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세계여행을!
『한 달에 한 도시』 김은덕·백종민 저자와의 만남
지난 6월 4일, 서울 논현동에서 이들의 삶과 여행이 궁금한 독자들이 김은덕, 백종민 저자를 만났다. 그리고 이야기를 경청하고 이들의 여행에 동참했다.
영화제 스탭 동료로 처음 만났다. 드물게 비혼주의자였던 두 사람은 죽이 척척 맞았다. 한 사람이 연애하자며 말을 꺼냈고 의기투합. 연애를 하면서 서로에 대해 더욱 깊이 알게 됐다.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도 비슷했다. 가치관이나 세계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이 생각하고 있던 결혼(식)의 방식도 같았다. 이럴 수가. 천생연분ㆍ비혼주의자였던 두 사람, 2년의 연애를 거치며 결혼을 했다.
결혼식도 두 사람을 닮았다. 결혼식의 과도한 비용을 들게끔 조장하기도 하는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를 뺀 대안 결혼식. 기름기를 쏙 뺐다. 청첩장 대신 청첩북을 만들고, 예식장 아닌 인도식 레스토랑에서 하객을 맞았다. 웨딩사진, 예물, 예단, 그들에겐 필요하지 않았다. 덧붙여 흔해빠지고 식상한 ‘검은머리 파뿌리’가 아닌 둘만의 ‘결혼선언문’도 만들었다. 김은덕-백종민 부부는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가 선택한 배우자와 평등한 관계를 이루고 우리만의 가정을 이끌어 나갈 뜻을 밝히고자 <결혼 선언문>을 발표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남편과 아내이기 이전에 독립된 개체로서 평등한 관계로 살아갈 것(1항)”이라고 나아가는 결혼선언문에서 눈이 딱 멈추는 흥미로운 지점은 4항이다.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세계여행의 꿈을 실현해 아르헨티나로 떠나 1인분에 1kg이라는 소고기를 맘껏 먹을 것입니다.” 드넓은 초원지대인 팜파스에서 자유롭게 자라기에 육질이 다른 어느 곳과 비교할 수 없이 좋다는 아르헨티나 소고기.
“종민씨, 소고기 좋아해요? 아르헨티나 소고기가 그렇게 맛있다는데 나중에 같이 먹으러 갈래요?” 결혼 전 프러포즈 아닌 프러포즈 같은 프러포즈의 속살에는 세계여행을 함께하자는 바람이 실렸다. 세계여행.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은 것으로 들먹일 만한 아이템. 그러나 아무나 할 수 있는 아이템은 아닌 것. 당초 결혼 5년 후에나 가자고 꿈처럼 묻어 놓은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신혼여행이 모든 것을 바꿨다. 무척 좋았던 그 신혼여행 덕분에 둘은 다시 의기투합했다. 이렇게 좋은데, 굳이 5년이 왜 필요해. 1년 뒤에 바로 가자!
10개월을 준비했다. 김은덕-백종민 부부는 4천만 원을 마련했다. 신혼집 전세 계약을 해지한 금액. 세계여행이라는 아이템에 너무 적은 금액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그들은 여느 세계여행과 다른 방식을 택했다. 한 달에 한 도시! 단순한 여행객이 아닌 한 도시에서 한 달 동안 생활자로 살아보기로 한 것. 숙박비, 항공료, 식비, 생활비 모두 합쳐 두 사람이 한 달에 쓸 수 있는 돈은 166만 원. 그것을 한 달로 나누면 하루 5만 원 남짓. 집을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는 개념의 에어비앤비를 활용한 것은 그런 까닭이었다.
그렇게 한 달에 한 도시를 여행하면서 세계를 누빈 이들은 『한 달에 한 도시』라는 제목으로 유럽편과 남미편을 내놨다. 지난 6월 4일, 서울 논현동에서 이들의 삶과 여행이 궁금한 독자들이 김은덕, 백종민 저자를 만났다. 그리고 이야기를 경청하고 이들의 여행에 동참했다.
세계여행의 준비는 이렇게
한 달에 한 도시였지만 무턱대고 떠날 순 없었다. 철저한 준비를 해야 했다. 이들은 떠나기 전 여행에세이를 많이 읽었다. 그것을 통해 어떻게 여행하면 좋을지 가닥을 잡았다. 천천히 여행하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 모습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콘셉트를 잡았다. 재밌는 여행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여행의 기록을 출판사에 보내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자비출판이라도 하고자 마음먹었다. 여행 전부터 꾸준히 기록을 했고, 여행 3개월 후 모아놓은 기록을 출판사에 보냈고, 첫 타석에서 안타를 쳤다. 실은 ‘한 달에 한 도시’ 콘셉트는 결여와 결핍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지였다. 여행 경비가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적은 금액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이동거리를 줄이기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각각 2천만 원을 썼다. 365일로 나누면 하루 5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먹고 자고 문화 등을 즐기려면 부족한 듯싶지만 한 달에 한 도시에 살면서 경비를 줄일 수 있는 여러 방법도 찾았다. 경비를 줄이려면 예약은 필수다. 치밀한 계획을 했다. 유럽 숙소, 비행기, 공연 등을 미리 예약해서 할인을 받았다. 첫 여행의 총 경비는 4천만 원이었는데 알뜰하게 썼다.”
물론 죽이 잘 맞는 두 사람이었지만 자세한 취향까지 똑같을 순 없었다. 공통적으로 가고 싶은 곳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다. 함께 가고 싶은 도시는 우선순위로 놓았다. 나머지를 놓고 상대방을 설득하는 ‘배틀’이 벌어졌다. 충분한 근거를 갖고 설득해야 했기에 가고자 하는 곳의 인문사회, 역사 등을 공부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것이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공부하면서 새롭게 안 것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공부한 것도 나누는 즐거움을 누렸다.
그런데 그들이라고 떠나기 전 마냥 설레기만 했을까. 불안이 없었을까. 모아놓은 돈이 있는 것도 아니라 전 재산을 털어서 가는 세계여행. 여행 후 돌아왔을 때 들어갈 직장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그들은 한국에 사는 사람들 아닌가! 그렇다고 미래의 불안을 현재로 당겨와 살 것도 아니었다.
“전 재산을 갖고 떠나니까 불안감이 있었다. 돌아올 때는 그 불안감이 2배로 커진다. 사실 우리보다 걱정이 더 많은 사람은 부모님이었다. 겉으로는 승낙하셨지만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는 가지 않으면 안 되겠느냐고 말씀하시더라. 여행 시작 때는 같이 떠나자고 말씀드려서 일주일동안 도쿄를 함께 여행했다. 그것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여행을 할 것인지 보여드리면서 안심을 시켜드렸다. 잘한 일이었다.”
이렇게 좋아도 되는 걸까
여행이 시작됐다. 백종민 저자는 자신들의 세계여행을 한 마디로 표현했다. ‘이렇게 좋아도 되는 걸까.’ 유럽과 남미 어디에서 묵고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매핑도 공개했다. 특히 대서양횡단 크루즈는 백종민 저자에게 놀라움과 감격이었다. 생애 첫 크루즈를 통해 찍은 영상을 독자들에게 공개했다.
세상의 속도와는 무관하게 2년 동안 세상을 돌아다닌 부부. 뿌리내리고 살아볼까 생각했던 도시들도 있었다. 한 도시에 한 달을 묵는 것은 자신들에게 적당했다. 지루하지 않은지 묻는 사람들도 있지만, 관찰자와 생활자 중간에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기에 한 달은 충분한 시간이었고 좋았다는 것.
“24개국이라는 숫자만 보면 세계여행치고 적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한 달에 한 도시에서 살면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대화도 나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무얼 먹고살고 소비 패턴과 정치ㆍ경제는 어떤지도 봤다. 동네 주민들과 친해지기도 했다. 한 달을 여행하면 일정한 패턴이 생기는데 첫 주는 내가 사는 동네를 탐색한다. 시장과 슈퍼, 정기교통권을 어디서 사고 맛집을 파악한다. 둘째 주는 시내를 돌아다니며 도서관, 박물관 등에 다닌다. 셋째 주는 대중교통을 타고 외곽으로 여행을 다녔다. 둘째 주까지 살다보면 동네 사람들이 좋은 곳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리고 갔다 와서 동네 사람들에게 얘기를 들려주는 것도 즐거웠다. 마지막 주는 관계를 정리하는 시간이다. 집 주인과 마지막 식사도 하고 단골 가게 주인에게 인사하는 등 떠날 준비를 한다. 그러면서 서로 눈시울이 붉어질 때도 있었다. 한 달을 이렇게 지내면 길지 않다. 우리는 이를 소용돌이 패턴이라고 불렀다. 지내다보면 정이 안 가는 도시가 없다.”
그들 각자가 애정한 도시를 세 개씩을 독자들에게 소개했다.
백종민 : 터키 이스탄불
“동생이 터키에서 이주노동자로 살고 있는데, 터키에는 세 번이나 갔다. 터키에서 사귄 친구가 자신의 부모가 살고 있다며 가보라고 권해서 지중해와 만나는 터키 남부로 갔었다. 우리는 이들을 터키 부모님이라 부른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갔고, 남미 여행을 끝내면서 또 가고, 부모님도 터키 부모님을 보고 싶다고 하셔서 함께 가면서 총 세 번을 갔다”
김은덕 : 스페인 세비야
“안달루시아 지방의 주도이다. 하몽(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건조시킨 스페인의 생햄)을 먹었는데 정말 입에서 살살 녹더라. 여행하면서 들고 다니면서 먹을 생각도 했는데, 비행기 방역 체계 때문에 포기했다(웃음). 하몽과 백포도주 궁합이 잘 맞는데, 하몽 때문이라도 다시 이곳에 가고 싶다. 하몽을 얇게 썰어서 빵 위에 얹어 먹기도 하는데 정말 맛있다.”
백종민 : 이란 테헤란
“여자에게는 불편함이 많은 나라인데도 추천한 것은 환대의 문화 때문이다. 이들은 어떤 교통수단을 타든 ‘웰컴 투 이란’이라는 말을 붙인다. 사람들은 여행하면서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하라고 말한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궁금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나누면 또 자기 집에 오라고 한다. 한국에선 그런 말을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궁금해서 가봤다. 가서 보니 이들은 낯선 사람이 오면 마냥 반가워하고 즐거워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틀에 한 번씩 초대를 받아 저녁을 먹었다. 집에 가서는 춤추고 함께 즐겼다. 덕분에 테헤란에선 돈이 50만원밖에 들지 않았다(웃음). 이런 환대의 문화를 꼭 경험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김은덕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여행하면서 고기는 두 곳이 좋았다. 이탈리아 피렌체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피렌체는 화덕에 구워 양념이 나오고,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갈비 통째로 숯불에 구워먹는데 소들이 행복하게 자라서 그럴까. 육질이 죽인다(웃음). 고기만 놓고 보면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최고다. 100년 전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대거 아르헨티나로 오면서 자신들의 문화를 가져왔다고 하더라. 재료가 풍부하니 음식의 풍미가 살아있고 가격도 유럽에 비해 절반이다. 1kg짜리 아르헨티나 고기는 레스토랑에서 한국 돈으로 5천원이다. 가서 꼭 먹어봐라(웃음).”
백종민 : 대만 타이베이
“대만은 중국 문화를 기반으로 일제강점기에 받아들인 일본 문화, 한류문화가 잘 어우러져 있다. 특히 음식도 빼먹을 수 없는데, 먹는 것에 대해선 자부심이 강해서 2대는 기본이고, 맛있는 집이 지천에 깔렸다. 관광지 아닌 동네 작은 식당에 가도 품위 넘치는 식사를 할 수 있다. 숙박료는 한국과 비슷하나 음식 값은 한국의 절반가량이니 배부르게 여행할 수 있는 도시다.”
김은덕 : 볼리비아 따리하
“볼리비아는 작은 도시들이 예쁘다. 볼리비아는 고도가 높고 척박한데 남부에 위치한 따리하는 해발 2천 미터 정도라서 상대적으로 고도가 낮다. 볼리비아에서 유일하게 와인이 생산되는 곳인데 기온이 포근하고 하늘이 맑고 청명하다. 사람들의 미소가 끊이지 않는다. 늘 평온한 모습을 하고 있고, 아이들과 어른이 웃고 있다. 대부분의 볼리비아는 고도가 꽤 높고 척박한데 이곳은 지상낙원 같았다(웃음).”
물론 이들도 여행 도중에 위기가 찾아왔다.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나와 상대방의 밑바닥을 보기도 했다. 이혼을 꺼내기도 했다. 하긴 여행도 사람살이의 한 단면 아니던가. 그러면서 서로 더 깊어졌다. 상대방을 내게 맞는 사람으로 바꾸려는 생각을 버렸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법도 배우고 서로 부딪히지 않는 선도 찾았다. 세계여행이 준 성찰과 선물이었다.
“파라과이에서 권태기가 찾아왔다. 여행이 길어지니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볼리비아에서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전역을 배낭여행으로 돌았다. 그러면서 권태기가 걷혔다(웃음).”
지금의 행복을 나중으로 미루지 않기
하루 2만원이 되지 않는, 어쩌면 구질구질한 생활에서도 이들이 세계를 여행하고 싶었던 이유는 뭘까. 이들의 답변은 명확하다. 지금의 행복을 나중으로 미루고 싶지 않았다! 유럽, 남미, 아시아를 각각 8개월씩 돌아다니며 다시 들어온 한국.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어떻게 먹고살아요?
“한국에 들어온 지 한 달이 됐다. 돈 없는 부부의 우아한 서울살이에 집중하고 있다. 돌아와서 통장을 찍어보니 0원이 찍히더라. 부모에게 돈을 조금 빌리고 출판사에서 준 돈으로 집을 계약했다. 부모가 같이 살자고 했으나 우리 생각을 펼칠 수 없을 것 같아서 독립했다. 일을 찾아봐야 하는데 여행하면서 인이 박혔는지 ‘나인투식스’의 삶을 살기는 싫더라(웃음). 대책 없는 삶속에서 결정하고 내린 우리의 결론은 소비도 최소화하자! 자발적 가난뱅이를 자처하기로 했다. 어떻게 살아나가고 있는지 일주일에 한 번씩 블로그를 통해서 쓰고 있다.”
서울에서 돈 쓰는 패턴을 들여다봤다. 여행 때와 다르지 않더라. 60만 원짜리 월세방. 하루 2만 원짜리 숙박료를 지불하는 셈이었다. 통신비로는 5만원 선불 유심을 샀다. 1년에 200분 통화. 거의 받기만 하는 셈이다. 5km 안에선 걸어 다니고 세탁기 없이 살면 어떨까 생각 중이다. 여행 중에 머리카락을 스스로 잘랐듯 미용실 가는 비용도 쓰지 않을 생각이다. 여행 중 음식, 술집은 그닥 드나들지 않았듯 카페, 술집, 음식점은 최대한 자제할 요량이다. 그러니 세계여행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서울살이다. 그래서 서울을 여행하면서 살기로 했다!
“서울을 다시 보게 됐다. 그동안 서울을 너무 천대한 것이 아닌가 싶더라. 세계여행의 무대를 서울로 옮겼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여행하면서는 각자 노트북을 한 대씩 들고 다녔다. 일주일 중 이틀을 기록에 할애하고 닷새를 여행에 할애했다. 글 쓰다가 안 되면 서로 화내기도 했다(웃음). 일기도 안 쓰던 사람이 여행하면서 기록하는 습관이 들었다. 그 덕으로 책도 냈고. 서울살이도 일상적으로 기록에 남기고 있다. 다른 삶의 형태도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주변에 자발적으로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과도 연대하려고 한다.”
그들에게 다시 여행의 계획을 물었다. 당연히 다시 나가고 싶다는 답이 나온다. 다만 언젠가는 남의 돈으로 나가는 것이 꿈이라며 웃는다. 무엇보다 세계여행을 통해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한국이 싫었었는데 다시 좋아할 이유를 찾아보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김은덕-백종민 부부는 그렇게 서울을 여행하고 있다. 그들의 서울살이 역시 기대하는 이유다.
한 달에 한 도시 김은덕,백종민 공저 | 이야기나무
존재 자체만으로도 여행을 충동질하게 만드는 이 도시들에서 김은덕?백종민 작가들은 한 달씩 머물렀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두 사람을 현지인의 일상 속에 녹아들게 했고 관찰자가 아닌 생활자가 되도록 만들었다. 생활자가 된 작가들은 어떤 여행기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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