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 “나는 글 쓰는 사람, 인기는 실체 없는 것”
『개포동 김갑수 씨의 사정』펴낸 허지웅 글 쓰는 남자의 ‘성인을 위한 이솝우화’
따지고 보면 모든 사람의 이야기는 관계의 이야기다.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관계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 시작과 끝은 대개 ‘남녀상열지사’가 숨어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남과 여’ 사이에 벌어지는 사람의 이야기는 인간사와 함께 시작됐고, 오늘날도 쉼 없이 이어지고 있다. 『개포동 김갑수 씨의 사정』은 그런 이야기 속에서 의외의 교훈을 찾게 하는, 성인을 위한 이솝우화라 할 수 있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언급된 ‘남녀 관계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차(車) 떼고 포(包) 떼고 졸(卒) 밖에 안남은 장기판이 된다. “갑돌이와 갑순이가 만나서 사랑을 했지만, 끝내 인연은 이어지지 못하고 헤어져버렸다”는 식으로, 이를테면 ‘수박 겉핥기 식’의 단순한 동화가 된다는 것이다. 남녀상열지사의 진짜 이야기, 그 은밀한 속사정을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것은 터부시되거나 눙치며 넘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나 어떻게 낳았어”라고 물었을 때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라고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사실 “따지고 보면 거짓말도 아니라”는 의미를 이해하게 됐을 때,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녀 관계의 이야기’에 대한 사회의 암묵적인 합의에 동조해 버린 상태가 된다.『개포동 김갑수 씨의 사정』은 그런 암묵적 합의를 통쾌하게 파기했다.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것이 돼 버린 남녀 관계의 이야기 이면에 숨겨진 질펀하고 아름답지 않은 연애사의 속살을 공개한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소설의 저자가 <마녀사냥>의 허지웅이란 사실이다.
허지웅의 직설화법은 오래전부터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 그의 화법을 싫어하는 부류들은 TV 화면에 그가 등장함과 동시에 채널을 바꿀 정도의 비호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동감하는 부류는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어찌 됐든, 최근 들어 그의 위상은 예전에 비해 완연히 달라져 있다. 그의 직설화법이 꽤 많은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고 있다는 의미다. 호감어린 시선을 보내는 대중의 비중을 보면 여성들이 더 많다. 대다수의 남성들에게 질투를 유발할 찬사지만, 최근에는 ‘섹시하다’라는 평가(?)까지 더해지고 있다. 그런 반응조차 “셀럽에 대한 호기심” 정도로 치부하는 이 남자, 참 시니컬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묘한 믿음도 뒤 따라 온다. ‘마음에 없는 소리는 안할 거라는 믿음’이다. 조심스레 점쳐보건대, 『개포동 김갑수 씨의 사정』을 읽게 된다면, 허지웅를 비호감이라 생각하던 사람도 조금은 그를 달리 보게 되지 않을까? 수위 높은 직설화법 대가의 첫 소설, 그 행간에 담긴 생각들을 들어보았다.
나는 글 쓰는 사람, 인기는 실체 없는 것
오늘날 거의 모든 성공은 노력이 아닌 운으로, 혹은 타인의 연민으로 가능해집니다. 혹은 『1984』의 거짓 전쟁처럼 미디어를 통해 가짜 성공과 신분 상승이 ‘선전’됩니다. 그나마 오래 지속되지도 않습니다. 운은 일시적이고, 연민은 매우 빠른 시간 내에 휘발되기 때문입니다.
- 『개포동 김갑수 씨의 사정』 작가의 말 中
허지웅은 온 몸으로 시니컬함을 뿜어내는 사람이다. 무표정 속에 뭔가 알 수 없는 생각들이 스쳐가는 듯하다. 방송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하기야, 방송이란 것이 원래 정해진 모습, 제한적인 이미지만이 어필되는 곳이니 그 사람의 일상적인 모습은 알리 만무하다. 아무튼, 그는 요즘 최고의 셀러브리티로 주목받고 있다. 2005년 영화주간지 <필름 2.0>기자로 시작해 <프리미어>, 월간지 <GQ>를 거친 그는 영화비평 분야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하게 구축했다. 정치적인 발언도 거리낌 없이 해 온 터라, 그 자신은 어떨지 몰라도 세간에는 진보적인 논객으로 분류돼 있기도 하다. 사안에 따라 피아(彼我)가 없고 직설적인 생각을 이야기하는 탓에, 종종 진보 쪽에서도 지탄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는 자신의 정체성이 담긴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만들어 온 셈이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그가 방송에 등장한 뒤 얻게 된 인기는 수많은 ‘안티팬’의 교화에 성공한 덕분이 아닐까? 어쨌든 방송을 통해 그는 꽤 멋지고 좋은 면을 보여주고 있다.
방송을 통해 꽤 매력적인 남성으로 부각되고 있다. 얼마 전 북콘서트도 했다고 들었는데, ‘90%가 여자들이었다’는 어떤 남성참가자의 질투어린 블로그 글도 봤다. 최근 인기의 비결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원래 내 글을 좋아한 사람도 있을 거고 아니면 이 책을 보고 좋아서 온 사람도 있을 거고, 아니면 방송을 보고 셀럽에 대한 호기심이나 궁금증으로 온 사람도 있을 듯하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내 책을 사가지고 오신 분들이니 고맙지. 하지만 내가 지금 얻고 있는 소위 인기라는 것은 사실 실체가 없는 것이다. 허상 같은 것?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커지다보니 끊임없이 새로운 피가 수혈이 돼야했던 것뿐이다. 실질적으로 내가 그에 걸맞은 깜냥이 있어서 스타라거나 대세라거나 그런 류는 아니지 않나? 그래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하지만 대중적 인지도가 생기고 나서 실제 ‘허지웅’이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진짜 모습과 다른 이미지로 부각되기도 할 텐데, 방송 이후 주어진 이미지 중 마음에 드는 것, 혹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나?
호불호를 따질건 아닌 것 같다. 일반적인 공중파 예능하고 다르게 <썰전>이나 <마녀사냥>에서 보여주는 ‘나’는 그냥 ‘나’다. 그럴 수 있는 프로라서, 그렇게 하도록 해주는 제작진이라서 같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뭐라던 상관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나라는 존재에 대해 ‘섹시하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생각한다는 건 불가능하지 않나? 그런 건 정말 개별적인 취향이다. 그래서 요즘 내가 소위 ‘섹시의 아이콘’으로 언급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산업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요즘은 허지웅이란 사람의 모습을 방송에서 보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썰전>이나 <마녀사냥> 등은 굉장히 유쾌하게 참여하고 있는 듯하다.
맞다. 순전히 제작진들이 좋아서 하고 있다. 그 외에는 다른 이유는 없다. 제작진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같이 하고 있다는 기쁨?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지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앞의 사람들 때문에 기회를 얻지 못하는 젊은 세대가 많다. 방송 쪽은 특히나 그런데, 20년 전 스타피디가 아직도 스타피디일 정도다. 하지만 지금 나와 같이 하고 있는 스텝 친구들은 딱 79~80년 생, 내 또래다. 그들이 억눌려왔던 자기 재능을 터뜨리고 있는데 같이 하고 있다는 기쁨과 설렘이 크다. 사실 방송 출연은 그 친구들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못하는 일이다.
책 표지에 ‘마성의 그 남자’, ‘섹시한 글쟁이’라 칭한 것이 눈에 띈다. 좀 의아했다. 방금 전에도 스스로 부정하긴 했지만, 고백하자면 ‘허지웅이 이런 식의 수식어를 즐겼나?’하는 생각을 했다.
(쓴 웃음) 아~ 정말, 띠지(책의 겉면을 두른 종이) 사진과 글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있다.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해서 하긴 했는데, 참 마음에 안 든다. 마치 파멜라 앤더슨과 같은 느낌이다. 동물원 우리에 갇혀 전시되는 느낌? 그런 느낌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다행히 다음 쇄부터는 이 사진이 없어진다. 그나마 다행이다.
5년만의 책, 그리고 첫 소설의 의미
『개포동 김갑수 씨의 사정』은 그의 첫 소설이다. 이미 3년 전부터 써왔다는데, 무슨 이유인지 최근에야 탈고를 마쳤다. 요즘 방송인으로 더 부각되고 있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글 쓰는 사람이다. 지금도 영화비평은 계속하고 있고, 앞으로도 ‘글 쓰는 허지웅’으로 살고자 한다. 특히나 소설을 향한 욕심은 아직 넘치는 듯하다. 각설하고 『개포동 김갑수 씨의 사정』은 소설 속의 ‘허지웅’이 가끔 술자리에서 마주치는 ‘개포동 김갑수 씨’에게 듣는 실패한 연애담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른을 위한 이솝우화’이기도 하다. 때문에 연애사 이면에 시시콜콜한 이야기, 이를테면 콩깍지가 씌이는 과정과 남녀가 몸을 섞는 과정, 변심 등을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리 아름답지 못한 현실을 그리 무겁지 않게 담은 소설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의 연애사를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앞면은 허지웅 소설, 뒷면은 허지웅 첫 소설이라고 씌여있다. 5년 만에 낸 책이고, 3년 전에 쓰기 시작했다. 비로소 책이 출간된 후, 개인적으로 나름 감회가 특별했을 듯 한데?
중간에 영화 전문 서적이 있다. 『망령의 기억』이라는 책인데, 한국의 공포영화를 다뤘다.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터라 중간에 그 책이 있었다는 것을 언급하고 싶다. 첫 소설을 낸 것은, 당연히 감회가 새롭다.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를 쓰는 걸 좋아했다. 솔직히 기쁘고, 많이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느슨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개포동 김갑수 씨의 사정>이라는 제목이 독특하다.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는데,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니 ‘뭔가 중의적인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골적으로 중의적 표현이다. 언어유희라기보다…, 난 그 두 가지 의미가 이 이야기 안에서 저마다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케이스일 수도 있고 말 그대로 사정(射精)일 수도 있고…. 아무튼 제목은 꽤 마음에 든다. 잘 지은 것 같다.
굳이 장르를 구분한다면 어떤 장르의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화다. 이솝우화, 탈무드 같은…. 어른들을 위한, 여우와 토끼와 거북이가 떡을 치는 이솝 우화라고 할 수 있다.
완성하는데 3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탈고되지 않은 원래의 글은 어땠을지도 궁금하다.
이 책은 순전히 편집자에 대한 믿음으로 나온 거다. 내가 신뢰할 만한 믿음을 줬다. 안 그랬다면 아마도 기약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절반을 쓰고 그 나머지는 언제 쓸까 하던 차에 좋은 편집자를 만나서 동기부여가 된 셈이다. 편집자는 최대한 내가 쓰고 싶은 내용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울타리가 되어줬다. 덕분에 내용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문장을 다듬는 수준 정도? 난 원고를 송고하기 전에 소리 내어 읽는데, 최대한 속도감 있게 빨리 읽혀지는데 주안점을 뒀다.
수다 떠는 여자들을 비웃지만, 실제로 은밀한 부분에서는 더 시시콜콜해지는 남성시각의 연애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실제 책을 접한 독자들 반응은 어떤 것 같나? 여성과 남성을 구분지어 말하자면?
글쎄…, 개인적으로 젠더에 따라 극명하게 나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평가는 각자 다를 테니, ‘내 책이 그런 책이구나’라는 식으로 규정짓고 싶지는 않다.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의미나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있는 거고 독자들이 생각하는 것은 또 다를 거다. 그럼에도 앞서 이 책이 우화라고 말한 것은 독자들이 삶의 어떤 순간에 문득문득 이 책의 교훈을 적용할 수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황을 한발 떨어져 제 3자의 입장에서 객관화하고, 성찰하며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우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텍스트로는 꽤 괜찮은 것 같다. 표면적으로는 연애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사실 이 책은 인간관계에 고루 넓게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도 된다.
인기 없는 남성의 입장에서 갑수 씨의 버라이어티한 연애사, 좀 더 구체적으로 섹스사는 공분을 살 수도 있을 듯하다.
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누구를 만났다거나, 혹은 몇 명을 만났다가 아니다. 관계가 파행이 되는 과정과 왜 파행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이후 이 소설을 쓰고 있는 화자로서의 ‘허지웅’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객관화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작가의 말에서 ‘아름답지 않은 것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의 특권’이라고 했는데, 저자가 사랑하는 ‘아름답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근사한 의미를 부여하는 비루한 현실, 풍경들이 있다. 그런데 난 거기에 굳이 근사한 해석을 붙이는 게 우스워 보인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가 수용 가능한 것으로 바꾸는 행위일 뿐이니까. ‘노동의 위대함’, ‘우리사회를 이끄는 원동력’, ‘청춘은 원래 아픈 거야’ 같은 것들이 그렇다. 그런 식의 의미부여는 비루한 현실을 본인이 수용 가능한 것으로 실제와 다르게 바꿔버리는 위선적인 행동이라 생각한다. 나쁘면 나쁜 대로 더러우면 더러운 대로 인정을 하고 같이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그것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판단을 하는데 가장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자세는 올바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쓴 문장이다.
마음을 얻기 위해 사랑을 볼모로 상대를 겁박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신념을 지키기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사람보다 남의 신념을 위해 내가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것이 아니면 오직 저것뿐이라며 세상만사를 재단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과거만이 오직 숭고하고 고단했다는 자신감으로 남의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얹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중략)…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개포동 김갑수 씨의 사정』에필로그 中
본인 스스로도 책을 통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어떤 남자가 진짜 좋은 남자라고 할 수 있을까?
에필로그에 나열된 조건들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들의 조건이다. 그것 그대로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 나이든 좋은 사람의 가장 좋은 조건이라면,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의 신념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희생하는 행동이다. 혹은 드러내지 않다거나. 그런 태도가 진짜 좋은 사람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광의의 의미로서 좋은 사람은…, 이를테면 다이하드의 부르스 윌리스 같이 책임지는 사람이다. 죽도록 고생해서 책임지고 나면 다음 편 가서 다시 망가져 있지만, 어찌됐든 그걸 정상으로 돌리려는 책임감이 있지 않나? 그게 진짜 훌륭한 어른, 좋은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 좋은 사람이 되려면 적어도 책임지려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79년생, 남자, 그리고 허지웅
소설은 기본적으로 픽션이라고 하지만, 글쓴이의 배경이 녹아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갑수 씨가 맴도는 공간이나 소설 속 화자인 ‘허지웅’이 내비치는 스스로의 배경들은 작가의 실제 경험과 어느 정도 연결 돼 있다. 작가는 1979년생, 오늘날 30대 중반을 살아가고 있는 세대에 속해 있다. 이 세대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X세대를 동경하다 낭패 본 세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시절, 그 세대라면 아마도 그의 책에서 더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짐작해 본다.
1979년생, 소위 IMF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세대다. 책 속에서도 그렇고 이야기 중에도 언뜻언뜻 비춰지는 개인적인 굴곡이 느껴지는데, 그런 경험이 작품 속에도 녹아들어간 듯하다.
이야기를 만든 사람의 삶하고 완전히 무관한 픽션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연관이 깊은 게 당연하다. 1979년생 같은 경우는 고등학교 때 ‘건축학과가야지’, ‘오렌지족이 되겠다’ 같은 여러 가지 꿈을 품다가 고3 때 세상이 달라진 세대다. 거대서사로 따지면 불행한 세대기도 하다. 본인이 원치 않는 이유로 본의 아니게 인생을 낭비해버린 친구도 많았고…. 그래서 아까 말한 것처럼, 지금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제작진이 좋다는 거다. 나와 같은 세대인 그들과 일하는 게 좋다. 79~80년생들 에게는 자기가 할 수 있고, 잘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이 있다. 방송만 해도 과거 방송의 관성을 벗어난 다른 것을 만든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걸 같이하고 있다는 자부심, 그걸 실제 함께하고 있다는 자체가 소중한 거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하다.
그래서 인지, 책 속의 ‘허지웅’이 갑수 씨를 두고 하는 생각 중에는 부러움, 비난도 있지만 애처로움도 있는 듯하다.
그건 세대보다는 한 사람이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허지웅’은 초반에는 갑수 씨가 웃겨서 만났고, 그 이후에는 호기심의 대상, 관찰의 대상으로 봤다. 그 다음은 ‘얘는 영 글러먹은 놈이구나’ 하고 나와 다른 사람으로 타자화 시킨 후 단절한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아, 그게 아니었구나. 나와 같은 사람이었구나’하며 공감하고 이해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한 사람이 타인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고, 난 그걸 화자로서 ‘허지웅’과 갑수 씨라는 인물을 통해 이야기한 것이다.
중간 중간에 삽입된 ‘인터미션’은 실제 본인의 이야기라고 했다. 소설 속에 논픽션을 넣은 셈인데 이유가 있나?
난 고전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고전 중에서도 2시간 넘는 할리우드 에픽물 시대로 넘어가면 인터미션이 있지 않나? 난 그게 정말 좋았다. 화장실도 가고, 쉬는 중간에 나오는 클래식 음악도 너무 좋았다. 앞의 이야기를 상기하면서 뒤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도 좋았다. 그런 고전영화의 인터미션과 같은 효과를 주고 싶었다.
방송을 하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본인은 여전히 글쟁이라고 선을 긋는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 허지웅의 책을 기대해도 된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렇다. 영화비평 작업은 계속 할 생각이다. 다만 그걸 책으로 묶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계획을 잡고 착실히 쓰겠다고 결심한 것은 소설인데, 개인적으로는 대체역사와 SF 장르에 관심이 많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그런 장르의 책을 쓸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개포동 김갑수 씨의 사정』이 어떻게 읽히길 바라는지,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감독도 그렇고 작가도 그렇고 그 이야기를 만들어 낸 사람이 ‘어떻게 읽혀졌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감춰놨던 메시지는 이거다’라고 이야기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지 않나? 그래도 큰 틀에서 느슨하게 말한다면(웃음), 아까도 말한 것처럼 이 이야기는 우화라는 것이다. 우화로서 효과를 주기 위해 각 챕터를 최대한 짧고, 읽기 쉽고, 재미있게 갔다. 쉽게 읽혀질 거라는 점은 확신한다. 내가 소리 내어 꽤 여러 번 읽어봤으니까. 독자들에게 바라는 점이라면, 한 번 쭉 읽어보고 책장에 뒀다가 어떤 에피소드가 떠오를 때 그 부분만 다시 읽어보라는 거다. 그러면 아마 지금 스스로가 처한 상황을 객관화해서 보게 되고, 거기서 또 다른 사유로 넘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 믿는다. 우화의 목적이 그런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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