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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목사와 ‘묵독’으로 ‘길’을 생각하다

『흔들리며 걷는 길』 김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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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며 걷는 길』은 이탈리아, 터키, 조지아, 아르메니아, 프랑스 등을 따니며 수도원과 교회, 미술관 속에서 하나님과 세상과 공동체를 만난 날들의 기록이다.


이제 열둘을 세면
우리 모두 침묵하자.

잠깐 동안만 지구 위에 서서
어떤 언어로도 말하지 말자.
(중략)
우리 단 일 초만이라도 멈추어
손도 움직이지 말자.
그렇게 하면 아주 색다른 순간이 될 것이다.
바쁜 움직임도 엔진 소리도 정지한 가운데
갑자기 밀려온 이 이상한 상황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리라.
(하략)
「침묵 속에서」, 파블로 네루다

 

사각사각 책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클래식음악이 잔잔하게 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침묵이 옆에 있었다. 그것은 고요였다. 곳곳에 침묵을 위해 비워둔 의자가 있었다. 책과 침묵이 어우러진 시간, 그것은 묵독이었다.

 

“정원 이곳저곳에 놓인 하얀색 의자를 바라보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생각했다. ‘월든 호숫가에 있는 그의 집 앞에는 세 개의 의자가 있다지. 하나는 자신을 위해서 또 하나는 자기를 찾아올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또 하나는 침묵을 위해서. 침묵을 위해 비워둔 의자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의자 세 개를 둥그렇게 배치해 보았다가 나란히 놓았다. 대화가 아니라 사색을 위한 것이라면 그렇게 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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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하여 ‘묵독 파티’. 지난 12월 13일, 서울 가회동에 자리한 김영사에서 『흔들리며 걷는 길』의 저자 김기석 목사와 독자들이 만남을 가졌다. 그 만남, 여느 만남과 달리 독특했다. 대개의 경우 ‘북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책과 저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되나 이날은 음악이 얕게 깔리는 가운데 이야기가 아닌 각자의 책을 읽는 묵독 파티의 콘셉트로 진행됐다. 『흔들리며 걷는 길』은 이에 어울리는 책이다.

 

이 책은 이탈리아, 터키, 조지아, 아르메니아, 프랑스 등을 따니며 수도원과 교회, 미술관 속에서 하나님과 세상과 공동체를 만난 날들의 기록이다. 이번 책 출간이 11번째인 김기석 목사는 시, 문학, 동서고전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글쓰기로 기독교 문학의 새로운 층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문학평론가이기도 하다. 그는 묵독이 흐리는 공간에서 짧게 책에 대한 이야기를 건넸다.

 

“나도 이런 콘셉트의 모임은 처음이다. 묵독과 파티,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 것 같은데, 이런 콘셉트의 파티가 궁금하기도 했다. 묵독 파티를 연 것은 『흔들리며 걷는 길』때문인데, 지난 3월로 목사가 된지 만 30년이 됐다. 그동안 쉰 적이 없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능동적으로 쉬겠다는 의사를 교회에 밝혔다. 교회에선 1년을 쉬라고 했지만, 3개월을 쉬겠다고 하고는 유럽을 다녀온 기록을 이렇게 남겼다.”

 

“가난을 잃어버렸다는 것, 가난해질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것, 그것이 교회를 타락으로 이끈다. 돈과 교회의 위험한 결합은 결국 교회를 망가뜨리고 말 것이다.”(163쪽)

 

김 목사는 안식을 하면서도 영혼을 닦는 것을 허투루 하지 않았다. 그를 일컫는 다른 표현인 ‘길 위의 사람’ ‘일상순례자’처럼 그는 길을 순례했다. 그가 30년 만에 찾아온 휴식의 기간에 유럽을 택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하나는 돈이라는 물신 등에 빠져 허우적대는 한국의 기독교에 대한 걱정과 회복에 대한 단초를 찾기 위함이었다.

 

“한국의 기독교가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어디서 어떻게 회복해야 할 것인지 찾고 싶었다. 그래서 13세기 프란체스코 성인의 정신이 있는 이탈리아 아씨시에 가는 것을 목표로 했다.”

 

“오전에 로마를 떠나 성 프란체스코의 도시인 아씨시에 도착했다. 애초에 이 여정을 준비할 때 제일 먼저 염두에 두었던 도시이다. 십자군 전쟁 시기인 12세기와 13세기에 걸쳐 살았던 프란체스코는 교회가 잃어버렸던 ‘가난’의 영성을 주창하고 구현한 분이다. 본을 잃어버린 채 말에 집착하는 듯한 한국 교회에 대한 염려가 나를 이곳으로 이끌고 온 것이다.”(48~49쪽)

 

“모세상 앞에서 나는 두려웠다. 오늘의 한국 교회를 질책하기 위해 그가 벌떡 일어설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많은 교회들은 이미 변형된 형태의 금송아지를 숭배하고 있지 않은가. 저항하기를 포기했기에 더 이상 고난당하지 않는 교회, 풍요에 길들여진 신앙생활, 값싼 위로에 탐닉하는 신자들…”(45쪽)

 

그리고 다른 하나의 이유는 가난하나 정교회의 정신이 있는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를 찾아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목격하고 싶었다. 그리고 수도원과 같은 공동체에 머물면서 그들의 신실한 신앙생활을 엿봤다. 한국 기독교가 얼마나 변질돼 있는지 눈으로 목도할 수 있었다.

 

“며칠간 정들었던 골목길 숙소를 떠나 정교회의 나라 조지아로 떠난다. 구 소비에트에게 당했던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은 듯 그루지야라는 소련식 발음을 버리고 미국식 발음인 조지아로 개명한 나라이고, 가장 오래된 기독교 전통이 남아 있는 나라 중 하나이다.”(189쪽)

 

그는 오랫동안 길들여져 있던 삶의 자리를 떠나 순례의 길에 나서면서 자신을 돌이켜보는 시간도 자연스레 만났다. 그리고 무엇이 낯선지를 기록했다. 그것은 스스로 부여한 임무이자 의무였다.

 

“낯섦은 본디 불편하기도 하지만 사람을 풍요롭게도 만든다. 사실 이틀만 지나면 낯섦은 익숙해진다. 그래서 그 낯선 것을 기록하고자 애를 썼다. 스스로에게 부여한 의무가 매일 원고지 20~30매를 쓰는 것이었다. 그것을 지켰고, 어떤 것은 30매를 넘기면서 40여개를 기록한 것이 이 책이다. 나와의 약속을 지켰고 낯섦이 내 영혼에 어떤 파문을 일으키는지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글을 썼다.”

 

그는 길과 흔들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꺼냈다. 사람이 흔들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그는 비록 목사지만, 확신에 찬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흔들리고 여백이 있는 사람이 아름답다고 덧붙였다. 그런 의미에서 죽을 때까지 흔들리면서 가자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흔들리며 걷는 길』이 독자에게 평안도 주고 경각심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언급했다.

 

“새벽 가까운 곳에서 교회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여온다. 울림 좋은 종소리는 물결처럼 다가와 영혼을 가만히 흔든다.”(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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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덤덤하고 건조한 문체로 채워져 있다. 김 목사의 의도였다. 감동이나 감상을 배제하고 건조하게 가자는 의미였다. 이는 독자보다는 길을 걷고 있는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여행자는 요구하지만 순례자는 감사한다”는 말이 있다. 2000년대를 종교인으로서 나는 이 시대가 우리에게 어떻게 부딪혀 왔는지를 전하는 기록자의 마음으로 산다. 이렇게 책을 읽는 공간에 함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다시 묵독이 이어졌다. 『흔들리며 걷는 길』을 따라간다. 물론 책에는 길이 없다. 책을 통해 얻은 나침반을 들고 길을 나설 때에야 길이 생긴다. <미생>의 장그래도 같은 말을 했다. “길이란 걷는 것이 아니라 걸으며 나아가는 것이다.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누구나 그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다시 길이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다.”

 

“아픔이 있는 자리, 사람들의 한숨과 눈물이 배어 있는 땅, 바로 이곳이 하늘이다. 깊이를 뒤집으면 높이가 된다. 사다리가 없다고 낙심할 것 없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낮은 곳으로 흐르다보면 하늘에 당도하게 될 것이다. 이제 다시 길을 떠나야 할 때이다.”(3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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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며 걷는 길김기석 저 | 포이에마
『흔들리며 걷는 길』에는 길 위에서 누구를 만날 것인지, 어떤 삶의 풍경과 마주할 것인지, 또 영원의 중심이신 분의 마음은 어떠한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김기석 목사의 40여 일의 순례 여정이 담겨있다. 물결처럼 사무치는 ‘고독’과 그분과 대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침묵’, 그리고 평화를 갈망하며 건네는 ‘기도’를 벗 삼아 걸었던 순례의 날들을 저자 특유의 아름다운 문체와 저자가 직접 찍은 60여 컷의 사진과 함께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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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흔들리며 걷는 길

<김기석> 저12,420원(10% + 5%)

잃어버린 불온함을 찾아 나선 길 위에서 그분과 대화하고, 묻고, 의심하고, 확인했던 날들의 기록 『흔들리며 걷는 길』에는 길 위에서 누구를 만날 것인지, 어떤 삶의 풍경과 마주할 것인지, 또 영원의 중심이신 분의 마음은 어떠한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김기석 목사의 40여 일의 순례 여정이 담겨있다. 물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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