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자 김경집이 여성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연을 펼쳤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에게 ‘섹시한 혁명’을 하자고 선동했다. 책을 읽고 수직이 아닌 수평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지금과 다른 세상을 만들어보자고 말을 건넸다. 이런 내용을 담은 여섯 번의 강연을 엮어 『엄마 인문학』이 나왔다. 그리고 지난 4월 7일, ‘공부하는 엄마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제목으로 김경집 저자 강연회가 열렸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정치라면 관심이 없다거나 치를 떨린다며 정치를 멀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과연 정치를 멀리 하면 좋은가. 그렇지 않다. 정치는 생활 곳곳에서 삶의 전면에서 영향을 미치고 삶을 규정하기도 한다. 특히 아이들의 삶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한 것이 정치다. 저자는 그래서 ‘노인 정당’과 ‘엄마 정당’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후보를 내놓겠다는 것이 아니다. 정책을 내놓고 답해라! 답을 한 정당에게 표를 던져주겠다고 선언하는 거지. 여기에 수반되는 것이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물어보는 것이다. 그것은 중요한 대화이고 소통이다. 나는 이렇게 선동하고 다닌다. 혁명이라는 말이 부담스러워서 ‘섹시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 우리 아이가 더 나은 사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인문적 성찰은 필수다. 그러나 지금 안타까운 건 인문학조차 자기계발서가 됐다. 사람을 뽑을 때 인문계열은 뽑지 않는다. 그러면서 스펙 외에 인문학을 요구한다. 두 번 죽이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절박한 하나는 정치적인 문제를 삶의 문제, 미래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선택이 아닌 삶을 결정하는 필연적인 문제다. 그런데 대부분은 정치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진영 논리로 빠진다. 잘못된 것이다.”
수직이 아닌 수평이 필요한 이유
회사, 정부 등 지금 대부분의 조직은 팀제를 기본으로 한다. 그런데 궁금한 적은 없나. 왜 팀제를 하고 있을까. 팀제의 전제는 수평과 유연이다. 즉 계급장을 떼야 한다. 물론 관리를 위해서는 위계가 필요하니 팀장은 있어야 한다. 이런 팀제에 대한 기본을 알지 못한 채 너나 할 것 없이 팀제를 도입했으니 팀제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것에 익숙하지 못할까. 김경집 저자는 단적으로 초등학교 교과서를 꺼낸다. 그 교과서, 민주주의에 대한 실천이나 훈련이 없다. 속도와 효율이라는 패러다임에만 갇혀 있다. 저자는 속도와 효율은 이미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끝장난 패러다임이지만 그것의 대안도, 철학도 없으니 그냥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잘 나가는 기업을 믿고 가는데 그건 속도에 관성이 붙어서 그런 것일 뿐 그들이 창조, 혁신, 융합의 패러다임을 갖고 있거나 전환된 것이 아니다. 말로는 교육이 백년대계라고 하지만 우리는 내 새끼만 본다. 그런데 내 새끼만 잘 키우고 챙긴다는 건 매우 위험하다. 팀 조직이 살아가는 전제는 다시 말하지만 수평이다. 수직에서 수평으로 눕혀야 한다. 그러나 남자들은 수직에 익숙하다. 눕힐 수 있는 존재가 여자다. 다행스러운 것은 남자가 여자 말을 잘 듣기 시작했다(웃음). 예전에는 남자들이 결정했지만 이제는 반대다.”
저자는 여전히 수직적인 우리사회의 풍토를 지적했다. 그가 특히 화가 나는 건, 기성세대 즉 어른들이 청년세대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 60~70년대에는 이른바 못 배운 사람들을 착취해서 성장했다면 지금은 고학력 세대를 착취해서 연명한다는 것. 딴 것보다 희망도 없다는 것이 가장 아픈 대목이다. 가령, 우리는 영어를 활용하며 살 일도 별로 없는데도 아이들에게 영어를 죽도록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왜 그렇게까지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 것에 아무도 속 시원히 답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얼토당토않게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뉴스도 보지 않고 나 외의 세계에는 관심도 없는 세계화가 과연 가능한가.
“우리는 여전히 수직으로 서 있다. 엄마의 혁명을 하자고 하는 이유가 있다. 아래 99%가 켜켜이 쌓여 있는 막대기의 축을 견고하게 만드는 것이 엄마요, 부모다. 이 역할의 대부분은 엄마여야 한다. 아빠는 돈만 벌어오면 되니까(웃음). 입시설명회를 하면 사람들로 미어터진다. 거기에 다녀와야 엄마 역할을 한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간다. 문제는 다 따라간다. 따라가 봐야 막대기 아래층이다.”
잘못된 질서와 체제를 거부할 것
김경집이 권하는 가장 먼저의 것은 ‘나를 먼저 세우기’이다. 그는 나를 세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인문학을 꼽았다. 그 인문학을 통해 1%를 따돌릴 것. 들판에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손잡고 있으면 1%를 따돌릴 수 있단다. 무엇보다 그것이 혁명이라고 강조한다.
“엄마가 성장할 수 있는 가장 큰 계기는 아이들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행복해 하나? 학교에서 행복을 가르치지 않는다. 학교에서 어떻게 삶을 행복하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들 수 있으면 아이들도 주체적이고 인격적으로 살게 되지만, 지금 학교는 기능적인 훈련만 시키고 속도와 효율의 패러다임에서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이름을 붙이는 것이 참 중요한데, 요즘 가장 억울한 사람이 ‘성남에서 투표하고 경남으로 이사한 사람’이라고 하더라. ‘무상급식’이라는 이름은 잘못됐다. 교육이 의무면 먹는 것도 의무다. ‘의무급식’이지 무상급식이 아니다.”
그는 충암고 교감이 했다는 막말에 대해서도 끄집어냈다. 충암고 교감의 막말은 막장 수준이자, 막장의 끝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경남을 비롯해서 의무급식 문제가 불거지는 가운데 그는 하나의 가능성을 봤다고 말했다. 당사자들이 나름의 방식을 통해 저항하고 문제제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길바닥에 나가 구호를 외치는 것은 맨 마지막 선택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잘못된 질서와 체제에 대해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잘못된 질서와 체제는 미니멈 1% 맥시멈 3%만을 위한 것이다. 자본주의는 최고의 효율을 따지지만 비인격성, 몰인격적 가치로까지 가면 안 된다. 공정무역 제품 몇 개를 산다고 자본주의가 착해질까. 아니다. 연대해서 구매하고 생산하는데 영향을 미쳐야 한다. 내 아이를 이런 더러운 질서에 넣지 않겠다는 저항이다. 지난 외환위기를 통해 임계점을 넘었고 임계점을 넘은지 10~15년이 됐으나 그것에 대한 대안이 없다.”
김경집은 이런 상황에서 불을 지를 계획이다. 150쪽 가량의 책을 집필할 계획이다. 주제는 민주주의. 즉 어떻게 눕혀놓을 것인가를 다룬다. 하반기에는 아빠 대상의 인문학을 진행하면서 그들도 눕히고 싶다. 아이들이 나쁜 질서와 체제에 더 갇히고 물들기 전에 불을 질러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우리 아이, 우리 사회라는 생각을 갖고 함께 바꿔볼 것을 권했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 서 있는 것을 눕혀 놓을 것!
“섹시한 명제잖나. 눕혀라, 그러면 살 것이다(웃음). 사실 나도 아직 서 있다. 오십년 넘게 수직적인 체제에서 살아왔으니까. 서 있는 건 눕혀 놓고 목적지, 쉴 곳도 우리가 정해야 한다. 그게 혁명이다. 그 혁명을 엄마가 해야 한다. 아빠들은 겁이 많아서 못한다. 눕혀 놓지 않으면 죽는다. 지금 방식의 대기업은 모든 혜택을 독점한다. 착취다. 아이들이 잘 하는 것을 찾아줘야 한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도 투자를 해줘야 한다.”
대학에 대해서도 일침이 가해진다. 김경집은 대학이 시민들에게도 공개된 ‘개방대학’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또 책을 혼자 읽기보다 함께 읽으라고 덧붙였다. 함께 읽으면서 토론이 이뤄지고 그 과정에서 의제가 나온다. 거창한 의제가 아닌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의제가 나오고 그것을 통해 우리 사회와 삶이 조금씩 변한다. 그 힘이 붙으면 점점 더 커질 수 있다. 정당도 만들어서 한 명도 출마시키지 않고도 정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김경집의 구상이다.
“내가 관심이 없는데 무슨 정책 선거냐. 내가 던져놓고 답하라고 하면 정책선거가 안 될 수 없다. 바꿔보자. 내 아이를 위해서라도. 당장은 남편을 위해서. 가장 중요하게는 나를 위해서. 혁명도 누가 했는지 도드라지고 구심점이 생기면 권력이 된다. 그래서 여러분이 해야 한다. 누가 했는지 몰라야 한다. 권력이 된다. 우리 혁명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눕혀라! 수직 사회를 거부하겠다! 평등한 사회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사람에 천착하면 된다. 한 번밖에 못 사니까 용기를 낼 수 있다. 불이 꺼질 만하면 나를 불러라. 불을 지펴주겠다. 연대는 자신과 먼저 하고 옆에 있는 사람과, 나와 여러분이 연대하는 것이다. 섹시하게 혁명해주시라.”
“그 혁명은 엄마들이 시작해야 합니다. 남자들이 속해 있는 조직 사회는 굉장히 경직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남자들의 혁명이 더 어려워요.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혁명은 엄마의 서재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면 아빠도 아이도 자연스럽게 바뀔 수 있습니다. 세상이 변화됩니다. 불은 처음에 지피기 어렵지만 한 번 붙으면 들불처럼 번져 나갑니다. 엄마는 ‘읽히는’ 존재를 넘어서 이제 ‘읽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읽어야 합니까? 책을 읽고 세상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과 삶을 읽어야 합니다. 이제 엄마들의 본색을 드러내세요. 혁명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혁명을!”(293~294쪽)
엄마들이 묻다, 김경집이 답하다
일상에서 혁명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혁명의 시작은 엄마가 책을 읽는 것이다. 개인이 할 수 있는 혁명의 모습이다. (책을) 읽지 않아도 그런 모습을 보여라(웃음). 그러면 아이도 책을 읽는다. 책 보는 것이 숨 쉬는 것처럼 된다. 그런데 책을 읽어도 변한 것이 없고 내 의식이 올라가는 것도 못 느끼지? 어떻게 하느냐면 일 년에 한 번 장르를 정해 읽어라. 내가 좋아하는 장르와 하나는 내가 그동안 보지 않았던 장르. 그동안 보지 않았던 장르 중 제일 좋은 소재는 과학이다. 관심도 없던 분야였지만 읽다가 어느 지점에서 꽂히거나 다섯 권쯤 읽으면 윤곽이 보이고 열권을 읽으면 과학 전문가의 어깨쯤으로 올라간다. 체감을 못할 수 있어도 분명히 쌓여서 올라간다. 소일거리처럼 끝나던 책 읽기가 내 삶을 리빌딩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꾸준히 책을 보면 좋다. 그러면 대화도 변하고 연대할 수 있다. 그리고 명함을 만들어라. 명함을 주고받으면 매핑이 된다. 내 명함을 만들면 그게 내 아이디고 내 모습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다. 엄마들이 느끼는 불안이 있는데, 아이가 몇 등인지 굉장히 궁금해 한다. 그래서 학교가 아닌 외부 시험을 통해 아이의 수직적인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아이를 닦달하는데, 엄마들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이 있다면?
강요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아이에게 보여주면 된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을 때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은 표정이 달라진다. 엄마인문학을 하면서 나도 행복하다.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고 그러더라. 이전에 나는 시니컬한 사람이었는데, 주변에서 엄마인문학을 하면서 달라졌다더라. 굳이 선전?선동 하지 않아도 된다.
엄마라서 혁명이 두렵기도 하다. 가령 지난 세대만 해도 통일은 당위성이 있었는데, 지금은 통일 비용 때문에라도 통일이 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 어려운 과정을 내 아이들은 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연대나 공유가 잘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통일은 선언적 당위가 아니고 치러야 할 값인데, 한꺼번에 치른다고 생각해서 그렇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대개 통일을 싫어한다. ‘종북’으로 몰아버릴 수가 없잖나(웃음). 북한의 존재가 가장 고마운 사람들이 우파 정치인들이다. 통일은 차근차근 풀어야 할 문제다. 지금 정치하는 사람들이 나쁜 이유는 전향적으로 상황을 바꿀 생각은 않고 그걸 자신의 자산으로 삼는다. 엄밀히 따지면 배후세력이 그들이다. 우파 정치인들이 바로 종북이다.
그런데 예전과 지금이 왜 다르다고 생각하느냐면 1997년 이전에는 속도와 효율에 맞춰서 살았다. 텍스트 추종 능력을 키워줬는데 더 이상 안 된 것이 1997년이었다. 그때 한국 사회는 끝장이 났다. 그런데 그 후 20년 동안 한국 사회는 뻘짓을 했다. 이젠 1%가 되지 않으면 88만원 세대로만 살아야 하는 시대가 됐다.
엄마 인문학 : 엄마가 시작하는 인문학 혁명김경집 저 | 꿈결
《엄마 인문학》은 인문학자 김경집이 엄마들을 대상으로 가진 여섯 번의 강연을 엮은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역사, 철학, 예술, 정치, 경제, 문학의 프리즘을 통해 오늘날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진단한다. 그리고 이 위기를 극복할 해법으로 ‘엄마’와 ‘인문학’을 제시하며 엄마들의 인문학 혁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단언한다. 《엄마 인문학》은 앎에서 그치지 않는 인문학, 깨달음과 변화를 유도하는 참 지식으로서의 인문학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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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예술, 철학, 정치, 경제, 문학의 프리즘으로 시대와 소통하고 세상을 바라보다 불행한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사회가 과연 제대로 된 사회일까? 많이 가진 소수를 위해 덜 가졌거나 못 가진 절대 다수가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하는 사회 구조가 올바른 것일까? 언제까지 우리는 비현실적인 미래의 행복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