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혜 연출가 “소수자 이야기,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일랜드>, 자유와 인권에 관한 고전
사실 <아일랜드>는 대사가 조금 어렵게 느껴져도 이야기 구조가 정말 단순하거든요. 힘없는 그들이 누명을 쓰고 들어왔고, 그들에게 이상적인 것들이 있었으나 물리적인 공간 안에서 현실에 부딪히는 절망감을 이야기하고, 그 절망감을 해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꿈을 위해서 한 판 뒤집어엎는 게 끝이에요. 그 간단한 스토리를 쉽게 공감하면서 보기를 원해요.
문화예술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인 김경주가 매월 공연 예술인을 만나 여러분께 소개해드립니다. 매달 12일 연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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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아일랜드>가 서지혜 연출작으로 오는 5월 25일까지 명동 삼일로창고극장에서 공연된다. 아톨푸가드의 원작 <아일랜드>는 故 넬슨만델라가 종신형을 받고 실제 복역했던 로벤섬감옥이 배경이다. 1974년 아톨푸가드, 존카니, 윈스턴앵초나 3인이 로멘섬감옥의 실제 경험들을 토대로 남아프리카의 비인간적 인종차별 문제를 고발한 작품. 단순히 흑백인종 문제를 넘어 인간 대 정치권력, 국가와 개인적 삶의 갈등을 신랄하게 드러내면서도 인간의 동경, 좌절, 고통과 슬픔을 서정적으로 그렸다. 2인극으로 펼쳐지는 서지혜 연출의 <아일랜드>는 최무인, 남동진 배우가 각각 ‘존’와 ‘윈스톤’으로 분했다.
<아일랜드> 낯설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김경주 : <아일랜드> 작품을 간단하게 소개해 주세요.
서지혜 : 조금 특별하게 희곡을 고르게 됐어요. 남동진 배우님께서 40대 초반이신데, 어느 날 ‘뜨겁게 남자 배우들끼리 연기할 수 있는 작품이 없을까?’라면서, <아일랜드>를 생각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씀을 듣고 작품을 읽어봤는데 처음에는 너무 어려웠어요. ‘남자 연출가가 해야 될 것 같은데 저랑 성향이 조금 안 맞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드렸는데, ‘아니야, 넌 남자야. 다시 읽어봐. 맞을 거야’라고 하셨어요(웃음). 그래서 다시 한 번 읽었어요. 새벽에 두 번 읽었던 것 같은데, 읽으면서 너무 많이 울었어요. 남아프리카 흑인들의 인종 차별, 불평등, 권력에 대한 저항의 이야기여서 솔직히 조금 낯설었어요. 제가 살면서 그런 걸 맞닥뜨릴 기회는 없잖아요. 하지만 인간의 보편적인 내용이고 인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까 두 번 정도 읽었을 때는 공감이 되더라고요. 우리가 이걸 잊고 살고 있구나, 벌써 이게 낯설어졌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이 희곡을 선택하게 됐어요.
김경주: 아일랜드는 전부터 꾸준히 연극화 되어온 작품이지만 여성연출가의 손에 의해 다시 태어난 건, 보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남자의 이야기지만 남성적인 작품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인물들의 인간성 안의 어떤 점이 연출의 매력을 끌었는지도 궁금하네요.
서지혜: 작품을 선택한 뒤에 <아일랜드>가 남자 2인극이기 때문에 한 분의 배우를 더 섭외해야 되는 상황이 왔어요. 희곡을 읽으면서 느꼈던 건 ‘이건 너무 잘하는 사람 두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라 정말 호흡이 잘 맞고 둘의 신뢰가 정말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인극이기도 하고 두 사람의 관계가 워낙 끈끈하니까요. 그러던 중, 남동진 배우님이 최무인 배우님을 추천하셨어요. 두 분은 10여 년 전부터 대학로에서 서로 연기를 봐왔던 사이셨던 거예요. 다행히 최무인 배우님이 저의 학교 선배님이시거든요. 남동진 배우님이 상대역이라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기존의 공연을 취소하고 <아일랜드>를 하겠다고 하셔서, 세 명이 한 팀을 이뤄서 시작하게 됐던 것 같아요. 첫 만남을 포장마차에서 했던 게 기억이 나네요(웃음).
김경주 : 그 때가 언제였죠?
서지혜 : 2011년 11월이었나요? 만나서 ‘이런 작품이다, 함께 해 보시겠느냐’고 여쭤봤는데, 처음에는 최무인 배우님이 <아일랜드>에 대해서 30년 전의 기억을 갖고 계시다 보니까 ‘너무 올드하지 않냐, 뒤떨어지는 것 아니냐’고 얘기하셨는데, 한 번 희곡을 읽고 ‘같이 하고 싶다’고 하셔서 포장마차에서 술 몇 번 마시고 저한테 낚이시면서(웃음). 본격적으로 연습에 들어가게 됐던 것 같아요.
김경주 : 작품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또 기존의 <아일랜드>라는 작품을 연출의 시선으로 새롭게 재해석하고 싶었던 극성 같은 게 있었을 것 같습니다.
서지혜 : 재공연을 계속하면서 발전은 하고 싶었는데, 사실 해석적인 부분에서 재공연을 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찾지는 못했어요. 초연이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였고 그 다음에 ‘밀양연극제’ ‘정보소극장’ ‘대학로 게릴라극장’ ‘삼일로창고극장’, 이렇게 다섯 번째입니다.
김경주 : 정말 끈끈하게 살아 왔네요(웃음). 지금 대학로의 연극적 실정 속에서 한 작품으로 5회 이상의 레퍼토리적인 성격을 갖고 생명성을 가져오기가 쉽지 않잖아요. 나름의 내구력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배우 분들의 에너지도 있었을 거란 생각도 들고, 또 연출님만의 독특한 해석이 닿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바라보는 <아일랜드>에 있어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랄까? 그런 지점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서지혜 : 제가 어쩌면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비관적일지도 모르겠어요. 앞으로의 세상은 더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아지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있어요. 점점 사람들이 개인화 되어가고 있고 인간에 대한, 타인에 대한 책임성이 결여되면서 생겨나는 어떤 이기적인 것들이 사회에 팽배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굉장히 자극적인 것도 많아지고 있지만. 동정심이라거나 인내심을 가지고 희생을 수반하는 감정들은 많이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거기에서 파생되는 문제들이 예를 들면 모든 것들을 타자화 시키려 한다는 거예요. 내가 아니라 나랑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들을 타자화 시키면서, 사람들은 시야가 좁아지고 있고 그런 편견에 쌓이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김경주: 예를 들면요?
서지혜: 이주노동자가 될 수도 있고 얼굴색이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고, 혹은 더 가난한 사람일 수도 있고, 조금 독특한 장애를 갖고 있는 분일 수도 있고, 나와 다름에 대해서 이해 차원이 아니라 타자화 시키고 나쁘게 얘기하자면 어떤 단체의 결속을 위해서 한 사람을 희생자로 만드는 분위기가 계속해서 더 많이 형성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하면서 그런 고민들을 좀 했어요. 제가 갖고 있는 이런 막연하고 복잡한 생각들을 어떻게 보여줄까 생각했을 때, 사실 <아일랜드>는 다분히 정치적이고 권력에 대한 이야기지만 무엇보다 당시의 시대상이 있기 때문에, 굉장히 용감하게 정치권력에 대한 부정적인 면들을 직접적으로 얘기하고 있는데.
30~40년이 흐른 뒤에 이 작품을 가지고 왔을 때, 물론 권력과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고착화되어 있고 변하지 않는 부정적인 것들이 있으나, 조금 더 타자화 된 인간들, 우리가 잊고 지낸 약자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것들을 제가 부각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대본에 나와 있지 않은, 존과 윈스톤의 조금 더 인간적인 면이라거나 인간적인 갈등이라거나 조금 더 본능적인 국가도 초월하고 색깔도 초월하고 시간도 초월해버리는 본능적인 모습을 더 부각시켜야만 30~40년이 지난 지금도 보편적으로 보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경주: <아일랜드>의 주제의식을 동시대적 보편성 위에 놓기 위한 고민이셨군요.
서지혜: 네. 그런 면들을 중심에 배열하면서 작업들이 진행이 됐던 것 같아요. 우선 외국의 번역본이라는 것이 저희한테 쉽게 와 닿지 않고 그 말들이 너무 엘리트적이고 이런 것들을 조금 더 서민적으로 바꿨던 것부터 시작했어요. 지금 우리 옆에 있는 40대 사람들처럼요. 하지만 번안은 안 했어요. 완전히 한국적으로 가져오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들로 바꾸고, 지금의 고민들을 빗대어서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고요.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되면서 구체적으로 현장에 가서 보자, 그 시대에 어떻게 갇혀 있었는지, ‘답답하다, 어렵다, 힘들다’는 대사를 막연하게 하는 게 아니라 어떤 기분에서 그런 대사를 할 수 있는지, 그런 것들로 답사를 가게 됐고요.
다 지난 얘기? 그렇다면 셰익스피어 작품은?
김경주: 초연을 올리고 나서는 어땠나요?
서지혜: 솔직히 걱정이 많았어요. 30년 전부터 워낙 유명했던 작품이라 ‘젊은 여자 연출가가 <아일랜드>를 왜하냐’는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우려했고, 선생님들을 만나면 거의 모든 분들이 ‘도대체 이제 와서 <아일랜드>를 왜하냐, 다 지난 얘기를’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럴 때 저는 ‘지난 얘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를 450주년이 되도록 왜 하냐’고 말씀드렸죠. 물론 주제를 갖고 오고 형식을 많이 바꾸고 있지만 그러면 도대체 형식은 뭐냐, 형식도 다 옛날에 흘러갔던 형식들 아니냐, 그러면 과연 그게 새롭냐(라고 하면서) ‘새로운 게 뭐냐’에 대해서 굉장히 논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김경주 : 그건 어떤 주제에 대한 새로움이라기보다 연극적 방식에 있어서의 새로움에 대한 이야기겠죠?
서지혜 :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우리 배우 분들하고 얘기했을 때도 ‘조금 더 현대적으로, 무언가 형식을 갖고 작품은 고전스럽지만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볼까’ 라고 하다가 제가 반대를 했습니다. 저는 ‘그냥 이걸 고스란히 올려보겠다, 정말 해석만 하고 최대한 작품의 느낌 그대로 올려보겠다’고 했죠. ‘그건 너무 구태의연하지 않느냐’는 얘기도 나왔고요. 그런데 저도 이것저것 형식적인 실험도 했었거든요. 여러 가지 것들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나한테는 지금 이게 실험인 것 같다’고 말했어요.
김경주: 고스란히 작품을 그대로 올리겠다는 건 무대적 재해석보단 작품의 원안적 성격을 해치지 않겠다는 것인가요?
서지혜: ‘나는 한 번도 어떤 대본을 가지고 정말로 작가 의도를 머리를 싸매면서 치열하게 고민을 하고 거기에 맞는 형식이나 연기를 간과하고 그렇게 깊이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한 번 정말로 내 나이에 해석이 깊이 있을 수 있게 공부하는 마음으로 해보고 싶다’라고 하면서 들어갔고요. 그래서 어쨌든 2012년에 공연을 올렸는데 생각보다 호응이 좋았어요.
김경주 : 그럼 당시에는 ‘혜화동 페스티벌’에서 처음 올렸던 건가요?
서지혜 : 페스티벌이 아니고 자체적으로 기획했어요. 그렇게 홍보도 많이 되지 않았고, 사실 파장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작업을 할 때도 비관적으로 얘기하시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냥 우리 안에서 의미를 가지고 하면 공연이 좋으면 다들 잘 봐주실 거다’라는 마음으로 했는데, 정말 고맙게도 연극인들 사이에서 굉장히 많은 얘기가 나왔고, 연극인들이 연극인들에게 입소문을 내서 연극인들이 와서 모든 극장을 채우고 그 외에 연극 공부하시는 분들이 많이 왔어요. 그 분들이랑 술을 마시면서 얘기했던 건, 사실은 그 분들 안에도 그런 생각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게 다시 필요하다는 것.
김경주 : <아일랜드>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에 대한 공유가 형성된 지점이 분명히 있었다는 말씀이시죠? 그걸 제대로 건드리셨네요.
서지혜 : 사실은 계속해서 어떤 트렌드를 따라가고 우리가 연극적인 어떤 흐름을 따라 가다보면 많은 지원제도도 있고 여러 제도가 있잖아요? 하지만 그런 걸 따라가는 것보다 그런 흐름이 아니어도 조금은 촌스러울 수도 있지만 아날로그적인 또는 남들이 조금 외면하는 문제의식을 담을 수 있는 연극적 방법론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뭐든 깊게 고민하고 깊게 무언가를 해보는. 그리고 당시 2012년 3월 즈음이 약간 비수기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공연도 많이 없었어요. 공연을 보셨던 분들이 ‘이런 공연이 없다’고 얘기하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 비수기여서 없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정말 연극인들의 힘을 업어서 그 다음에 밀양도 추진했던 것 같아요. 밀양의 경우에는 밀양에 있던 관계자분이 초연을 보셨는데 추천을 하셔서 밀양을 내려가게 됐던 것 같아요.
김경주 : 그래서 밀양에서 좋은 소식도 있었죠?
서지혜 : 배우 두 분이 연기상 받으셨어요.
김경주 : 말씀하신 것 안에 중요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었던 것 같아요. 결국은 <아일랜드>라는 작품이 인권을 다루고 있기도 하고, 우리 시대에 여전히 화제가 아닌 문제의식으로써 충분히 생각해볼 만한 것들을 가지고 있는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것들이 타자화 된다는 것이랄지, 힘의 문제, 이런 문제들이 다 녹아들어 있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고.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감각들이 성행하는 문화풍토 속에서 아무래도 진중하고 인간이랄지 본질적인 문제들에 닿으려고 하는 문화 콘텐츠들이 멀어져가고 있는 게 사실인데 그런 시류에서 벗어나 <아일랜드>가 오랫동안 생명성을 가져왔던 건 결국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동시대 속에서 자유에 대한 새로운 재해석
김경주: <아일랜드>에서 두 인물이 내세우고자 하는 자유, 갈망, 이런 것들이 사실 다 인권에 관한 건데. 120개가 넘는 소극장에서 공연을 하고 있지만 지금 현재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정면에 내세워서 하고 있는 이야기는 <아일랜드>가 유일하다고 생각해요.
서지혜 : <아일랜드>에서 윈스톤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존이 3개월 남아서 나갈 때, 인간적으로 따지자면 그의 절망과 시기나 질투 부러움 같은 거였겠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대사로 점철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대사 중에 ‘너의 자유는 썩어 문드러진 자유다, 그게 나를 미치게 만든다, 너의 자유는 맥주의 냄새고, 얘기하긴 그렇지만 여자의 거기의 냄새고’ 그런 얘기들이 있어요. 그걸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 저희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잖아요. 물론 그 안에서 약자들이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을 하게 됐고요. 그런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책임의식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고. 그 책임의식이 무엇인가, 앞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우리가 무엇을 상대로 해서 책임의식을 가져야 되는가,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되면서. 그게 결국은 사람이라는 생각.
김경주 :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 안에서의 자유에 대한 새로운 재해석인 거죠?
서지혜 : 네, 그런 것 같아요.
김경주 : 극성 안에서는 물리적인 폭력이 존재하잖아요. 잉여가 존재하니까. 인물들이 이 안에서 갈등을 빚어갈 때 자유에 대한 갈등이 너무 광의적이고 막막한 느낌도 있어요. 사실은. 이 인물들이 생각하는 자유가 연출가님이 생각하는 자유와 어떻게 닿아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에서의 자유에 대한 해석과 어떻게 닿아있는지에 대한 것도 궁금합니다.
서지혜 : 두 사람은 당장 나가서 육신이 해방되는 자유를 얘기하는 건 아니고요. 그 안의 자유는 그들이 정말로 역사적으로 굉장히 오랫동안 구조적인 문제로 당해온 억압인 거고. 물리적인 감옥과 체벌과 그들이 말하는-그냥 대사로만 존재하는 것은 물리적인 공간에서 해방되고 싶은 것이지만, 그 안에 얘기하고자 하는 건 인간의 인식인 것 같아요.
김경주 : 우리를 둘러싼 편견이나 시선을 말씀하시는 거죠?
서지혜 : 네. 그 인식이 굉장히 오랫동안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왔고 내 자식들 내 후손들, 그들은 브라더라고 부르잖아요, 다 결속 의식을 갖고 있거든요. 대대적으로 내 모든 아이들이 당할 차별들과 인식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은 자유라고 외치거든요.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은, 타자화 된 인식에서 벗어나고 싶은 자유를 계속해서 열망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윈스톤이 울면서 얘기하는 게 ‘이 땅의 모든 형제자매들이여, 나는 다시 내가 잡혀있는 내 삶으로 돌아간다’고. 그 이유는 내가 정말 갖고 있는 특권, 남들이 만들어준 인식화 된 특정한 권리를 갖고 나는 그걸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돌아간다는 대사가 있거든요.
김경주 : 결국은 자유에 대한 것은 몸에 대한 잉여도 있지만 오랫동안 쌓여 왔던, 물론 흑인이라는 인종의 역사성 속에서 더 특수화되고 더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폭력의 형태이겠지만, 결국은 시야나 시선의 문제네요. 그런 역사성에 대한 울부짖음이 인물들을 통해서 자유로 표현되는 거고, 그것이 현 시대에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인식의 문제는 바뀌지 않고 있다는 말씀이시죠.
서지혜 : 사실 제도적으로 보면 약자에 대한 관심도 생기고 인권에 대한 운동도 많이 생기는데, 제가 거기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말씀을 드릴 수는 없지만, 10년 전만 봐도 제도화된 노력들이나 사회적인 활동은 많이 늘어난 것 같기는 한데. 실제적으로 인식이 변했느냐는 거죠. 물론 인식을 변화시키려는 분들도 많이 생겼겠지만 실제 내 주변을 보고 ‘내 주변이 변했느냐’고 봤을 때 거기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이에요.
김경주 : 주인공이 감옥으로 다시 돌아가는 행위도 상당히 중요한 인물의 태도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예전에 ‘프리모 레비’는 이탈리아 출신의 레지스탕트가 나치 수용소에 있다가 나와서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소설을 써서 굉장히 유명한 이탈리아 문학상을 타고 노벨문학상 후보까지 올라갈 정도로 훌륭한 문학적 문면을 가꿨는데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을 보고 느꼈어요. ‘프리모 레비’가 죽기 전에 했던 말이 연출님께서 방금 하셨던 말씀과 닮아있는데요.
서지혜: 어떤 이야기가요?
김경주: 수용소에 갇혀있을 때는 나치가 나의 주적이라 생각했고 왜 전쟁의 희생자와 피해자가 내가 되어야 하느냐는 생각에 비참하고 참혹한 현실을 밖에 나가서 알리는 것이 자신의 소명의식이라고 생각해서 최대한 열심히 알렸는데, 나와 보니까 또 다른 편견이 있더라는 거예요. 더 큰 적들은 우리를 그냥 동정의 시선으로 본다거나 이것을 감추려고 하는 카르텔, 더 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폭력 앞에서 내가 졌다고 하면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굉장히 많은 것을 시사했어요. 연출님 말씀에서도 그런 매커니즘을 느꼈는데요. 그게 결국은 우리 시대에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포털을 보면서 화제에는 익숙해지지만 그 화제로부터 문제의식을 끌어내는 혹은 고민해보려는 지점들이 휘발되어 버리잖아요. 더 자극적인 기사들이 감싸버리니까요. 그러면서 우리들의 인식 문제가 점점 더 마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중문화적인 콘텐츠는 더 많아졌지만 그것을 해석하거나 성찰하려는 능동성은 더 떨어진 거죠. 어떻게 보면 그런 부분들이 총체적으로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인식에 대한 결여,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일랜드>가 가지고 있는 진지한 문제의식은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될 고민의 양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지혜: 맞아요. 이 작품의 자유는 그런 바뀌지 않는 인식에 대한 갈증과 절규 같아요.
결국 갈등을 일으키는 저항자
김경주 : 연극 안으로 들어와서 질문을 드릴게요. 세 가지 정도로 압축해서 이야기를 드리고 싶은데요. 일단은 ‘안티고네’라는 중요한 연극적인 모티프를 가지고 있잖아요. 이 이야기는 아는 사람도 있지만 처음 보는 관객이랄지, 들어는 봤지만 잘 알지 못하는 분들에게 ‘안티고네’에 관한 이야기를 어떻게 녹였고 어떻게 펼쳐 보여주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주세요.
서지혜 : <아일랜드>는 1,2,3,4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요. 4장에 갑자기 극중극이 되는 거예요. 존이 잠깐 설명을 하지만 그 설명이 친절하지 않아요. 정치적이고 딱 잘라서 얘기를 하고 바로 크레온 연기를 하기 때문에. 제가 말하고자 했던 건, 안티고네의 모습이 윈스톤과 겹쳐 있다고 생각을 했고, 그렇게 해석을 했는데요. 다분히 비슷하고 다분히 기본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그 기본적인 얘기가 권력에 의해서 묵살되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중첩되어 있는 이야기구나라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작가도 안티고네를 고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김경주 : 안티고네의 많은 속성 중에서 어떤 속성이라고 말을 해야 될까요?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안티고네의 속성. 고대 희랍에서 나온 안티고네라는 것의 아이덴티티가 굉장히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잖아요. 쌍생아 같은 두 인물이 겹쳐 보인다는 건 연출적 해석인데, 그러면 안티고네의 어떤 점을 가지고 해석하신 건가요?
서지혜 : 안티고네가 굉장히 정치적인 신념이 있거나 저항가의 느낌이 있는 건 다 뺐어요. 오히려 정치적으로 크레온과 얘기하는 부분은 다 뺐고요. 너무나 당연하게 ‘내 형제를 내가 묻는 건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내가 내 형제를 사랑하고 내 형제를 위로할 수 있는 건 너무 당연한 인간의 기본적인 것이다, 당연한 걸 왜 당연하지 않다고 받아들이느냐’ 라고 하는 10대 소녀의 절망과 정의에 대한 거예요.
김경주 :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에서 왕위를 놓고 싸우는 두 오빠를 안타깝게 느끼고 그 오빠들을 묻는 장례적인 측면에서의 안티고네적인 장면을 연상시키는 거군요.
서지혜 : 네, 그건 대사로만 나오고요. 안티고네가 등장하는 씬은 그게 하나도 없고요. 바로 크레온과 얘기만 하고 끝나는 건데요. 그 전에 전사로서 존이 나뭇가지를 들고 얘기를 해줘요. 나뭇가지가 사람 같이 생겼잖아요. 오빠 두 사람이 왕위를 두고 싸우고, 죽고, 그 다음에 크레온이 등장해서 왕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렇게 인형극처럼 편하게 이야기해줘요.
김경주 : 관찰자적인 시점에 대한 필요성인가요?
서지혜 : 네.
김경주 : 내레이터적인 역할로써 안티고네가 필요한 건가요? <아일랜드> 안에서 안티고네적인 속성이 어떤 채널과 역할을 갖고 있는지, 기존 안티고네와 어떤 차별성을 갖는지 궁금하거든요. 원래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에서 안티고네는 왕위를 두고 싸운 두 오빠의 시체를 묻는 장례자의 역할을 갖고 있잖아요. 그리고 자살을 하며 그 죽음을 둘러싼 다양한 주변 인물들의 죽음. 이러한 궤도는 연극 안에서 인간의 운명과 비극의 보편성이라는 감흥으로 관객을 몰고 가는 구실을 하는 게 일반적인 거잖아요.
서지혜 : 여기에서는 내가 너무 당연한 권리이지 않느냐,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느냐는 건데. 그건 사실 대사로만 풀리고 실제 역할은 전복의 역할인데요. 권력에 대해서 ‘도대체 무슨 말 하고 있는 거냐,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있는 것 아니냐, 너무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다고 얘기하는 당신이 이상하지 않느냐’라고 말하는 거죠.
김경주 : 결국 갈등을 일으키는 저항자네요. 우리가 흔히 ‘안티’라고 말할 때의 의미네요. 그건 헤겔이 변증법적 해석에서 자주 등장시키곤 하던 법 ‘권력,힘’의 저항체인 안티고네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거구요.
서지혜 : 네, 결국 역할은 그거예요.
김경주 : 연극적, 연출적 해석 속에서 ‘내가 부여한 안티고네는 이런 거다’ 라고 말씀하신다면? 기획적인 측면이나 연출적인 측면에서 기존의 <아일랜드>에서의 안티고네와는 어떻게 다르게 해석하셨나요?
서지혜 : 우리도 <아일랜드>의 시대가 오래됐다고 얘기하지만 그 시대까지 거슬러 가면 다 똑같은, 어떤 것들이 중첩되어 있다는 느낌을 저도 만들면서 받았어요.
김경주 : 그러니까 안티고네가 내러티브를 끌고 가는 직접적인 내레이터라기보다는 중심으로 차지하는 두 인물에 대한 부분들이 담겨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관객 중의 모든 사람은 안티고네로 대변되어지는 거죠? 이 연극이 주는 비극의 보편성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문제다로요.
서지혜 : 그러면서 극중극에서는 관객석 불도 다 밝혀지고요,
김경주 : 결국 그게 극중극이라는 형식과 맞물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거군요. 최근에 개봉한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같은 경우도 3중극이라는 구조를 써서 굉장히 신선함을 갖고 있더라고요. 3중극이라는 극중극이라는 방식 자체가 연출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적인 방식과 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극중극이라는 형식은 연극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형식이기는 하지만 <아일랜드>만큼은 상당히 중요한 중의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2인극, 연출가가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
김경주 : 2인극을 끌고 가실 때 연출적인 측면에서 2인극만의 매력이랄까 또는 2인극만의 한계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연출적 입장에서 2인극을 바라보는 태도랄까 극적인 느낌이 궁금합니다.
서지혜 : 2인극을 하면서 좋았던 건, 제가 한 번도 적은 수의 배우 분들과 작업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우선은 굉장히 집중력이 발휘돼요, 연출이 단 두 명과 얘기를 해야 되기 때문에. 연출로서 분산되지 않고 많은 얘기를 배우 분들과 나눌 수가 있다는 것, 그리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분이 지금 무엇을 갈등하고 있는지 어떤 걸 고민하고 있는지, 사실 저도 인간이기 때문에 배우가 9명이면 다 분산되거든요, 물리적인 시간도 있고요. 그걸 굉장히 절약하고 쓸 수 있다는 것, 소모적이지 않고. 완전히 끈끈해지는 거예요. 예를 들면 싸워도 그냥 연습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풀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거예요. 단 두 명밖에 없기 때문에(웃음). 그런 장점이 있더라고요. 또 제가 연출로서 굉장히 집중력을 발휘하게끔 하는 게 2인극이더라고요.
김경주 : 2인극이 갖고 있는 아쉬움이랄까 한계도 있지 않나요?
서지혜 : 이 작품 밖에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너무 힘들어한다는 것(웃음). 저는 사실은 더 표현하고 싶은데 저희 공연이 인터미션 없이 1시간 50분 동안 진행되거든요. 연습 때는 조금 천천히 하면 2시간 정도 돼요. 그런데 이 연극이 절대 쉬는 타임이 없고. 2인극의 단점이 뭐냐 하면, 아무리 배우 분들이 열심히 해도 강력한 극적 구조나 사건이 많지 않으면 집중력이 떨어져요. 보이는 게 별로 없으니까요. 게다가 <아일랜드>는 감옥 안에서만 일어나는 이야기니까. 감옥도 무대를 다 쓰는 게 아니에요. 옆에는 다 비워놓고 일부만 써요. 그 안에서 부딪혀야 되니까 비슷한 장면들이 계속 나오잖아요. 그걸 어떻게 하면 지루하지 않게, 관객들이 집중할 수 있게 어떤 요소들을 집어넣으면서 감정의 리듬을 타게 만들까하는 것들을 2인극이기 때문에 더 고민했던 것 같아요.
김경주 : 무대적 해석, 공간적 해석, 분위기적인 요소, 리듬감 이런 것들이 더 집중될 수밖에 없었군요.
서지혜 : 2인극은 거의 대부분의 연극들이 배우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잖아요. 무대나 형식미라기보다 캐릭터적인 것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배우들을 닦달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웃음). 세트를 옮기거나 대단한 테크니컬한 측면으로 리듬을 만들 수가 없기 때문에. 약간 지루할 때 눈을 시원하게 하는 것도 배워야 되고, 슬프고 잠잠하게 관객의 호흡을 떨어뜨려야 하는 것도 배워야 하니까 배우 분들이 조금 힘들어 하셨던 것 같아요.
김경주 : 연출 입장에서 관객과의 신뢰를 만들어가는 시점, 혹은 공감이나 소통의 이야기를 쌓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으시다면 무엇인가요?
서지혜 : 연극을 만들 때 저의 생각일 수도 있는데요. 저는 잘난 척 하는 게 싫어요. 굉장히 주관적인 생각인데, 연극을 보면서 가르치려고 한다거나 이론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척’ 하는 것은 싫더라고요. 저는 연극을 보러 갈 때 전문적으로 평가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내 마음에 오는 걸 그대로 받아들여요. 그게 연극의 가장 본질적인 속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연극이 엘리트화 되어 가고 있고 조금 더 세련된 구조로 가고 있어서 연극인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하고요. 연극인들 중에 저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도 계시지만, 과시나 관객을 앉혀놓고 설명하거나 가르치는 느낌이 들 때도 있거든요. 그 순간 저는 거부감이 들어요. 물론 그런 연극도 필요하지만 보편적인 일반 관객들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지는 공연 제작을 하는 사람들이 선택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건 정말 일차적인 얘긴데, 저는 이번 작품을 보고 관객들이 부끄럽거나 동정하거나 그냥 감정으로 느끼길 바랐어요. 그래서 배우 두 분이 관객을 웃기고 울려야 된다고 얘기했어요. 이번에는 그랬어요. 그 전에 블랙 코미디를 할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요.
김경주 : 결국 소통이나 교감은 가르치려 하거나 어깨에 힘 들어가 있고 척하는 것으로 되는 게 아니라, 적어도 이번 작품 안에서는 보편적인 측면에서의 극을 지향하신 거잖아요. 비록 인간에 관한 깊은 문제가 담겨 있지만 ‘너희들은 왜 그렇게 살고 있니?’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재고해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서지혜 : 누군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광주민주화항쟁이 있었을 때 어떤 연출가님이 그곳에 가셔서 ‘증언맵’이라는 걸 만드셨어요. ‘그렇다면 광주가 사태냐’에 대해서 얘기를 하신 건데. 그 분이 몇 년 동안 그때 폭력을 자행하거나 피해를 입었던 분들을 만난 거예요. 지금 나이가 들었지만 다 살아 있잖아요. <아일랜드>와 똑같은 거예요. <아일랜드>의 재소자들, 수감자들도 다 살아 있어요. 나이도 30년 밖에 차이 안 나요. 그런데 우리는 100년 정도 차이날 거라고 생각하고 다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넬슨 만델라도 작년에 돌아가셨잖아요. 광주에도 당시의 분들이 다 살아계시고 그대로 흘러가고 있더라고요. 거기에 만든 ‘증언맵’은 그분들의 증언을 채록해서 지도를 만드신 거예요. 거기에 함께하셨던 언어학자가 말씀하시길, 모든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같이 가지고 있는 ‘감정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다는 거예요. 세월호도 마찬가지이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픔이 동시대에 감정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잖아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아일랜드>를 통해서 관객들과 감정 공동체를 형성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경주 : 예술이라는 것이 표현의 문제도 다를 수 있고 스타일도 다를 수 있겠지만, 결국은 타인의 감수성을 돕는 작업이잖아요. 그걸 통해서 우리 안에 숨겨져 있던 지점들을 건드리기도 하고. 그런 점에서 연극의 공동체적 성격이 갖는 지점은 상당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김경주 : 관객들이 <아일랜드>를 어떻게 봐주면 좋을까요?
서지혜 : 관객들의 리뷰를 보니까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고 ‘좋다고 해서 갔는데 생각보다 너무 어려운 고민을 던져줬다’고 얘기하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사실 <아일랜드>는 대사가 조금 어렵게 느껴져도 이야기 구조가 정말 단순하거든요. 힘없는 그들이 누명을 쓰고 들어왔고, 그들에게 이상적인 것들이 있었으나 그걸 하지 못한 물리적인 공간 안에서 현실에 부딪히는 절망감을 이야기하고, 그 절망감을 해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꿈을 위해서 한 판 뒤집어 엎는 게 끝이에요. 그 간단한 스토리를 쉽게 공감하면서 보기를 원하고요. 재공연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형식을 고민하기 보다는 설명적이지 않으면서 조금 더 쉽고 조금 더 표현적인 게 없을까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연습 내내 배우 분들과 ‘너무 어렵다는데 조금 더 설명하지 않고 쉽게 표현할 수 없을까’ 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던 것 같고요. 저도 대학 때부터 형식미가 있는 연극을 해왔는데, 대사 연극을 한 건 처음인 것 같아요.
김경주 : 연출가로서의 소망, 공연 계획은 무엇인가요?
서지혜 : <아일랜드>를 시발점으로 조금 더 대본에 충실한, 해석적인 연출 작업을 향후 몇 년 동안은 하고 싶어요. 그 안에서 소수자들, 약자가 포인트가 되는 연극들을 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지금 구체화된 건 아니지만 저희 안에서 1순위로 정한 건 재일교포 정의신 선생님의 <겨울 선인장>인데요. 예전에 공연했던 팀들도 있지만. 그 작품이 성 소수자의 이야기잖아요. 저는 그 이야기를 화려하거나 성적인 느낌이 아니라 내가 하지 못하는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이고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풀어서 보여드리고 싶어요. <겨울 선인장>은 하반기에 추진할 계획입니다. 조금 더 인식이 변화될 수 있다면 계속 그런 작업들을 위주로 해볼 생각이에요.
김경주 : 향유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면 사람들은 복잡해지고 선택해야 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니까 가치의 문제를 빨리 설정하기 시작해요. 결국 문화라는 건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차이의 문화잖아요. 더 나아가서는 차이보다는 차원의 문제일 수 있고요. 방금 말씀하신 소수자의 얘기는 결국 우리 시선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그걸 가치로 봐 버리기 때문에 거기에 우월과 열등이 생기는 것인데. 그걸 차이로 보고 나아가서 그걸 하나의 차원으로 본다면 그 안에는 세계가 있고 조금 더 우리 안에 다양성이 열리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노력은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상상력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을 해봐야 될 지점인 것 같아요.
기획: 엄지혜 기자
정리: 임나리
* 극장뎐 줌 인(zoom in)- <아일랜드>
아톨푸가드의 원작 <아일랜드>는 故 넬슨만델라가 종신형을 받고 실제 복역했던 로벤섬감옥이 배경이다. 1974년 아톨푸가드, 존카니, 윈스턴앵초나 3인이 로멘섬감옥의 실제 경험들을 토대로 남아프리카의 비인간적 인종차별 문제를 고발한 작품. 단순히 흑백인종 문제를 넘어 인간 대 정치권력, 국가와 개인적 삶의 갈등을 신랄하게 드러내면서도 인간의 동경, 좌절, 고통과 슬픔을 서정적으로 그렸다. 2인극으로 펼쳐지는 서지혜 연출의 <아일랜드>는 최무인, 남동진 배우가 각각 ‘존’와 ‘윈스톤’으로 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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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극작가.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 작품을 올리며 극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야설작가, 대필작가, 카피라이터 등을 전전하다가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펴내면서 이 문단과 대중으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8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상, 2009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 문학 부문상, 2009년 제28회 김수영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독립영화사 '청춘'을 확장 개편한 무경계 문화펄프 연구소 '츄리닝바람'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인디문화를 제작하고 개발하며 공연기획들을 하였다. 최근에는 스튜디오 '나는 공항'에서 다양한 문화 작업과 실험극 운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