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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과 저항의 갈림길에 선 조선 여성들의 내면 읽기

사료에서 찾은 서른여덟 가지 조선 여성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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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조선시대 여성’이라 하면 여필종부(女必從夫), 삼종지도(三從之道), 현모양처(賢母良妻), 출가외인(出嫁外人), 칠거지악(七去之惡) 등의 유교 사상에 따라 살아가는 순종적인 모습이 그려진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은 부당한 남성 이데올로기에 항거하고, 죽음 앞에서 망설이며, 인간답게 살고 싶은 욕망을 강하게 드러낸다.

소리 나는 책
 
▶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오늘 소리 나는 책에서는 2주간 함께 했었던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중에서 저의 마음을 가장 울렸던 부분을 전해드리려 합니다. 바로 삼의당 김씨 부부의 영원한 사랑 챕터 인데요 함께 들어보시죠.

 

소리나는책

 

 

조선 시대에 마치 연애를 하듯이 평생 동안 사랑을 하면서 아름다운 연실을 남긴 부부가 있어서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특히 규수로, 부인으로, 남편을 내조하면서도 주옥같은 시와 문장을 남긴 여류시인 삼의당 김씨 이야기는 조선시대 품격 있는 여인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는 듯하다. 1786년 봄. 전라도 남원 땅 누상봉 1리에 초야를 치룬 신랑 신부가 있었다. 하씨 가문과 김씨 가문의 혼례였다. 떠들썩한 대례가 이어지고 폐백을 마치자 밤이 왔다.

 

 신랑은 밤이 이슥할 때까지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술을 마신 뒤에 신방으로 들어갔다. 신방에는 촛불이 일렁대고 있고, 열여덟 살의 신부가 그린 듯이 앉아 있었다. 신방으로 들어선 신랑 하립은 신부를 취기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신랑이 들어온 기척을 느낀 신부가 자세를 고쳐 앉는 시늉을 하면서 몸을 바로했다. 신부는 녹의홍상의 혼례복을 걸치고 있었다. 금박을 찍은 남색과 홍색의 스란치마를 겹쳐 입고, 삼회장 저고리 위에 활옷을 걸치고, 홍단봉대를 앞가슴 위에 둘렀는데 뒤에서 메어 늘인 것이었다. 머리는 또야 머리에 용잠을 꽂고, 도투락댕기와 앞줄댕기를 하고, 칠보화관을 쓰고 있었다. 신랑은 미인도를 보는 듯, 신방의 전경에 멈칫했다. 밖은 아직도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왁자했다.

 

 

-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이수광/다산초당) 中에서

 

 

에디터 통신


▶ 조선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운명과 저항의 갈림길에 선 조선 여성들의 내면 읽기

 

안녕하세요.조선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을 편집한 위즈덤하우스 편집부 이지은입니다.

 

 

에디터통신

 

어린 시절, 여자라면 한 번쯤 ‘여자애가 조심성도 없이’라든지 ‘여자애가 못하는 소리가 없어’라는 식의 어른들의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집안의 맏딸이면서 동시에 맞벌이하는 부모님 밑에서 컸는데요, 그러다보니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계시지 않을 때는 네가 집안의 가장이다’ ‘집안의 큰딸로서 네가 동생을 잘 돌봐주어야 한다’라는 식의 주입식 교육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린 저는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딸’로 빙의되어 동생의 안전과 교육, 식사를 챙기고 집안의 청소를 도맡아했던 것 같습니다. 한창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나이에 다른 사람을 돌봐야 하는 짐을 져야 했던 것이지요. 머리가 조금 크고 사춘기에 접어들어서는 “엄마는 왜 나만 시켜”라든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는 식의 반항으로 저에게 주어진 여성 이데올로기에 나름대로 저항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여자가 집안을 돌봐야 하고 가정을 안정적으로 꾸려야 한다는 생각은 조선시대 성리학적 유교사상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들어온 관념이지요. 저희 엄마도 본인의 엄마인 할머니에게, 할머니는 그 할머니에게 대대로 ‘여성이 어느 정도 희생해야 가정이 화목해진다’는 말을 듣고 자라오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 조선시대의 여성의 억압과 오늘날을 비교하며 ‘그래도 지금은 살 만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조선시대에는 ‘지조’와 ‘정절’을 지키기 위해 가슴에 은장도를 품고, 한 남자만을 떠올리며 생을 마감하는 여성을 ‘열녀’라고 칭송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그러니 가정을 위한 여성의 희생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지요. 그런데 『조선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조선시대 여성이 결코 주어진 운명대로 인생을 살지 않았으며 그들 나름의 크고 작은 저항을 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무조건 남자를 따르고 정절을 위해 은장도를 든 여성’은 남성들의 환상 속 여성일 뿐임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기생 김금원은 “여자로 태어났다고 장차 방안 깊숙이 문을 닫고 경법만을 지키며 사는 것이 옳은가”라고 반문하며 열네 살 어린 나이에 금강산으로 길을 떠났고, 노비 계월은 자신을 소유물로 취급하는 주인과 세상 앞에 자신도 한 명의 인간임을 외치며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억압된 사회에 항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여성들을 보면, 오늘날 여성들의 격상된 지위가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가 과거의 수많은 인물들의 치열한 삶이 모여 만들어진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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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동진

어찌어찌 하다보니 ‘신문사 기자’ 생활을 십 수년간 했고, 또 어찌어찌 하다보니 ‘영화평론가’로 불리게 됐다. 영화를 너무나 좋아했지만 한 번도 꿈꾸진 않았던 ‘영화 전문가’가 됐고, 글쓰기에 대한 절망의 끝에서 ‘글쟁이’가 됐다. 꿈이 없었다기보다는 꿈을 지탱할 만한 의지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삶에서 꿈이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되물으며 변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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