소설집, 첫번째 연애소설집 소설가 가운데 이이만큼 ‘잡(雜)’한 자 또 있을까. 좋은 걸 좋게 볼 줄 아는 타고난 심미안의 소유자니 그간의 삶이 꽤나 피곤했을 거라 짐작도 해보거니와 동시에 그가 전력에 도통 바닥이란 게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