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서유미의 한 몸의 시간
달콤한 시간은 빨리 흐른다
의욕과 반성과 계획 속에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고
“한숨을 쉬며 탁상 달력을 한 장 넘겼다. 2월이 과거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알지 못했다. 달콤한 시간이 우리 곁을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2013년 1월의 서울은 추웠다. 일기예보에서는 한파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소설을 많이 써두면 마음이 든든해져서 추위 같은 건 타지 않을 거야.
야식을 먹으며 옆 사람과 나는 고개를 깊이 끄덕거렸다. 우리 주변에는 의욕만 땔감용 장작처럼 잔뜩 쌓여 있었다. 그 와중에 문화센터의 소설 강의가 시작되었고, 나는 출판사의 신년회와 좋아하는 후배의 책 출간 모임에 참석해 웃고 떠들었다. 소설 쓰는 사람들을 만나서 근황에 대해 주고받고 고민을 나눈 뒤 돌아오면 질투심과 자괴감 때문에 곧잘 뒤척이곤 했다. 내가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의 이야기에 대해 내가 쓸 수 없는 문장으로 써 내려가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건 달콤하면서도 아픈 일이었다. 보고 읽기로 한 영화와 책의 리스트는 터무니없이 길었고 2월에 마감해야 할 단편소설의 초고는 엉망이었다.
1월은 그렇게 눈처럼 녹아내렸다. 1월의 마지막 날 우리는 마주 앉아 또 반성하고 계획을 수정하고 다시 의욕을 불태웠다. 춥진 않았지만 부끄러워서 자주 웃었다. 상대를 위로하기 위해 열두 달 중 한 달이 지나간 것뿐이라는 말도 자주 했다.
2월에는 설 연휴와 내 생일과 단편소설 마감이 있었다. 2월 초에는 눈이 많이 내렸고 옆 사람과 나는 한 차례씩 몸살을 앓았다. 별로 무리하지도 않았는데 늙었나봐, 우리는 감기약에 취해 중얼거렸고 땀을 흠뻑 흘린 뒤 조금씩 회복되었다.
전 부치고 윷놀이하며 설 연휴를 보낸 뒤 생일 모임을 서너 차례 갖고 나니 2월이 절반이상 지나버렸다. 소설은 고치면 고칠수록 어떤 부분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나를 좌절시켰다. 책상 위에는 퇴고한 종이가 수북했지만 졸작을 면하긴 힘들 것 같았다. 미심쩍은 소설이 담긴 메일의 발송 버튼을 누르고 나니 창밖이 희부옜다. 나는 한숨을 쉬며 탁상 달력을 한 장 넘겼다. 2월이 과거가 되는 순간이었고 어쩔 수 없이 의기소침해졌다.
그러나 그때는 알지 못했다. 달콤한 시간이 우리 곁을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