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삶에 연민과 동정을 느낀 이유
『사기 열전』 개정판 펴낸 김원중 교수
동양 고전의 독법이 많이 있겠지만 저는 원전에 충실하게 번역이 잘 되어 있고 역자의 의도나 해설이 지나치게 개입되지 않은 책을 골라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원전 그 자체이지 해설은 원전의 근사치에 미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김원중 교수의 『사기 열전』이 전면 개정되어 민음사에서 다시금 출간됐다. 2011년 개인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사기』 전권을 완역해 낸 김원중 교수는 『사기』 전권을 아울러 비교하며 이전에 번역되어 있던 『사기 열전』을 재점검하고 보완하여 번역의 통일성과 정확성을 한층 높였다.
『사기』 130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열전 70편은 수많은 인재들의 활약상이 돋보이는 명편이 특히 많은데,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근본적 문제에 대한 통찰력을 던져 주기에 독자들에게 주는 감동의 진폭도 더욱 크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번역의 전면적 보완뿐 아니라 편집 면에서도 변화를 주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나라, 춘추 시대, 전국 시대, 초ㆍ한 주요 격전지 지도를 삽입했으며 본문과 오가며 읽기 편하도록 주석을 각주로 바꾸었다. 또한 주요 장면을 표현한 옛 삽도를 첨부해 각 편을 한층 흥미롭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2007년 민음사 판 『사기 열전』이 나왔고, 2011년에는 『사기』를 완역하셨는데 이번에 개정판을 내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요? 말하자면 다시 『사기 열전』으로 돌아간 이유가 무엇인지요?
제 『사기 열전』 초판이 1999년에도 나왔던 터라 이번이 8년 만에 내는 전면 개정판입니다. 그사이 부분적인 수정을 해서 낸 적이 있으나 이번에는 대대적으로 개정한 것이 다릅니다. 아무래도 『사기』의 백미이기도 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인물들이 대거 실려 있는 『사기 열전』이 가장 매력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차적 이유입니다. 물론 곧이어 『사기본기』와 『사기세가』의 개정판도 낼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16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완역을 진행하다 보니 각 편들 사이에 번역의 간극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컨대 오랫동안 번역 작업이 이루진 데서 오는 해석의 어긋남 문제와 원전 상호 간에 존재하는 어감이나 문맥의 문제 말입니다. 가령 「오자서 열전」은 「월왕 구천 세가」와 연결되고 「여불위 열전」이나 「이사 열전」은 「진시황 본기」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마천이 이들 각 편을 다루는 시각이나 관점에 조금씩 차이를 두기는 했지만, 이들 편 사이의 상호 연관성에 바탕을 둔 번역이 이루어져야만 방대한 분량인 『사기』의 통일된 번역이 이루어질 수 있겠지요. 물론 어색한 표현이나 잘못된 번역 등을 대대적으로 수정하고자 했습니다. 거의 20년 가까운 시간이 되니 제가 『사기』를 대하는 눈도 바뀌어 가는 듯하고요.
그리고 그사이 제가 번역한 『논어』나 『손자병법』, 『한비자』 등과도 긴밀한 연계가 있다는 점도 큰 이유입니다. 「중니제자 열전」은 『논어』의 축약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해당 원문이 거의 그대로 드러나 있는데, 이번 개정 작업에서 제가 『논어』를 연구하며 번역한 결과를 반영하여 대폭 수정하고 바로잡았던 것이 그 예입니다. 물론 제 개정판 『사기 열전』이 완성본이라는 생각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니까 말입니다.
그 방대한 분량을 수십 번 읽어 가며 계속해서 다듬을 만큼 『사기』에 애정을 갖게 된 계기, 혹은 『사기』만이 가진 매력은 무엇인가요?
조선 중기 시인인 김득신이 무려 1억 번 이상 읽었다는 「백이 열전」만 봐도 불과 1000자가 안 되는데 10여 명의 인물이 다루어져 있습니다. 그 중 백이에 대한 기록은 겨우 215자이고 나머지는 사마천이 세상에 던지는 질문, 즉 하늘의 도인 천도(天道)가 과연 옳은가 그른가에 대한 시비로 시작됩니다. 저는 공자가 백이와 숙제에 대해 “인(仁)을 구하여 인을 얻었다.”라고 한 말에 대해 사마천이 의문을 제기하고 그 나름의 시각으로 재평가하는 사마천의 용기에 대해 대단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 이래서 김득신이 그토록 많이 읽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지요. 백이가 살던 시대도 그렇고 결국 세상살이란 것이 반드시 선한 사람이 복을 받는 것만은 아니구나, 그건 그만큼 삶의 여정이 복잡한 권력 구조 속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고요. 중국 어떤 고전 중에서 이토록 인간의 복잡한 양상을 섬세하게 다룬 책이 있을까요? 저는 단언하건대 없다고 봅니다. 어떤 사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어떤 사람은 최고의 자리에서 한 순간에 몰락하고 어떤 나라는 좋은 조건인데도 망했고 그 반대의 경우는 흥하고, 이런 것들이 두루 다 들어 있는 처세의 지침서요, 인간학의 교과서가 바로 『사기』 아닙니까? 인간 삶의 거의 모든 것이 총망라되어 있어 늘 읽을 때마다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책이 바로 『사기』입니다.
『사기 열전』 번역 작업을 하신 지 벌써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는데 긴 세월 『사기』를 대하는 마음가짐이나 읽으면서 느끼는 감흥은 어떤지요?
20대와 30대 초 대학에 들어가 석박사 과정을 밟는 동안 『사기』를 읽으면서 원전의 깊은 맛에 사로잡히고 사마천의 삶에 연민과 동정을 느꼈습니다. 결국 사마천이 그려 낸 인물들에 대해 강한 매력을 느껴 시작된 『사기』 완역 작업은 사마천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과정이자 제 인생의 핵심 축이기도 했습니다. 사마천의『사기』 집필 시간과 제가 번역에 매달린 시간이 거의 오버랩됩니다. 늘 새벽 3시에 일어나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채 홀로 고전 번역과 연구를 한 지도 30년 가까운 세월이 되어 갑니다. 물론 다른 분들도 다 그러시겠지만, 하나의 목표를 정해 두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 우직함이 제가 갖고자 하는 마음가짐입니다.
재작년 사마천의 고향이요 그의 사당이 있는 한성(韓城)이란 곳을 가서 거대한 사마천의 동상과 측백나무 다섯 그루가 심어져 있는 그의 무덤을 보면서 역사의 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마천의 숨결을 느껴 보았습니다. 130편에 달하는 『사기』는 글자 수만 해도 52만 6500자나 되는 방대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사마천은 중국 전역을 답사하면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 탐문하고 자료를 찾으면서 믿을 만한 이야기든 의심 나는 이야기든 충실하게 기록해 남겼어요. 그럼에도 중국의 24사(史)의 그 어떤 정사보다 분명한 스탠스를 유지하면서 인물을 통찰하고 역사를 평가해 나갔으니 사마천의 내공이 보통이 아닌 거지요. 저 역시 사마천처럼 엄밀하고도 꼼꼼한 집필 정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궁형이라는 치욕을 당한 사마천은 자칫하면 평생 동안 눈물이나 삼키면서 세상을 저주하며 살 수도 있었던 사람 아닙니까? 그러나 그는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라는 편지글에서 “하루에도 창자가 아홉 번씩 끊어지는 듯하고 집 안에 있으면 갑자기 망연자실하고 집 밖을 나서면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지 못합니다. 매번 이 치욕을 생각할 때마다 땀이 등줄기를 흘러 옷을 적시지 않는 적이 없습니다.”라고 표현할 정도의 처절한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채찍질하고 담금질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저로 하여금 늘 힘겨울 때마다 감동하게 만드는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사마천이 다소 긴 이 편지 속에서 열아홉 차례나 ‘욕(辱)’이란 글자를 쓰고 있는 데서 사마천의 『사기』야말로 이 욕됨을 승화시킨 위대한 인간 승리의 결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사마천의 삶에서 탄생한『사기』또한 그 안에 담긴, 역시 험준한 시대를 살다 간 인물들의 삶이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합니다. 가진 것이 많았어도 성공하지 못한 자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거대한 족적을 남긴 자들도 적지 않으며, 또 많은 이들이 수성에 성공하지 못해 힘들게 쌓아 올린 탑을 모래성 무너지듯 무너뜨린 경우도 보면서 타고난 능력과 자질 못지않게 자신이 몸담은 세상에서 올바르게 처신하는 자세도 중요한 것임을 다시금 깨닫는 계기를 주는 책이지요. 특히 『사기 열전』이 그러하고요.
그리고 큰 맥락에서 보면 초심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도 사마천이 열전을 통해 일관되게 전하고자 하는 말씀이 아닐까 합니다. 제아무리 용기와 배짱을 지니고 있더라도 늘 겸허함을 지니고서 자신을 낮추며 세상의 흐름을 살펴보아야 하는 냉철함이 필요하다, 단순히 승부사적 기질만 갖고 무모한 사마귀처럼 앞만 보고 돌진하려는 자는 도리어 쉽게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 줍니다. 바로 「회음후 열전」에서처럼 말입니다. 회음후 한신은 자신의 뛰어난 재능만 믿다가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했지요.
이런 감동은 저뿐 아니라 독자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느끼실 수 있을 듯합니다. 어렸을 때 읽는 것과 나이를 먹어 가면서 읽는 것은 아마 그 진폭의 차이나 울림이 차원이 다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점이니까요. 두고두고 몇 번씩 읽더라도 『사기 열전』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는 혜안을 제시해 줄 겁니다.
『사기 열전』에서 가장 좋아하는 편이나 인물을 소개해 주세요.
다 소중한 편들인데 하나를 꼽는다는 것은 너무 가혹합니다. 그럼에도 처음 떠오르는 인물들을 꼽자면 「이사 열전」에 나오는 이사라든지 인물의 중요성을 미리 알아보고 키운 거상 여불위 등이 있습니다. 이사는 진시황 아래 재상이 된 사람인데 본래는 초나라 출신으로 쥐 두 마리를 통해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일화가 나옵니다. 변화무쌍한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고는 과감히 초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가서 진시황을 도와 무려 22년간이나 2인자로서 진나라의 모든 시스템을 완성하고 개혁을 진두지휘한 사람입니다. 여불위는 거상이었는데 왕위 서열에서 멀었던 진시황의 아버지가 재목임을 미리 알아보고는 그를 도왔고 훗날 진시황이 황제로 등극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 장본인이죠. 그의 의도는 결코 순수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가 세상을 향해 보여 준 통찰력과 시대의 흐름을 꿰뚫는 안목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리고 이들 못지않은 인물이 바로 한비자입니다. 「노자 한비 열전」에 등장하지요.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한비자는 진시황의 사상적 틀을 제공한 아주 결정적인 인물 아닙니까? 한비자는 진시황의 진나라가 전국 시대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법가라는 사상적 체계를 완성합니다. 진나라를 건설하고 확립하는 데 한비자의 사상이 주춧돌 역할을 했단 말이죠. 말하자면 순자 문하의 두 제자, 한비자와 이사가 진나라의 시스템을 구축한 셈입니다.
이들의 이야기에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이사를 보면, 그는 결과론자요 기회주의자의 면모가 강해 결국 진시황의 유서를 위조하는 데 동참합니다. 진시황에게 그토록 충성했던 사람이었는데도 말이죠. 이런 인간의 이중적 면모가 『사기』를 읽는 묘미입니다. 이사가 진시황 시절 이룩한 업적들은 오늘날의 어떤 지도자도 쉽게 할 수 없는 거대한 프로젝트였습니다. 그것을 진두지휘해 나간 이사는 용기와 기백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환관의 말에 휘둘려 초라한 말년을 겪고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것은 참 아이러니하지요.
한편으로 좋아하는 편을 꼽자면 「화식 열전」이 있습니다. 사농공상의 서열 사회 속에서도 차별을 두지 않고 돈 불리는 방법이나 돈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소위 경영학 원론으로 삼아도 좋을 만큼 탁월한 현실감각을 보여 주고 있어요. 이 편에 등장하는 돈 벌기와 돈 쓰기의 달인 범려란 인물이 마음에 들기도 합니다.
현재 여러 가지 이슈로 혼란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에 도움이 될 만한 구절을 『사기 열전』에서 인용하신다면?
글쎄요. 지금부터 2000여 년 전에 사마천이 고민했던 문제들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역사의 인물들이 그 시대의 과제를 풀기 위해 언급했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늘도 계속 반복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당시 성현들이 보여 주었던 성찰의 지혜는 지금 이 시점에 봤을 때도 여전히 의미가 있고 『사기 열전』은 더욱 그렇기 때문에 계속 읽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이슈가 혼재하지만 저는 우리 대한민국이 좀 더 성숙해지고 선진 국가로 가기 위한 진통을 겪고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역사의 격동기, 흥망기에 살다 간 『사기 열전』 속 인물들은 때론 힘겹고 때론 고통스러웠지만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굳게 나아간 자들은 거의 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었다는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몇 구절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요즘 시대에 들어서면서 하는 행동은 규범을 따르지 않고 오로지 법령이 금지하는 일만을 일삼으면서도 한평생을 편안하게 즐거워하며 대대로 〔부귀가〕 이어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걸음 한 번 내딛는 데도 땅을 가려서 딛고, 말을 할 때도 알맞은 때를 기다려 하며, 길을 갈 때는 작은 길로 가지 않고, 공평하고 바른 일이 아니면 떨쳐 일어나서 하지 않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나는 매우 당혹스럽다. 만일 〔이러한 것이〕 하늘의 도라면 옳은가? 그른가?”(「백이 열전」)
사마천이 세상을 향해 던진 질문인 동시에 우리도 늘 생각하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소자가 영민하지는 못하나, 아버님께서 순서대로 정리해 두신 옛 문헌들을 빠짐없이 모두 논술하겠습니다.”(「태사공 자서」)
사마천이 아버지의 죽음을 앞두고 한 말입니다. 아버지 사마담은 “내가 죽거든 너는 반드시 태사가 되어라. 태사가 되거든 내가 하고자 했던 논저를 잊지 말아야 한다. 무릇 효도란 부모를 섬기는 데서 시작되며, 그다음은 임금을 섬기는 것이고, 마지막은 자신을 내세우는 데 있다. 후세에 이름을 떨침으로서 부모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 효도의 으뜸이다.”라고 하면서 역사 서술의 당위성을 언급했습니다. 그러자 사마천이 울면서 아버지에게 약속했고 바로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불명의 역사서를 완성했습니다. 저는 가끔 우리 대한민국이 효의 기본, 부모와 자식 간의 인간 정서가 무너지려고 한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요. 이 말처럼 부모님께 효도하는 마음이 아니었다면 과연 『사기』가 완성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태산(太山)은 흙 한 줌도 양보하지 않으므로 그렇게 높아질 수 있고, 하해(河海)는 작은 물줄기 하나도 가리지 않으므로 그렇게 깊어질 수 있으며, 왕은 어떠한 백성이라도 물리치지 않으므로 자신의 덕을 천하에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이사 열전」)
“속담에 ‘100리 먼 곳에 나가 땔나무 장사를 하지 말며, 1000리 먼 곳에 나가 양식을 팔지 말라.’라고 했다. 또 〔어떤 곳에〕 1년을 머물려 하거든 곡식을 심고, 10년은 나무를 심으며, 100년은 덕을 베풀어야 한다. 덕이란 인재를 두고 하는 말이다.”(「화식 열전」)
이 두 구절은 결국 인재를 과감히 받아들이고 인물을 키우라는 말입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도 한 인물을 키우는 데 얼마나 많은 힘과 노력이 필요한지 설명해 주는 말이 아닐까요? 뛰어난 인물들에게 능력을 기울일 여건을 마련해 주고 능력 발휘를 보장해 주는 것이 바로 100년 대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꾸준하게 동양 고전을 번역해 내고 계신데 앞으로 어떤 책들을 작업하실 예정인지요?
지금까지 『사기』, 느낌표 선정도서이도 한 『삼국유사』를 비롯해 주요 동양 고전들인 『논어』, 『노자』, 『한비자』, 『손자병법』, 『정관정요』 등을 번역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주요 고전들에 대한 번역 작업은 계속할 것입니다. 기존에 번역되어 있던 책이라고 해도 제 관점에서 다시 보고 해설과 각주 등 번역의 원칙에 충실하여 이 땅의 고전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작업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다만, 한 가지 양해를 구할 점은 저는 책으로 나오기 전에는 그 누구에게도 작업하는 내용이나 방향을 얘기하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하므로 구체적인 후속 작업에 대해서는 밝히지 못하는 걸 너그럽게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늘 1년에 1~2권 정도 고전을 번역하고 연구해서 낼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씀만 드립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독자들에게 좀 더 친근하면서도 원전의 품격을 잃지 않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살릴 수 있는 책을 선보인다는 약속만은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서양 고전에 비해 동양 고전을 더 어렵게 느끼는 독자들이 많은 것 같은데요.『사기』에 어떻게 접근하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지 조언해 주세요.
동양 고전의 독법이 많이 있겠지만 저는 원전에 충실하게 번역이 잘 되어 있고 역자의 의도나 해설이 지나치게 개입되지 않은 책을 골라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원전 그 자체이지 해설은 원전의 근사치에 미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물론『사기』도 예외일 수 없고요. 다만, 역자가 객관적으로 풀어 쓴 해제 등을 통해 해당 고전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나 배경을 살펴보는 것은 유익하겠지요.
그리고 다시『사기 열전』 을 가지고 말씀 드린다면, 이 책은 모두 70편인데 하루에 1편 정도만 읽으면 석 달이면 다 읽을 수 있습니다. 주마간산 격으로 읽지 말고 천천히 곱씹어 음미하면서 읽어 보세요.
또 이 말도 덧붙이고 싶습니다. 사기열전은 아무 데나 펼쳐 놓고 그 어떤 편을 읽어도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이죠. 그 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백이 열전」, 「관안 열전」, 「손자 오기 열전」, 「오자서 열전」, 「소진 열전」, 「장의 열전」, 「인상여 열전」, 「이사 열전」, 「여불위 열전」, 「맹상군 열전」, 「자객 열전」, 「회음후 열전」, 「골계 열전」, 「화식 열전」 등이 『사기』나 동양 고전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흥미로울 듯합니다. 이런 편부터 읽으면서 점점 우리에게 덜 알려진 편이나 인물들을 알아 가는 것이 좋겠지요.
사기열전사마천 저/김원중 역 | 민음사
『사기』 130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열전 70편은 수많은 인재들의 활약상이 돋보이는 명편이 특히 많은데,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근본적 문제에 대한 통찰력을 던져 주기에 독자들에게 주는 감동의 진폭도 더욱 크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번역의 전면적 보완뿐 아니라 편집 면에서도 변화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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