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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책 연출가 “살아있는 것은 좋은 거예요”

연극 <벽속의 요정> 연출가 손진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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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대사에도 나오지만 ‘살아있다는 것은 정말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 작품은 생명에 대한 찬가일 수도 있고 인간에 관한 찬가일 수도 있어요. ‘우리의 삶이란 것이 정말로 소중하다’. 내 삶이 중요하면 다른 사람의 삶도 같이 중요해야 되고요.

문화예술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인 김경주가 매월 공연 예술인을 만나 여러분께 소개해드립니다. 매달 12일 연재.


김성녀의 모노드라마 <벽속의 요정>이 오는 2월 16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벽속의 요정>은 후쿠다 요시유키의 원작으로 배삼식 극본, 손진책 연출로 올려진다. ‘김경주의 극장뎐’ 세 번째 주인공인 손진책은 한국 전통극의 방법과 정신을 현대적 맥락에서 부흥시키는 작업을 일관되게 추구해온, 명실상부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연출가다. 1976년 <한네의 승천>으로 대한민국연극상 신인연출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백상예술대상, 서울연극제 연극상, 이해랑연극상, 허규예술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손진책 연출가는 <벽속의 요정>을 두고 “인간과 삶을 지탱하는 것은 거창한 이데올로기나 사상이 아니라, 끊임없는 삶에 대한 긍정, 인간에 대한 사랑, 헌신이라는 것을 말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삶의 존재 가치를 방해하는 ‘벽’

김경주 : 형식적인 질문이지만 근황부터 이야기를 해 주시겠습니까?

손진책 : 요즘 잘 놀러 다녀요(웃음). 작년 말에 국립극단 그만두고 ‘이제 한가하게 좀 놀자’고 생각했어요. 혜화동에 개인 사무실을 냈어요. 요즘에는 사무실 정리하고, 놀러 다니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고요. 지금부터 뭔가를 해야죠.

김경주 : <벽속의 요정>이 2월 공연을 개막했는데요. 10년 동안 공연되어 온 작품인데, 모노드라마로써 긴 시간 동안 하나의 정통성이나 맥락을 가져오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모노드라마의 연출성이나 특징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손진책 : 짧게 말하기는 쉽지 않은 이야기인데요. 모노드라마는 사실 배우로서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거죠. 모노드라마를 해야 주목 받던 시대도 있었기 때문에 다들 욕심들을 내기도 했는데요. 조심스럽게 시작을 했어요. 혼자서 하기 때문에 모노드라마가 되어서는 안 되고, 혼자 하되 기본적인 연극 공식도 충분히 있어야 되고요. 혼자 하는 방백도 모노드라마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선 극성을 가지고 두 시간을 끌어가는 작품을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 중요하고, 두 시간 동안 관객과 정말로 진솔하게 소통할 수 있는 배우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연기력이라기보다는 소통 능력이 필요한 거죠. 관객들의 충분한 신뢰가 있어야 소통이 되기 때문에 신뢰 받을 수 있어야 하고요. 여러 가지를 갖춰야 된다고 생각해요.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원작의 이야기를 그대로 하기는 싫어서, 오랜 기간 배삼식 작가와 얘기해서 우리화 시켰어요. 배 작가가 작품을 잘 만들어줬어요. 그런 여러 가지가 갖춰져서 다행히 10년 동안 호응을 받는 작품이 되었어요. 운이 좋은 셈이죠.

김경주 : 말씀해 주신 것처럼 <벽속의 요정>은 배삼식 작가님께서 후쿠다 요시유키의 작품을 각색한 거죠.

손진책 : 후쿠다 요시유키 선생은 그 딸의 실화를 그대로 쓰셨고, 우리나라에서 공연할 때도 그렇게 하기를 바랐는데요. 저는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말했어요.

김경주 : 각색과 연출을 고민하실 때 원작과는 다르게 특별히 염두에 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손진책 : 저는 번역극 연극을 잘 못해요. 연극을 위한 연극은 못 만드는 체질인데요. 이 작품도 연극을 하기 위한 연극이 되지 않고 정말로 우리 정서나 심성에 맞는 연극, 관객과 밀착된 연극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한 연극을 만들기 위해선 첫째가 극본이고, 그래서 각색 과정이 굉장히 중요했어요. 한국 전쟁 또는 근대사 현대사를 통해서, 타의에 의한 여건으로 인해서 애비 노릇을 하지 못하는 남자와 그의 아내, 딸의 이야기가 잘 조절돼야 하는데, 그 부분이 어느 순간까지는 힘들었어요. 그것이 풀리고부터는 술술 진행이 됐는데요. 그런 과정을 맞추는 데에 초점을 뒀죠. 이 작품은 이데올로기나 어떤 사상의 문제를 얘기하자는 것이기보다는 인간과 삶을 지탱하는 것은 그런 거창한 이데올로기나 사상이 아니라, 끊임없는 삶에 대한 긍정, 인간에 대한 사랑, 헌신과 같은 것이고 바로 그것들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해보려고 노력한 거예요. 그런 면에서 배 작가가 잘 만들어줬다고 생각해요.

김경주 : <벽속의 요정>에서 벽이라는 것이 갖는 다양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손진책 : 벽이 갖고 있는 상징성은 김경주 시인이 더 잘 아실 거라고 생각되는데요(웃음). 같은 이미지라고 할 수 있죠. 벽이라는 것이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막는 것이기도 하고, 삶의 존재 가치를 방해하는 것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건 가족의 사랑, 헌신 등이라고 볼 수 있고요.

김경주 : 오랜 시간 동안 <벽속의 요정>을 작업해 오시면서 선생님의 연출선이랄까요? 그런 것도 변화했을 것 같습니다.

손진책 : 초연 때와 비교해서 하나도 바뀐 게 없어요. 초연 첫 회 공연하고 나서 바꾼 것 외에는. <벽속의 요정>은 각색 과정이 오래 걸렸고, 사실은 연습도 열흘 정도밖에 못 했어요. 공연 시간은 정해져 있었고 작품 만드는 데 시간을 다 보낸 거죠. 작품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얘기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첫 날 첫 회 공연하고 바꾼 뒤에는 지금까지 10년 동안 그대로 공연하고 있어요.

김경주 : 드문 경우가 아닌가요?

손진책 : 저도 많이 수정하는 연출가인데... 이 작품은 초연 때와 달라진 게 없어요.

김경주 : <벽속의 요정>은 뮤지컬이라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도 하는데요. 이 작품에서 음악의 필요성이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손진책 : 연극, 화극, 이런 구별을 안 하는 편이에요. 한국의 독자적인 현대 연극 기호를 만드는 것이 전통적인 연극 기법 속에서 된다고 생각했고요. 그것이 제가 평생 해 온 작업이에요. 우리 연극이란 것이 가무극이 일체가 된 것이지, 말 중심의 연극은 이미 서양 중심의 연극이었단 말이죠. 그래서 저는 말과 연기와 춤을 별도로 구별을 안 했고, 제가 연출한 작품의 거의 대부분이 그것들을 담아냈어요. 마당놀이를 통해서도 그랬고요. 음악극과 연극에 차이를 두고 연출 흐름에 변화를 주지는 않았어요. 극 속에서 음악이나 춤도 녹아나야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부터 노래, 지금부터 춤, 지금부터 연기, 이런 식의 구분은 굉장히 서툰 음악극 또는 뮤지컬적 기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요즘은 제가 뮤지컬을 지루해서 잘 못 보는데요, 이미 다 얘기해서 알고 있는 걸 다시 되풀이해서 노래를 부르거든요. 그런 우는 범하지 말아야죠. 연극은 연극대로, 춤으로써, 음악으로써, 시너지를 가지고 극이 더 나아가야지 ‘지금부터 노래하기 때문에 연극은 멈춘다’거나 ‘노래가 끝났으니 연극을 시작한다’는 식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캐릭터나 상황이 녹아 들어가게 사전에 작곡가와 충분히 얘기하기는 하지요.




욕망의 시대 속에서 연극이란 것이 어떤 호흡을 줄 것인가

김경주 : 극단 '미추'에서 굉장히 오랫동안 작업을 해 오셨는데요. 요즘의 뮤지컬 문화랄까요? 한국의 소극장 문화의 확장일 수도 있고 뮤지컬로 이루어진 하나의 새로운 문화일 수도 있고, 뮤지컬을 바라보는 선생님만의 시선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손진책 : 아까 얘기한 것처럼, 저는 ‘가무극의 일치’가 우리 연극이라는 관점으로 연출을 해 왔기 때문에 뮤지컬이다, 음악극이다, 라는 구분을 하지 않았어요. <한네의 승천>도 뮤지컬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싫어서 음악극이라고 했어요. 뮤지컬이라고 하면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같은 개념에 의미를 두는 것 같잖아요. 뮤지컬도 많이 연출했죠. 예를 들면 스포츠 조선의 ‘뮤지컬 보기 운동’의 첫 회 작품이었던 <영웅 만들기>도 뮤지컬이고요. 하지만 저는 그것을 연극의 연장으로 작업했지, 지금 개념의 뮤지컬은 아니었어요. 지금은 뮤지컬이 완전히 상업적인 베이스에 엔터테인먼트로만 가고 경제적인 성과가 우선이기 때문에, 뮤지컬이 굉장히 나 자신과 사회를 소비시킨다는 생각이 들어서 잘 안 보기도 하고요. 좀 지루하기도 해요. 관객에게 엔터테인먼트적인 재미를 주려면 기교를 위한 기교를 만들게 되잖아요. 그런 것들이 제 체질과는 안 맞아서 뮤지컬 시대에 조금 뒤처졌다고 해야 할까요(웃음).

김경주 : 연극만의 고유성을 살리자는 노력이 여기 저기에서 보여지고 있습니다. 요즘 드라마의 특징들을 보면,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보니까 관객에게 침묵할 수 있는 시간들을 만드는 걸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대신 그 부분을 쇼로 채운다거나 스토리텔링의 탄력으로 채우는데요. 그런 점에서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극의 고유성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자세랄까? 연극을 하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손진책 : 연극이라는 것이 템포나 리듬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장르인데, 꼭 대사나 동작이 있다고 템포나 리듬이 생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한국의 여백의 미 같은 건데요. 이제는 비워두기 보다는 채우지 못해서 안달하는 시대가 됐잖아요. 제가 <3월의 눈>을 연출하면서 ‘이건 젊은 관객들이 참 좋아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젊은 관객들이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잘못 읽고 있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극 성격에 따라서 여러 가지 호흡이나 템포의 장단도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의 너무 스피디한 세태에 연극인들이 그걸 따라가려고 너무 조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그럴수록 연극하는 사람들이 호흡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예술이고 창작의 역할이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어요.

김경주 : 변화를 느끼시는 건가요?

손진책 : 어제도 노다 히데키라는 일본 연출가와 대담을 하면서 했던 이야기인데요, 시대 자체가 굉장히 달라지고 있어요. 이제는 과정의 진실성보다는 성과의 효율성이 더 우선되잖아요. 의미보다는 이미지, 정신보다는 육체, 가치보다는 욕망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에서 연극을 교조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뒤처지는 건가? 아니면 그것을 끝까지 붙잡아야 하는 건가?, 우리가 이 시점에서 어떤 연극을 해야 될까?, 문명사적인 변화가 있는 상태인데 이 시대에 호흡을 어디에 어떻게 맞추고 어떤 연극을 해야 될 것인가?, 이건 우리가 다시 고민을 해봐야 될 때가 아닌가?,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욕망의 시대 속에서 연극이란 것이 어떤 호흡을 줄 것인가’를 굉장히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해요.




연극을 하려면, 본질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김경주 : 문학이나 다른 분야에 있어서도 그런 질문을 던져야 될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연극뿐만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들이 속도를 중요시하고, 답을 찾아주는 방식으로 가고 있으니까요. 연극만이 줄 수 있는 질문들이 있고, 그것이 관객들이 그리워하고 있는 부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손진책 : 연극이 재미는 있어야죠. 강연은 아니니까요. 저는 쉽고 재미있는 연극이 제일 좋은 연극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자본이라는 단어의 중압감 아래에서 만드는 것과 삶이나 인간사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만든 것과는 조금 차이가 많을 거라는 거죠. 점점 본질에 대해서 물고 늘어지려 하기 보다는 표피적이고 감각적인 것으로 흘러가고 빨려가는 것 같아요. 세대가 그러한데 그것을 탓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도 있지만 젊은 작가나 연출자들이 그런 것에 너무 익숙해져 가는 게 아닌가, 자기도 모르게 따라서 휩쓸려가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조금 들어요.

김경주 : 사실 지원금 제도라는 게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었고, 많은 젊은 연극인들은 지원금을 사냥하기 위해서 적지 않는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생력을 길러준다거나 항생제 역할을 한다기보다는 지원금이라는 링거 역할이 빠져버리면 스스로 버틸 수 있는 힘이 사라져버리는 역기능에 대한 우려도 많습니다.

손진책 : 지원 제도의 정책이나 현황을 봤을 때 지금 시점이 제일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확실히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그렇고요. 하지만 좋아지다 보니까 역반응도 하나 생기는 것 같은데 예를 들어 예전엔 집을 팔고 가진 재산을 다 처분해가면서까지 연극을 올리곤 했던 어떤 의지가 있었어요. 요즘은 그런 헝그리 정신이 많이 사라지면서 이제는 갓 데뷔하는 사람도 지원 안 받으면 안 하고(웃음). 지원이 없으면 안 만들겠다는 식으로 나오죠. 그런걸 보면 지원제도가 분명 한 쪽 부분을 퇴화시키는 것 같은 역기능을 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 부분은 조금 안타깝죠. 사실 지원이 있으면 좋기는 하겠지만, 젊은 친구들에게는 그게 필요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우리가 휴대폰이 필요하지만 핸드폰 때문에 두뇌가 점점 퇴화되잖아요. 이제는 우리집 전화번호도 잘 기억이 안 나는데(웃음). 지원도 그런 기능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제가 항상 주장하는 건 지원 제도는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후 지원을 하라는 거죠. ‘잘 만들면 준다’고 하면 본전을 건지기 위해서라도 잘 만들 것 아니겠어요? ‘연극은 잘 만들면 일단 보상은 받는다’ 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것만큼 이상의 좋은 문화 정책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연출이 데뷔하는 데에도 제작비를 대주는 나라가 어디 있어요? 세상 어디에도 없죠. 그런 걸 봤을 때 ‘잘 만들면 지원금을 준다’는 식으로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인간에 대한 서로의 신뢰’ 속에서 만들어지는 연극

김경주 : 극단 ‘미추’를 이끌어 오면서 선생님만이 생각하신 연출의 각성이랄까, 그런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손진책 : 특별히 연출의 기법이 있다기보다는, 저는 연극의 기본은 관객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만남을 통한 소통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다면 어떻게 만날 것인가 고민을 하게 되는데 정말 마음을 갖고 만나는 거죠. 온기가 통하게 호응하는 거고요. ‘어떻게 만날 것인가’라는 고민은 ‘어떤 작품을 해야 될 것인가’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죠. 저는 연극을 인간학이라고 얘기하는데요. 인간에 대한 사랑을 예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연극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손진책 : 연극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인간에 대한 서로의 신뢰’ 속에서 연극이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기술은 그 뒤에 따라야 할 것이에요. 제 마음이 동하지 않는 작품은 연출하지 못하겠어요. 특히 번역극 같은 경우가 그렇죠. <죽음과 소녀>는 번역극이지만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고 우리 현실의 이야기라고 생각되잖아요 심지어 예전에 셰익스피어의 <태풍>를 연출하려고 했는데, 마음이 동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고쳤어요(웃음). 항구 노숙자들의 집합소에서 만드는 연극으로요. 제가 자꾸 가짜를, 마음에 안 오는 걸 만들고 있는 거예요. 할 수 없이 그런 식으로라도 번안을 하게 되는데요. 결국은 내가 역할이나 작중 인물과 진솔하게 만날 수 있어야 관객이 만나는 거죠. 내가 만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 인물이 관객을 제대로 만나겠어요. 그런 부분이 제 연출의 기본 바탕이었던 것 같고요.

김경주 : 형식 면에서는요?

손진책 : 제 연극의 기본 정신을 ‘마당 정신’이라고 얘기해요. 많은 사람들이 마당은 멍석 펴고 북 치고 장구 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제가 생각하는 마당은 두 발을 디디고 있는 여기거든요. 공간적으로는 ‘여기’이고 시간적으로는 ‘지금’이고 정신적으로는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것’이죠. ‘지금 여기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것’이 마당 정신이에요. 그것이 제 연극의 기본 정신이고, 극단 ‘미추’의 연극 정신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서구적인 관점이 아니라 우리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연극을 만드는 것, 즉 ‘우리가 선조에게 물려받은 연극 유산들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무대화할 것인가’ 와 집합시키고 조화시키는 것이 제 작품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볼 수도 있죠.

김경주 : 관객들이 <벽속의 요정>을 어떻게 보면 좋을까요?

손진책 : 작품의 대사에도 나오지만 ‘살아있다는 것은 정말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 작품은 생명에 대한 찬가일 수도 있고 인간에 관한 찬가일 수도 있어요. ‘우리의 삶이란 것이 정말로 소중하다’. 내 삶이 중요하면 다른 사람의 삶도 같이 중요해야 되고요. ‘삶이라는 것이 정말 소중하고 참 보석처럼 빛나는 거구나’ 라는 것을 함께 느꼈으면 합니다. 가족애 같은 것들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기획: 엄지혜 기자
정리: 임나리


* 극장뎐 줌 인(zoom in)-<벽속의 요정>

<벽속의 요정>은 ‘올해의 연극 베스트3(2005년)’, ‘죽기 전에 봐야 할 공연 베스트 10(2011년)’에 선정되며 초연 때부터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다. 특히 한국을 대표하는 연출가 손진책의 절제미가 뛰어난 연출, 박동우(무대), 김창기(조명) 등 최고 무대 예술가들의 노련미가 돋보이는 무대로 20대는 물론 40,50대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초월하는 웃음과 눈물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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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경주

시인이자 극작가.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 작품을 올리며 극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야설작가, 대필작가, 카피라이터 등을 전전하다가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펴내면서 이 문단과 대중으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8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상, 2009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 문학 부문상, 2009년 제28회 김수영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독립영화사 '청춘'을 확장 개편한 무경계 문화펄프 연구소 '츄리닝바람'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인디문화를 제작하고 개발하며 공연기획들을 하였다. 최근에는 스튜디오 '나는 공항'에서 다양한 문화 작업과 실험극 운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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