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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만나다

이 짧은 소설의 첫 문장을 읽는 즉시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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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한 출발에 뒤이은 사실적인 내용 전개와 애써 꾸미지 않은 직설적인 결말이다. 어떤 사람이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벌레로 변해 있더라는 설정은 확실히 좀 작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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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는데, 보통 남자애들이 그렇듯이 처음엔 셜록 홈즈나 애거서 크리스티 같은 추리소설로 시작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거의 그 두 종류만 읽은 것 같다. 장르소설이 아닌 쪽은 관심이 없었거나, 아니면 누구도 다른 책을 권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읽지 않았다. 그래도 내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졸업할 즈음부터 중학교 다닐 때까지는 추리소설에서 벗어나려고 나름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중학생이 되어서는 나와 비슷하게 책 좋아하는 녀석들과 어울리면서 조금씩 책 읽기 폭을 넓혀갔다.


고등학교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이제 어른이라고 믿었고 그건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어른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책도 좀 어른스러운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확히 말하면 좀 멋있어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들 사이에서는 카뮈의 책이 그 어떤 것보다 인기가 높았다. 책을 들고 버스에 탔을 때 카뮈만큼 멋있어 보이는 책은 없다. 이름조차 멋스러운 알베르 카뮈는 남자애들의 우상이었다.


거의 의무적으로 카뮈를 읽었다. 이 실망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책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번엔 확실히 괜찮은 책이어야 한다. 안 그래도 카뮈의 책 두 권을 억지로 읽었는데 세 번째 책 역시 실패한다면 무엇보다 내 자신에게 화가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알고 있는 외국 작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어떤 책을 선택해야 좋을지 막막했다. 그렇게 고민만 이어가다 한 달 정도 지나 다시 그 헌책방에 가기로 했다. 책등에 ‘변신’이라는 글자가 쓰인 그 책이 내겐 유일한 선택권이었다.

 

책을 들고 헌책방에서 나와 걸어가면서 첫 장을 넘겼다. 여기서부터는 이야기가 너무 빨리 진행됐기 때문에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이 짧은 소설의 첫 문장을 읽는 즉시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적어도 또래 아이들보다는 책을 많이 읽었다고 자부하는 나이지만 이런 첫 문장은 처음이다. 그레고르 잠자, 이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소설의 주인공이겠지. 그 사람은 어느 날 자고 일어나보니 자신이 벌레로 변했다는 걸 알았다. 배에 주름이 있고 다리가 여러 개 달린 징그러운 벌레의 모습을 한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리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꿈이 아니었다.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제대로 된 책상에 앉아서 한 자 한 자 눈에 담아가며 읽어야겠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카뮈가 그의 스승이 쓴 책 『섬』을 처음 보고 했던 행동처럼 나 역시 한참을 뛰어서 그대로 집까지 돌아왔다. 그리곤 몇 시간 만에 『변신』을 다 읽었다. 아니, 카프카가 어떤 마성적인 힘을 책에 불어넣어서 내가 책을 읽도록 강제했다고 하는 편이 옳다. 책이 재미있었다고 말할 순 없겠다. 결코 재미있는 내용은 아니니까. 주인공 그레고르가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단순히 ‘재미’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이 책은 그 후로 나의 책 읽기 습관을 완전히 뒤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소설이란 바로 이런 힘을 가지고 있구나!’ 마음속으로 그렇게 외쳤다. 나는 『변신』을 사랑하게 됐다. 자꾸만 보고 싶고, 보고 있을 땐 헤어질까 걱정됐다. 더 이상 말하면 괜히 과대포장 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여기서 그만하겠다. 어쨌든 헌책방에서 처음 만난 뒤 몇 달 동안 『변신』의 문장을 거의 외울 정도로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다.

 

『변신』의 매력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미스터리한 출발에 뒤이은 사실적인 내용 전개와 애써 꾸미지 않은 직설적인 결말이다. 어떤 사람이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벌레로 변해 있더라는 설정은 확실히 좀 작위적이다. 아무에게나 이런 첫 설정을 던져주고 소설을 써보라고 한다면 이야기를 엮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레고르가 벌W레로 변한 것에 대한 이유가 어느 곳에도 설명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이 더 현실적이다. 도대체 평범한 사람이 갑자기 벌레가 된 것에 무슨 이유나 원인을 붙일 수 있단 말인가?

 

이상의 『날개』와 비교해보자면, 『변신』의 그레고르는 『날개』의 주인공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물론 거의 모든 면에서 『날개』에 나오는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와 ‘벌레가 되어버린 잠자’는 다르다. 가장 닮은 점은 둘 모두 집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천재 씨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회성이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대부분 시간을 방 안에서 보낸다. 가끔씩 밖에 나가기도 하지만 나간다고 해서 딱히 뭘 하려는 것도 아니다. 길거리를 목적 없이 방황하다가 다시 자기만의 방으로 돌아올 뿐이다. 잠자 씨도 방 안에 갇혀 있다. 다른 것은 천재 씨와는 달리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는 현실이다. 외무사원이기 때문에 빨리 일어나서 기차를 타러 나가야 하지만 나갈 수가 없다. 벌레가 됐기 때문이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저런 벌레만도 못한 놈!”, “에라, 밥만 축내는 식충아!”라는 소리를 들으면 치욕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잠자 씨는 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진짜로 벌레다. 남에게 당장 피해를 주지 않더라도 그냥 생겨먹은 게 벌레니까 이제부터 그는 벌레 외에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처지다. 흔히 ‘똥차는 자동차 공장에서 새로 뽑아도 똥차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그레고르 잠자 씨는 이제 ‘벌레 같은 놈’이 아닌 그냥 ‘벌레’로 살아야 한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첫 출발은 황당했지만 그레고르는 그래도 꽤 현실적으로 대응한다. 밖에서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에는 어떻게든 목소리를 다듬어서 대답을 한다. 급기야 회사 일을 하러 나가지 않은 직원 때문에 직장에서 관리가 찾아왔을 때는 몸이 아파서 그런다며 방 안에서 시간을 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런 식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길 수는 없는 법이다. 몸이 벌레로 변했을 뿐 그 자신은 여전히 열심히 일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노력했던 그레고르 잠자가 아닌가. 음악에 재능을 보이는 여동생을 위해, 내년부터는 전문교육을 시켜주겠다는 비밀 계획도 가지고 있는 좋은 사람이 아닌가. 하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었다. 차라리 ‘벌레만도 못한 놈’이라는 소리를 듣는 게 낫다. 반면에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는 누가 보더라도 ‘벌레만도 못한 놈’ 소리를 듣기에 딱 좋다. 몸이 건강하지도 않은 데다가 직업이 있어서 돈을 벌어오기를 하나, 아내가 나가서 좀 돌아다니라고 돈을 쥐어주면 청승맞게 비를 쫄딱 맞고 들어온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 날엔 감기에 걸려서 또 사람 속을 뒤집어놓는다. 때때로 아내가 주는 돈은 군말 없이 받아두지만 모아놓은 걸 쓰는 일이 없고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니 생각은 제대로 박혔지만 육체가 벌레인 그레고르와 반대로 몸은 멀쩡한데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민폐인 천재 씨는 어떻게 보면 같은 처지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두 사람 모두 마지막까지 이 불행을 멋지게 돌파해내지 못한다. 해피엔딩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좀 화가 나는 결말이긴 하지만 오히려 그런 쪽이 더 현실적인 결말인 것 같다.


그레고르의 몸이 벌레로 변했지만 그는 여전히 다른 무엇도 아닌 인간 그레고르인 것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벌레 같은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반대로 내가 상대방을 벌레처럼 무시할 때도 있다. 그레고르의 가족과 지배인, 그리고 사랑스러운 여동생마저도 끝내 그레고르의 진심을 보지 못하고 벌레로 변한 겉모습만을 받아들였다. 이것은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인가.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생각하며 또 한 번 한숨을 내뱉는다. 이 소설이 지금 같은 시절에 나왔다면 연구의 대상이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카프카는 누구도 이런 말을 꺼내기 힘든 그때, 유럽이 이제 막 지옥 불구덩이 같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게 될 바로 그때 우리들의 무딘 인간성에 대해서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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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성근

서울 정릉. 작가 박경리가 살던 집 근처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을 따라 강원도 태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다시 정릉으로 돌아와 학교를 다녔다. 어릴 때부터 헌책방 주인이 되는 것을 꿈꿨지만 대학에선 컴퓨터를 전공했고 오랫동안 IT회사에서 일했다. 서른 즈음에 회사를 그만두고 출판사와 헌책방에서 직원으로 일하다 2007년에 ‘이상한나라의헌책방’ 이라는 이름으로 가게를 열어 지금까지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활자중독이다 싶을 정도로 책에 빠져 살았다. 하지만 책 읽기 기준은 까다롭지 않아서 기억에 남을 만한 멋진 첫 문장과 깔끔한 마지막 문장을 발견하면 그것도 절반의 성공이라 믿는다. 헌책방 일을 하는 틈틈이 여러 곳에 글을 쓰고 강연도 다닌다. 지은 책으로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심야책방》,《침대 밑의 책》,《헌 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책이 좀 많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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