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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세상을 병들게 하다

카오스, 판데믹 그리고 감기 - 영화 <감기. The flu,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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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데믹도 마찬가지다. 아주 미미한 시작이 큰 결과로 이어진 경우다. 책 『X 이벤트』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질병의 억제와 급속한 확산 사이의 경계에는 가느다란 연결고리가 있으며, ‘나비 효과’의 사례다.” 작은 것이 세상을 바꾸는 법이다.

홍콩에서 평택항을 거쳐 분당에 컨테이너가 도착했다. 컨테이너에 실린 화물은 사람이었다, 그들은 밀입국자들이었다. 이 컨테이너를 접수하기 위해 열었으나. 사람들이 모두 죽어있었다. 아니, 다 죽은 줄로 알았으나 단 한 명이 살아있었다. 문제는 컨테이너를 연 사람에게서 일어난다. 그는 기침을 시작한다. 컨테이너에서 죽은 사람들이 걸린 병원균에 감염된다. 감기였다. 영화  <감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감기.jpg

영화 <감기>포스터, 119구조대원 지구(장혁), 의사 인해(수애)

 인해의 사진 아래가 그녀의 딸 미르(박민하)다. 어린아이 미르의 연기는 최고였다

 


감기, 그 무서운 질병

 

1차 대전이 끝난 후 유럽 전역에서 유행한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무려 일 억 명으로 추산된다. 불과 6개월 만에 엄청난 수의 사람이 사망한 사건이었다. 스페인 독감의 치사율은 20퍼센트 정도로 알려졌으니 상당히 치명적인 질병이다. 그러나 조류독감(H5N1)의 치사율은 무려 60퍼센트에 달한다. 그러나 다행인 점은 전염성이 약하다는 데에 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치사율도 높고 전염성도 아주 강한 감기가 전염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돼지독감이라는 이름을 가진 H1N1은 치사율은 1퍼센트에 불과하나 전염성은 아주 강하다. 영화와 같은 치사율과 전염율을 높은 병원균이 생길 가능성도 충분히 힜다. 돼지독감 바이러스와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인체에 들어와 둘이 유전자 조합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최악의 바이러스가 생길 수도 있다. 영화에서의 상황은 이런 최악의 바이러스가 유행한 경우라고 말할 수 있다.

 

 

나비의 날갯짓


‘아마존에 있는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텍사스에 허리케인을 불러온다’라는 말로 유명한 ‘나비효과’는 기후를 예측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는 기후예측 모델을 통해서 아주 미미한 변수가 나중에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발견했다. 1961년 로렌츠는 기상예측을 위해 0.506127을 입력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는 소수점 3자리만 입력해도 별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해 0.506만 입력해 넣었다. 1,000분의 1차이는 무시해도 될 만큼 미미한 숫자라고 보았고, 기상예측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엄청났다. 1000분의 1차이에 불과할 정도의 미미한 날갯짓이 허리케인이 되어버린 셈이다. ‘나비’라는 용어가 나온 이유는 연구결과 도출된 수치를 컴퓨터 화면에 표시하고 보니 그 모양이 나비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로렌츠는 1963년 「결정론적 비주기적 흐름」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한 의존성’이란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오늘날 ‘나비효과’라 불리는 이론을 세움으로써 카오스 이론의 바탕을 이루었다. 과학자들은 카오스 이론을 통해, 과거에는 예측 불가능한 현상, 요컨대 언뜻 보아서는 불규칙하고 무질서해 보였던 현상 속에 사실은 정연한 질서와 규칙이 있음을 알아내게 된다. 카오스 이론은 기후뿐만 아니라 경제학이나 생물학 등 다른 학문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물론 질병의 전염에 대해서도 카오스 이론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나비.jpg

기상예측 모델에서 나온 수치를 표시하니 나비와 비슷한 모양이 되었다

 

판데믹(pandemic)


판데믹은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두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말로 세계보건기구의 전염병 경보 단계에서최고 위험등급인 6등급에 해당한다. 영화 <감기>에서 보건을 담당하고 있는 의사는 ‘판데믹’이라고 말한다. 판데믹은 항상 동물의 병원균이 인간에게 전이될 때 시작된다. 물론 동물에게서 인간에게 감염이 되고 이로 끝이 난다면 해당 감염자가 사망하는 수준에서 막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질병이 다른 사람에게로 전염이 된다면 이는 다른 얘기가 된다. 광견병의 경우 치사율은 거의 100퍼센트지만, 이는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는다.

 

국제법에 따르면 질병의 확산을 막을 다른 모든 조치들이 실패할 경우 강압적인 감금이 허용된다고 한다. 소설 『눈먼 자 들의 도시』에서도 감염자들을 강제수용소에 수용하거나, 정유정의 소설『28』에는 해당 도시를 폐쇄하는 장면도 나온다. 영화 <감기>도 분당을 아예 폐쇄시킨다. 그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감기로 사망한 시신을 불태우는 장면이 나온다. 조류독감에 걸린 닭을 땅에 파묻는 것도 아니고 시신을 이렇게 다루어도 좋은지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했다.

 

감기2.jpg

감기에 걸려 죽은 사람을 태우는 장면

 

 

감기3.jpg

감기에 걸린 사람들이 해당 지역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고, 저격병까지 배치해 놓았다

 

 

에이즈 바이러스(HIV) - 판데믹


후천성 면역결핍증이라고 하는 에이즈도 판데믹이다. 이 바이러스는 중앙아프리카에서 침팬지가 붉은콜로부스 원숭이를 사냥하면서 시작된다. 제인 구달의 현장 연구에서 처음 알려진 바와 같이 침팬지는 사냥을 하고, 육식을 한다. 붉은콜로부스 원숭이는 침팬지가 아주 좋아하는 먹잇감이다.

 

붉은콜로부스 원숭이를 사냥한 침팬지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것이고, 이런 침팬지가 인간이 접촉하면서 인간에게 전염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인간이 침팬지를 사냥하는 과정에서 침팬지의 피가 인간에게 묻어서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것이다. 에이즈는 이렇듯 한 사람의 감염에서 미미하게 시작되었다. 1981년 이후 에이즈로 사망한 사람은 전세계적으로 2500만 명에 달한다.

 

판데믹으로 다 죽지는 않는다

 

치사율이 100퍼센트인 전염병은 없다. 누군가 살아남게 마련이다. 영화에서도 주인공들은 살아남는다. 사실 질병에 대한 내성은 사람마다 다르다. 전염병에 아주 예민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염병이 돌아도 병에 전혀 걸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필자가 군대 생활 당시 부대 내에 눈병이 유행했다. 눈병의 전염률은 상당히 높다. 게다가 군대의 내무실은 많은 사람이 같이 있기에 전염의 속도는 엄청나다. 그래서 눈병이 걸리면 치료하고 오라고 집으로 보내준다. 군대생활 당시 얼마나 집에 가고 싶겠는가. 그럼에도 필자의 눈은 멀쩡했다. 눈병에 걸려 휴가를 간 동료의 베개와 침구류로 내 눈을 문질렀지만, 내 뜻을 이룰 수 없었다. 동료들이 휴가를 다녀오는 사이 필자는 그냥 부대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서도 수애의 딸 미르는 감기 바이러스에 대항할 수 있는 ‘항체’가 생긴다. 이 꼬마가 이 질병을 이겨냈다는 것이다. 전염병에 최초로 걸려 이를 퍼뜨리는 사람을 ‘수퍼 확산자’라 부른다. 이 영화에서는 컨테이너의 문을 처음 연 사람이다. 영화에서는 미르의 항체를 통해서 백신을 제조해 사람들을 구해낸다. 작은 꼬마가 세상을 살린 셈이다.

판데믹도 마찬가지다. 아주 미미한 시작이 큰 결과로 이어진 경우다. 책 『X 이벤트』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질병의 억제와 급속한 확산 사이의 경계에는 가느다란 연결고리가 있으며, ‘나비 효과’의 사례다.” 작은 것이 세상을 바꾸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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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동환 <친절한 과학책> 저자

북칼럼니스트. 1년에 100권 이상, 10년 넘게 읽었다. 새로운 사실을 알아나가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멈출 수가 없었다. 과학을 알면서 인문학과 문학을 바라보는 눈이 더욱 깊어졌다. 어느새 사람들은 그를 ‘과학 전문 북 칼럼니스트’라고 부르고 있었다. 2010년부터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예 책을 소개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 EBS, KBS, YTN 등의 책 관련 프로그램과 코너에 고정 출연하기 시작했다. 북 콘서트의 진행자로 무대에도 여러 번 섰다. 대학교와 도서관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했다. 그로서는 전혀 계획해 본 적 없는 새로운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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