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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많은 일을 하는 현대인

『타임 푸어』 브리짓 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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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푸어』는 이 모든 경험과 사회학, 심리학 등의 최신 연구를 토대로 한 책이다. 스트레스가 우리의 삶을 조각조각 찢어 놓았음을 보여주고 그 찢어진 조각들을 어떻게 하면 다시 붙일 수 있는지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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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의 유능한 기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브리짓 슐트. 그녀에게는 항상 해야 할 일투성이다. 마감에 쫓겨 기사를 쓰다 보면 아이를 학교에서 데려올 시간이 되고, 아이에게 저녁을 차려주다 보면 중요한 인터뷰 약속 시각이다. 그녀는 자신을 억누르는 ‘타임 푸어’ 상황에 “더는 이렇게 못 살아!” 백기를 든다. 그리고 잃어버린 삶과 시간을 되찾기 위해 기나긴 탐구를 시작한다. 유명한 시간 연구가를 통해 자신의 생활을 점검하고, 고대 그리스인들이 제안한 ‘좋은 삶’의 모습을 살펴보며, 우리에게 가해지는 ‘시간 압박’이 건강과 뇌에도 치명적이라는 이야기를 예일대학교와 오하이오주립대학교의 과학자에게 듣는다.

 

파리에서 열린 ‘시간활용 학술대회’에 참석해 타임 푸어가 전 세계적인 현상임을 확인하고, 미국의 대통령 후보였던 팻 뷰캐넌과 국방성의 차관이었던 미셸 플루노이, 세계적인 사회학자와 인류학자를 만나 ‘정치’와 ‘이념’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왜곡했는지 깨닫는다. 나아가 ‘균형 잡힌 삶’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고자 직장과 가정, 여가 사이의 균형을 꾀하는 기업인과 사회 운동가를 만나고, 통계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여유롭게 사는 나라’인 덴마크를 찾아가 그곳의 삶을 엿본다.

 

에밀리 앤셀은 “시간 압박은 뇌를 수축시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정말 놀랐습니다. 스트레스가 뇌를 수축시킬 수도 있다니! 더 놀라웠던 건 수축된 부위가 전전두엽이라는 사실입니다. 전전두엽은 인류의 뇌에서 가장 나중에 진화한 부분이거든요. 우리가 생각하고, 학습하고, 기억하고, 결정을 내리는 일을 관장합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부분인 셈이죠. 전전두엽은 편도체의 활동을 통제하는데, 편도체는 공포, 당황, 불안과 같은 감정을 처리합니다.

 

저는 그런 연구 결과가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시간에 쫓기면서 스트레스를 잔뜩 받으면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자제력을 잃곤 하잖아요. 만사가 재미없고 절망적이라는 느낌도 들고요. 이게 다 편도체의 작용입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뇌가 작다는 연구 결과도 있는데, 이건 후속 연구가 더 필요하긴 합니다.
 
저에게 인상적이었던 건 사람의 정신이 굉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겁니다. 스트레스가 될 만한 일을 겪었지만 자신이 스트레스에 짓눌렸다고 느끼지 않은 사람들은 뇌의 회백질이 더 두꺼웠다고 해요. 우리의 사고방식도 중요하다는 겁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고, 두뇌의 크기처럼 물리적인 부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는 겁니다.

 

『타임 푸어』에서 저는 ‘시간 압박’의 근본 원인을 파헤치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가 왜 지금처럼 살고 있을까?’라는 질문이었죠. 나아가 저는 기자로서의 능력을 활용해서 넓은 시야를 가지고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상황을 개선할 방법은 무엇일까? 저는 해법을 찾고 싶었고, 현실 속의 긍정적인 사례도 찾아보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저 자신에게 꼭 희망이 필요했기 때문일 거예요!

 

그런 점에서 브리타 홀젤을 비롯한 하버드 대학 신경과학자들의 연구는 매우 희망적이었습니다. 끊임없는 걱정, 불평, 비판, 할 일들의 목록에서 벗어나 하루에 27분만 머릿속을 비우고 고요한 시간을 보내면 된다는 겁니다. 현재에 충실한 시간이요. 마음챙김 명상이라고 표현해도 좋아요. 그렇게만 해도 우리의 뇌에서 자존감, 공감능력, 감정 조절에 관련된 영역들이 커진다는 겁니다.

 

멋지지 않나요? 우리는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적어도 몇 달 동안 어딘가로 훌쩍 떠나서 명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하루에 딱 27분만 마음챙김을 하면 된다는 겁니다. 그 시간만은 편안한 마음으로 현재에 집중하고, 지금의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이상적인 노동자’와 ‘이상적인 엄마’라는 보이지 않는 규범 때문에 늘 쫓기며 사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공’에 대한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성공의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현대인에게 성공의 기준은 돈과 직업과 지위입니다. 우리가 잊고 있는 건, 사람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다른 사람과의 연계를 토대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최신 과학의 연구로도 그게 입증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직관적으로는 누구나 그걸 알고 있겠지만요. (우리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도 된다는 허락을 받기 위해 과학의 힘을 빌려야 한다니, 참 이상한 일이죠.)


더 많은 수입, 승진, 지위 상승. 그게 다 뭘 위한 걸까요? 우리는 어디로 그렇게 급하게 달려가는 걸까요? 최종 목표가 뭐죠? 20세기 후반은 경제 성장과 생산성 향상의 시대였지만, 로버트 F. 케네디가 했던 말처럼 GNP에는 우리의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들이 빠져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건강, 아이들의 교육의 질, 놀이의 기쁨…… 시의 아름다움, 행복한 결혼생활, 사회적 토론의 수준, 공무원들의 성실함…….” 저는 모든 정치인이 이 문구를 책상 앞에 붙여두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겐 ‘성공’에 관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합니다. 사람들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의미를 추구하고, 우리 자신의 건강과 공동체와 환경을 위해야 성공이죠. 우리는 사색할 시간을 가져야 하고, 노동의 결실을 충분히 즐겨야 합니다. 단순히 돈을 더 벌기 위해, 일이 먼저인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끝없는 노동에 파묻히는 건 사양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바쁘다거나 쫓긴다고 느끼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기술의 발달도 그 중 하나죠. 첨단기술 때문에 24시간 일에 매여 있기도 하고, 가상세계에 중독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들어오는 정보가 너무 많으면 우리는 피곤해지고 압박을 느낍니다.

 

기업이 원하는 ‘이상적인 노동자’의 기준이 점점 높아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기업은 일찍 출근하고, 자기 자리에서 점심을 후다닥 먹어치우고, 야근을 하고, 말만 떨어지면 출장을 떠나는 노동자를 선호해요. 그게 헌신과 책임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런 환경을 만드는 리더들은 사실상 직원들을 피로하고, 무기력하고, 업무의 질이 저하되는 상태로 밀어 넣고 있는 겁니다. 실제로 미국, 일본, 한국처럼 선진국이면서도 노동시간이 긴 나라들에서 설문조사를 해보면 사무직 노동자의 90퍼센트 정도가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답합니다. 신경과학 분야의 최근 연구들도 우리에게 중요한 게 뭔지를 알려주고 있어요. 휴식을 취하고, 긴장을 풀고, 일상적인 업무에서 벗어나 자신의 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게 정말 중요해요.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기가 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를 알아야 해요. 비즈니스 용어로 표현하자면 ‘전략적 사고’가 되겠죠. 우리의 뇌는 업무에 매달리고 있지 않을 때 새로운 통찰이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는 일을 너무 많이 합니다. 퇴근 후에 집에 와서도 낡은 성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생을 합니다. ‘이상적인 노동자’가 직장의 요구에 항상 응하는 것처럼, ‘이상적인 엄마’는 아이들의 요구를 항상 들어줘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하죠. 자기를 희생하고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며 사는 거라고요.

 

하지만 실제로는 누구도 그렇게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도 없고요. ‘이상적인 노동자’라는 틀에 갇혀버린 남자들은 일, 사랑, 놀이라는 삶의 3가지 영역 모두에서 자기를 계발할 시간을 원합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들은 수백 년 전부터 집안일과 육아의 굴레에 매여 살아왔지만, 여자들 역시 삶의 사적 영역뿐 아니라 공적 영역에도 참여하기를 원합니다.

 

‘엄마들의 전쟁(전업맘 대 워킹맘)’이 벌어지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엄마들의 전쟁’은 시대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이런 변화는 처음이잖아요.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게 당연해요.

 

역사 속으로 가보면 남자와 여자의 역할은 언제나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산업혁명 초창기가 되자 남녀의 역할 구분은 더욱 확실해졌어요. 가족 소유의 농장에서 온 가족이 함께 일하는 대신에 남자들은 집 밖에 나가서 노동을 하고 여자들은 집안에서 가사와 육아를 도맡아 했으니까요. 그러다 경제구조가 변하고 여성운동이 싹을 틔우면서 엄마들도 노동시장에 합류하기 시작했어요. 여자들도 교육을 받고 기회를 얻게 됐죠. 미국의 경우 임금은 정체 상태인데 생계비용은 점점 늘어났기 때문에 경제적인 이유로 맞벌이가 필요해진 가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대대적으로 진입한 후에도 ‘이상적인 노동자’를 요구하는 일터의 구조와 문화는 바뀌지 않았어요. 그래서 남녀 모두 전일제로 일해야만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구조가 됐지요. 남자들은 온종일 고된 일을 해야 하고, 가정생활에 참여할 자유를 박탈당한 셈입니다. 여자들은 온종일 일을 하면서 나쁜 엄마가 됩니다. 혹은 자신의 능력이나 기여도와 무관하게 근무시간을 단축하면서 임금을 덜 받고 각종 혜택이나 승진의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의 일터에서 여자들이 어쩔 수 없이 직장을 나가는 걸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보긴 어렵죠. 여자들도 덫에 걸린 겁니다.

 

여론조사나 면담을 해보면 아직도 어린 아이를 둔 엄마가 밖에서 일한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그런 불편한 마음, 죄책감, 이중적인 감정 등이 ‘엄마들의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죠.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효과적으로 일하는 법’에 관해 토론하는 겁니다. 장시간 노동을 해보면 알겠지만 상당히 많은 시간이 그냥 버려지잖아요. 시간 단위로 생산성을 측정해본다면 어떨까요? 국제비교에 따르면 법에 의해 노동시간이 짧게 규정된 노르웨이와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 노동자들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높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잇는 시간을 잴 것이 아니라 실제 처리하는 업무를 기준으로 하고, 생산성과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어떨까요? 그러면 남녀 모두 시간 압박에서 벗어나 의미 있는 일에 집중하고, 노부모를 돌보기도 하고, 배우자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장기적으로는 ‘엄마들의 전쟁’도 끝낼 수 있을 겁니다.

 

팻 뷰캐넌이 “우리에겐 아이가 없었소”라고 말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놀라지 않았답니다. 미국의 정치권에서는 일-가정 양립의 스트레스와 긴장에 관해 솔직한 대화가 이뤄진 적이 없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요 직책에 있던 남성 정치인들이 일과 가정의 긴장을 느끼거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지 않았기 때문이죠.

 

미국 정치인과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전업주부 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지금도 전업주부 아내와 살고 있습니다. 아직도 1950년대식의 ‘이상적인 노동자-이상적인 엄마’로 이뤄진 가정에서 생활하는 셈이죠.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아요. 상당수 아이들이 맞벌이 가정, 또는 부모 중 하나가 홀로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가정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경험과 나머지 사람들의 경험이 크게 다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분노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정치인들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관념이 널리 퍼져 있죠.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너무 바빠요. 장시간 근무에 시달리면서도 최대한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보내려고 애쓰고,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지요. 그래서 그들 스스로 선거에 출마하거나 정치적인 발언을 할 여유가 없습니다.

 

변화는 이제 시작 단계예요. 정치인들도 자신들이 일-가정의 양립 문제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고 있어요. 일-가정 양립은 ‘엄마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지치고 무관심해지고 가족의 유대가 약해지는 사회적 현상의 일부입니다. 일-가정 양립은 비즈니스, 혁신, 생산성, 건강, 행복에 두루 영향을 미칩니다.

 

한국의 주부들 역시 가사노동의 분담이 공평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날까요? 생물학적 요인도 있을까요.

 

가사노동의 불공평한 분담은 성역할과 기대치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통증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혼란스러운 게 당연해요. 남편과 저는 결혼할 때부터 평등하게 생활하자고 약속했습니다. 둘만 있을 때는 꽤 잘 해냈죠. 그런데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 제 머릿속에서 1950년대의 고리타분한 영화필름이 돌아가는 거예요. 아이는 제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편도 그렇게 생각했죠. 여자니까 저에게는 타고난 모성본능이 있을 거라고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저는 아이들과 관련된 모든 일을 혼자 책임지고 있었어요. 항상 화가 나 있었고 항상 누군가를 원망했어요.

 

이 책을 쓰면서 제가 가장 놀랐던 게 뭔지 아세요? 모성본능이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에요. 과학자들은 남자들 역시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자녀 양육을 잘 하기 위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물론 생물학적 차이는 있지만 자녀 양육과 돌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시간’이에요. 여자들은 아기를 돌볼 시간이 남자들보다 많았기 때문에 아기의 울음소리나 보채는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된 거죠. 여자들은 출산휴가를 길게 쓰지만 남자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래서 아이슬란드에서 나온 연구들을 보면 아주 흥미로워요. 아빠들에게 ‘시간’을 주면 그들이 자신감과 능력을 키워서 최고의 양육자가 된다는 겁니다.

 

아빠들은 뭐든지 자기만의 방식대로 하려고 하죠. 여자들은 그걸 사사건건 비판하고 지시하려 하지 말고 남자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여자들이 잔소리를 심하게 할수록 남자들은 위축되기 때문에 결국 여자들이 모든 일을 하게 됩니다. 

 

변화는 가능합니다. 20년 동안 불평등하게 살았던 부부라도 가능해요! 남편과 저는 느긋하게 산책을 하면서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어떤 삶을 꿈꾸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남편도 저도 우리가 전통적인 성역할을 떠맡은 데 대해 불만이 있었던 거죠.

 

우리는 가정에 필요한 모든 역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최소한의 기준도 세웠어요. 그리고 가사를 더 공평하게 나누기 시작했죠. 누군가가 자기가 맡은 일을 하지 않으면(예전에는 남편이 항상 자기가 맡은 일을 안 하는 쪽이었어요) 다른 사람이(이건 저였죠) 뛰어들어 구해주지도 않기로 했어요. 우리는 말다툼과 협상을 계속할 필요가 없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했죠. 아침에 일어나면 제가 식기세척기에서 그릇들을 꺼내요. 남편은 설거지할 그릇을 넣습니다. 남편이 그릇을 식기세척기에 넣지 않으면 저도 가만히 있어요.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돌아올 때까지 그릇들은 싱크대에 그대로 있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제 시간도 존중하고 남편의 시간도 존중하는 겁니다.

 

우리는 성별과 관계없이 각자가 좋아하는 일이나 잘 하는 일을 기준으로 역할을 분담했어요 요즘은 남편이 요리를 합니다. 그이가 음식에 대해서 저보다 까다로운 편이거든요. 저는 청소를 담당해요. 주로 밤에 움직이죠. 남편은 외출을 좋아하기 때문에 장보기 담당입니다. 저는 내향적이고 집에 콕 박혀 있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빨래를 담당해요. 아이들을 병원에 데려가는 일은 번갈아 한답니다.

 

이제 우리는 화가 나 있지 않습니다. 이제야 진짜 파트너 관계가 된 것 같아요. 우리는 집안일에 관한 말다툼을 하는 대신 함께 있는 것 자체를 즐기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냅니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덴마크의 사회와 덴마크 사람들을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북유럽 국가들은 자살률이 높기로도 유명하죠. 북유럽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나라든, 어떤 사회든, 어떤 가정이든, 아니면 개인이든 간에 자신의 현재 위치와 자신이 가진 자원을 가지고 해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다른 환경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 있다면 거기서 배울 점을 찾는 것도 필요하죠.

제가 덴마크까지 날아갔던 이유는 덴마크 남성과 여성이 다른 어느 선진국의 남자와 여자보다 많은 여가시간을 누린다는 연구결과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넉넉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이유를 알고 싶었어요.

 

우리 모두 덴마크로 이민을 가야 한다거나, 덴마크인이 되자는 소리가 아니에요. 덴마크의 인구는 로스앤젤레스의 인구와 비슷하거든요! 하지만 배울 점은 많았습니다.

 

덴마크 사람들이 충분한 여가를 누리는 이유는 그들이 어떤 일과 사랑과 놀이를 원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데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덴마크 사람들도 한때는 장시간 노동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효율적으로 일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어요. 집중도를 높이는 대신 근무시간을 단축해서 일찍 퇴근했지요. 현재 덴마크는 OECD 국가들 중에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최고 수준이에요.

 

덴마크 사람들은 성평등을 중요시해요.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14세가 되면 실과 수업을 들으면서 요리, 아이 돌보기, 집안 손질하기를 배워요. 남자와 여자 모두 출산휴가를 보장받고요. 보육시설도 훌륭하고, 엄마와 아빠 모두가 아이들을 데리러 가죠. 정당과 위원회의 모든 직책에는 남녀 동수의 후보자를 추천하게 돼 있어요. 공적 제도에 관한 신뢰가 높고, 실직이나 파산 등의 위기가 닥쳤을 때 사람들을 돌봐줄 사회안전망이 탄탄합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놀이를 위한 시간, 여유로운 시간, 가족과 자신을 위한 시간을 귀중하게 여깁니다.

 

덴마크가 완벽한 나라라는 말은 아닙니다. 자살률이 높은 건 사실이죠. 하지만 일과 사랑과 놀이를 현명하게 조직해서 사회 구성원들에게 ‘만족스러운 삶’의 기회를 선사한다는 점에서는 배울 것이 많았어요.

 

시간을 통제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고 싶어 하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요령은 무엇인가요?

 

저의 책에서는 구조적인 변화와 개인적인 변화를 함께 서술했습니다. 법과 정책과 사회 분위기도 바뀌어야 하지만 그런 변화는 한 세대 이상 걸릴 수도 있지요. 그래서 ‘시간 압박’을 완화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추구하기 위해 지금 당장 개인적인 차원에서 시도할 수 있는 것도 찾아봐야 했어요.

 

제일 중요한 원칙. 우리는 시간을 ‘관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관리할 수 있는 건 우리의 마음가짐입니다. 기대치와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겁니다. 이것은 저에게 엄청난 발견이었어요. 저는 시간을 들여 사색을 하면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생각해봅니다. 그러고 나서 ‘할 일 목록’에 그 일을 적어 놓고 달력에도 표시해요. 중요한 일을 위한 시간을 먼저 확보하는 거죠. 때로는 그냥 비워놓는 공간도 필요합니다. 사색을 위한 여백이요.

 

사람이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도 원하는 걸 다 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들과 당신이 아끼는 사람들을 위한 시간은 낼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저의 목록을 소개합니다. ‘일, 사랑, 놀이를 위한 시간을 찾는 10가지 방법’입니다.

 

1. 멈추세요. 잠시라도 좋으니 심호흡을 하거나 산책을 하세요. 생각 없는 바쁨의 악순환을 깨주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좋습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새벽 2시에 이 컵케이크를 굽는 게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일인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2. ‘이상적인 ∼’의 압박을 인식하세요. 일터에서 우리는 비인간적인 장시간 근무를 하면서 몸과 마음을 직장에 바치는 ‘이상적인 노동자’를 높게 평가합니다. 가정에서는 자기를 희생하면서 언제나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이상적인 엄마’를 높게 평가합니다. 그 모든 일을 혼자 해낼 방도는 없는데도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엄마의 기준은 어느 시대보다 높아져 있지요.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라는 관념들은 우리의 무의식에서 큰 힘을 발휘한답니다. 무의식적 편견을 넘어서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세요.

 

3. 당신만의 우선순위를 정하세요. 그리고 바쁨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면서 서로를 지지해줄 사람들을 찾아서 네트워크를 형성하세요. 혼자서 생활을 변화시킨다는 건 힘든 일이거든요.

 

4.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생각하세요. 최고의 시간관리 전략이 무엇인지 궁금하다고요? 계획하고, 실행하고, 점검하는 겁니다. 당신이 진짜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요? 현재 당신의 모습은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요? 그 차이를 메울 방법을 찾아보고 실험을 해보세요. 계획하고, 실행하세요. 그러고는 시간을 내서 점검하세요.

 

5. 목록을 던져버리세요. 할 일들의 목록은 당신에게 도움이 되라고 만든 것이지, 당신의 삶을 지배하라고 만든 것이 아니에요. 골치 아픈 일들을 종이에 기록하든가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저장하면서 우리의 뇌에도 휴식을 줍시다. 그리고 당신 자신에게 그 일들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허용하세요. 진짜 당신에게 중요한 ‘할 일 목록’을 만드세요. 당신에게 기쁨을 주는 일, 당신이 우선순위로 설정한 일들을 그 목록에 올려놓고 앞쪽으로 옮기세요. 그 외의 자질구레한 일들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일들에 시간과 에너지의 5퍼센트 이상을 쏟지 마세요.

 

6. 기준을 정하고 가사를 분담하세요. 가장 평등한 사고방식을 가진 부부들도 아기가 태어나면 전통적인 성역할로 회귀하기 시작한다는 조사결과가 있어요. 집안이 굴러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들의 목록을 만들어 공평하게 분담하세요. 50 대 50이 아니어도 좋아요. 남편과 아내 모두 불만이 없어야 해요. 최소한의 기준을 세우고, 자동화하고, 가사 분담의 시스템을 만뜨세요.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게 일했더라도 다시 손대지 마세요. 집안일을 끝내고 나서는(혹은 끝내지 말고!) 가족끼리 재미있는 일을 하세요.

 

7. 시간을 덩어리로 만드세요. 당신의 시간 조각들을 최대한 긁어모아 하나로 만들고,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처리하세요. 집안일, 전화통화 따위도 한꺼번에 몰아서 하세요. 이메일과 SNS는 틈틈이 확인하지 말고 미리 일정한 한도를 정해놓는 게 좋아요. 그리고 사람이 주의를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90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90분 단위로 일하고 휴식을 취하세요.

 

8. 많다고 좋은 게 아닙니다. 일에서든 여타 활동에서든 최적의 지점을 찾으세요. 너무 적어도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너무 많으면 스트레스를 받고 지치거든요. 하루에 윗몸일으키기 20번, 팔굽혀펴기 20번은 어떨까요? 하루 1회 명상하기는 어떨까요?

 

9. ‘놀이’ 계획을 짜세요. 계획에 있어야 실행도 가능해요. 일 중심의 사회에서 놀이와 여가에 대한 시각이 긍정적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우리의 삶에 놀이를 끼워 넣기 위해 별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짧더라도 진짜 휴식이 되는 여행을 떠나세요. 일거리는 가져가지 말고, 전화는 꺼놓으세요. 그러면 아이들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호기심을 발동하고, 산책을 하고, 빈둥거리다 싫증을 내고, 스스로 재미있는 일을 만들어낼 겁니다. 특히 여자들은 늘 목록에 있는 일을 다 끝내고 나서야 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목록의 일은 절대로 끝나지 않아요. 지금 당장 여가를 즐기세요.

 

10. ‘시간 시야’를 좁히세요. 사실 우리가 지구상에 머무르는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노인들에게서 교훈을 얻으세요. 인생이 곧 끝난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으면 오늘이 얼마나 아름다운 하루인지를 깨닫게 된답니다.


 

※ 더 궁금한 점이 있는 한국 독자는 이쪽으로 문의해 주세요!

 

저자 홈페이지 brigidschulte.com
              washingtonpost.com/people/brigid-schulte
페이스북 //www.facebook.com/brigid.schulte

 

번역 : 안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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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푸어 브리짓 슐트 저/안진이 역 | 더퀘스트(길벗)
《타임 푸어》는 이 모든 경험과 사회학, 심리학 등의 최신 연구를 토대로 한 책으로, 출간 즉시 아마존과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타임 푸어》는 스트레스가 우리의 삶을 조각조각 찢어 놓았음을 보여주고 그 찢어진 조각들을 어떻게 하면 다시 붙일 수 있는지 알려주는 지침서이며 ‘사람답게 사는 법’에 대한 힌트를 주는 책이다.



 

[추천 기사]

- 호는 18세기 조선 선비들의 ‘닉네임'
- 김진혁 PD “미니다큐 <5분>, 어? 하는 느낌이랄까요?”
- 서로 미워해봤자 손해인 남녀 관계
- 말이 넘쳐나는 세상에 묵언을 권하다 있어
- 주식투자 실패 경험 있다면, 사모펀드 알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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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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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푸어

<브리짓 슐트> 저/<안진이> 역13,500원(10% + 5%)

“왜 해도 해도 할 일이 줄지 않을까?” 퓰리처상 수상 《워싱턴포스트》 기자, 전 세계의 학자·정치인·기업인과 함께 ‘타임 푸어’를 탈출하다 《워싱턴포스트》의 유능한 기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브리짓 슐트Brigid Schulte. 그녀에게는 항상 ‘해야 할 일’투성이다. 마감에 쫓겨 기사를 쓰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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