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없는 아침과 주말의 허전함
무언가에 스며든다는 것
커피와 여행과 책과 사람을 아끼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을 내밀하게 보낸다. 커피 한잔 하고 싶은 마음, 울고 싶은 마음은 그렇게 가라앉는다.
한의사는 카페인이 내 체질과 맞지 않으니 커피를 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의사의 조언이 아니더라도 최근에 커피를 마신 후 각성이 된 것 같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피곤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신중히 고민하던 참이었다. 간신히 2주를 버텼는데 사실 자신은 없다. 카페인의 각성 효과가 필요한 건지, 커피향기를 좋아하는 건지, 커피를 마시는 순간 찰나의 여유를 사랑하는 건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커피가 없는 아침과 주말의 허전함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채우기 힘들 것 같다.
라떼 속으로 스며드는 우유 줄기 같아 보이는 표지를 넘기자, 커피를 연상케 하는 둥근 머그 자국의 각 장 제목과 커피색 폰트가 한눈에 들어왔다. 커피 없이 지내고 있는 아쉬움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커피와 함께 시작된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정성껏 추출하고 마침내 서로 섞여 들고 있었다.
‘흔히 로스팅을 사람의 일생에 비유한다. 그래서 로스팅을 커피의 꽃이라고 말한다. 오늘 볶는 커피는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가 사람이라면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스스로를 커피 볶고 내리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만큼 전문가다운 설명이 빛을 발한다. 800가지 이상의 향기를 갖고 있는 커피는 분쇄할 때, 물과 만났을 때, 입안에서, 그리고 다 마신 후의 향기가 각각 다르다고 한다.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같은 기본 메뉴는 물론이고, 샤커레토, 민트 커피 같은 생소한 커피까지, 그리고 에티오피아, 과테말라, 브라질 등 산지별 원두도 모두 아우른다. 친절하고 깊이 있는 설명이 한 권의 커피 교과서로도 손색이 없다.
책에는 다양한 커피에 버금가는 수많은 사람들도 향기롭게 등장한다. 그 중에는 저자의 오래된 친구도 있고, 커피를 배우러 오는 수강생도 있고, 늘 같은 자리에 있어주는 가족도 있다. 일흔여섯 가지의 커피가 삶과 고스란히 연결되고 일흔여섯 개의 짧은 이야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또 어떤 때는 사람과 커피를 대신하여 책이 등장하기도 한다. 커피 내리는 일 만큼 시와 소설을 읽는 일을 항상 기꺼워하며 지낸 것이 역력했다.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들을 함께 음미하고 이승훈, 이병률의 시집을 읽고 또 읽는다.
커피와 여행과 책과 사람을 아끼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을 내밀하게 보낸다. 커피 한잔 하고 싶은 마음, 울고 싶은 마음은 그렇게 가라앉는다. 그러고 보니 ‘울기 좋은 방’은 이병률 시인의 시 제목이었다.
울기 좋은 방 / 이병률
내가 묶여 있다
의자에 있다
눈 내리는 천장 없는 방에
별이 가득 차고 있다
화살나무가 방 안으로 자라기 시작한다
나도 너도 며칠째 먹지 않았으니
이 모든 환영은 늘어만 간다
이리도 무언가에 스며드는 건
이마에 이야기가 부딪히는 것과 같다
묶어둔
너를 들여다보는 동안
나는 엎드려 있다
나는 너에게 속해 있었다
- <찬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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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윤선> 저12,420원(10% + 5%)
바리스타의 일은 언제나 내 앞에 있고, 위에 있으며, 멀리 있다 일흔여섯 가지 커피와 함께 울고 웃는, 일흔여섯 개의 짧은 이야기들…… 이 책의 작가, 용윤선에게 커피는 삶과 고스란히 연결되어 있다. 그녀는 바리스타이자, 커피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자, 소년과 소녀의 엄마이자, 문학과 여행을 사랑하는 한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