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임재청의 세계문학 인생 콘서트
『인간 실격』,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
인간 실격.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숨 막히는 고통에서 벗어나 좀 더 아름답고 솔직한 세상을 바랐지만 세상은 그를 인간 실격으로 만들고 말았다
희극 명사
우리는 스펙을 쌓기 위해 피로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스펙은 취업하기 위해 필요한 이런저런 자격을 말합니다. 일을 하기 위해서 적절한 스펙이 요구되는 것은 마땅합니다. 하지만 불필요한 스펙을 쌓느라 어쩔 수 없이 불필요한 경쟁을 해야만 하는 게 문제입니다. 더구나 불필요한 스펙은 자신의 잠재력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 우리는 대부분 이렇게 말 그대로 자격이라는 간판을 내걸기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스펙이 하나 더 있으면 그만큼 우월하다고 여기는데 사실상 이것은 삶의 낭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작 인간이 되기 위한 스펙을 탐색하고 배워볼 기회마저 놓치고 맙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인간이 되기 위한 스펙을 쌓을 수 있을까요?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에게 인간이 되기 위한 스펙이 따로 있을까, 의문스럽지만 다자이 오사무의『인간 실격』에서 한 가지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그가 발명한 것인데 바로 희극 명사, 비극 명사 알아맞히기 놀이입니다. 즉,
증기선과 기차는 둘 다 비극 명사고 전철과 버스는 둘 다 희극 명사다. 왜 그런지를 이해 못하는 자는 예술을 논할 자격이 없다.
가령, 폐인(廢人)이라는 단어는 희극 명사일까요? 비극 명사일까요? 폐인에게서 느껴지는 삶은 어둡습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비극 명사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게 폐인이라는 단어는 희극 명사였습니다. 그 스스로 폐인처럼 살았기 때문에 폐인이라는 것이 자신의 그림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폐인에 대한 명사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릅니다.
익살, 명랑한 불신
그는 희극 명사, 비극 명사 알아맞히기 놀이를 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로 나아갔습니다. 이와 비슷한 유희가 또 있었는데 반의어 맞히기였습니다. 가령, 검정의 반의어는 하양입니다. 그러나 하양의 반의어는 검정이 아니라 빨강입니다. 그리고 빨강의 반의어는 검정입니다. 그렇다면 죄의 반의어는 뭘까요? 법이라거나 악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안이한 생각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멋대로 만들어낸 도덕이라는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 말대로 ‘죄와 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마저 아니라고 하여 죄와 벌은 유의어이지 반의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가 생각한 죄의 반의어는 다름 아닌 무한한 신뢰였습니다. 이러한 놀이는 그에게 실용적인 괴로움을 잊게 했습니다. 실용적인 괴로움이란 밥만 먹을 수 있으면 해결되는 괴로움입니다.
행복이 아닌 지옥. 세상 사람들과 행복의 개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오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보통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면서도 사람들의 눈에 거슬리지 않기 위해 익살을 부렸습니다. 그는 익살을 통해 사람들을 속이면서 뭔가를 깨달았습니다. 즉 서로를 속이면서 이상하게도 전혀 상처를 입지 않는다는 것, 무엇보다도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공포를 가슴 속 깊은 곳에 숨기면서 천진난만한 낙천적인 척 가장했던 그는 익살을 통해 무(無), 바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정말이지 명랑한 불신이 인간의 삶에 충만한 것에 의아했습니다. 이것이 익살의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었습니다.
도깨비 그림
그의 비합법적인 익살을 들여다보면 세상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합법적인지를 생각해볼수록 가장 무섭고 두려운 것이 세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은 온통 과학적 미신 혹은 과학적 유령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니 과학적이지 않은 즉 비합법적인 존재는 완전히 묵살되기 마련입니다. 이 과정에서 세상은 개인의 잘잘못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면 세상은 인간의 복수(複數)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복수는 그 같은 사람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는 스스로 말했듯 태어날 때부터 ‘음지의 존재’였습니다. 음지의 존재는 사람으로 보면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얼굴이며 동물로 보면 개나 고양이보다 열등한 느릿느릿 꾸물거리기만 하는 두꺼비 같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합법적인 세상에서 패배하거나 탈선한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세상이 용납하지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합법적인 세상에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자격은 아주 단순하게도 합법적으로 살면 됩니다. 그러나 그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도깨비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는 않는지 고민했습니다. 그는 이름 있는 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도 이런 도깨비 그림을 그리고 싶어.
화가들의 위대한 그림을 보고 도깨비 그림이라고 말한다는 게 정상은 아닙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즉 인간 실격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의 과대망상은 인간에 대한 공포를 솔직하게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공포 앞에서 그가 일부러 익살을 부렸다면 화가들은 도깨비 그림을 그린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도깨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한 번쯤 당당하게 세상과 맞서고 싶다는 절규가 아로새겨져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
세상이 인간의 복수라는 말은 그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이란 개인과 개인 간의 투쟁이고, 일시적인 투쟁이며 그때만 이기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에 실패가 두려워 움츠러든다면 27살에도 불구하고 40살 이상으로 보일 것 같은 정말이지 인간 실격이 되고 말 것입니다. 미하일 불가코프는『백위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모든 것은 종말을 고한다. 괴로움도, 아픔도, 피도, 굶주림도, 페스트도, 검(劍)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별들만은 우리의 존재와 행위의 그림자들이 지상에서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세상에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눈을 들어 별들을 보려 하지 않는 것일까? 왜?
사람들의 숨 막히는 고통에서 벗어나 좀 더 아름답고 솔직한 세상을 바랐지만 세상은 그를 인간 실격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정작 그는 한 순간도 미친 적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그럼, 누가 인간 실격일까요? 인간에 대해 희극 명사라고 하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비극 명사라고 하는 사람일까요? 비극적인 삶을 보내고 있다면 눈을 들어 별들을 보세요. 모든 것은 행복도 불행도 없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인간과 별은 희극 명사이지 않을까요?
인간실격다자이 오사무 저/김춘미 역 | 민음사
인간의 나약함을 탁월하게 묘사하는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새롭게 읽는다. 순수하고 여린 심성의 젊은이가 인간 사회의 위선과 잔혹성을 견디지 못하고 파멸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로,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못한 채 인간 실격자로 전락한 주인공의 내면을 치밀한 심리묘사로 기록하였다. 다자이 작품 속의 타락과 자기파괴적 언행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 공황상태에 빠진 일본 젊은이들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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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그래서 내가 나의 벗이 되어 오우아(吾友我)을 마주하게 되지만 읽은 책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을 때만큼은 진짜 외롭지 않아!
<다자이 오사무> 저/<김춘미> 역8,100원(10% + 5%)
인간의 나약함을 탁월하게 묘사하는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새롭게 읽는다. 순수하고 여린 심성의 젊은이가 인간 사회의 위선과 잔혹성을 견디지 못하고 파멸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로,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못한 채 인간 실격자로 전락한 주인공의 내면을 치밀한 심리묘사로 기록하였다. 다자이 작품 속의 타락과 자기파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