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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결혼식, 우리와 달랐다

갈비탕이냐, 스테이크냐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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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사랑받고 자라온 과정을, 선택한 남자를, 하객들에게 전하는 감사의 마음을 아주 잘 알게 됐다. 새 가정의 탄생에 오랜만에 진심을 담은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하객의 마음가짐

 

“내 결혼식에 와 줄 수 있어?”

 

도쿄에서 보내온 메시지는 시간의 흐름을 명백히 알리고 있었다. 6년 전 같은 기숙사에 살던 일본인 친구 J였다. 취식이 금지된 좁은 방에서 요령껏 오코노미야키를 뒤집어 마요네즈와 가다랑어포를 듬뿍 얹어주던 그 아이. 헐렁한 농구 유니폼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던 친구. 왠지 결혼과는 어울리지 않는 잔상을 주는 축에 속했다. 몇 년 전 한국에 놀러 왔을 적에는 우리 집에서 3박 4일을 지내기도 했다. 마지막 날 공항 버스 정류장에서 우리 엄마를 붙잡고 울음으로 작별 인사를 대신했던 J. 그날 엄마가 해준 비빔 국수가 맵긴 했다. 이놈의 정(情)이 뭔지, 가벼운 지갑을 열고 도쿄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결혼식에 가겠단 답장을 보내고 일주일 뒤, 청첩장이 왔다. 정성스레 봉인한 봉투를 열자 초대장, 입장권, 회신용 엽서와 함께 자필로 쓴 친구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한 달 전까지 참석 여부를 적어 다시 회신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 관습에 따라 천으로 된 축의금 전용 봉투를 준비했다. 금박 장식이 달린 푸른색으로 골랐다. J가 즐겨 입었던 형형색색 농구 유니폼과는 전혀 다른 색감이었다. 그리고 3만엔. 대학 시절 한 달 용돈보다 많고, 서울 살 때 내던 아파트 관리비, 삿포로 집 월세의 반값. 그게 일본 결혼식 축의금의 최소 금액임을 알게 된 건, ‘참석’ 칸에 겁 없이 동그라미를 그려 넣은 뒤였다. 게다가 엽서는 이미 하늘을 날고 있었다.

 

홋카이도를 벗어나 대도시에 발을 들여 놓는 건 반년 만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마천루와 바쁜 걸음의 세상을 못 본 지 오래였다. 속도와 효율성의 공백기랄까. 여유로운 시간은 역설적으로 ‘도시’란 단어만 상상해도 설레는 기분을 줬다. 손톱 위에 반짝이는 매니큐어도 얹었다. 외국에서의 결혼식도 처음인지라 들뜬 기분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도쿄의 결혼식 하객이 되는 건 이렇게나 두근대는 일이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결혼식 하객이 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 내가 준비한 것: 축의금과 축하 카드, 선물할 홋카이도 기념품, 7cm 하이힐, 먼지 털어낸 원피스, 그물 무늬 검정 스타킹, 여분 스타킹, 왕복 항공권 등.

- 신부(친구)가 준비한 것: 호텔 1박 숙박권(조식 포함), 장거리 이동을 고려한 소정의 차비, 기타 결혼식을 위한 모든 제반 사항.

 

 

꼬박 하루 동안의 결혼식

 

훗카이도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팸플릿을 받아 들었다. 손님은 100명이 채 안 됐다. 각자 배정된 자리로 안내받았다. 포크, 나이프, 냅킨, 와인 잔이 정갈하게 놓인 테이블 위엔 내 이름이 적힌 메뉴가 놓여있었다. 못 먹는 음식이나 알레르기 등을 사전에 알아 둔 배려였다. 기다리는 동안 팸플릿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신상품 홍보 책자처럼 신랑 신부에 대해 읽기 쉽게 정리돼 있었다. 가족관계와 성장 과정은 물론 첫 만남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목요연했다. 특이했던 건 좌석배치도였다. 하객들 이름 밑에는 신랑 신부와 어떤 인연인지도 쓰여 있었다. 일본 결혼식에선 가장 중요한 사람이 가운데 앞자리부터 앉는다고 한다. 보통은 회사 상사부터 친한 친구 순이다. 자리 배치 때문에 나중에 하객과의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과연 신경 쓴 게 티가 났다.

 

이런 꼼꼼한 사전 준비도 J와는 어울리지 않는데, 정말 고생했겠구나 싶었다. 잔뜩 긴장한 신랑과 발갛게 볼이 부푼 신부가 입장했다. 천천히 음식을 즐기며 결혼식은 세 시간 동안 이어졌다. 주례는 없고 사회자가 진행했다. 가까운 지인이 한 명씩 나와 축하의 말을 전하고, 동아리 친구들이 축하 무대를 펼쳤다. 양가 부모님이 따라주는 술을 받으며 덕담도 나눴다. 부모님께 전하는 편지를 읽으며 J는 몇 번 울먹였고, 신랑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콕콕 닦아주었으며, 오랜 친구들도 함께 눈물 흘렸다. 본식이 끝나고 피로연이 이어졌다. 신랑 신부의 친구들이 모여 저녁 늦게까지 파티를 했다. 누군가의 결혼식에 온전히 하루를 다 쓴 건 처음이었다.

 

J는 이날 웨딩드레스와 기모노, 피로연 드레스를 통틀어 네 번 옷을 갈아입었다. 오코노미야키와 맥주, 농구 유니폼 뒤에 가려졌던 J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다. 그 느낌은 비단 드레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사랑받고 자라온 과정을, 선택한 남자를, 하객들에게 전하는 감사의 마음을 아주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신랑 신부는 아름다운 주인공이 되었다. 부부의 탄생에 진심을 담은 축하의 박수를 보낸 건 참 오랜만이었다. 한국에서처럼 다른 결혼식과 시간이 겹쳐 주례사 도중에 헐레벌떡 뛰어온 누군가도 없었다. 하객석에 앉은 우리들은 항상 비슷한 질문을 했던 것 같다. “오늘 갈비탕이야, 스테이크야?”

 

 

훗카이도

 

 

인생의 새로운 시작,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일본 결혼식에선 축의금도 많이 내지만, 그만큼 많이 돌려받는다. ‘히키다시모노’라고 하는 답례품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다. 특별 주문한 빵, 쿠키와 함께 홈쇼핑 카탈로그같이 생긴 걸 받았다. 펼쳐 보니 액세서리, 주방용품, 식사권, 아웃도어 용품, 애완용품 등 없는 게 없었다. 원하는 걸 골라 인터넷이나 전화로 신청하면 답례품이 배달된다고 했다.우리나라 못지 않게 일본 결혼식에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넷 중 한 쌍은 혼인 신고만으로 대신한다는 통계도 있다. 얼마 전 SNS를 통해 특별한 결혼식을 올린 한국의 한 커플을 접했다. 형식은 생략하고, 어린 시절부터 결혼까지의 모습을 담은 사진전을 열었다. 어떤 사랑을 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하객들은 부부의 시작과 가족의 확장을 천천히 지켜보았을 것이다. 어떤 화려한 결혼식보다 특별했다. 혼인신고만 하더라도 소중한 인연들로부터 진심 어린 축하를 받을 수 있는 날이 진짜 결혼식 아닐까.

 

훗카이도

 

예부터 결혼식은 마을의 잔치이며 두 가족의 가장 특별한 날이었다. 그 날은 인생의 동반자를 맞이하는 새로운 시작점이기도 하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을 가늠하는 자리가 아니다. 하객들이 궁금해야 하는 건 점심 메뉴와 신랑 신부가 얼마나 많은 친구를 두었는지도 아니다. 인생의 단 한 번인 그 날을 폭풍 휘몰아치듯 보내는 우리네 결혼식을 다시 생각해 본다. 비디오를 보고 나서 야 누가 내 결혼식에 왔는지 확인할 수 있는 건 애처로운 현실이다. 축의금 내림차순으로 이름을 정렬해 인간관계를 정리 정돈한다고 해도 거짓말은 아니다. 해 본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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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송인희

홋카이도의 매력에 흠뻑 빠져 삿포로에서 살고 있다.
새로운 언어와 문화, 일상을 여행한다.
먹고 마시는 것과 사소한 순간을 좋아하며, 종종 글자를 읽고 쓴다.
song_soo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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