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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해졌는데 더 짜증이 난다고?

작은 불편함도 못 참게 된 사람을 위한 짚신 『편안함의 배신』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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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까칠까칠하고 불편하지만 맨발보다는 나은 짚신으로 갈아 신고 늑대에 대한 의존성을 줄일 수 있게 해보자고 설득해야할 것이다.

5월 셋째 주부터 격주 월요일, 하지현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추천하는 심리책 이야기, ‘하지현의 마음을 읽는 서가’가 연재됩니다.

 

“여긴 왜 그래?”

 

낯선 곳을 여행하다 나도 모르게 내뱉게 되는 말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도를 따르라’는 말보다는 내가 지내던 곳에서 그랬듯이 똑같은 안락함과 편안함을 느끼고 싶은 마음은 더딘 서비스나 다른 관행에 대해 이해보다는 짜증부터 난다.

 

그만큼 우리가 잘 살게 되었다고 자부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안락하고 편리해진 것은 쉽게 익숙해지고 감사의 마음은 찰나에 불과하다. 얼마 전에 노트북 컴퓨터를 SSD가 달린 것으로 바꿨다. 부팅이나 프로그램이 뜨는 속도가 전에 쓰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빨라졌다. 처음에는 너무 감동해서 가슴이 벌렁거릴 정도였다. 그런데, 익숙해지고 나니 처음의 감동은 사라지고, 이제는 연구실의 PC를 사용할 때 켜지는 속도가 느리고, 동영상이나 이미지를 띄울 때 걸리는 시간차가 예민하게 느껴지면서 바쁠 때에는 조바심이 났다. 더 빠르고 좋은 컴퓨터가 생겼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모든 부분이 따라오지 않는 것이 싫고 불편해진 것이다.

 

편안함의배신

불편에 더 과민해지는 ‘편안의 역설’


현대문명의 발달이 선물한 편안함은 우리를 쉽게 불편해하고, 짜증내며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또, 편안함에 푹 젖어 있다 보니 거꾸로 생존능력은 떨어지고 그냥 그런가보다 받아들이기보다 작은 불편을 위험신호로 오인해 불안해지는 일이 늘어났다. 도시에서 깨끗한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아토피 피부염이나 알레르기성 질환이 늘어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편리함에 젖어 살면서 작은 불편을 견디지 못하며, 그냥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불안해지기까지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책은 무엇일까. 서가를 둘러본다. 평소 뒤죽박죽인 성격이라 주제별로 제대로 정리를 하지 못한 서재 책장이 오늘따라 눈에 거슬렸다. 빨리, 책을 찾아내서 평정심을 찾아내고 싶었다. 나또한 편안함과 정돈됨에 중독된 것이다. 아! 겨우 찾았다. 『편안함의 배신』이다.

 

저자 마크 쉔(Marc Schoen)은 심리학자로 UCLA의 게팬 의과대학에서 심신의학 과정의 교수로 있고 공저자 크리스틴 로버그(Kristin Loberg)는 전문작가다.

 

쉔 박사는 자율신경계의 작동원리와 대뇌의 전두엽과 변연계의 불일치를 중심으로 우리 몸의 반응을 설명한다. 생존본능과 연관된 변연계는 자극을 받으면 위험신호로 받아들이고 생존을 위한 강력한 반응을 하면서 긴장을 한다. 이때 자극의 역치라는 것이 있다. 어떤 수준 이하의 자극에 대해서는 반응을 하지 않지만 역치라는 경계선을 넘는 자극을 받게 되면 강한 반응 수준을 보이게 된다. 그런데, 편안한 삶을 오랫동안 유지하다보면 서서히 이 자극의 역치가 낮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순간부터는 아주 작은 자극에도 쉽게 생존본능의 빨간 불이 켜지게 된다. 불편함에 대한 내성이 떨어지고, 그러니 더 높은 수준의 안전함을 요구하게 마음의 세팅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전두엽이 이성적으로 통제를 하려해도 잘 되지 않는 상황이 되면, 변연계 위주로 반응을 하게 된다. 그 결과 강박적으로 이메일을 확인하고, 웬만한 약물에 제대로 통증이 반응하지 않는 만성적 통증질환이 늘어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조금만 불편해져도 그 불편을 제거하게 위해 호들갑을 떨면서 대응을 하고 편법을 쓰고 무리를 해서라도 불편을 제거하지 않으면 더 큰일이 벌어지고 생존에 이상이 생길 것이라 믿게 된 것이다.

 

지난 반세기전에 비해서 항우울제, 항불안제, 수면제등과 같은 약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고, 교통체증에 대한 분노, 서비스업종 종사자에 대한 공격성과 같이 정서적으로 과도한 반응이 생긴다. 전에는 일부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게서만 볼 수 있었으나 현재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 되었다.

 

쉔 박사는 이를 모든 측면에서 생활이 점점 더 편안해고 있는데도 현실은 불편에 더 과민해지는 ‘편안의 역설(cozy paradox)’이라 부른다. 이제는 작은 역경이나 일상의 스트레스를 맞닥뜨리면 바로 생존과 관련한 두려움이 자리잡아 불안해지게 된다. 삶에서 안전하다고 여기는 내면의 편안한 구역이 점점 더 좁아져 살짝 벗어나면 바로 생존본능의 경고등이 켜진다. 그래서 인지치료적으로 전두엽을 조정해서 해결책을 내놓는다고 해도, 두려움에 사로잡힌 변연계를 억제하고 조종하는 데 부족한 점이 있어서 과거의 인지치료적 접근이 요새는 썩 효과적이지 못한 것 같다고 평하기도 한다.

 

내면의 자동온도조절장치의 세팅을 바꾸는 것


편안함에 길들여진 채 지내면 안이나 밖에서 작은 흔들림만 생겨도 ‘이것은 아닌 거 같은데’라는 동요를 쉽게 느끼게 된다. 안정감을 흔드는 일이 벌어진다고 아주 예민하게 감지를 하게 된다. 내면은 조화가 깨졌다고 느끼면 어떻게든 이를 바로잡으려고 노력을 하며 항상성(homeostasis)을 되찾으려고 한다. 약간의 출렁임이 있는 곳이라면 넘어갔을 물결이 아주  아주 고요한 연못에서는 큰 파도의 전주곡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니, 긴장을 풀고 쉬는 것도 익숙하지 않고, 긴장이 풀리면 동요가 일어난다고 여기게 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계속 긴장을 유지하려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다. 토요일 밤에 아무 일 없이 쉴 수 있지만 이메일을 확인하고, 자극적인 영화를 보고, 기름진 음식을 먹는 자극을 찾는, 일종의 자극중독이 되는 일도 벌어지게 된다. 안심, 통제력, 편안함을 위한 일시방편으로 자극적 행위를 찾는 것이다. 이런 자극은 또 다른 동요를 일으키고 어긋남은 더 커지는 악순환에 빠지면서 항상 불편함과 예민함이 지속되는 상태에 놓여 있게 되다가 결국 어느 순간 공황발작과 같은 심한 경고반응이 오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변연계의 놀란 상태를 진정시키고, 내면의 자동온도조절장치의 세팅을 바꾸는 것이다. 저자는 일정기간 편리함을 제공하는 첨단기술을 사용하지 않는 것, 멀티태스킹보다는 싱글태스킹으로 한 가지씩의 정보입력과 감각통로에 집중하기,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의도적으로 느긋한 시간을 가지려 노력하기, 일을 잘게 쪼개서 하며 한 번에 모든 일을 완벽하게 다 끝내려 애쓰지 않기, 삶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기 등을 우리가 다시 세트포인트를 재조정하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생활습관으로 제안했다.

 

현대문명의 방향은 분명히 ‘더 쉽게’, ‘더 빠르게’, ‘더 편안하게’다. 그러나, 그 편안함을 우리의 마음을 마약에 중독 되듯 연약하게 만들어버리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편안함과 짜증을 서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짜증과 불쾌함은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만 여겨왔을 뿐, 편안해진 환경이 짜증의 역치를 낮췄다는 둘 사이의 공모를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둘의 공모의 연결고리를 끊고, 불편함에 대한 맷집을 길러내려는 시도를 해야겠다.

 

이야기를 마치면서 문득 한 우화가 생각난다. 원숭이가 잣나무에서 잣을 따는 것을 본 늑대가 꽃신을 선물했고, 꽃신의 푹신함에 매료된 원숭이는 꽃신만 신다가 어느새 발바닥이 말랑말랑해진다. 그러다가 늑대가 이제는 잣을 많이 주지 않으면 꽃신을 주지 않겠다고 협박하자 원숭이는 늑대의 잣 따주는 노예가 되었다는 이야기. 원숭이에게 꽃신을 바로 벗고 다시 맨발로 서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단은 까칠까칠하고 불편하지만 맨발보다는 나은 짚신으로 갈아 신고 늑대에 대한 의존성을 줄일 수 있게 해보자고 설득해야할 것이다. 현대문명의 편안함에 푹 젖어 작은 신호에 바로 불편과 불안의 반응을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편함의 내성을 기르기 위한 훈련을 할 짚신이 아닐까.  

 

 

 

 



편안함의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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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의 배신 마크 쉔,크리스틴 로버그 저/김성훈 역 | 위즈덤하우스 |
원시시대에는 편안을 추구하는 것이 생존을 확보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편안함이 넘쳐나는 현대사회에서는 불편을 다루는 것이 가장 강한 생존력을 기르는 길이다. 저자는 불편을 완전히 없앨 수 없으며, 이 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이 처한, 혹은 앞으로 마주치게 될 불편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불편을 즐길 수만 있다면 불편은 오히려 강인함과 회복탄력성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기술은 바로 불편을 즐기는 것이다. 불편을 이용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우리는 삶이 개선되고 행복함도 증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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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편안함의 배신

<마크 쉔>,<크리스틴 로버그> 저/<김성훈> 역13,500원(10% + 5%)

편해질 대로 편해진 이 세상에서 왜 우리는 오히려 더 불편을 느끼고, 조급해하고,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일까? 심신의학을 연구하는 저자 마크 쉔은 갑작스러운 이혼을 경험한 후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편안함 중독으로 인해 사소한 불편이 찾아왔을 때, 자신이 한순간에 무너질 만큼 취약해져 있음을 깨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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