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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의 거리, 용산을 다시 보다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저자 이광호 교수와의 만남 용산을 걷는 것은 상실을 맞이하는 기다림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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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5일,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출간을 기념하여 난다살롱 ‘용산, 산책자의 거리’ 행사가 있었다. 박준 시인의 사회로 진행된 이 행사는 책의 저자인 이광호 교수의 강연으로 이루어진 1부와 연극배우 임윤비, 시인 이우성•김민정이 게스트로 참가한 2부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는 이광호 교수가 산책의 뜻을 재정의하고, '용산을 걷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이야기했다. 2부는 게스트들이 용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책의 구절을 낭독하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는 '여행이 아닌, 관광이 아닌, 바야흐로 산책을 통해 나 자신을 찾아보자'는 의도에서 기획된 난다 출판사의 ‘걸어본다’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책에서 이광호 교수는 용산을 그저 사는 곳, 지나쳐 가는 곳으로 보지 않고 느긋하게 산책하며 그 구석구석에서 의미를 찾았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7월 15일, 그는 ‘용산, 산책자의 거리’라는 제목으로 '산책'의 의미를 정의하며 용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작가만남-지나치게


산책, 목적이 없고 멈춤의 자유가 있는 안과 밖의 뒤섞임


"그냥 걷는 것과 산책은 다르죠. 보통 걸어갈 때는 목적지가 있는 거잖아요. 거래처나 직장 등을 향해 결국 어떤 목적을 위해 걷는 것. 이는 산책이 아니라 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산책은 '목적'할 필요가 없는 거죠. 어디로 가야 할 필요가 없는 게 산책입니다. 또, 이동을 할 때는 멈추면 안됩니다. 길을 가다가 재미있는 가게가 눈에 보인다고 해서 갑자기 멈춰서고, 그럴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산책이라는 것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멈출 수 있다는 것 같아요. '멈춤의 자유'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우리가 산책을 하고 있느냐, 이동을 하고 있느냐를 나누는 데 아주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동이라는 것은 안-밖-안이라는 구조 밖에 없어요. 예를 들어 저처럼 집이라는 곳에서 바깥을 거쳐서 다시 용산구청 건물이라는 안으로 오는 거죠. 이 때 바깥은 빨리 지나가야 하는 곳이죠, 얼마나 효율적으로 바깥을 지나서 다른 안에 도착하느냐, 이것이 이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산책의 경우는 그렇지 않아요. 삼각지에서 여기로 오는데 걸어오다가 벤치가 있어서 앉고, '앉으니까 너무 좋다' 하면, 이것이 바깥이 아니고 마치 내 집 같고 내 '안'같은 마음이 드는 거죠. 다시 말하면 그것 그냥 바깥이 아니라 나의 다른 '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죠. 이게 바로 산책이라는 거예요. 따라서 산책의 동선 속에서는 안과 밖이 분명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안과 밖이 서로 섞인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광호 교수에게 산책은 또한 본성의 리듬, 생명의 리듬에 맞춰 걷는 것이다. 현대인에게는 '속도를 빨리 내면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속도의 신화가 있다. 이 조급함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산책의 시작이다. 결국, 멈춤의 자유가 있고 안과 밖이 뒤섞일 수 있는 산책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효율적인가'에 대한 강박을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광호 교수는 '도시'를 산책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도시가 자연과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우리 세대의 '새로운 자연'이며, 도시를 걷는다는 것은 도시의 폭력적인 속도에 저항하는 것이라 말했다.


"도시는 우리에게 새로운 자연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떤 선배작가가 후배작가에게 이런 말을 했대요, 왜 소설을 쓸 때 나무나 새 이름을 정확히 모르고 '이름 모를 새가 울었다', '어두운 나무가 서있다' 이런 식으로 쓰느냐. 왜 이렇게 자연에 무지하느냐고 핀잔을 준거죠. 그런데 저는 끼어 있는 세대로서, 어린 세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억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사람들은 자연에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새와 나무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해요. 하지만 이 세대는 또 다른 걸 알아요. 예를 들어, 요즘 작가들은 '차가 왔다'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브랜드를 딱 얘기해요. '맥주를 마셨다' 대신 어떤 맥주인지를 정확히 이야기해요. 이게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의 새로운 자연입니다."


"도시에는 굉장히 폭력적인 속도가 있어요. 이에 저항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거예요. 그러나 산책이란 도시의 이런 속도에 대한 일종의 저항인 거죠. 저항하면서 동시에 그 속도, 그 공간, 그 장소에 매혹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어요. 매혹 되는 동시에 저항하는 것, 순응과 이탈. 이런 게 양면처럼 산책을 통해 동시에 나타난다는 거죠.”


그는 산책자의 사례로 벤야민을 들었다. 벤야민은 보들레르를 통해 '거리에서 시를 쓴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파고들었다.


"보들레르의 시를 읽으면서 벤야민은 거리에서 시를 쓴다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했어요. 거리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군중과 상품이죠. 군중은 익명의 사람이에요. 나를 알지 못할뿐더러, 알 필요도 없는 사람들이죠. 또 하나는 상품인데 '물신'이라고도 하죠. 거리에는 쇼윈도가 있고 물건이 있어요, 이 물건들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나를 사라'고 하죠. 그래서 자본주의 시대에 길을 걷는다는 것은 군중을 경험하고 물신을 만나는 거죠."

 

작가만남-지나치게


근대 자본주의 세계에서 거리는 끊임없이 군중에 시달리고 상품에 자신의 넋을 빼앗기게 되는 곳이다. 그 곳에서 사람은 언제나 '목표'를 가지고 '목표를 위해 어떤 것이 더 효율적인가'를 따지도록 강요 받는다. 그러한 거리에서 '그냥' 하릴없이 걷는 것은 이에 대한 저항이 될 수 있다. 벤야민은 이를 '전복자'와 '소요자'라는 표현을 통해 설명했다. 산책자는 도시에서 소비하지도 않고, 소비되지도 않는다.


"벤야민은 '전복자, 소요자'라는 것을 얘기해요. 느리게 걷는다는 것은 일종의 뒤집는 사람이 되는 것이죠, 거대한 소비 메커니즘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저 하릴없이 걷는 거예요. 그래서 '무위'라는 말이 있잖아요,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아요. '내가 저 식당에 가봐야 돼', '오늘은 만 보를 걸어야 돼' 이런 것이 아니라 아예 목적이 없어요. 모든 것이 경제성, 생산성으로 돌아가는 세계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자체는 하나의 미학이고 예술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 그 자체가 저항인 것이죠."


'근대'와 '혼종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용산


그는 용산을 '근대'와 '혼종성'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했다. 용산은 근대가 시작된 곳이자 사라지고 저지된 곳으로, 다양한 시간이 함께 흐르는 혼종성의 공간이다.


"용산이라는 곳은 근대가 시작된 곳이고 그 동시에 근대가 저지된 곳이에요. 왜 용산이 근대가 시작된 곳이냐 하면, 우선 외세가 계속해서 침입한 곳이죠. 몽고군도 여기 있었고, 일본군도 여기 있었고, 미군도 여기 주둔하죠. 그런데 우리는 이 역사를 잊고 살죠. 그리고 사실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단절되어 있어요. 미군부대 지나가면서 담 안에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잖아요. 그 곳에 가본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업무 지역이 아닌 곳은 미국의 조용한 소도시처럼 구성되어 있다고 해요.

 

예를 들어, 시내 버거킹과 부대 안의 버거킹의 메뉴가 다르대요. 거기는 한국이 아니라는 건데, 그게 담 하나 사이에 두고 공존한다는 거죠. 이는 단절과 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용산은 여러 가지 다른 시간이 함께 흐른다는 거죠. 청파동을 걸어보면 일제강점기의 적산가옥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 그 곳에 또 다세대 주택도 있고, 근대화 초기에 지어진 건물과 지금 막 지어 올린 집도 함께 있죠. 하나의 공간 안에 다른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게, 이슬람 사원 밑에 트렌스젠더 바와 게이 바가 있어요. 또 용산에는 동네 토박이인 할아버지 할머니와 외국인, 공방을 차린 젊은 예술가들이 함께 살고 있어요. 이러한 혼종성이 용산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과 에너지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작가만남-지나치게


용산을 걷는 것은 상실을 맞이하는 기다림의 자세


마지막으로 이광호 교수는 '용산을 걷는다'는 것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용산역 앞에 있는 남일당 터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용산참사가 일어난 그 곳은 현재 철거 뒤 재건축이 미뤄지면서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이 곳을 지나면서 사람들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용산참사를 떠올리게 되고, '애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애도라고 하는 것은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죠, 굉장히 치명적인 상실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애도의 기간을 잘 극복하지 못하면, 즉 이전의 열정을 대신할 새로운 대상을 못 찾으면, 마음의 열정이라는 소위 '리비도'라는 것이 자기 자신을 향하게 돼요. 이게 자기 혐오, 우울증의 기원이 되는 것이죠. 이 얘기의 핵심은 어떻게든 애도를 잘 극복해야 한다는 거죠. 예를 들어 우리가 세월호 얘기를 할 때 '아직도 이 얘기를 하느냐', '일상 생활도 해야 하는데' 식의 애도의 경제학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과연 쉬울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이러한 생각을 장소로 끌고 왔다. 자신의 아파트가 재개발이 되어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섰을 때, 사라진 장소 대신 새로운 아파트를 사랑하는 것이 과연 쉬울까? 그는 한번 무언가가 사라진 장소는 다른 무언가로 채워지지 않고 끝내 부재로 남게 된다고 말한다.


"그 곳은 채워지지 않고 움푹 패인 곳, 공백으로 남게 됩니다. 저는 '애도'라는 것은 일종의 기다림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완전히 잊을 수 없어요. 쉽게 다른 것으로 상실을 채울 수도 없어요. 결국 새로운 대상을 찾지 않으면서도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일종의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목적과 정해진 시간이 있는 일반적 기다림이 아니라, 목적도 없고 정해진 시간도 없고 사실 기한마저도 없는 기다림입니다. 어쩌면 기다린다는 표도 내지 않는 기다림, 자신이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잘 모르는 기다림이죠. 다만, '내가 겪은 상실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이 내게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없다는 건, 저 건물이 사라졌다는 건 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기다려보면 그 의미가 나한테 다가오지 않을까요."


용산은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이다. 그리고 변화는 언제나 상실을 수반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광호 교수에게 상실과 망각이 공존하는 용산을 걷는다는 것은 결국 기다림의 자세를 갖는 것이다.


"용산은 너무나 액티브한 곳이에요, 굉장히 많이 바뀌잖아요. 이 말은 그만큼 상실이 많다는 말입니다. 너무 빠르게 바뀌는 곳이라, 제가 글을 쓰다가 내용을 고쳐야 했던 적도 있어요. 남양역에 스크린도어가 없었기에 이에 대한 문장을 쓰고 출판사에 원고를 냈더니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는 거예요. 또 다른 예로, 예술가가 하는 유명한 작업센터가 있었어요. 그래서 이에 대해 글을 쓰고 보니 이미 그 자리를 떠났대요. 이렇게 다이내믹함 속에서 끊임없이 상실이 벌어지고 있는 공간이 바로 용산이죠.

 

그래서 용산을 걷는다는 것은 상실과 망각을 걷는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용산을 걸어야 할까, 저는 그것이 기다림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다시 말하면, 상실의 의미가 나에게 말을 걸 때까지, 침묵하면서 혼자 조용히 그렇게 용산을 걷는 것, 그것이 용산을 걷는다는 것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용산을 걷는 것은 기다림입니다."


이광호 교수의 강연 이후, 연극배우 임윤비, 시인 이우성,김민정이 용산에 대한 각자의 경험을 나누고 책의 구절을 낭독하는 2부가 이어졌다. 특히 20년 가까이 용산에서 살았다는 배우 임윤비는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를 통해 공간에서 '사는 것'과 '걷는 것'은 다른 것임을 느꼈다고 밝히며  책의 다음 구절을 낭독하였다.


어떤 장소는 기억 너머에 있고, 어떤 장소는 기억 이전에 있다. 영감을 주는 특별한 장소 같은 것이 있다고 믿기 힘들다. 가보지 못한 장소와 지나친 장소, 차마 지나치지 못한 장소가 있을 뿐이다. 멀리서 보면 장소는 무심하고 자명하며, 가까이서 보면 장소는 비밀스럽고 남루하다. 생의 매 순간 우울과 설렘 속에 자리잡은 특별한 장소가 있을 것이다. 평범한 장소가 문득 지울 수 없는 뉘앙스로 마음에 새겨질 수 있다. 익숙한 풍경이 낯선 시선 속에서 특별한 장소로 전환되는 그런 순간. 하지만 그 순간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으며,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 보존될 수 있을까? 무감한 시간들을 견딜 수 있는 고유한 장소가 남아 있을까? (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10~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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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이광호 저 | 난다
예술가들에게 산책이란 곧 사유로 이어진다. 사유는 곧 거리두기를 보태 예술이라는 무한한 아름다움으로 승화된다. 여행이 아니라 관광이 아니라 바야흐로 산책. 지금껏 우리는 왜 그토록 먼 데로만, 자주 시선을 돌리고 몸을 혹사시켜왔던 걸까. 작가들에게 물었다. 아무리 ‘걷고’ 또 ‘봐도’ 지치지 않는, 당신만의 ‘그곳’은 어디인가요? 이와 같은 취지 속에 완성이 된 첫 권. 문학평론가 이광호가 현재 그의 생활의 터전이기도 한 ‘용산구’를 테마로 걷고 보고 쓰면서 발끝으로 관통해낸 이야기. ‘용산에서의 독백’이라는 부제가 달린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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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노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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