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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용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홀로의 장점”

『생겨요, 어느 날』 이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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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겨요, 어느 날』는 <별이 빛나는 밤에> <두 시의 데이트> 메인작가 이윤용이 쓴 에세이다. 많은 청취자와 공감을 나눈 라디오 프로그램의 메인 작가답게 책 속에서도 감성 넘치는 글을 풀어낸다.

이윤용 작가는 그녀 자신을 이렇게 설명한다.

 

어린이날에 태어나서인지 나이 들어서도 철없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으며 5월 8일에 태어났다면 나도 어른스러운 마음으로 살았을 텐데, 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펴곤 하는 싱글 여성.

 

그렇지만 『생겨요, 어느 날』의 실린 글을 보면 철없는 마음가짐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철없는’이라는 수식어는 아마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태도일 텐데, 책에서 드러난 저자의 면모는 동시대인과 깊게 공감하고 있다. 특히 혼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주로 저자가 독립하면서 혼자 살게 되면서 겪은 경험에서 탄생했다.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책을 넘기면서 피식 웃을 수 있거나, 잠시 허공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을 수 있는 문장이 일러스트와 어울렸다.

 

이윤용-작가님.jpg

 

‘생겨요, 어느 날’이라는 제목이 감성적으로 다가오는데요. 어떻게 이런 제목을 생각하게 되셨나요?

 

처음 제목은 ‘혼자’ ‘싱글’ ‘여성’ ‘1인 가구’ 이런 단어들에 초점이 맞춰 있었어요. 그런데 출판사 분들과 회의하면서, 꼭 그렇게 ‘싱글’이라는 점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을까, 싱글이든 아니든 모두 다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글인데, 라는 의견이 나왔지요. 어쨌든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건, 지금은 조금 힘들더라도 우린 모두 어느 날 행복해질 거다, 라는 거였거든요. 그래서 정해진 제목이랍니다. 자칫 너무 세상 다 산 사람의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조금 살아보니 모든 것이 생겼다 사라지고 그러다 또 생기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생겨요, 어느 날>이란 제목, 매우 마음에 듭니다.


이 책은 도시에 사는 솔로인 사람을 위한 책같이 느껴졌는데요. 쓰시면서 특히 염두에 둔 독자는 누구인가요.

 

처음 쓰자고 마음 먹었을 때부터 1인 가구, 그러니까 혼자 살고 계신 분들을 독자로 생각했어요.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는데, 그때 제가 창가자리에 앉아 있었거든요. 거리의 사람들 중 혼자 걸어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보이는 거예요. 햇살 가득한 인도 위를 혼자서 걷는 20대 여성, 40대 남성, 그리고 할머니. 물론 그분들이 집으로 돌아가서는 각자의 가족들과 함께 살고 계실 수도 있지만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은 언젠가 어떤 상황에 의해서든 ‘혼자’가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렇게 ‘홀로 된다는 것’이 꼭 우거지 죽상으로 있어야 할 일은 아니지 않을까. 그래서 가능하면 밝게 쓰려고 애썼고, 제 주위에 싱글 여성들이 많다보니 들은 에피소드들도 많고요. 실제로 혼자 살아보니까 그게 꼭 그렇게 만날 외로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그러니까 이 책의 독자는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결혼을 했거나 안했거나, ‘혼자’라는 걸 느낀 적이 있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시리라 생각해요.


책 속에 실은 에피소드 중 책으로 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연은?

 

맨 처음 썼던 에피소드는 ‘고속도로 통감자’라는 소제목이 달린 사연이었어요.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혼자 달리다가 차 안에서 통행권을 잃어버렸는데, 일행이 있었다면 “거기 옆에 떨어졌나 좀 찾아봐” 할 텐데 부탁할 사람도 없고, “전화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물어봐” 하고 시킬 사람도 없고 막막했죠. 아, 이래서 혼자 먼 길을 가는 건 서러운 거구나 싶기도 했고.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책을 보시면 알게 되실 거예요!)

 

그 다음으로 쓴 건 ‘둘인 것처럼’이라는 소제목이 달린 사연이에요. 저는 편의점에 가면 혼자 먹을 거면서 항상 맥주도 두 개, 컵라면도 두 개 사거든요. 편의점 직원이 내가 혼자인 거 눈치 못 채게. (사실 아무도 관심 없을 텐데, 그쵸?) 제 친구도 혼자 자장면 먹고 그릇을 내놨는데 젓가락 네 개를 꽂아놨다는 말에 빵 터졌죠.

 

그리고 책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또 다른 친구는 혼자 살면서 매일 우유를 1리터짜리로 배달시켜 먹는대요. 마치 대식구가 사는 것처럼. 그래서 하루라도 우유가 밀리면 끝장이라고 라면 끓일 때도 우유를 넣어요. (웃음) 이런 비슷비슷한 에피소드를 들으면 즐거워요. 나만 그렇게 사는 거 아니구나, 싶어서 안심도 되고요.    

 

책에 혼자 사는 삶에 관해서 재미있게 묘사해주셨는데요. 혼자 사는 삶,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일까요?

 

크게 보면, 자유롭다는 거.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요. 원래 말 많이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성격이에요. 말로 하기보다는 글로 쓰는 게 훨씬 편해요. 엄마 아빠랑 같이 살 때는 늦게 들어가면 왜 늦게 들어가는지, 쉬면 왜 쉬는지, 혼자 영화를 보면 왜 혼자 보는지, 이 옷은 얼마주고 샀는지, 그걸 일일이 설명하는 게 싫었어요. 그래서 항상 생각했죠, 나의 행동 하나하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면 참 좋겠다!


혼자 사니까 그게 가능하더라고요. 물론 아침 저녁으로 엄마랑 통화하고(안 하면 엄마가 궁금해 하시니까) 있지만, 갑자기 휙 나가고 싶을 때 ‘왜’ ‘누구랑’ ‘어디 가는지’ 설명 안 해도 되고 들어와서도 ‘밖에서 누구랑’ ‘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설명 안 해도 되니까 그게 좋아요.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남자친구가 이런 거 물어봐주면 아름다운 구속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러니까 저는, 그냥 가족에게 설명하는 게 싫었던 건가 봐요. (웃음)

 

혼자 살면서 조심해야 할 세 가지를 꼽아 주신다면?

 

일단, 싱글세인지 뭔지 하는 게 진짜로 생기면 조심해야 되고요. 치안에 대한 문제는 뺄게요. 이건 이제 정부와 사회가 나서야 할 문제니까.

 

첫째, 짐이 늘지 않도록 조심해야 되죠. 왜 샀냐고 타박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쇼핑에 들어가는 지출이 장난 아니더라고요. 쇼핑이란 게, 옷뿐만 아니라 자잘한 가구들도 자꾸 사게 돼요. 집을 예쁘게 꾸미고 싶으니까요. 집에 돈 들이기 시작하면 정말 끝도 없어요.


둘째, 음식물 쓰레기 조심하시고요. 하다못해 바나나 한 다발도 진짜 오래 먹거든요. 나중에는 바나나가 갈색으로 변하다 못해 뭉개져 있어요. 그러니까 너무 많이 사서 음식물 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시고요. 그리고 또,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면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버려야 하는데 혼자 살다 보니 봉투가 채워지기까지 시간이 걸려요. 그러니까 더불어 날파리도 조심하여야 돼요.


셋째, 침대 조심하셔야죠. 쉬는 날 침대에 혼자 있으면 하루 종일도 누워있겠잖아요. 누워서 미드 보고, 일드 보고, 영화 보고… 뒹굴뒹굴 진짜 좋죠.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 나중에 두통이 와요. 잘 때 허무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침대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셔야 됩니다.   
 
방송이 없는 날은 주로 뭐하고 보내시나요.

 

제가 집에 있는 걸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약속이 없으면 밖에 안 나가고 집에만 있어요. 집에서 TV도 보고, 책도 보고, 인터넷도 하고, 가구도 옮기고, 청소도 하고, 또 다른 써야 할 게(알바 같은) 있으면 그거 쓰고. 그러면 하루가 금방 가요. 집에만 있는 날엔, 쓰레기가 쌓여도 버리러 안 나가요. 집에 먹을 게 없어도 안 나가요. 진짜 집 안에만 있어요. 그런 날이 자주 반복되면 ‘내가 이렇게 집에만 있음 안 되지’ 싶은 마음에 극장에 가죠. 가서 혼자 영화 보고, 커피 마시고, 멍 때리고, 사람 구경하고, 그러다 아이템이 떠오르면 메모도 하고요.
   

이윤용작가님책.jpg

 

나이를 숨기고 했던 소개팅 대목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최악의 소개팅은?

 

글쎄요. 저는 지금까지 그렇게 최악은 없었던 것 같아요. 나이를 속였던 소개팅도, 상대방은 이 사실을 알게 됐다면 최악이라고 느꼈을 순 있겠으나, 저는 최악까진 아니었고 그냥 마음이 불편했죠.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그녀들은 주로 ‘선’) 매너 없는 남자도 많고, 불쾌한 질문도 자주받았다고 하는데, 다행히 저는 그런 건 없었어요.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수백 번의 소개팅을 했는데 최악인 경우는 없었으니 감사할 일이네요, 라고 쓰는 순간…… 불현듯 한 남자가 떠오르긴 합니다. 저에게 만나자마자 이렇게 물었죠. “근데 방송작가는 돈 얼마나 벌어요?” “연봉이 얼만데요?” “돈은 직접 관리하세요?” 국세청에서 일하시는 분도 아니면서. 쩝.


돼지갈비 2인분을 주문한 친구 A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작가님은 혼자 어디까지 드셔보셨나요.

 

분식집에서 라면요. 이대에서 5시에 공연이 있었는데, 그날 온종일 아무것도 안 먹은 상태였거든요. 그래서 패스트푸드점을 찾으러 이대 앞을 돌아다녔는데, 거기가 엄청 변해서 옛날에 롯데리아인가 있던 자리에 다른 게 들어섰더라고요. 아, 어떡하지? 고민하다가, 아주 작은 분식집에 들어가서 떡라면하고 만두를 시켜서 벽 보면서 배터지게 먹었어요.


다음에는 설렁탕집에 도전해보려고요.


여러 라디오 프로그램을 하셨는데요. 낮 프로그램과 밤 프로그램 중 작가님께서는 어떤 게 더 편하신가요.

 

이게 나이대에 따라 다른데요.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는 밤 프로그램이 재밌었죠. 밤 프로그램이 대체로 청소년 프로그램이잖아요. 그래서 시끌벅적하고, 인기가수들 나와서 노래하고 얘기하고 꽁트하고 그런 게 참 재밌었는데, 30대 중반이 되니까 제가 자꾸 원고에서 뭔가를 ‘가르치려’ 하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렇게 가르치려 드니까 원고가 재미 없는 거예요. 그때 깨달았죠, 아, 이제 밤프로는 그만해야겠구나. 체력도 바닥이 난 상태였고요. 그래서 낮 프로그램으로 옮겼는데, 그냥 세상 사는 시시콜콜한 청취자들의 얘기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저는 말 잘하는 스타보다 우리 청취자들의 사연이 더 재밌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낮 프로그램이 더 편해요. 특징이라면, 밤 프로그램은 주로 청소년과 청년층을 대상으로 하니까 젊고 감성적이고요, 낮 프로그램은 성인을 대상으로 하니까 구수하고 현실적이고 아주 리얼하죠.


함께했던 여러 라디오 DJ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누구였나요. 이유도 말씀해주세요.

 

아무래도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박경림 씨요. 경림이하고는 진짜 오랫동안 일했어요. 제가 서브작가였던 시절에도 같이 일했고, 그 후에도 <심심타파><별이 빛나는 밤에><두시의 데이트> 이렇게 세 개 프로그램이나 같이 하고 있으니까요. 저보다 어리지만 보면 볼수록 본받을 게 많은 ‘사람(DJ를 떠나)’이에요. 세상을 저렇게 에너지와 사랑이 넘치게 살 수도 있구나, 나도 좀 적극적으로 살아야지, 반성하곤 합니다. 

 

그리고 <오후의 발견>을 같이 했던 가수 김현철 오빠도 인상적이죠. 작사를 하시는 분이라서 원고 쓸 때 신경이 많이 쓰였거든요. 못 썼다고 흉보면 어쩌지? 뭐 이런 걱정들. 하지만 원고 타박이 전혀 없어서 깜짝 놀랐고요. 더 놀란 건, 코멘트 하실 때 보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셨지?’ 싶은 경우가 많았어요. 예를 들면 비오는 날, ‘비오는 날은 차선이 잘 안 보인다’라는 내용의 오프닝 원고를 쓴 적이 있는데, 현철 오빠가 뒤에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차선은 잘 안 보이는데… 그런데 옛날에 그렸다 지워진 차선은 신기하게 잘 보인다. 그래서 그런가 비오는 날엔 옛 생각이 많이 난다”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정말 놀랍잖아요. 이 얘길 회식 때 했더니, 정작 현철 오빠는 “내가 그랬냐? 허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어쨌거나 단언컨대, 그분은 천재가 분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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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겨요, 어느 날이윤용 저 | 김영사
이 책에는 혼자 사는 여자의 일상, 사랑, 일, 사람, 마음 고민을 담은 담백하고 솔직한 글 136편에 예쁜 일러스트가 더해졌다. 자그마한 눈 조각을 둥글게 굴리고 굴려 예쁜 눈사람을 만들어내듯, 일상 속에서 사랑도, 일도, 행복도 차차 만들어가는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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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

생겨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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