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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이기적인 여자가 행복하다

쉰 살에 생의 전환점을 맞은 한 여자의 두 번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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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에 길을 떠난 조안 앤더슨은 말한다. 삶은 매 순간 똑같이 소중하다고. 스무 살은 스무 살대로 소중하고, 서른 살은 서른 살대로 빛나고, 마흔 살과 쉰 살은 또 그 나름대로 아름답고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하다고. 그렇다면 우리도 주어진 매일의 시간을 꽃과 입맞춤을 나누듯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늘어가는 주름을 세며 울컥하는 시간 대신.



한 남자가 내 친구 제이미 코언에게 물었다.
“사람의 가장 우스운 점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코언이 대답했다.
“모순이죠. 어렸을 땐 어른이 되고 싶어 안달하다가도, 막상 어른이 되어서는 잃어버린 유년을 그리워해요. 돈을 버느라 건강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가도, 훗날 건강을 되찾는데 전 재산을 투자합니다. 미래에 골몰하느라 현재를 소홀히 하다가, 결국에는 현재도 미래도 놓쳐버리고요. 영원히 죽지 않을 듯 살다가 살아보지도 못한 것처럼 죽어가죠.”
-파울로 코엘료, 『흐르는 강물처럼』 중에서

나이를 먹는 것의 의미

-조안 앤더슨,
『오십에 길을 나선 여자』

엊그제까지만 해도 분명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에메랄드빛 바다 사진을 컴퓨터 배경 화면에 깔아두었는데 어느덧 거리에 두터운 코트를 입고 목도리를 두른 사람들이 물결을 이룬다. 등을 떠밀어도 혹은 붙들어두어도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가고 또 찾아온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롭다. 작가 김연수의 말처럼 재촉하는 만큼 빨리 흐르지는 않는다 해도 나이가 들고 싶다는 아이의 소원쯤이야 들어준다는 것, 삶이 너그러운 것은 정말 그때뿐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굳이 모든 일을 서두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10개월을 채우면 뱃속의 아이는 작은 씨앗에서 하나의 생명으로 자라 세계의 일원이 되고,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만 같은 치명적인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 잦아들고 마는 생의 섭리.

나이를 먹는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스무 살 무렵엔 내가 아직도 스무 해 밖에 살지 않았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스물일곱 살이나 서른 살쯤 먹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글쎄, 그때가 되면 삶이 좀 더 유연하고 안정돼 있으리라 여겼겠지. 서른 살이 되고 마흔 살이 되고 심지어 지천명을 지나도 삶은 미궁투성이이며 나아갈 길에 대해 고민하고 방황하는 것인 줄 알았더라면 빨리 어른이 되기 위해 어설픈 어른 흉내를 내는 대신 좀 더 철없고 무모하게 놀아봤을 텐데.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나 이외수, 파울로 코엘료나 황석영, 그리고 여기 한 평범한 중년 여자는 내게 나이를 먹는 일이 생각만큼 끔찍하지만은 않다고 일깨워주었다. 자글자글한 주름과 형편없어진 시력, 삐걱거리는 관절과 더 이상 새치라고 변명할 수 없는 흰 머리를 약간의 지혜(그런데 이 약간으로 인해 젊은 날에 비해 숨 쉬기가 갑절은 편안해졌다니)와 교환했는데, 완벽한 손해라 생각했던 그 거래가 실은 꽤 괜찮은 거래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말이다.

나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과도기(?)의 어른들이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스스로 온몸에 철갑을 두르고 그것도 모자라 천근만근 무거운 방패와 검을 양손에 쥔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매일같이. 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그게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라 여기고 스스로를 강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늘 세상과 부딪치며 피를 흘리고 때론 구토를 참아야 한다. 때로는 세상 모든 것이 짜증스럽기도 하다. 평생을 벌어도 벤츠를 몰고 다닐 수 없는 사람과 날 때부터 벤츠쯤은 장난감이라 여기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짜증 나고, 아무리 고쳐도 못생긴 여자가 있는 반면 권력이 될 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타고난 여자가 있다는 사실도 못마땅하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믿는 여자보다 사랑을 우습게 여기는 여자들이 남자 하나 잘 만나 떵떵거리며 사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나도 어른의 대열에 합류하자 세상은 원래 처음부터 불공평한 곳이라는 사실을 그냥 인정하게 되어버렸다. 이를테면 내 손으로 바꿀 수 없는 진실은 그냥 진실로서 인정해버리고 마는 삶의 테크닉을 배우게 된 거라고나 할까? 이런 게 바로 나이를 먹어가며 얻게 되는 근속 수당 같은 걸까?

나이를 먹고 좋아진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진짜 절망해야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들을 구분하게 되었다는 거다. 그 혜안은 고맙게도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욱 밝아지는 것 같다. 키플링은 그의 시에서 만일 인생의 길에서 성공과 실패를 만나더라도 그 두 가지를 똑같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네가 말한 진실이 왜곡되어 바보들이 너를 욕하더라도 너 자신은 그것을 참고 들을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너의 전 생애를 바친 일이 무너지더라도 몸을 굽히고서 그걸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면 진정한 어른이 되는 거라 말했다. 즉 절망의 벼랑에서 다시 일어나는 방법을 배웠을 때 비로소 한 명의 어른으로 우뚝 선다는 얘기다.

누구나 청춘의 시절에는 자주 속는다. 울고 뛰고 소리 지르다가 나가떨어지기를 수차례. 때론 스스로를 바닥까지 몰아간다. 진이 다 빠지도록 바닥을 치는 사랑과 열정과 아픔, 영혼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만이 정답이라 여기곤 한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기특하고 갸륵하게도 무언가에 대한 커다란 강박이 사라진다. 그녀, 조안 앤더슨처럼. 그녀는 젊은 시절 자신을 포함해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결코 말하지 못하리라 여겼던 말. “나 지쳤어요. 이젠 정말 쉬고 싶어요. 나 힘들어요.”를 쉰 살이 되어서야 스스로에게 내뱉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곪을 대로 곪아버린 비밀이 기어이 터져버린 그녀 일생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이었다.




사랑의 감정은 우리가 원할 때 비로소 싹튼다고 나는 믿게 되었다. 사랑은 뜻하지 않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의지의 발현이다. 기꺼이 받아들여 품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이다.
“있잖아요, 진정한 성장은 우리가 어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들을 끝낸 뒤에야 시작되는 것 같아요.”
내가 말한다.
“이를테면?”
남편이 묻는다.
“일과 가족부양, 사회 활동 등 우리가 버려두고 잊어버린 진정한 자신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놓는 모든 것들 말이에요.”
조안 앤더슨은 책 제목대로 쉰 살에 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20년간을 헌신적인 아내와 어머니로 살며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이 자신의 유일한 꿈이었던 여자. 그런데 어느 날 뒤를 돌아보니 자신이 그토록 간절히 지켜왔던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이미 조각나 있음을 깨닫는다. 더 이상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고 제 삶을 찾아 떠난 자식들과, 차갑게 식어버린 남편과의 관계. 그 안에서 이미 자기 자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남은 것이라곤 삶의 무게에 짓눌려 회의와 고독에 몸부림치는 늙은 여자뿐이라는 사실을 마주한다. 이 기막힌 진실 앞에서 그녀는 무엇을 느꼈을까? 그녀는 여느 때처럼 체념하고 아무 일 없던 듯 살아가는 대신 일생일대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모험을 감행한다. 바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평생 자신을 억누르고 옭아매던 모든 것들과 이별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남편과 1년간 별거하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 지닌 채 작은 어촌 마을에서 두 번째 삶을 시작하는 쉰 살의 여자. 그녀가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도 자아를 찾기 위해 ‘진정한 어른의 삶’을 시작하는 단락에서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래요, 떠나버려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단 한 번만이라도 당신만의 시간을 가져 봐요. 당신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어요. 그러니 두려워도 어서 떠나버려요.

내가 얼마나 목청껏 그녀를 응원했는지 그녀는 모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절망과 포기에 익숙해져 가는 끔찍한 과정과 어느 정도 동일시된다. 그게 사실이라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곧 서서히 끔찍한 고문을 당하는 일이겠지. 하지만 쉰 살에 길을 떠난 조안 앤더슨은 말한다. 삶은 매 순간 똑같이 소중하다고. 스무 살은 스무 살대로 소중하고, 서른 살은 서른 살대로 빛나고, 마흔 살과 쉰 살은 또 그 나름대로 아름답고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하다고. 그렇다면 우리도 주어진 매일의 시간을 꽃과 입맞춤을 나누듯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늘어가는 주름을 세며 울컥하는 시간 대신.



나는 먹고살기 위해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면서 내가 어떤 존재가 되어가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치고 있다.
그렇게 조안 앤더슨은 자신에게 부여된 과제를 끝내고 진정한 성장을 하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세계에서 드디어 자신이 원하던 존재가 되어갔다. 피카소는 자기 인생의 절반은 어른이 되는 데 보냈고, 나머지 절반은 아이가 되는 법을 배우는 데 보냈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는 삶의 대부분을 어른 흉내를 잔뜩 내는 겁먹은 스무 살, 혹은 무구한 아이의 얼굴을 한 백 살 먹은 노인네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쉰 살에 생의 걸음마를 익힌 조안 앤더슨의 특별한 여행은 내게 많은 것을 전해주었다. 나이를 먹는다 해서 내가 누구인지 발견하려는 노력을 접지 말아라. 절망에 속느니 차라리 희망에 속아라. 행복이란 별 게 아니다. 고요 속에서 나를 서서히 들여다보며 몸 안의 물소리를 따라 흘러가는 것, 어쩌면 그게 전부다.


진정한 어른의 시간

-전경린,
『그리고 삶은 나의 것이 되었다』

네팔은 오랫동안 내게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한동안 나는 네팔 관련 여행서를 탐욕스럽게 읽어젖혔다. 숱한 여행기가 내게 네팔을 숭배하도록 만든 것인지, 네팔을 숭배하기에 여행서를 읽은 것인지는 몰라도 첫사랑처럼 누구나 그리며 간직하는 신비의 그곳이 내겐 네팔이었다(인접한 티베트와 인도에도 비슷한 감정이 솟는다).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칸첸중가와 마나슬루 등 세계 10대 고봉 가운데 8개를 가진 세계의 지붕. 나는 2700개의 사원이 있다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와 안나푸르나의 출발지인 포카라, 부처의 탄생지 룸비니 동산 등을 가만히 그려보곤 했다. 그곳이라면 굳이 명상이나 수행이 없어도 작은 개똥철학 하나쯤 건져올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네팔의 힘을 맹신하는 이가 나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작가 전경린은 신과 인간과 죽음과 운명이 저잣거리에 뒤섞여 노숙하는 신성의 땅에서 자신의 운명을 정하고 싶어 떠났다 말한다. 결핍과 그늘과 버거움까지도 긍정할 수 있는 숭고한 맹목의 힘을 수혈받고 싶었다고. 어떤 가능성도 없는 가난한 나라에서 태생적으로 계급을 타고나 평생 신에게 기도하며 척박한 삶을 살아가는 그들로부터 신성의 정체를 발견하고 싶었다고. 아니,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녀가 네팔을 떠돈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그녀는 다른 삶을 발견하고 싶어 했다. 그리하여 삶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마흔 살의 나이에.




내가 원한 것은, 그것이 어떤 삶이든 마음을 다해 사는 삶이었다.
인생은 어찌해도 좋은 거야. 그 상황에 충실할 수만 있다면. 괴로움이든 기쁨이든, 밖에서든 안에서든, 높은 곳이든 낮은 곳이든, 뜨거운 곳이든 차가운 곳이든. 제대로 산다는 건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을 놓치지 않는 거야. 설혹 나쁜 시간이라 해도 그건 좋은 것을 선택한 것 못지않은 의미가 있어. 삶의 모든 시간은 똑같이 삶의 기회니까.
모든 시간은 똑같이 의미 있다는 것, 진짜 인생이란 지금 주어진 상황에 최대한 충실히 안착해야 하는 것임을 전경린은 뒤늦게 깨닫는다. 그녀는 삶이 자신의 것이 되기까지, 말하자면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기까지 40년이 걸렸다고 고백한다.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전 존재적 의미의 어른. 마음도, 몸도, 살림도, 의지도, 미래도, 모두 자신의 뜻으로 실현하고 그에 따르는 그늘과 버거움과 고독과 빈곤까지도 짊어질 수 있는 온전한 한 명의 어른.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에게는 모두 한평생 겪어야 할 방황의 양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고. 누군가는 그것을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몽땅 해치워버리기도 하지만, 반대로 일생을 걸쳐 조금씩 그것을 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상 전체를 향해 자신의 방황을 선전하는 사람도 있고, 한평생 홀로 묵묵히 참아내고 이겨내는 사람도 있을 테다. 그러니 ‘왜 나만, 왜 삶은 내게만’이라는 푸념 따위는 접어두자. 우리 모두는 신이 애초에 안배한 양대로 아주 공평하게 자기 몫의 방황을 마치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니까. 어쩌면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왜 나만’이라는 푸념에서 벗어나 운명을 당당하게 응시하는 것. 그리고 자신을 흔들었던 그 고통과 상처를 밑천 삼아 다시 시작하는 것. 키플링의 말처럼 만일 우리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1분간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60초로 대신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세상은 우리의 것이며 비로소 우리는 한 사람의 어른이 되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희망하는 것은 최선의 학벌도 아니고 최선의 경제력도 아니며 최선의 성공도 아니다. 최선의 생, 그건 스스로 감동할 수 있는 생이다.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깊고 풍요로운 정서의 힘과 강한 생명력과 삶 속에서 여행할 수 있는 자유롭고 발랄한 정신과 삶을 안정시킬 수 있는 융통성 있는 사색의 힘과 자립의 소박한 투지와 태연한 인내 같은 것……(중략)……그리고 스스로 잘 알고 보살피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사람……(중략)……말하자면, 나는 너희가 스스로에게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아픔에 반창고를 붙이듯 타인의 상처도 돌아볼 줄 아는 것이 아닐까? 나와 마찬가지로 모두에게는 각자 몫의 상처와 아픔이 있음을 깨닫는 것. 신용카드를 쓰고 술집을 드나들고 운전을 하는 것을 어른이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엄연히 말해 그저 나이를 먹은 것뿐이지 진짜 어른은 아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세상에 이해받으려 애쓰기보다 내가 세상을 이해해보려 애쓰는 과정이 아닐까? 먹기 싫지만 몸에 좋은 음식에 서서히 손을 대듯, 하기 싫지만 마땅히 해야 하는 일들을 받아들이고 해치우는 법을 배우는 일. 아주 가끔일지라도 지구 반대편에 믿을 수 없이 단순한 것들의 결핍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눈물을 떠올리는 일. 누군가는 아무런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고 괴롭힐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일. 눈물을 흘려야 할 적당한 장소와 시기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 부끄럽거나 유치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일 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경계선을 구분하는 일이기도 하다. 헛된 욕망으로부터 자신을 놓는 법을 익혀나가는 일. 산다는 일에는 정답도 형식도 없으며 각자의 열정과 갈망에 따라 나아가는 것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햇살이 가득한 사람뿐 아니라 그늘이 진 사람도 보듬을 줄 아는 것이다. 고통과 실의에 빠지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사실은 자기 자신임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애초에 견딜 수 있는 만큼만 아프게 진화되어 왔음을 아는 것이다. 인간이란 한계를 가늠할 수 없이 강인하면서도 작은 생채기에도 무너질 수 있는 나약한 존재임을 아는 것. 남을 괴롭히는 사람도, 죽이는 사람도, 배신하고 조종하는 사람도 그 시작은 모두 사랑의 결핍으로 인한 것임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 지상의 모든 것은 빌려 쓰고 지나갈 뿐이라는 걸 깨닫는 것이며, 우리 모두는 죽기 직전까지 나를 찾는 여행과 방황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을 비우는 일이기도 하다.

진짜 어른이란 모든 화려함 뒤에는 반드시 치러야 할 대가와 긴 세월의 눈물과 노력이 있음을 알고 단순한 동경을 경계하는 사람이며, 행복이란 거대한 이상이나 목표가 아니라 작은 만족과 감사로부터 시작됨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진짜 어른일까, 아니면 그냥 나이를 먹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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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언제나 내 편이었어 김애리 저 | 퍼플카우
작가 김애리는 ‘책’을 ‘내 편’으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 마르케스, 카잔차키스에서 산도르 마라이……. 고전부터 근래의 베스트셀러까지 100여 권의 책들이 작가를 통해 방황의 터널을 먼저 지난 선배로, 나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로, 혹은 나보다 더 방황하고 있는 친구로 다시 태어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새로운 친구(책)를 소개받고, 잊고 지낸 친구(책)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김애리라는 청춘이 길어 올린 찬란한 ‘인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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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애리

천 권의 책에 인생의 길을 물었던 김애리. 그녀는 거창한 결심을 이루기 위해서라기보다, 견디기 위해 책을 읽었다. 우울증에 시달릴 만큼 예민하고,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서 안정된 생활을 쫓던 그녀에게,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이놈의 ‘삶’을 견디는 일은 다 커서 젓가락질을 다시 배우는 일마냥 멋쩍고 창피했다. 이토록 소심한 여자가 청춘을 견디고, 서른을 견디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독서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며불며 책을 읽었고, 사랑 역시 책으로 배우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른이 되기 전에 천 권의 책을 읽었다. 청춘이라는 악몽 같은 시간을 오직 책으로 버텨낸 그녀의 열정은 2009년 겨울 서정문학상에 단편소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밤」이 당선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으며 이후 『책에 미친 청춘』, 『십대, 책에서 길을 묻다』, 『아까운 책 2012』(공저) 등을 펴냈다. 현재 언론진흥재단, 김영사 웹진 등에 칼럼을 연재하며 독서 에세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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