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므팥알 “연애하려면 일단 많이 만나야”
『연애의 민낯』 팜므팥알
『연애의 민낯』이라는 제목은 연애가 깨끗하고 단정하기보다는 지저분하고 부스스하다는 느낌을 준다. 민낯이란 속칭 생얼이고, 생얼마저 아름다운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연애도 비슷하다. 많은 연애에는 궁상이 뒤따른다. 이 책은 연애하면서 생길 수 있는 흔한 궁상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다양하고 쓸데없는 연구를 해내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영국, 그 나라 연구자들에게 다이어트와 연애는 더없이 좋은 먹잇감이다. (중략) 그 연구들을 보다 보면, 결론이 하나같이 진지하고 어이없어서 실소가 터진다. 결국 모든 연구의 결론은 살찐 사람은 숨만 쉬어도 살이 찌며, 매력적인 이성이라면 똥방귀를 뀌어도 인기가 터진다는 거다. 어쨌거나 그냥 다 유전타 탓이라던데? 그랬구나. 안 빠지는구나. 안 생기는구나. 될 놈만 되는 거구나. 다음 생을 기다려야겠구나. 잘 알았으니까 연구 그만해라, 영국 놈들아. (77쪽)
주말, 그 애랑 알콩달콩 데이트하던 그 이틀은 쏜살 같이 지나가더니 월요일 오전은 미친 듯이 더디다. 거지 같은 상대성이론. 슈발, 아이슈타인도 싫어짐, 나쁨. (114쪽)
어떤 책을 읽든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비속어와 기똥찬 비유를 만나는 경험은 즐겁다. 팜므팥알이 쓴 『연애의 민낯』이 그랬다. 『연애의 민낯』은 제목이 알려주듯 연애를 주제로 한 책이다. 근엄하게 무게 잡으면서 이렇게 해야 허니가 생기고 저렇게 해야 버터칩이 생길 거라고 이야기하는 ‘실용’적인 책은 아니고 연애로부터 생기는 다양한 경험과 감정을 시원하게 풀었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어색한 술자리에서 정치 이야기도 하고, 경제 이야기도 했지만 무거운 분위기를 누그러뜨린 건 결국 연애 이야기”, 딱 그런 느낌의 책이 『연애의 민낯』이다.
팜므팥알의 지금을 있게 한 건 8할이 연애였다고 말하면 과장일까. 남자친구에게 차인 감정을 글로 승화시킨 결과물로 독립잡지 『9여친 1집』, 『9여친 2집』이 나왔다. 서서히 입소문을 탄 그녀는 <빅이슈>와 <한겨레23>에서 연애 칼럼을 연재 중인 연애 칼럼니스트다. 연애 8할에 글 2할이 보태지면서 팜므팥알은 어느덧 책을 낸 저자가 되어 있었다.
책 봐도 안 생겨요
작년 8월에 『9여친 2집』을 냈어요. <한겨레 21>에 칼럼을 쓰기 시작했는데, 처음으로 고료를 받고 쓴 글이라 기뻤어요. 추석 때 책을 내자는 메일을 받았죠. 또 독립출판으로 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여서 “얼씨구나” 좋았어요. 그렇게 책을 썼어요.
제목이 『연애의 민낯』으로 작가님의 똘끼 가득한 문장에 비해서는 수위가 착한 듯해요.
안 그래도 처음에는 편집자가 센 제목으로 가자고 했어요. 그때 제목이 ‘쿨하기는 염병’이었는데,최종으로는 <빅이슈> 연재했을 때 제목으로 정해졌어요. 저는 ‘9여친’을 넣고 싶었는데, 너무 구질구질하다는 의견도 있고 어쨌든 ‘연애의 민낯’으로 나왔네요.
연재를 책으로 낼 때, 구성이 바뀐다든지, 없던 에피소드가 있다든지 하는 재가공이 일어나잖아요. 책으로 낼 때 힘든 점은 없었나요?
‘9여친’ 시리즈처럼 독립잡지는 원고가 있는 대로 내면 되는데 책은 그게 아니잖아요. 단행본 분량을 만드는 게 힘들었어요. 원고지 800매가 필요했는데, 처음에는 400매밖에 없었거든요. 새로 쓰는 게 힘들었죠.
독립잡지는 아닐 수도 있는데, 책이라는 건 독자를 염두에 두기 마련인데요. 어떤 독자를 생각하며 썼어요?
딱 제 친구들요. 20대 중반에서 30대 초중반 친구들, 언니들. 책이 나오고 지인들에게 “사라, 그래야 내가 인세로 밥이라도 살 수 있다”라고 강매 문자를 보내곤 하는데요. 그럴 때 몇몇 친구들은 곽정은 작가의 책이 더 사고 싶다고 말해요. 욱하죠. 제 책이 라면 스푸 같은 맛이 있는데 말이죠.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밤마다 생각 날 거예요.
이 책을 읽고 연애를 할 수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할 독자는 없겠죠. 책으로 연애하는 방법을 배우겠다면, 그 사람은 결코 연애를 할 수 없을 거예요. 이 책은 그런 용도가 아니라, 술자리에서 친구와 연애를 소재로 이야기하는 그런 느낌으로 읽어줬으면 좋겠어요. 연애 이야기만큼 재밌는 게 어딨어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끼리 어색하다가도 ‘누구랑 누구랑 사겼대’ 하면 ‘대박’ 이러면서 대화가 끊기지 않잖아요.
최근에 독자 만남도 하셨잖아요.
독자 만남까지는 아니고 거의 다 제 지인이 총출동한 자리였어요. 진짜 독자가 세 분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다 남자였어요. 여성의 심리가 궁금한가 봐요.
연애는 많은 미친 감정이 모인 것
사적인 질문입니다만 연애 경력을 물어봐도 될까요.
사적인 질문 되게 좋아해요. 막 하세요. 연애 경력은 12년 정도, 4~5번 정도 이별을 겪었어요. 고등학교 때 대학 가겠다고 찬 적 빼고는 다 제가 차였어요.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연애 글을 쓸 생각을 못했겠죠. 제가 글을 쓴 게 아니라, 글이 몸 밖으로 나왔어요. 독립잡지였던 『9여친1집』이 56쪽 정도인데, 그 원고를 1주일만에 다 썼어요. 다 제 이야기였으니까요. 더 잘 써야겠다, 포장해야겠다 이런 건 전혀 없었죠. 너무나 솔직한 책인데, 다행히도 이 책의 존재를 엄마 아빠는 모르죠. 앞으로도 영원히 몰라야 하고요.
보통은 그런 경험이 있더라도 그냥 넘기는데, 글로 남겼잖아요. 원래 글쓰기는 좋아했나요?
부모님이 서점을 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고요. 백일장에서 상을 타면 난 글을 잘 쓰나 보다, 해서 어릴 때 장래희망은 작가라 썼죠. 고등학교 때부터 현실성이 없는 꿈이라는 걸 알았고, 그때부터는 국어 선생님으로 바꿨어요. 그러고선 사범대는 떨어졌기 때문에, 국어선생님은 되지 못했어요. 대학 때는 스펙 안 쌓고 놀았죠. 도서관에서 에세이 읽는 거 좋아했어요. 어떻게 출판사에서 일을 하게 됐고, 저와 글의 인연은 여기서 마무리되겠구나 싶었는데 책이 나와서 신기해요. 어떤 의미에서는 어릴 때 장래희망이 이뤄진 듯하기도 하고요.
연애를 향한 인문사회적 통찰력도 눈부신 것 같아요. 영국에서는 매번 여남의 차이에 관한 보고서가 나온다거나, 교회 오빠라는 존재에 담긴 통찰력은 발군이었는데요. 진화심리학 쪽으로도 관심이 많은 듯한데요.
특별히 관심은 없어요. SNS에 떠도는 뉴스 중에서 연재 쪽이면 한 번씩 눌러 봐요. 저만 그런 건 아닐 걸요? 제 나이 또래는 대부분 한 번씩 볼 만한 콘텐츠니까, 관심의 정도로 따지자면 저는 평범해요.
쓰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를 꼽는다면?
『9여친 1집』을 써야겠다고 한 결정적인 장면인데요. 구남친이 저를 집까지 데려다 줬는데, 저는 그대로 들어갔어요. 어느 날은 뒤돌아보니 그가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더라고요. 그 장면을 보고 이 사람이 날 정말 좋아하구나, 느끼면서 저도 엄청나게 좋아하기 시작했는데요. 헤어지고 나니 그 장면이 계속 생각났죠.
정치적인 관심이 전혀 없는 남자와의 소개팅 에피소드도 재밌었는데요. 작가님은 어떤 정치적 노선을 걷고 계신가요.
경제 민주화를 외친다는 의미에서 빨갱이 그리고 양성평등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페미니스트? 대한민국에서는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이상한 사람처럼 보잖아요. 저는 페미니스트가 양성평등주의자의 동일한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쪽이죠. 그렇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여성보다는 남자를 좋아해요. (웃음)
양성평등 관점에서 본 연애는 여성에게 불리한가요?
아뇨. 연애는 여성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결혼이 절대적으로 여성에게 불리해요. 연애까지는 여성이 편하죠.
연애란 무엇일까요.
달달하고 따뜻하고 몽글몽글하고 서로 걱정하는 것. 전쟁같이 싸우고 물어 뜯고 그러다가 욕하고 전화 끊고 나면 다시 너무 보고 싶은 그런 감정. 몇 천 개의 미친 감정이 모여 있는 것.
팜므팥알이 알려주는 연애 팁
괜찮은 남자를 선별하는 법을 알려주세요.
일단 많이 만나야 해요. 어디라도 돌아다녀야 하고요. 남자에게서 한 가지라도 좋은 점이 있다면 채가야 해요. 그런데 대부분 그런 남자 곁에는 누군가 있죠. 남자 찾기가 정말 힘들어요. 남자들은 여자들이 잘 안 가는 데에 잔뜩 있잖아요. PC방, 소주 마시는 데, 이런 데 있으니 마주치기가 어려운 거 같아요. 그래도 찾아보면 많아요. 여왕벌 있는 곳은 피하길. 소개팅은 비추에요. 저도 붙잡을 수 있는 게 소개팅밖에 없을 때는 하곤 했지만, 확률은 높지 않아요.
이별에 대처하는 쿨한 자세는?
개뿔, 차이면 쿨할 수 없어요. 차인 걸 잊으려고 자기관리에 몰두한 적이 있어요. 일주일 내내 스페인어 배웠다가 요가 갔다가 별 짓 다 했거든요. 그런데 잘 안 되죠.
삼포세대라는 말, 이제는 좀 식상하기도 한데요. 여하튼 연애를 포기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한 마디 건넨다면?
그 분들은 그 분들 마음대로 하셔야죠. 그런데 제 주변에는 연애를 포기한 사람은 없는 거 같아요. 모태솔로라도 연애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요. 연애를 최고의 가치로 안 둘 수는 있겠죠. 연애, 재밌잖아요. 제 주변은 관심은 다 있는 거 같아요. 어색한 사이에서는 연애를 소재로 하면 분위기도 누그러지고요.
팜므팥알이라는 닉네임에는 심오한 의미가 있나요. 액운을 쫓아내는 동지 팥죽이 떠오르면서, 연애로부터 오는 고난을 물리치겠다, 이렇게도 읽을 수 있잖아요.
전혀요. 팜므파탈이라고 하려다가, “네 까짓 게 무슨 팜므파탈이야?”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 그냥 팥알로 해버렸어요. 팥알, 어감이 귀엽잖아요. 귀여운 건 다 옳은 거니까.
글쓰기 철학이 궁금합니다.
웃기면 장땡인 거 같아요. 웃기지 않으면 쓰는 게 즐겁지 않아서 쓰기도 싫어져요. 그리고 단짠단짠이 있어야 하고요. 음식 먹을 때 한 가지 맛만 먹으면 질리잖아요. 단 것, 짠 것 바꿔 가며 먹어야 하듯 글에도 무조건 재밌기만 해서는 안 되죠. 재밌다가, 슬프다가, 화냈다가 그리고 마지막에는 단맛으로 끝나면 좋죠.
평소에도 욕을 구수하게 하는 편인가요.
일상에서는 흥분 상태가 아니면 안 해요. 이 책은 흥분 상태로 쓴 거라서요. 구남친을 만나 제 단점을 물어보려고 했어요. 낮만 해도 그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밤에 구남친의 결혼 소식을 듣고는 친구와 술을 마셨어요. 현장에 있는 친구들은 녹음해두고 싶다고 할 정도로, 망가졌어요. 뭐, 그럴 때는 욕이 문학적으로 나와요. 그 자리가 계기가 되어 글을 쓰기로 한 면도 있고요. 그래도 책은 순화가 많이 된 편이에요. (웃음)
비속어의 적절한 구사를 보면 B급 정서도 느껴집니다.
B라니, 영광이네요. 제 글에 등급을 따지자면 C급 정도 아닐까요?
주성치 좋아하세요?
네, 엄청나게 좋아해요. 그런데 <장강7호> 이후 최근작은 잘 안 봐요. 주성치보다는 동방신기를 좋아하고, 지금은 비스트랑 위너를 사랑하죠.
작가님의 똘끼와 관련해서 물어볼게요. 라이벌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요.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은 유병재 씨인데요. 그 정도 똘끼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요.
소이 씨는 어떤 인연으로 추천사를 써 주셨나요?
소이 씨가 언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독립출판물 오픈마켓에서 『9여친』을 사가셨어요. 인증샷도 트위터에 올리고. 부탁하면 해 주실 것 같았죠. 다행히도 흔쾌히 써 주셨어요.
9여친 3호 발간 계획은?
소재가 연애는 아닐 것 같아요. 연애로 계속 쓰려면 제가 남자를 3~4명 쓰지 않는 이상 소재에서 한계가 있고요. 대신 30대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요. 결혼이라든지, 화장이 잘 안 먹는다든지, 직장 이야기라든지.
연애의 민낯팜므팥알저 | RHK
구여친과 비둘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첫째, 지금 모두 비호감이고, 지금 모두 구질구질하다. 둘째, 아주 예전에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구여친은 한때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자였고, 심지어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었다. 이 책은 젊은 세대를 드러내는 병맛 코드 글 속에 연애의 시작부터 이별 후의 과정을 재기발랄하게 그려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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