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사막에서 나는 무엇을 먹었나
김연수의 여행 에세이
나는 고개를 들어 거기 천장에 매달린 것을 다시 한 번 쳐다봤다. 혹시 캄캄해서 타이어가 매달려 있는데 잘못 본 것인가 싶어서. 그러나 거기 매달린 것은 틀림없이 말린 고기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오물오물…, 오물오물…, 끝이 없었다.
PHOTOGRAPH : LEE CHUN-HEE
고비사막에서 나는 무엇을 먹었나
지금 이런 얘기를 꺼낼 때가 아니라는 걸 잘 알지만, 언젠가 먹은 낙타 고기가 여태 잊히지 않는다. 그 고기를 먹은 건 한 방송사의 여행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찍으려고 간 몽골의 고비사막에서. 사전에 받은 일정표에는 실크로드의 눈 푸른 상인처럼 낙타 타고 사구를 오르내리는 이국적인 장면을 찍는 게 있긴 했지만, 내린 뒤에 그놈을 잡아먹는다는 계획 같은 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막상 그 장면을 찍은 뒤, 모래 위로 다시 내려오니 마음이 이상해졌다. 낙타가 무척 맛있게 보였다기보다 가만히 앉아서 노을을 바라보는데 노랫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내 앞에서 관광객이 탄 낙타들을 이끈 사람은 덩치가 큰 몽골 처녀였다. 아버지를 비롯해 모든 가족이 낙타 투어 일을 하는 집, 그러니까 낙타 몰이네 딸이었다. 목소리가 하도 구성지기에 가사를 물었더니 자신은 고비가 좋아 고비에 산다는 내용이었다.
그 노래를 들으며 비스듬히 모래 위로 드리워지는 노르스름한 햇살을 보고 있노라니 여행자의 향수가 밀려들었다. 처음부터 나는 몽골에서 산 것 같은 착시 현상이 들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야릇한 느낌 말이다. 노래를 들으며 모래 위에 드러누웠더니 완전한 해방감, 자유의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은 나를 둘러싼 세계가 너무나 생생할 때 느껴진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노래에 반해 그날 저녁 예정에 없이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물론 집이라는 건 게르(ger, 유목민의 주거용 천막)를 뜻했다. 우리가 도착하자, 그녀의 어머니는 자루에서 밀가루를 꺼내 물을 붓더니 반죽을 빚으며 저녁을 준비했다. 촬영하느라 카메라 조명이 환했지만, 본래 게르 안에는 발전기로 켜지는 백열등만 달려 있는지라 평소에는 꽤 어두울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게르의 굴뚝이라 할 수 있는 터너(toono) 쪽이 밝은 실내와 대조적으로 어두침침했다.
PHOTOGRAPH : OKSANA PERKINS/FOTOLIA
어둠 속에서 노파는 밀가루 반죽을 납작하게 빚어 여러 번 만 뒤, 칼로 잘랐다. 칼국수였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터너 쪽으로 손을 뻗었다. 노파는 칼로 거기 매달린 뭔가를 조금 떼내서는 도마에서 잘게 자른 뒤 냄비에 넣고 화덕에서 끓이기 시작했다. 냄비가 다 끓자, 그녀는 잘라놓은 국수를 냄비에 넣었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국수 제조 과정이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터너 쪽에 매달린 물체였다. 내놓은 국수를 보니, 그건 고기였다. 게르에는 고기를 보관할 냉장고가 없기에 말려서 보관하다가 이런 식으로 물에 불려 먹는다고 했다. 고기가 들어갔기 때문에 국수 맛은 나쁘지 않았다. 무슨 고기냐고 물었더니, 낙타 고기라고 했다. 호기심이 생겨 국수 사이에 있는 고기를 집어 낼름 입에 넣었다.
그 맛을 글로 표현하자면, 음, 오물오물…, 오물오물…, 오물오물…, 이었다고나 할까? 단지 ‘질겼다’라고만 말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입안에 넣고 씹고 씹고 또 씹어도 그 고기는 처음의 형태로 되돌아가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거기 천장에 매달린 것을 다시 한 번 쳐다봤다. 혹시 캄캄해서 타이어가 매달려 있는데 잘못 본 것인가 싶어서. 그러나 거기 매달린 것은 틀림없이 말린 고기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오물오물…, 오물오물…, 끝이 없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노파가 그 고기에 대해 설명했다. 말이 낙타지, 어릴 때부터 식구처럼 함께 지내던 낙타였다. 낙타는 살아 있을 때는 날마다 젖을 주고, 사람을 태우고 사막을 건너며, 밥 지을 때 쓰는 똥을 싼다. 살아생전에도 어디 하나 쓸모 없는 구석이 없었는데, 죽고 나서도 식구들이 먹을 고기가 된다니 참으로 살신성인, 아니, 살신성낙타가 따로 없는 셈이다. 그렇게 그들과 20년 가까이 산 그 낙타는 작년에야 병으로 죽었다고 노파가 말했다.
그런데, 잠깐. 뭐라고요? 그때까지 입을 오물거리던 나는 생각했다. 병으로 죽었다고요? 그러니까 지금 입안에서 처음의 형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이 고기가? 그 말을 듣고도 입에 든 고기를 뱉지 못한 건 무엇보다 그 낙타가 진짜 식구였던 것처럼 말하는 노인의 얼굴 때문이었다. 그 표정에는 묘한 느낌이 있었다.
낙타 고기의 맛에 대해 설명하기 어려운 것처럼, 그 묘한 느낌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오랫동안 함께 지낸 동물의 삶을 기리는 일종의 제의처럼 느껴졌다. 물론 잠깐 머물다가 떠나는 여행자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 즈음이 되자 어쨌든 입안의 고기는 이제 삼킬 만한 정도가 됐고, 나는 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낙타 고기를 목 너머로 넘길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사막의 낮과 밤은 구성진 노래와 낙타 고기로 완성됐다.
한국에 돌아와서 몇 년이 지났으니 이제 그 일이 아득하기만 하다. 한국 전체가 메르스로 홍역을 치르고 있으니, 앞으로 낙타 고기를 자진해서 먹을 한국인은 없겠지.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고. 어쩌면 하나의 제의 같던 그 느낌은, 이제 다시는 낙타 고기를 먹지 못하리라는 예감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김연수는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며 쉬지 않고 소설과 에세이를 발표하는 부지런한 소설가다. 그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를 통해 꼭꼭 숨겨두었던 특별한 여행의 추억을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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