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를 점령한 연주곡들 1
이 음악도 정말 유명한 곡이죠
이번에는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연주음악을 두 편으로 나눠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감상해보실까요?
최근에는 연주음악이 빌보드나 인기차트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연주곡은 종종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두각을 나타내곤 했습니다. 아주 예전에는 경음악이나 이지 리스닝이라고 불렀고, 요즘엔 세련되게 인스트루멘탈이라고 하지만 사람의 목소리 없이 온전히 멜로디와 리듬, 화음으로 구성된 연주곡들은 가창이 있는 노래만큼의 감동을 전해주죠. 그래서 이번에는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연주음악을 두 편으로 나눠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감상해보실까요?
1. Surfaris - Wipe out
그룹 서파리스의 매니저 데일 스말린의 방정맞은 웃음소리로 시작하는 이 음악을 모르시는 분은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곡입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론 윌슨의 드럼과 짐 퓰러, 밥 베리힐의 명징한 기타 사운드는 「Wipe out」을 팝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주 음악 중 하나로 등극시키죠. 1963년에 발표된 이 곡은 당시 한창 붐을 이루던 서프 음악에 방점을 찍으며 싱글차트 2위에 올라 미국인들에게 잊을 수 없는 음악으로 자리했습니다. 국내에선 벤처스의 버전으로도 큰 인기를 누렸고 1987년에는 비치 보이스와 랩 그룹 팻 보이스가 함께 한 힙합 버전으로도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2. Champs - Tequila
이번에는 애주가들이 좋아하실만한 제목을 가진 곡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곡 역시 들으면 다 아실만한 음악인데요. 초기 로큰롤 연주 그룹 챔프스가 1958년에 발표해서 5주 동안 정상을 지킨 「Tequila」입니다. 이 곡은 제목처럼 라틴 내음이 물씬 풍기는데요. 페레즈 프라도의 「Cherry pink and apple blossom white」, 도메니코 모듀노의 「Nel blu dipinto di blu」와 함께 1950년대에 가장 중요한 라틴 음악 중 하나입니다. 「Tequila」에서 가장 중요한 악기는 거친 소리를 내는 색소폰인데요. 색소포니스트 대니 플로레스가 작곡했기 때문입니다.
3. Paul Mauriat - Love is blue
이 음악도 정말 유명한 곡이죠. 아마 40대 이상 분들은 이 곡을 들으면 라디오 시그널 음악을 떠올리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분들은 화면조정시간이 생각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 정도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거대한 성공을 거둔 「Love is blue」는 유럽의 서정성과 고풍스러움이 상존하는 고품격 음악이죠. 프랑스 출신의 작곡가 겸 악단 지휘자인 폴 모리아와 그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Love is blue」는 1968년에 미국 차트 정상에 올랐는데요. 원래는 1년 전인 1967년도 < 유러비전 송 콘테스트 >에 룩셈부르크 대표로 출전한 여가수 비키 레안드로스가 부른 「L'amour est bleu」를 연주곡으로 편곡한 음악입니다.
4. Edgar Winter Group - Frankenstein
록 연주곡으로는 유일하게 빌보드 정상을 차지한 연주음악입니다. 밴드 리더 에드가 윈터는 1960년대 블루스 리바이벌의 한 축을 담당했던 기타리스트 저니 윈터의 동생인데요. 그는 건반과 색소폰, 타악기를 연주합니다. 하드록과 프로그레시브의 영향을 받아서 1973년에 빌보드 넘버원을 차지한 「Frankenstein」은 에드가 윈터가 1970년에 발표한 「Hung up」의 기타 리프를 기초로 재탄생한 곡인데요. 여기서 에드가 윈터는 ARP 2600 신시사이저와 퍼커션, 색소폰까지 직접 연주하죠. 「Frankenstein」은 < 롤링 스톤 >이 선정한 최고의 록 연주곡 25에 오른 명곡입니다.
5. Chuck Mangione - Feels so good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음악이죠. 후르겔혼 연주자 척 멘지온이 1978년에 발표해서 싱글차트 4위에 랭크된 이 곡은 우리나라 라디오의 터줏대감이면서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도 널리 쓰여서 아주 익숙합니다. 척 멘지온은 이후에 라디오 프로그램 < 황인용의 영팝스 >의 시그널로 사용된 「Give it all you got」과 영화 < 산체스의 아이들 >의 주제음악 「Children of Sanchez」로 케니 지가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재즈 뮤지션이었죠. 「Feels so good」은 1978년도 그래미에서 올해의 레코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빌리 조엘의 「Just the way you are」에 밀려 수상하진 못했습니다.
6. Kenny G - Songbird
1980년대 후반에 척 멘지온의 인기를 능가하는 재즈 뮤지션이 등장하죠. 바로 케니 지입니다. 소프라노 색소폰을 연주하는 케니 지는 1990년대를 풍미한 뮤지션인데요. 그 열풍의 시작이 1987년에 빌보드 4위를 기록한 「Songbird」입니다. 저녁 노을로 채색된 가을 하늘이 연상되는 이 아름답고 사색적인 곡은 영화 < 귀여운 여인 >이나 애니메이션 < 카 >를 비롯해 여러 드라마나 광고에 사용될 정도로 넓은 인지도를 자랑합니다.
7. Hot Butter - Popcorn
이 음악은 여러분들이 다 아는 곡입니다. 어디선가 들어보긴 했지만 아티스트 이름과 곡 제목도 모르시는 분들이 많죠. 1972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9위를 기록한 핫 버터의 「Popcorn」은 미래지향적인 음악입니다. 1969년에 거손 킹슬리가 무그 신시사이저로 연주한 원곡을 부활시킨 이 곡은 전자음악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데요. 핫 버터는 거손 킹슬리의 음악을 좀 더 팝적으로 편곡해서 널리 알려졌고, 이후에도 트럼페터 허브 알퍼트나 프랑스의 건반 주자 장 미셸 자르, 뮤즈 등 많은 뮤지션들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리메이크했습니다.
8. Apollo 100 - Joy
1969년에 인간이 달에 착륙한 이후, 우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중음악에서는 우주를 소재로 한 이름이나 노래 제목이 자주 등장하게 됩니다. 그 중에 하나가 탐 파커라는 건반 주자를 중심으로 뭉친 스튜디오 그룹 아폴로 100입니다. 이름은 아폴로 100이지만 영국에서 결성됐는데요. 1972년에 빌보드 6위에 랭크된 이들의 대표곡 「Joy」는 요한 세바스찬 바하의 「Jesu,, joy of man's desiring(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을 바탕으로 한 연주곡으로 마크 월버그의 영화 출세작 < 부기 나이트 >에도 삽입됐습니다.
9. Deodato - Also sprach Zarathustra
1960년대 후반에는 21세기가 되면 우주를 마음대로 유영하며 다른 별에 기지를 건설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나봅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1960년대 후반이나 2010년대나 크게 달라진 건 별로 없네요. 스탠리 큐블릭 감독의 영화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의 도입부에 사용된 리차드 스트라우스의 심오한 클래식 「Also sprach Zarathustra(자라투르스는 이렇게 말했다)」를 퓨전 재즈와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광대하게 재해석한 인물은 브라질 출신의 뮤지션 유미르 데오다코, 줄여서 그냥 데오다토라고 합니다. 그는 이 유명한 곡으로 그래미에서 최우수 연주곡 부문을 수상했고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펑크(Funk) 그룹 쿨 & 더 갱의 음반들을 제작하면서 그들에게 전성기를 안겨준 일급 프로듀서가 됩니다.
10. MFSB & Three Degrees - TSOP
지금부터는 디스코 시대의 연주곡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974년에 차트 정상을 차지한 MFSB의 「TSOP」. 무슨 암호 같은 팀 이름과 제목이죠? MFSB는 Mother, Father Sister, Brother의 이니셜입니다. Mother Fucking Son of Bitches가 아닙니다. 그리고 TSOP는 'The sound of Philadelphia'의 첫 알파벳인데요. 이 필라델피아 사운드는 '필라델피아 소울' 혹은 '필리 소울'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스타일은 펑크(Funk)와 소울에 현악기와 관악기를 첨가해 고풍스럽고 세련된 음악을 추구했는데요. 훗날 초기 디스코의 원형으로 평가 받는 음악입니다. 1960년대의 공민권 운동으로 힘을 얻은 흑인들은 소울과 펑크(Funk)로 자신감을 표현했고 모든 흑인들은 모두 부모형제라는 하나의 모토를 내세웠죠. MFSB는 바로 그 소울 정신을 담은 그룹이었지만 사실 이들은 우리가 이해하는 일반적인 밴드가 아니라 악단 형식을 갖춘 오케스트라였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필라델피아의 유명한 시그마 사운드 스튜디오의 세션맨들이 있었죠. 「TSOP」는 흑인들을 위한 음악 텔레비전 프로그램 < 소울 트레인 >의 시그널 테마로 사용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습니다.
11. Van McCoy - Hustle
작곡가면서 프로듀서이자 악단 지휘자였던 밴 맥코이는 자신이 이끄는 소울 시티 심포니와 함께 발표한 「Hustle」는 1975년에 차트 정상을 차지한 디스코 음악입니다. 1976년도 그래미에서 최우수 팝 연주 부문을 수상한 이 곡은 밴 맥코이가 친구와 함께 갔던 클럽에서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허슬 춤을 추는 장면에서 영감을 받았는데요. 이 멋진 음악에서 가장 두드러진 악기는 주요 멜로디를 담당한 피콜로라는 목관악기입니다. 풀피리처럼 높은 소리를 내는 피콜로는 묵직한 음색을 내는 트럼펫과 조화를 이루며 또 다른 디스코의 명곡을 탄생시켰습니다.
12. Love Unlimited Orchestra - Love's theme
러브 언리미티드 오케스트라는 느끼한 저음으로 유명한 흑인 가수 배리 화이트가 이끄는 대형 오케스트라입니다. 1973년에 발표해서 1974년에 2주 동안 빌보드 정상을 지킨 「Love's theme」은 배리 화이트가 작곡하고 직접 악단을 지휘한 곡이죠. 도입부의 현악 스트링이 마치 시원한 바닷가를 연상시키는 이 음악은 와와 페달을 사용한 리듬 기타가 인상적인데요. 초기 디스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음악입니다. 이 곡은 1980년대에 MBC 라디오 < 임국희와 함께 >의 시그널로 쓰여서 국내 팬들에게도 잘 알려졌죠.
13. Average White Band - Pick up the pieces
'평균적으로 백인 밴드'라는 이름만 봐도 그룹 멤버 대부분이 백인이란 걸 알 수 있죠. 드러머만 빼고 나머지 구성원이 모두 백인인 스코틀랜드 출신의 소울 펑크(Funk) 밴드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연주한 「Pick up the pieces」만 들으면 흑인 펑크(Funk) 밴드가 연주한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진한 음악을 들려줬죠. 1974년에 싱글차트 1위를 차지했지만 흑인음악차트에선 5위까지 밖에 오르지 못한 건 아프리칸 아메리칸들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정상을 허락하지 않은 것 아닐까요? 이 음악을 들은 '소울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은 「Pick up the pieces one by one」이라는 연주곡을 발표해 애버리지 화이트 밴드에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랑과 평화가 이 곡을 자주 연주했고, 최근에는 영화 < 아이언맨 2 >에도 잠깐 흘러나왔습니다.
14. Walter Murphy - A fifth of Beethoven
'악성' 베토벤은 빌보드 싱글차트 넘버원을 가지고 있을까요? 정답은 '그렇다'입니다. 월터 머피가 빅 애플 밴드와 함께 연주한 「A fifth of Beethoven」은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을 디스코로 편곡한 곡으로 차트에 등장한지 19주 만에 정상을 정복했습니다.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한 월터 머피는 디스코가 붐을 이루던 당시에 어느 누구도 클래식을 디스코 음악으로 연주한 적이 없다는 틈새시장을 노려 이 곡을 연주했죠. 그는 녹음한 데모 테이프를 여러 음반사에 보냈지만 거의 모두 퇴짜를 맞았고 그 중에 프라이비트 스톡 레코드라는 소규모 레코드 제작사와 연결이 되어 가까스로 싱글로 발표됐습니다. 1977년에는 영화 < 토요일 밤의 열기 >에도 삽입돼서 다시 한 번 그 인기를 증명 받았습니다.
15. Herb Alpert - Rise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트럼펫 연주자 허브 알퍼트가 1979년에 발표한 「Rise」의 베이스 리프는 노토리어스 바아이지의 1997년도 넘버원 「Hypnotize」에서 샘플링됐기 때문에 랩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아주 익숙합니다. A&M 레이블 사장이기도 한 그는 팝 역사에서 노래를 부른 곡과 연주곡이 모두 빌보드 정상에 오른 유일한 아티스트인데요. 1968년에 직접 부른 「This guy's in love with you」가 1위에 올랐고, 1979년에는 이 곡 「Rise」가 넘버원을 차지해 불멸의 기록을 갖게 됐죠.
이것으로 '빌보드를 점령한 연주곡들' 1편을 마치고 다음에는 영화 주제음악이나 미드 주제곡으로 히트한 연주곡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소승근(gicsuck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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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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