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김애리의 서른 여자 공부법
인생로드맵을 짜는 4가지 방법
미래설계를 위한 시간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보낼 것을 권한다
나를 도와주고 이끌어 줄 드림팀을 갖자. 기브앤테이크 식 우정이 아니라 20년 후에도 서로의 꿈을 응원할 수 있는 진짜 내 사람. 멀리 가려면 무조건 함께 가야 한다.
시작하기에 가장 적합한 ‘지금’이라는 나이
나이 앞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모든 여자, 아니 모든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일 것이다. 이루어 놓은 일이 많으면 두려움은 좀 덜할까? 글쎄, 다른 갑갑함이나 우울함에 시달리는 것 같기도 하다. 이를테면 ‘일만 하느라 다른 건 아무것도 못 했다’는, 어찌 보면 더 지독한 후회의 감정 따위. 그래서인지 나이를 떠나 꿈을 지향하고 개척하며, 거기에서 행복과 만족을 느끼는 이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대단해 보인다. 그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히 ‘나 잘났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화론’으로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찰스 다윈의 경우 30대가 될 때까지 가족에게서 목표 의식도 없고 야망도 없으며 우유부단하다는 평을 듣는 사람이었다. 고흐가 화가가 되기로 한 시기는 27세였다. 그가 살던 19세기에 27세란 재능에 꽃을 피우고 정점을 이루는 시기였다. 당대 유명화가들은 이미 그 나이에 결정적인 위치에 올라있었음은 물론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추리소설작가인 레이먼드 챈들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오랜 시간 직장생활을 하던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는데, 그가 첫 장편소설을 세상에 내놓은 시기는 51세였다. 가브리엘 샤넬은 또 어떤가? 그녀는 천재성과 행운을 타고난 여자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샤넬이 디자이너로서 새 출발을 결심한 나이는 30세였다. 그전까지 그녀는 카바레의 무명 가수였다. 그들은 모두 서른 이후 다른 존재방식을 갈망했다. 그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따라서 매우 명확하다. 나이는 물리적 장벽이 아니라 마음의 장벽이라는 것. 우리에게 어떤 재능이 숨겨져 있는가는 아직 불확실하다.
소설 『갈매기의 꿈』을 쓴 리처드 바크는 말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그 일을 할 능력이 있다는 뜻이라고. 서른은 절대로, 결단코 늦은 나이가 아니다. 삶의 길을 확정하고, 자신을 고찰하고, 다시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에 가장 알맞은 나이다. 우리는 모두 ‘지금’이라는 나이 앞에 서 있다. 다시 시작하기에 가장 적합한 나이. 그래서 예쁘고, 충만한 나이. 서른은 예쁘다.
3개월의 결심, 그리고 남은 79년 9개월
알다시피 진짜 중요한 것은 학력(學歷)이 아닌 학력(學力)이다. 지금껏 공부한 역사가 아닌 앞으로 공부할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 이는 서른을 전후로 더욱 강력해진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간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시간이다. 꿈을 이루고 성공한 여자들이 하나같이 ‘명문대와 대기업 출신’일까? 세상이, 또 삶이 그렇게 호락호락하던가? ‘공부한 역사’가 훌륭하다 해서 ‘배울 수 있는 능력’을 훌륭하게 갖추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만족하고 안주할 확률이 높다. 반면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서른 이후 멈춤 없이 자신을 성장시킨 여자들이 꿈을 이루고 성공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그렇다면 서른 이후 각자 삶의 궤도를 어떻게 디자인하면 좋을까? 이 사유의 시간이 어쩌면 남은 인생을 바꿀 것이다. 삶에는 잠시 멈춰서 나아갈 길을 계획하고 지나온 길을 숙고할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건 ‘정지’가 아닌 ‘예열’이다. 자동차도 시동을 켜자마자 바로 내달릴 수는 없다. 안전과 탄성을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예열의 시간’을 위해 딱 3개월만 집중적으로 자신을 관찰하는 시간을 갖길 권한다.
이전에 ‘영어천재’로 불리는 안정효 선생님의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다. 47세에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봤을 정도로 순수 국내파 출신인 그는 그 핸디캡을 이기고 영어로 장편소설까지 출간한 진짜 ‘영어의 신’이다. 150여 권 이상의 국내외 문학작품들을 번역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영어를 공부한 방법은 ‘단순무식’했다. 일단 3개월만 죽으라고 영어원서만 읽는 것이 그 비밀이었다. 그는 일단 딱 3개월만 단어의 의미도, 문맥의 흐름도 신경 쓰지 말고 읽어내려 가라고 권한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꽤나 마음을 흔들었다.
“마음을 다져 먹고 하루에 한 권씩만 읽기 시작한다면 100권을 읽어내는 데 필요한 시간은 3개월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고도 70 인생에서는 69년 9개월이 남는다.”
세상에, 이 생각을 지금껏 왜 못했을까? 나는 둔기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자의 평균수명을 80으로 잡고, (그는 남자여서 70을 평균수명으로 잡았나 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여자들은 참 유리하다.) 2년간 요리공부에 매진한다 해도 인생에서는 78년이 남는다. 지금껏 산 날들을 제하고 계산해도 50년쯤의 세월이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의 시간을 위해 3개월만 투자하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3개월? 직장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거나 막 이직 혹은 전직한 사람에게는 긴 시간이 될 수도 있다. 한창 연애에 빠져있거나 이별한 사람에게는 끔찍하게 긴 시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80 인생에서 3개월쯤은 100% 나 자신만을 위해 사용해도 된다. 그래도 79년 9개월이 남는다.
미래를 디자인하는 4가지 방법
미래설계를 위한 시간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보낼 것을 권한다. 대부분 내 경험에 비추어 효과가 가장 드라마틱했던 방법들이다. 물론 각자 사정에 맞게 더하거나 덜해도 된다.
첫째, 3개월간 매일 일기를 쓴다.
내면과 대화하는 시간을 얼마나 가져봤는가? 누군가 말했다. 사색의 시간은 인류를 구원한다고. 하물며 나 자신은? 고요한 아침 시간을 활용해 ‘나’를 공부해보자. 내 삶을 구원할 철옹성을 쌓는 것이다. 오랜 시간 일기 쓰기의 효과에 관해 연구한 로라 킹 박사는 일단 목표를 글로 적으면 목표달성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나 상황을 찾기 위해 자동으로 주변 환경과 머릿속을 검색하기 시작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오프라 윈프리도 말하지 않았던가? 일기장이야말로 내 꿈이 실현된 첫 번째 장소라고. TV 방송국을 설립하겠다는 그녀의 꿈은 일기장에서 처음 탄생했다고 한다. 내적 성장과 발전을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한 배움은 무엇인지? 업무와 관련하여 익히고 강화해야 할 스킬은 무엇인지? 급변하는 사회에 대처하는 학문에는 무엇이 있을지? 또 나의 중장기 목표?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시작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를 점검해보자.
이뿐만이 아니다. 일기는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힘도 갖고 있다. 글을 통한 자기 노출은 가장 안전한 정서적 배출구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일기는 또 그날 하루의 스트레스를 기록하며 휴식과 긴장 이완의 역할도 한다. 미래의 꿈과 희망을 자신에게 주입하는 긍정적인 효과는 말할 것도 없다. 키플링은 ‘이야기는 인류가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약물’이라고 말했다. 일기는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매일의 일상에서 감사할 일을 찾고 싶은 사람은 감사일기를, 내면을 다스리고 누군가를 용서하길 원하는 사람은 치유 일기를 쓰면 된다. 그 밖에도 행복일기, 그림일기, 축복일기. 독서일기, 미래일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일기 쓰기 방법이 있다. 딱 3개월만 일기 쓰기를 친구 삼아 보자. 꿈이 구체화되고 점진적으로 발전하며, 궁극적으로는 삶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둘째, 관심 분야를 전부 스크랩한다.
스크랩의 장점은 아이디어를 샘솟게 한다는 것이다. 이건 일종의 ‘나 홀로 브레인스토밍’과 같다. 신문기사, 잡지, 인터넷뉴스, 방송 다큐멘터리, 학술논문 등 각종 매체에서 관심 키워드를 검색하고 필요한 정보를 수집한다. 이는 창의력과 아이디어가 생명인 패션계, 방송계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주 쓰는 방법이기도 하다. 故 앙드레 김 선생님은 생전에 매일 16개의 신문?잡지를 구독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 밖에도 이방주 현대산업개발 고문, 힐러리 클린턴 美 국무장관,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까지. 전혀 다른 분야에서 활동한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자신이 몸담은 분야에서 정상에 올랐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이들은 국적도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각기 다양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매일 아침 5개 이상의 매체를 읽었다는 것이다. 지구 상에서 바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들이 매일 아침 5개 이상의 매체를 꼼꼼히 구독한 이유에 대해서는 각자 깊이 생각해보자.
셋째, 꿈을 위한 마인드맵, 스토리보드를 작성한다.
마인드맵과 스토리보드의 장점은 꿈을 시각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목표의 시각화,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책과 언론에서 언급해왔다. 목표의 시각화란 한 마디로 손에 닿지 않는 물건을 손에 닿는 곳에 놓아두는 일이다. 컴퓨터 배우기가 목표인 사람과 2개월 안에 포토샵으로 블로그 꾸미기가 목표인 사람은 그 시작부터 다르다. 전자가 불완전한 목표라면 후자는 구체적 목표의 마지막 단계가 된다. 행복해지기를 목표해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목표가 얼마나 허무맹랑한지는 경험으로 알 터. 그런 두루 뭉실한 목표를 세울 바에는 치즈케이크를 한 덩어리 먹는 편이 정신 건강에 더 이롭다. 물론 훨씬 더 행복할 거고. 목표를 구체화하는 것도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데 하물며 목표를 ‘생생하게 시각화’하는 것은 어떻겠는가? 그건 베이킹파우더처럼 꿈을 부풀리고 풍미를 더 해주는 역할을 한다.
마인드맵은 문자 그대로 ‘생각의 지도’라는 뜻이다. 사전적 의미를 그대로 풀이하면 이렇다.
자기 생각을 지도 그리듯 이미지화해 사고력과 창의력, 기억력을 한 단계 높인다는 두뇌 계발 기법. 핵심 단어를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사고가 파생되고 확장되어 가는 과정을 확인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동시에 검토하고 고려할 수 있는 일종의 시각화된 브레인스토밍 방법.
마인드맵을 그려 방안에 붙여 놓으면 일단 꿈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명쾌하다. 꿈이 얼마간 실현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어 유쾌하다.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그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단계들을 거쳐야 하는 지 매일 점검할 수 있어 통쾌하다.
드림보드?스토리보드도 마찬가지다. 이건 ‘대놓고’ 꿈을 시각화하는 거대한 콜라주다. 이를테면 이렇다. 잡지나 신문, 단행본 등에서 갖고 싶거나 되고 싶은 이미지를 한데 모아 두꺼운 하드보드 지에 붙여 놓는다. 빨간색 스포츠카, 바다가 보이는 별장,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44치수의 일본모델이나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 같은 것도 좋겠다. 꿈에서도 갖길 원하는 것들, 혹은 꿈을 이미 이룬 사람의 이미지를 갖는 것은 생각보다 큰 효과를 발휘한다.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면 매일 꿈을 점검하는 엄청난 동기부여 자극제가 됨은 물론이다. 중요한 것은 드림보드?스토리보드가 ‘가능성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룰 가능성이 높은 꿈들만 적어 놓는 것은 의미가 없다. 꿈꾸는 최고의 내 모습을 적는 게 진짜다.
넷째, 나만의 ‘치어 리더’를 만난다.
나를 무조건 지지하고 응원하는 ‘그녀들’을 만난다. 같은 목표 아래 같은 길을 걷고 있다면 더욱 좋다. 혼자만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시대는 갔다. 아니 애초에 그런 시대는 없었을 거다. 1인 기업가라 해도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나 협력이 필요하다. 제 3자의 눈은 잊고 있던 무언가, 발견 못 한 어떤 것을 돌아보게 한다.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 때론 100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한 명의 친구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일이 나를 더 채찍질하고 앞으로 이끄는 것은 물론이다. 오래 묵은 고민의 실타래가 친구의 한 마디로 풀리거나, 잡힐 듯 피해 가던 문제의 해답이 명쾌하게 해결되는 경우는 누구나 경험해봤을 것이다.
나를 도와주고 이끌어 줄 드림팀을 갖자. 기브앤테이크 식 우정이 아니라 20년 후에도 서로의 꿈을 응원할 수 있는 진짜 내 사람. 멀리 가려면 무조건 함께 가야 한다. 이 책의 출간만 예를 들어도 그렇다. 최초의 독자가 되어 가감 없는 조언을 쏟아주신 출판사 대표님, 편집장 님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웃으며 인터뷰에 응해주신 ‘공부하는 그녀들’. 그들이 없었다면 책은 영영 생명력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 지금까지 <김애리의 서른 여자 공부법>을 사랑해 주신 모든 독자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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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권의 책에 인생의 길을 물었던 김애리. 그녀는 거창한 결심을 이루기 위해서라기보다, 견디기 위해 책을 읽었다. 우울증에 시달릴 만큼 예민하고,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서 안정된 생활을 쫓던 그녀에게,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이놈의 ‘삶’을 견디는 일은 다 커서 젓가락질을 다시 배우는 일마냥 멋쩍고 창피했다. 이토록 소심한 여자가 청춘을 견디고, 서른을 견디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독서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며불며 책을 읽었고, 사랑 역시 책으로 배우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른이 되기 전에 천 권의 책을 읽었다. 청춘이라는 악몽 같은 시간을 오직 책으로 버텨낸 그녀의 열정은 2009년 겨울 서정문학상에 단편소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밤」이 당선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으며 이후 『책에 미친 청춘』, 『십대, 책에서 길을 묻다』, 『아까운 책 2012』(공저) 등을 펴냈다. 현재 언론진흥재단, 김영사 웹진 등에 칼럼을 연재하며 독서 에세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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