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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 이름, 노동자 - 그의 슬픔과 기쁨

정혜윤, 『그의 슬픔과 기쁨』,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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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슬픔과 기쁨』은 쌍용 자동차 해고노동자 스물여섯 명의 구술을 바탕으로 집필된, 르포루타주 에세이이다. 정혜윤은 이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찾아가서 말을 걸고 이야기를 모았다.



격주 월요일, 시인 김소연이 읽은 책 이야기 
 ‘김소연의 내향적 삶을 옹호함’이 연재됩니다. 

 

 

 

크리스마스, 춥지만 쨍했던 오후에 나는 친구들과 함께 어느 굴뚝 아래에 있었다. 군고구마가 노릇노릇 익어가는 난로 앞에, 낯설지만 낯익은 이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저 먼 발치에는 ‘쌍용자동차’라는 다섯 글자가 새겨진 굴뚝이 보였다. 친구 신해욱 시인이 챙겨온 카메라에 망원렌즈를 장착하고 굴뚝을 바라보니 두 사람이 거기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쌍용자동차의 해고노동자 이창근, 김정욱. 두 사람이 굴뚝농성을 시작한지 13일째 되는 날이었다. 영상통화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거기서 도대체 어떤 식으로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는지 걱정이 많았고 궁금했다. 전화를 받은 이창근 씨는 자신의 휴대전화로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을 두루두루 보여주면서, 저 지붕은 어떤 곳이고 저 건물은 어떤 곳이고 하면서, 자신이 오랜 세월 몸 담았으며 앞으로 몸 담기를 염원하고 있는 공장의 모습을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 휴대전화를 통해 들리는 그의 목소리와 쌍용자동차 공장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두 사람은 돌아가고 싶은 자신의 일터가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올라가고 싶어 굴뚝농성을 시작한 것은 아닐까 하고.

 

해고 노동자로 살아온 시간은 6년. 26명의 동료들이 차례차례 목숨을 잃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복직을 희망하며 벼랑 끝에서 살아왔다. 말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 아들이 초등학생이 되었고,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딸이 대학생이 되었다. 그 긴 세월 동안에 너무 많은 곳들이 농성장으로 변해갔고, 끊이지 않고 인권이 짓밟히는 뉴스들을 접해왔기에, 서서히 우리는 쌍차 문제를 잊기 시작했다. 대법원은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를 적법했다고 판결을 내리며 기업을 비호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래도 그들은 마지막 선택지로 굴뚝농성을 시작했다. 평택 공장 옥상 상공에서 경찰 헬기가 최루액을 살포하던 참담한 장면을 뉴스에서 접하던 어느 뜨겁던 여름날 저녁을, 사람들은 다시 또렷하게 기억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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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슬픔과 기쁨』은 쌍용 자동차 해고노동자 스물여섯 명의 구술을 바탕으로 집필된, 르포루타주 에세이이다. 정혜윤은 이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찾아가서 말을 걸고 이야기를 모았다.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해고노동자들은 더 간절히 복직을 희망하고 있지만, 우리들의 기억에서는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는 또 다른 비참을 그냥 목도하고 있을 수는 없어서, 정혜윤은 이 책을 집필했다. 거의 그들의 말투 그대로, 어법 그대로, 목소리를 온전하게 살려 받아적었다. 그들이 일을 하면서 얻은 기쁨, 회계조작에 의해 부당한 정리해고를 당하며 겪은 혼란과 배신감, 권리를 되찾기 위하여 함께 지혜와 힘을 모으는 과정에서 빚어낸 또다른 기쁨, 그리고 박탈감, 생과 사를 오가며 겪은 수많은 고통과 슬픔을 고스란히 담았다. 

 

“중국 상하이차가 기술을 빼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회사가 실은 힘들어졌지요. 정상적으로 생산 라인이 유지가 안 되고 다들 걱정했어요. ‘아, 이렇게 가면 구조 조정이 들어오겠구나.’ 그러다 보니 자포자기하는 분위기가 많았어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노동자들이 나이를 먹어 가고 자기 삶이 조금씩 나아지면 안주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아무 일이 없길 바라는 거죠. 2009년에 새로운 집행부가 만들어졌지만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컸어요.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았어요. 그런데도 2009년 파업을 앞두고 서로의 심정들을 확인하면서 내가 책임지고 해야 될 역할이 확연하게 보였어요. 직장 생활 하다 보면 직장 안에서 회사가 만들어 낸 규율만 좇으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자발적인 게 아니라 관성적이 되고, 나쁘게 표현하면 생존을 지키기 위해 좇아가는 방식으로만 살게 됩니다. 그런데 2009년 파업 준비를 하면서 나타난 모습은 나 혼자의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해서 힘을 모으는 것이었어요.”

 

김정욱 씨는 함께 살기 위해서 힘을 모으는 그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의 새로운 힘을 발견한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서 해고자 명단에 자신이 포함 안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마저 품을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대한문에 있던 시간은 우리 동료들의 인간미가 유감없이 발휘된 시간 같아요. 같이 싸우고 밤 지새우고 비 맞고 눈 맞고. 저는 사람들을 되게 오래 본 것 같아요. 생각하는 모습을 다 본 것 같아요. 그게 되게 좋았어요. 대한문에 있으면서 한참 동안 10분 동안 밖만 보는 모습이라든지, 대화의 느낌보다는 그런 모습이 가장 많이 남고, 그런 모습이 많이 믿음직하다가도 서늘하다가도 미안하고. 저는 이상하게 나이 든 형들에게 미안하데요. 나도 어린 사람은 아닌데 형들에게 미안하더라고요.”

 

길에서 살 수밖에 없던 시간들을 ‘좋았다’고 이창근은 말한다. 동료들의 등을 보며 믿음을 감지했다고 말한다. 해고노동자의 길고 긴 투쟁의 시간들이 비참하고 슬프다고만 말하지 않는다. 2013년 6월, 모터쇼 H-20000 프로젝트에서 그들은 그들이 일터에서 입던 작업복을 입고 자동차를 조립했다. 그들이 가장 잘하던 일, 그들이 가장 보람있어 하던 일, 그들이 가장 하고 싶어하던 노동을 의식처럼 치렀다. “잃어버린 평범함”을 온몸과 손끝으로 감지하며 기뻐했다. 누군가는 “또 하고 싶다”고 계속 되뇌기도 했다. 대한문에서도 모터쇼에서도, 지금 굴뚝 위에서도 그들은 계속 절망하지만 계속 기뻐한다. 아니, 보람됐고 기뻐했던 일터에서의 평범했던 삶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꿈을 계속계속 되뇌면서 기쁨을 영영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농성을 한다. 노동은 신성하고 노동자는 아름답다는 사실에 몸소 기뻐했던 시간들을 되찾고 싶다는 열망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그들은 점점더 단련된다. 함께 함으로써,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본성을 함께 단련하고 있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화가 나면서도 기뻤다. 노동의 신성함을 보장하는 세상은 점점더 요원해보여 화가 나지만, 희망을 빼앗긴 노동자들이 절망에 절망을 거듭하면서 점점더 아름다워지고 있다는 증언은 또다른 희망이라서 기뻤다.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의 굴뚝이 가장 가까이에서 보이는 곳에서 나는 이 책을 소리내어 읽었다. 한 손엔 낯설지만 낯익은 또다른 해고노동자들이 직접 구워 건네준 군고구마를 들고 있었다. 멀리 굴뚝의 꼭대기에서 김정욱, 이창근 두 사람은 두 팔을 벌려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 굴뚝은 망루이자 등대였고, 그들의 일터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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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슬픔과 기쁨정혜윤 저 | 후마니타스
‘짧은’ 이야기라는 것이 존재할까. 시선을 붙잡는 첫 문장 앞에서 고민했다. 누군가의 생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이야기다. 그것도 긴 이야기다. 쌍용자동차를 둘러싼 사회적 책임의 문제, 해법 또는 해법 없음에 대한 논의, 구성원을 둘러싼 말들, 이 모든 말에 대한 말에 이르기까지 ‘쌍차’는 빈번하게 언급되어 왔다. 저자는 오랜만에 연장을 손에 쥐고 H-20000 모터쇼를 준비하는 표정들 속에서, ‘그날 이후’ 그들이 잃어버린 것이 ‘평범함’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 책은 다시, 어쩌면 처음으로 온전하게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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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소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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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슬픔과 기쁨

<정혜윤> 저13,5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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