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김애리의 서른 여자 공부법
스무 살의 공부와 서른 살의 공부는 달라야만 한다
서른까지는 끝없는 자기탐색의 여정
이 모든 과정이 진정한 자아탐색, 의미 있는 방황이 아닐까? 서른까지는 성장의 고삐를 바싹 조이고 달려나갈 준비를 위해 발구름판에 서 있는 시간이다. 성공의 마중물을 붓는 시간이다.
서른다운 공부란 마음이 시키는 공부
스무 살의 공부와 서른 살의 공부는 다르다. 아니, 달라야만 한다. 스무 살 무렵에는 대학만 졸업하면 공부란 영영 강 건너 불구경이 될 줄 알았다. 간혹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다시 학문의 길로 우회하는 열혈 언니들을 볼 때마다 ‘왜 저렇게 힘들게 살지?’ 안타까운 눈길을 보낸 것도 사실이다. 두뇌 회전율은 스무 살을 절대 따라잡을 수 없을지라도 열정 온도만큼은 스무 살 때보다 훨씬 뜨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깜깜 몰랐었다.
스물의 공부는 단기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취업을 위해 갖추어야 할 필수 자격증과 수료증들. 나의 경우, 어학연수나 인턴십의 목적도 다소 불량했다. 서른을 넘긴 지금이었다면 하루하루 아니 매 순간을 손바닥 위에 떠받들며 소중히 여길 시간을 그때는 ‘남들 다 하니까’의 명목으로 견디는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이 얘기가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닐 테다. 스무 살에도 공부를 처절한 생존의 도구로 부여잡고 밤낮없이 진실 되게 매진한 여자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도 분명 문제는 있다. 원래 조직을 나와 봐야 그 안의 기형들이 보이듯이 처절하게 매진한 시간에는 깨닫지 못하는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것, ‘왜, 도대체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를 간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공부인가?’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만일 우리가 푸딩처럼 말캉한 감성을 지닌 17세 무렵 보습학원과 야자 대신 자아를 탐색하거나 내면을 분석하는 수업을 단 1개월만 받았더라도 서른에 이르러서까지 진로를 고민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나라는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대한민국에서 청춘을 불사른 우리는 전공을 선택하고도, 심지어 4년쯤 전공에 매진하고도 여전히 전공을 고민하고 앉아있는 것이다. 이놈의 정체성은 언제나 확고해지려는지. 실제로 수많은 30대 여자들이 허무함에 매몰되는 경우도 그 때문이다.
20대 내내 ○○○에 올인했는데 이제 와 보니 그것이 내 적성에도, 소질에도 맞지 않았어! 이런, 비극이! 서른의 공부가 애절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쯤 되면 대체로 자아탐색으로 말미암은 시행착오 한두 번쯤은 겪어봤기 마련이다.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일이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이 말은 뒤집어,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이 몸에 맞는지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는 얘기다. 마음이 시키는 공부를 진정으로 헤아릴 수 있는 시기라 할 수 있겠다.
서른의 공부가 신중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에게 시간은 더는 너그럽지 않다는 사실이다. 스무 살 무렵에는 쉽게 용서가 되던 일들이 이제는 ‘화성인’ 취급을 받아야 할 일이 될 수도 있다. 서른에 이르러서까지 문화센터 취미수준의 공부만 작심삼일로 이어간다면 마흔에 이르러 뼈가 시린 후회의 나날을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 막 나이 앞에 3자를 달았으면서 나이 운운하는 비겁한 어른의 전형을 보이려는 여자들이 있다. 나이가 가져다주는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 불시로 찾아드는 우울함과 회한을 온몸으로 이해하는 30대 여자로서 훌륭한 예방조치 하나를 선물하겠다. 그것은 바로 60대 이상 노년의 길을 걷고 계신 주변인들 가운데 한 분과 나이에 관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보라는 것이다. 최대한 깊이, 그리고 오래. 십중팔구 우리를 ‘빛나는 나이’라 지칭하며 부러운 눈빛을 감추지 않으실 것이다. ‘내 나이가 50만 되었어도…’ 말끝을 흐리시며 50에도 가능한 것들을 한가득 제시할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상투적인 글귀로는 절대 대신할 수 없는 생생한 응원과 격려가 될 것이 분명하다니까.
서른까지는 끝없는 자기탐색의 여정
늦게 시작하는 공부의 가장 치명적인 패착은 늦게 시작한 만큼 빠른 결과를 얻으려는 술수다. 이건 말 그대로 사기다. 혹은 도둑질. 하루에 두 시간씩 1년을 투자했는데 5년 이상 몰입한 수준을 원하는 것은 과대망상증에 불과하다. 문제는 늦게 시작한 만큼 조바심이 뇌를 어지럽혀 이 증세를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내 지인인 A의 경우가 꼭 그렇다. 32세인 그녀는 얼마 전 6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새로운 인생을 설계할 것’이라는 과감한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용기 있게 자리를 박찼다. 여기까지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아니, 모두의 박수를 받기까지 했다. 6년간 착실히 일하며 모아둔 돈도 제법 두둑했고, 회사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았던 성실파였기에 하고자 하는 일에 노력만 하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 것이 분명해보였다. 무엇보다도 그 하고자 하는 일이 명확했기에 다들 그녀의 ‘폭탄선언’을 크게 지지했다.
문제는 실업급여 지급이 끝나는 달부터 시작됐다. 고정적인 월급의 달콤함을 무려 6년 가까이 맛보았던 터라 실업급여마저 중단되자 불안함이 증폭되었던 것 같다. 그녀는 6개월쯤 그 일에 열과 성을 쏟는가 싶더니 ‘직접 겪어보니 적성에 안 맞더라.’ 고백하며 재빨리 ‘플랜 B'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선택한 다음 일도 반년쯤 쫓아다니며 시간과 돈을 낭비하더니 얼마 전에는 또 전혀 새로운 분야를 기웃거리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주식과 김치도 묵혀두어야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법인데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분야에서 반년 만에 이익을 얻으려는 것은 순전히 날로 먹겠다는 심보다. 우리가 흔히 핑계 삼는 ‘적성과 소질 ‘도 사실 일정 이상 노력해본 후에야 판단할 수 있다. A의 경우 보드를 처음 타자마자 서지 못한다는 이유로 보드에 소질이 없다 얘기하는 것과 같다.
아마도 많은 여자에게 20대는 미궁의 시기일 것이다. 그 시기에 일생의 진로를 확실히 설계하고 자아를 완벽히 이해하는 여자는 극히 드물다. 서른까지는 내적, 외적으로 많은 변화와 충동에 시달린다. 전혀 다른 분야를 시작해봄은 어떨까? 유학을 가서 석사학위를 따볼까? 전공을 살려 일본어 강사나 번역가에 도전해볼까? 에잇, 모르겠다. 확 그냥 시집이나 가?
대개 그런 찜찜함을 안고 서른을 맞이한다. 그러니까 일단 서른까지는 끝없는 자기탐색의 여정임을 감안하고 마음을 비워두면 숨쉬기가 한결 편안해질 것이다. 재빨리 내면을 분석?파악하고, 나에게 꼭 맞는 천직을 발견해 그 일로 돈과 행복, 얼마간의 자유까지 얻으려는 로또 같은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자. 평균 수명 100세를 바라보는 시대 아니던가. 절반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서른까지는 자기탐색과 공부(물론 가장 이상적인 공부는 평생 공부로, 우리는 50에도, 60에도 탐구하고 성장하는 여자로 남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부란 집약적이고 폭발적인 한 분야에 대한 공부다)에 반드시 힘을 쏟아야 한다. 아니, 최소한 하려는 의지라도 갖추어야 한다.
이 자기탐색이라는 것이 아까 예로 든 A처럼 여기저기에 기웃거리다 포기하기를 반복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서른까지 파악한 자기를 바탕에 두고 내가 잘하는 분야, 관심 있는 학문 등 공통분모를 간추려야 한다. 신중한 선택을 기본에 깔고 최대한의 노력을 쏟아 붓는 것이 옳다.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A처럼 ‘본전회수’만 염두 한 채 이전까지 생각지도 않았던 생소한 분야에 재차 뛰어드는 것은 낭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자아탐색의 원칙은 진솔함, 진정성에 있다. 친구 따라 어느 날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사촌의 친구의 언니가 바리스타가 되었다니 나도 갑자기 커피 공부를 시작하고, 영어콤플렉스라는 일시적 울렁거림에 미국 유학에 오르는 일은 파릇파릇한 스무 살에게 넘기자. 우리는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내면과 대화하고, 충분히 조사하고, 완벽히 설계하고, 출발 신호를 받으면 열렬히 매진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신중함에도 중도 포기나 실패가 찾아올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이 진정한 자아탐색, 의미 있는 방황이 아닐까? 서른까지는 성장의 고삐를 바싹 조이고 달려나갈 준비를 위해 발구름판에 서 있는 시간이다. 성공의 마중물을 붓는 시간이다.
* 김애리 작가의 칼럼이 『여자에게 공부가 필요할 때』 책으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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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대 여성들을 위한 공감에세이를 써보고 싶다 - 『책은 언제나 내 편이었어』 김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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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권의 책에 인생의 길을 물었던 김애리. 그녀는 거창한 결심을 이루기 위해서라기보다, 견디기 위해 책을 읽었다. 우울증에 시달릴 만큼 예민하고,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서 안정된 생활을 쫓던 그녀에게,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이놈의 ‘삶’을 견디는 일은 다 커서 젓가락질을 다시 배우는 일마냥 멋쩍고 창피했다. 이토록 소심한 여자가 청춘을 견디고, 서른을 견디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독서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며불며 책을 읽었고, 사랑 역시 책으로 배우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른이 되기 전에 천 권의 책을 읽었다. 청춘이라는 악몽 같은 시간을 오직 책으로 버텨낸 그녀의 열정은 2009년 겨울 서정문학상에 단편소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밤」이 당선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으며 이후 『책에 미친 청춘』, 『십대, 책에서 길을 묻다』, 『아까운 책 2012』(공저) 등을 펴냈다. 현재 언론진흥재단, 김영사 웹진 등에 칼럼을 연재하며 독서 에세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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