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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전쟁』전쟁터에 선 노인들
『노인의 전쟁』
아버지의 ‘늙음’을 지켜보는 건 경이롭고도 서글프다. 아들 셋을 목욕탕에 끌고 가 박박 때를 밀어주시던 아버지, 물장난이라도 심하게 치면 사정없이 등짝을 후려치시던 아버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신문을 읽어 내려가시던 아버지, ……. 내 기억 속 아버지는 늘 창창하게 푸른데 일흔에 접어든 아버지의 얼굴에는 제법 굵은 주름이 드리웠다.
늙어간다는 것
아버지께서는 올해 칠순이 되셨다. 본인은 더 그러시겠지만, 나 역시 믿기지 않는다. 결혼을 하고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되는 아들 녀석을 둔 아빠가 된 지금에도 아버지는 내게 여전히 큰 산이요 든든한 버팀목이다. 아버지의 ‘늙음’을 지켜보는 건 경이롭고도 서글프다. 아들 셋을 목욕탕에 끌고 가 박박 때를 밀어주시던 아버지, 물장난이라도 심하게 치면 사정없이 등짝을 후려치시던 아버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신문을 읽어 내려가시던 아버지, 일필휘지로 글을 써 내려가시던 아버지……. 내 기억 속 아버지는 늘 창창하게 푸른데 일흔에 접어든 아버지의 얼굴에는 제법 굵은 주름이 드리웠다.
언젠가 아들 녀석이 내게 물었다.
“아빠도 할아버지가 되는 거야?”
“그럼. 아빠도 네가 크면 할아버지가 되겠지.”
“그러면 아빠를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되는 거야?”
“아빠가 아무리 늙어도 아빠는 아빠야.”
아들은 그제야 안심하는 눈치더니 또 이렇게 물었다.
“그럼 나도 할아버지가 되는 거야?”
“너도 나중에 나이를 많이 먹으면 할아버지가 되지.”
“그래도 나는 아빠 아들이지?”
나는 웃으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직 어린 녀석에게도 나이 듦과 늙음은 걱정거리인 가 보다.
걱정거리. 늙어간다는 것은 어느새 걱정거리가 됐다. 개인은 물론이고 나라 전체적으로 봐서도 그렇다. 노인 인구가 빠른 속도로 늘어난다는 기사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진다. 이대로 간다면 몇 십 년 후에는 국가 발전이 아예 멈출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소식마저 전해진다. 늙는다는 게 죄는 아닐진대 그런 기사들의 행간을 읽다 보면 왠지 이 땅의 모든 노인들이 죄다 잘못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더군다나 노인은 곧 보수라는 프레임까지 더해지면서 노인에 대한 젊은이들의 혐오와 적개심도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얼마 전에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하는 ‘박카스 아줌마’들 때문에 시끄럽더니 최근에는 ‘올빼미 아줌마’들이 득세를 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몇 시간 동안 노인들의 말벗이 되어 주고 일이만 원 정도를 받는 중년 여성, 혹은 할머니를 두고 올빼미 아줌마라 부른단다. 노인들이 그런 식으로 외로움을 달랜다는 사실에 무척 충격을 받았다. 기사를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정말로 충격적이었던 건 기사 밑에 달린 일부 댓글들이었다.
‘그러게 일찍 죽지.’
‘늙는 게 죄다.’
악플도 아닌, 그저 배설 수준의 그 댓글들 속에서 젊은이들이 노령화 사회에 대해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두려움을 읽어냈다면 너무 지나친 분석일까?
전쟁은 지금부터, 『노인의 전쟁』
SF 소설은 그것이 먼 미래를 다뤘건 근 미래를 다뤘건 일종의 예언서 역할을 한다. 대게의 영민한 SF 소설가들은 현 상황이 쭉 이어진다면 미래에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라는 물음에서부터 소설을 시작한다.
역시나 영민한 소설가인 ‘존 스칼지’는 2006년에 발표한 『노인의 전쟁』이라는 아주 노골적인 제목의 SF 소설에서 살아남은 노인들이 미래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지에 대한, 아주 섬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유쾌한 예언을 늘어놓았다.
‘75세 생일에 나는 두 가지 일을 했다. 아내의 무덤에 들렀고, 군에 입대했다.’
『노인의 전쟁』은 이처럼 매력적인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곧 사건이 벌어진다.
포화 상태가 되어 버린 미래의 지구. 인류는 넘쳐나고(특히 노인들!) 자원은 말라간다. 인류는 다른 행성을 개척해 삶의 터전을 마련하려는데 늘 그렇듯 외계인들이 골칫거리이다. 그리하여 외계인들과의 전쟁이 끊이질 않는다.
우리의 주인공 ‘존 페리’는 75세 이상만 뽑아주는 이상한 군대 ‘우주개척방위군(CDF)’에 자원입대한다. CDF에 입대를 하면 지구에서는 사망한 것으로 처리되고 그야말로 새로운 삶을 부여받게 된다.
『노인의 전쟁』은 주인공 존 페리가 군에서 만난 다른 늙은이들과 함께 전사로 거듭나는 과정을 재미있게 보여준다. 육체는 첨단 과학 기술로 강하게 변했지만 자아는 노인일 수밖에 없는 군인들은 치열한 전투 상황 속에서도 연륜이 묻어나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전우애를 키워간다. 그런 중에도 전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동료들은 하나 둘 목숨을 잃는다. 더불어 존 페리 역시 죽음의 위기를 맞게 되는데 그 순간 때마침 도착한 지원군 속에서 죽은 아내의 모습을 발견한다.
『노인의 전쟁』은 재치 있는 대사와 더불어 외계인과의 박진감 넘치는 전투, 아슬아슬한 상황, 그리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진다. 덕분에 한 번 책을 들면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손에서 놓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노인의 전쟁』에서 주되게 다루고 있는 것은 ‘사랑과 우정’이라는 가치관인지라 감수성 예민한 독자들에게는 제법 큰 감동을 선사한다.
대중소설의 미덕을 골고루 갖춘 이 작품은 『유령 여단』, 『마지막 행성』, 『조이 이야기』로 그 시리즈가 이어진다. 시리즈가 계속 될수록 사회에서 잉여 자원으로 분류된 노인들이 외계인과의 전쟁에 투입된다는 충격적인 설정 자체는 많이 희석되지만 그래도 노인 문제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은 제법 날카롭다.
책을 읽다보면 먼 미래에는 정말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이런 식으로 쭉 노령화가 된다면 노인들, 하다못해 나처럼 민방위가 된 아저씨들 역시 현역병으로 전쟁을 치르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 닥치지 않으리라 그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런 식의 생각을 계속하다보면 노인들은 이미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뼈아픈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육체적인 노쇠와 그에 따른 크고 작은 병마는 물론이고 사회적인 편견과 외로움,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움과도 맞서고 있다. 존경받던 어른에서 어느새 사회 자원을 갈아먹는 암적인 존재로 전략해 버린 우리네 노인들. 어쩌면 우리 젊은 사람들의 매몰찬 냉대가 그들의 설 자리를 점점 줄어들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반성해 볼 때다. 우리들의 무시가 그들을 공원으로 내몰고, 돌침대 홍보관으로 내몰고, 시위 현장으로 내몰고, 나아가서는 전쟁터로 내몰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우리도 언젠가는 그들과 같은 위치에 서는 게 아닐까?
노인의 전쟁 존 스칼지 저/이수현 역 | 샘터 | 원제 : Old Man's War (2007)
지구가 속한 은하 밖의 외계라 하더라도, 생명체(그것도 지성을 가진)가 존재할 최적 요건은 지구와 비슷한 자연조건일 수밖에 없다. CDF의 전쟁터인 행성들은 따라서 지구와 비슷한 중력, 그냥 호흡이 가능할 정도의 대기, 낯익은 산과 계곡과 들과 바다로 이루어져 있다. 갑각으로 무장한 연체동물이든, 3센티가 채 안 되는 초미니 인류이든, 인간 정도 키에 새처럼 긴 다리를 가졌든 사슴처럼 예쁜 모습이든, 적군인 외계 생명체들은 모두 인류와 똑같이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음식을(더러는 지구인을!) 섭취하고, 인류가 개발한 것과 엇비슷한 장비와 기술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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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아빠, 백수, 소설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운동만 시작하면 뱃살이 빠지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요즘 들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소설을 써서 벼락부자가 되리라는 황당한 꿈을 꾼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단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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