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그림책으로 마음 선물하기
눈부신 보름달을 만날 날
『부엉이와 보름달』
보름달이 뜬 밤이었다. 흰 눈까지 푸짐하게 내려 한밤이지만 세상은 낮처럼 밝아 보인다. 어린 소녀가 아빠 손을 잡고 집을 나선다. 부엉이 구경을 가는 거다.
추석에 가장 먼저 생각나는 책은 1995년 출간되어 지금껏 사랑받는 이억배의 『솔이의 추석 이야기』다. 시골에 가는 솔이의 설렘과 귀향 길 풍경이 이억배의 그림 속에 잘 녹아있어 교과서에도 실린 고전이다. 이 책과 더불어 개인적으로 생각나는 또 한 권의 그림책은 존 쇤헤르가 그리고 제인 욜런이 글을 쓴 『부엉이와 보름달』이다.
책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한 개인이 살아온 만큼만 읽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 책도 비슷하다. 어느 해인가 산속에서 보름달을 본 적이 있는데 그날 이후 이 책에 대한 느낌이 사뭇 달라졌다. 깊은 산속 불빛 한 점 없는 어둠 아래 보름달이 떠오르자 저 앞산까지 훤해졌다. 보름달 아래서 바늘귀에 실을 꿸 수 있다거나 보름달 뜨는 밤에 산을 넘어갔다는 옛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그 압도적 광경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부엉이와 보름달』에서 제인 욜런은 보름달 뜨는 밤에 부엉이 구경을 나간 소녀의 조마조마하고 설레는 마음을 서정적이고 시적인 언어로 아름답게 표현해냈다. 그림 작가인 존 쇤헤르가 편집자 친구로부터 제인 욜런의 글을 받았을 때 왜 단박에 매료되어 바로 그림이 그리고 싶었는지 짐작이 갈 정도다.
보름달이 뜬 밤이었다. 흰 눈까지 푸짐하게 내려 한밤이지만 세상은 낮처럼 밝아 보인다. 어린 소녀가 아빠 손을 잡고 집을 나선다. 부엉이 구경을 가는 거다. 이미 오빠들은 모두 부엉이 구경을 했고 말끝마다 소녀에게 으스댔을 것이다. 소녀는 언제부터인가 자신도 부엉이 구경을 가보고 싶어 간절히 바랐고 바로 오늘이 그날이었다. 귀와 볼이 얼어붙도록 시리고 추운 밤, 사방은 죽음처럼 고요하다. 부엉이를 만나려면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하는데, 소녀의 심장 뛰는 소리가 천둥처럼 거세다. 모든 소리마저 사라져 꿈속처럼 고요해진 숲 속에서 아빠와 소녀의 발자욱 소리만 들린다. 그 밤, 소녀는 거대한 존재와 맞닥뜨린다. 그것은 소녀가 만난 부엉이지만 생각해보면 소녀는 그날 더 거대한 무엇, 지연에 대한 경외감 같은 걸 느꼈으리라.
부엉이 구경을 간다는 건, 소녀가 더 이상 어린애 취급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숲 속으로 걸어가던 소녀는 너무 추워 몸이 얼어버릴 것 같지만 불평하지 않고 참으며 이렇게 말한다. “부엉이 구경을 나가면 자기 몸은 자기가 알아서 따뜻하게 해야 되거든요.” 또 시커먼 나무 뒤에 뭔가 숨어있을 것 같아 무섭지만 아빠에게 응석 부리지 않고 “부엉이 구경을 나가서는 용감해야 하거든요” 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부엉이 구경을 한다는 건 일종의 통과의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펜과 수채 물감을 사용하고 여백을 적극적으로 그림 속으로 끌어들인 존 쇤헤르의 솜씨는 그야말로 일품이다. 한 편의 시 같은 글을 그림으로 풀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집에서 나온 아빠와 소녀는 숲 속으로 걷고 걷고 또 걸어 들어가고 있을 뿐, 늑대를 만나거나 토끼를 만나는 등 뭔가 사건은 일어나지 않고 터질 듯한 기대감만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존 쉰헤르는 숲 속을 걷는 부녀의 모습을 아주 다채롭게 구성해 또 다른 그림의 이야기를 창조해냈다. 원경과 클로즈업을 아주 적절하게 사용해 지루해질 틈도 없고, 특히 소녀가 부엉이를 만나는 절정 장면에서 사용된 클로즈업은 독자의 숨을 멈추게 한다.
부엉이 구경을 가서는 말할 필요도, 따뜻할 필요도 없단다.
소망말고는 어떤 것도 필요가 없단다.
아빠는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렇게 눈부신 보름달 아래를, 침묵하는 날개에 실려, 날아가는 소망 말이에요.
이 책으로 칼데콧 상을 수상한 존 쇤헤르는 수상 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다. “크던 작든 야생 동물을 만나면 나는 경외감과 놀라움 그리고 존경심마저 느낍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저마다 개성을 지니기에 낯설고 불가사의 합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존재의 이유가 충분히 있습니다. 나는 그림 속에서 바로 이 점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것은 가치 있고 보람된 일입니다.”
보름달이 뜬 날, 소녀는 설레는 가슴을 안고 부엉이 구경을 나섰고, 자연 속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경외감을 안고 돌아왔다. 아마 평생 보름달이 뜰 때마다 소리 없이 커다란 날개를 접고 나뭇가지에 앉았던 부엉이를 잊지 못할 것이다. 여러분에게 잊지 못할 보름달의 추억은 어떤 것인가요?
※함께 보면 좋은 책
박영희 글/조성기,강제욱,안성용 사진 | 삶창(삶이보이는창)
원제가 'Kitten’s First Full Moon'인데서 알 수 있듯이, 보름달을 처음 본 아이들을 떠올리게 하는 귀여운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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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문학을 공부했고 웅진출판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일했다. 현재는 책과 출판에 관해 글을 쓰고 방송을 하는 출판칼럼니스트로 일하고 있다. [황정민의 FM대행진]에서 ‘한미화의 서점가는 길’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겨레신문]에 어린이책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시대 스테디셀러의 계보』 『베스트셀러 이렇게 만들어졌다 1-2』 등의 출판시평과 『잡스 사용법』, 『책 읽기는 게임이야』,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공저)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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